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대성고 학생에 대한 무리한 취재시도, 기자들은 세월호의 교훈을 잊었나
등록 2018.12.19 17:28
조회 1833

12월 18일 오후, 강릉의 한 펜션에 놀러갔던 고등학생 열 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됐습니다. 갑작스런 사고에 기자들은 즉시 전방위 취재에 나섰습니다. 일산화탄소가 왜 유출된 것이며 학교의 책임은 없었는지 등 다양한 질문과 문제의식에 대한 답이 속속 전파됐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자들이 제 역할을 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의 도를 넘어선 취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피해자와 같은 반 학생의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그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에 찾아가 “대성고 학생인 거 알아요”라며 길 가던 학생에게 사고에 관한 취재를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4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몰상식한 행태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취재윤리는 매번 지켜지지 않지만, 민언련은 그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거듭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재 대상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일수도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기자들은 피해자 학생들이 다녔던 연신내 대성고등학교 인근을 직접 방문해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대성고 페이지)에 제보된 내용들에는 취재진이 대성고와 인근 지역까지 찾아와 취재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주변 학생 취재는 상황에 따라 가능한 영역입니다. 피해자들이 평소 어떤 학생이었는지 혹은 다른 드러나지 않은 정황은 없는지 취재함으로써 공익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취재진의 행태는 그 도가 지나칩니다.

 

익명 사이트라는 한계는 있지만 대성고 페이지에 올라온 몇몇 제보에 의하면, 해당 고등학교를 찾은 기자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취재를 하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래 제보에는 기자가 대성고 학생이 아니라는 학생에게 “학생증 까보라”며 대성고가 아님을 입증하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취재와 단독에 눈이 멀어서 인권이나 취재윤리 따위는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또 이번 사고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어떤 기자들은 PC방과 음식점, 근처 학원까지 들어가 피해 학생에 대해 묻거나 심지어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학생의 사진까지 보여주고는 “이 학원 다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해당 페이지가 익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모든 제보를 다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제보가 학생들에 대한 기자들의 무리한 취재라는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고, 4년 전 세월호 사고 때 기자들이 보여준 취재행태가 겹쳐지는 만큼 이번 사고에서도 기자들이 막무가내식 취재를 벌인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사진1.JPG

△ 고등학교 앞까지 찾아온 취재진(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사진2.JPG

△ 해당 학교 근처에서 어떤 학생이 겪었다는 일화 (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사진3.JPG

△ 학교 근처 음식점과 PC방, 학원까지 무분별하게 들어가 취재 시도한 정황 (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취재는 한층 더 조심해야

많은 기자들이 해당 사안을 취재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포함해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취재 의향을 묻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텍스트만으로 이뤄지는 소셜미디어 취재 특성상, 기자가 제아무리 선한 의도로 접근했어도 대상자는 거부감과 오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번 사안에 대해 취재를 시도한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의 페이스북 메시지 기록입니다. 거절 의사를 밝혀도 재차 연락처를 요구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진4.JPG

△ 수차례 연락처 물어보는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다음은 TV조선 최민식 기자와 조선일보 이영빈 기자의 취재시도 정황입니다. 제보에는 내용 일부가 가려져 있지만 피해자의 이름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일지 모르는 상대를 취재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조심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로 최민식 기자는 과거 ‘드루킹 사건’ 때 느릅나무 출판사에 무단으로 침입해 태블릿PC를 가지고 나온 전적이 있기도 합니다.

 

사진5.JPG

△ 대뜸 피해자 언급하며 취재 시도한 기자들(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인터넷 취재’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2017년 12월 내놓은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1장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면이나 유선 취재가 아닌 인터넷 취재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최대한 주의하며 예의를 차리라는 겁니다. 아래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제3조. 인터넷 취재

② 메일이나 스마트폰의 문자 및 채팅 서비스 등을 이용한 취재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

③ 메일과 문자 메시지 및 채팅 서비스를 통한 취재에서는 표현이나 단어 사용에 예의를 다한다.

 

그나마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의 취재 기록은 상대방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했으며,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 취재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설명했습니다. 또한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중한 요청이라 하더라도, 과연 고인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어떤 친구였는지를 알아서 전해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진6.JPG

△ 재난상황에서 피해자 심정 배려한 조선일보 박상현 기자의 취재기록 (서울대성고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갈무리)

 

시청자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참사 피해자나 가족이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와, 또 다시 이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집중해야지 이처럼 사연 팔이에 의존하는 보도는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면 최소한 재난보도준칙을 숙지하라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계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재난보도준칙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 기자들이 취재를 시도한 이들 중에는 평소 피해자들과 각별한 관계였던 학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취재를 시도하며 취재원을 사람 아닌 정보원으로만 간주하는 태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제19조(신상공개 주의)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제20조(피해자 인터뷰)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터뷰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하며 비밀 촬영이나 녹음 등은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다 할지라도 질문 내용과 질문 방법, 인터뷰 시간 등을 세심하게 배려해 피해자의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해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또한 <취재 기자를 위한 재난보도 매뉴얼>(데보라 포터, 셰리 릭카르디 저) 10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행동지침이 나옵니다. 부디 이번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이 다음 내용을 숙지하고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벌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재난 발생 시, 보통 사람이 갑자기 언론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충격을 받은 상태로 슬픔에 잠겨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한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카메라와 마이크, 녹음기가 들이닥친다. 한편 기자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비극적인 사건을 전해줄 책임이 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진실을 전달하는 일—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다음은 희생자와 생존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미디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질문이나 촬영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침착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힘.

▶희생자 개개인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함. 기자들은 현명하게 행동해야 함.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동시에 소극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됨.

▶“기분이 어떠십니까?” 혹은 “어떤 기분이신지 이해합니다”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됨.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한 후에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되셔서 유감입니다” 혹은 “힘든 일을 겪고 계신 것을 보니 유감입니다”라고 운을 떼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화법임.

▶희생자나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놓을 수 있도록 단답형이 아닌 질문들을 할 것. “언제 이 상황을 알게 되셨습니까? 현재까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취재하는 경우에는 “후안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적절한 대화법이 될 것임. 그리고 생존자들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할 것. 이런 질문은 판단을 요하는 질문이 아니지만 답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함.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것.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꺼리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위안을 찾기도 함.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거나 정보를 얻어내려는 언론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즉시 한 발 뒤로 물러설 것.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물러남. 다만 일부 언론인들은 명함을 건네면서 “나중에 이야기하고 싶어지시면 연락을 주십시오”라고 추후 연락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함.

▶희생자들에게 주도권을 줄 것. 인터뷰 동안 앉아 있는 것이 편한지 서 있는 것이 편한지를 물어보거나 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벗어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은지 등을 물어봐야 함. 또 “누구를 대신해 이야기 하고 싶으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등 희생자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여줄 필요가 있음.

 

한 번의 참사를 겪고도 나아진 것이 없다면

죽음을 취재하는 것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면서, 기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고역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노력과 고충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강릉 펜션 사고로 피해자 주변의 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었습니다. 이 부분을 취재할 때 기자들이 최대한의 조심성과 예의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배려가 결여된 취재 행위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2차 피해로까지 변질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 때 같은 비판을 겪고도 막무가내식 취재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언론사와 선배 기자들 역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혹시 막내 기자들에게 취재 내용을 빨리 보내라고 독촉해 과도한 속보 경쟁을 유발하지 않았는지, 더 자극적인 내용을 가져오라고 채근하지 않았는지 자성하길 바랍니다. 이런 보도행태는 기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기레기’라는 명칭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꼴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박철헌 인턴

 

monitor_20181219_38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