신문 모니터_
양승태 구속된 날 ‘인권법연구회’를 비난한 조선일보2019년 1월 24일 새벽 ‘사법 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이유로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박근혜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개입 등 40여 개의 혐의가 상당수 인정된다는 겁니다.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후배 판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던 양승태 전 원장의 태도 역시 ‘증거인멸 우려’의 발단이 됐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 심지어 사익 추구를 위해 정치권력과 재판을 거래한 것은 유래 없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모든 언론사들이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보도 태도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양승태 구속된 날, 유일하게 1면에 ‘양승태’ 없었던 조선일보
신문사 |
기사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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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일간지 |
경향신문 |
양승태 구속…사법역사 치욕의 날(1면 톱, 사진) |
동아일보 |
“수치스럽다” 영장심사 양승태 마지막 발언/ 질문 사절(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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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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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양승태 5시간30분 구속영장심사(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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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1면 톱, 사진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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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 |
매일경제 |
영장실질심사 마친 前대법원장(사진) |
한국경제 |
영장심사 받은 前 사법부 수장(사진) |
△ 1월 24일 1면 양승태 전 원장 구속 관련 기사 비교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를 제외한 신문사들은 모두 1면에 양승태 전 원장 구속을 비중있게 배치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두 영상질실심사를 받고 나온 양 전 원장 사진을 크게 실었으며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사진과 함께 기사도 1건씩 배치했습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1면에 사진을 크게 보여준 후 2면부터 관련 소식을 이어갔습니다. 이와 달리 조선일보는 1면 보도가 아예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12면에 가서야 <후배판사에게 "피의자"로 불린 양승태… 체육복 입고 구치소서 대기>(1/24)라는 제목으로 양 전 원장 구속을 전했습니다. 12면에는 같은 날 미투 운동의 결과 구속된 안태근 전 검사장, 국회의원 정치후원금을 자신이 속한 단체에 기부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소식이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여타 신문이 모두 1면에 따로 배치할만큼 중요하게 본 사안을 조선일보만 축소해 보도한 겁니다.
날짜 |
종합일간지 |
경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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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동아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겨레신문 |
매일경제 |
한국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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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 |
1(2) |
3(2) |
1(1) |
2(1) |
1 |
1(2) |
2(1) |
사설/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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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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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일 조간신문 양승태 구속사건 보도량 Ⓒ민주언론시민연합
24일 양 전 원장 관련 보도량을 상세히 보면 전체 보도량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동아일보가 사진 기사 포함 5건으로 가장 많았고 타사는 2~4건으로 대동소이했습니다. 신문사마다 초점을 맞춘 부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영장실질심사 과정, 양 전 원장의 입장, 양 전 원장 구속에 대한 여론전 등을 짚어 내용상 특별한 차이는 없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소식을 무려 12면에 가서야 보도하고도 칼럼을 1건 낸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그간 ‘판사 블랙리스트’, ‘재판 거래’ 등 양 전 원장이 연루된 사법농단 사건들의 실체를 부정했는데요. 양 전 원장이 구속된 24일에도 1건의 칼럼을 통해 같은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사법농단으로 인한 사법부 신뢰 하락은 사법농단을 지적한 판사들 때문?
몇몇 언론들은 사법부 신뢰 하락 우려를 기사에 담았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로 대표되는 사법부 신뢰가 언제는 높았던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양승태 전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의 사법농단 사건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크게 하락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을 오히려 사법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판사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언론사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칼럼 <‘사법 권력’ 된 인권법연구회 자진 해체해야>(1/24, 최원규 사회부 차장)은 양승태 전 원장 구속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했다면서 그 책임을 느닷없이 판사들의 모임인 ‘인권법연구회’에 전가했습니다. 양 전 원장의 사법농단 혐의를 법원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일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양 전 원장이 아닌, 사법농단 문제를 제기한 판사들을 비난한 겁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조선일보는 인권법연구회를 향해 ‘자진 해체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칼럼의 주인공 최원규 기자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법농단 수사를 위해) 검찰을 끌어들인 게 결국 사법부 주류 세력 교체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중략)요즘 서울 서초동 변호사들을 만나면 “사건 의뢰인들이 판사가 인권법연구회 출신인지부터 묻는다”고 한다. 열이면 여덟 정도가 그런 말을 한다. 과거엔 판사의 학맥·인맥을 따졌는데 이젠 특정 성향부터 묻는다는 것이다. (중략) 판결에 판사 성향이 개입될 수 있다고 소송 당사자들이 느끼는 건 심각한 문제다. 누가 재판을 신뢰하겠나.
그렇다면 이 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자중해야 할 텐데 오히려 특정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재판이 곧 정치”라고 하고,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의 탄핵을 청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략)사법부 독립을 해쳤다며 전임 양승태 사법부를 적폐로 몰아붙인 이들이 이렇게 완장 찬 홍위병식 언행을 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적폐 아닌가.
뒤죽박죽,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에 독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양 전 원장의 사법농담 혐의에는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분명한 위법 행위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검찰이 수사해야 합니다. 사건이 나면 검경이 수사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검경이 아니면 누가 수사를 한다는 말인지 의문입니다. 조선일보 최원규 기자는 아무 근거도 없이 검찰 수사라는 자연스러운 절차를 ‘사법부 주류 교체 시도’라는 정치적 의미로 규정했습니다.
그 다음 논지는 더 황당합니다. 사건 의뢰인들이 판사의 학맥‧인맥을 따지는 것은 괜찮고 성향을 따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취지입니다. 학맥‧인맥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로비 등 불법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큰 ‘심각한 문제’ 아닐까요? 판사의 성향에는 그 어떤 로비도 할 수 없고 의뢰인이나 변호사가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판사의 성향은 오히려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진보성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사법농단 의혹 판사 탄핵하면 ‘적폐’라는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홍위병식 언행’, ‘적폐’라 몰아붙인 “재판이 곧 정치”라는 판사의 발언,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 청원을 올린 판사의 행위 역시 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재판이 곧 정치’라는 발언은 앞뒤 맥락이 없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조차 없으며 사법농단 연루 법관 탄핵을 청원했다면 오히려 판사로서 해야할 일을 한 겁니다. 조선일보가 여기서 지목한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올린 청원’은 현재는 삭제됐으나 조선일보가 온라인으로 최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 <현직 판사의 아고라 청원…“법관탄핵 청원할 국회의원 함께 찾자”>(2018/12/20)를 보면, 법관 탄핵 청원을 올린 이 판사는 오히려 인권법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현 대법관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사법농단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태를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 하의 법관징계위원회는 최고 징계인 정직 1년조차 하나 없는 셀프 징계로 봉합하려 합니다”라는 비판입니다. 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끼리 이렇게 건강한 비판을 주고 받는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일입니다.
△ 최원규 기자가 ‘완장 찬 홍위병식 언행’으로 지적한 현직 판사의 판사 탄핵 청원 글.(12/20, 조선일보 기사에서 2차 캡처)
조선일보는 사법농단과 그 주동자인 양승태 전 원장의 잘못은 은폐한 채, 그 적폐를 드러낸 판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혈안이 된 모양새입니다. 과거 학맥‧인맥으로 재판을 하던 판사들보다 사법농단을 드러낸 ‘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더 나쁘다는 겁니다. 적폐청산을 위해서는 대법원장도 비판할 수 있는 판사들이더라도 사법농단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들이 적폐라는 겁니다. 이 모순에 동의할 수 있는 독자는 없을 겁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월 24일 경향신문,동아일보,매일경제,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경제,한겨레신문 보도(신문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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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정리 공시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