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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명이 모인 노동자 대회, 제대로 보도한 언론이 없다
등록 2018.11.12 17:43
조회 660

민주노총이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18년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고 ‘적폐청산·노조 할 권리·사회대개혁’을 요구했습니다. 이날 주최 측 추산 6만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를 기록했습니다.

형형색색의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12차선 대로를 가득 메운 노동자들은 각자의 사연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분홍색 조끼를 입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존중 사회와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던 정부 정책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며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 이행 책임져라”고 요구했습니다. 카트를 끌고 나온 노란 조끼의 마트노동자는 “의자에 앉아서 일 할 권리”을 달라며 “마트에도 사람이 있다. 우린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닌 당당한 노동자다”고 선언했습니다. 빨간 조끼를 입은 요양서비스 노조 노동자는 “지난 10년 동안 요양서비스 노동자들이 잘못인 줄 몰라서 또는 불이익을 당할까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며 “진짜 비리의 총집합은 민간 요양시설이다. 사립 유치원 비리가 터졌을 때 비리가 더 많은 요양시설엔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지 답답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하얀 가면을 쓴 백화점과 면세점 노동자는 “감정노동 즉각 응대 중지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검은색 조끼의 공공연대노조 노동자는 공공기관 정규직화 과정에서 자회사 전환방식을 반대하며 ‘직접고용’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조끼를 입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우리는 노동자다 노동 3권 보장하라” “사장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다”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외에도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전교조, 금속노조, 건설노조 등 ‘얼굴 없는 노동’을 해왔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각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대회사를 통해 “민주노총은 자본가의 요구인 탄력근로제 확대 청부입법을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을 강력 저지할 것”이라며 최근 여당과 일부 야당이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를 막을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이어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정, 국민연금 개혁과 비정규직 철폐하라”며 민주노총의 요구사항을 밝혔고, “11월 21일 20만 총파업이 내년 민주노총 모든 조합원의 전면 총파업으로 확장되도록 현장의 동지들과 최선두에서 함께 조직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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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열린 ‘적폐청산‧노조 할 권리‧사회대개혁, 11.21 총파업 결의’ 전국 노동자 대회 모습. 이날 6만 명의 조합원이 모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를 기록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 제공)

 

‘얼굴 없는 노동자’들 거리에 나왔지만…한겨레마저 ‘외면’

차별받고 억압 받던 노동자는 그간 억눌려왔던 목소리를 봇물처럼 쏟아냈습니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우리 사회가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였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언론의 의무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철저히 침묵했고, 결과적으로 집회 참여자의 절박한 목소리는 광장 안에서만 맴돌았습니다. 동아‧서울‧한겨레는 12일 조간신문에 ‘노동자 대회’ 관련 기사를 단 한 건도 싣지 않았습니다.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보도한 신문은 5건이나 내놓은 조선일보였고, 중앙일보가 2건, 경향신문이 1건을 보도했습니다.

 

언론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보도량

1건

0건

0건

2건

5건

0건

∆ 12일 ‘민주노총의 노동자 대회’를 언급한 보도 건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의 키워드는 ‘점거’ ‘점령’ ‘혼잡’

그렇다면 가장 많은 보도를 내놓은 조선일보의 보도는 바람직했을까요? 조선일보 보도의 대부분은 집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조선일보 <민노총, 광화문 12차로 막고 “청와대를 포위하자”>(11/12 손호영 기자 https://bitly.kr/pDbh)기사에서 “오후 1시부터 해 질 때까지 도로점거”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연이어 대규모 집회가 열려 주변 도로가 혼잡을 빚었다” “노조원들의 사전 집회로 오후 내내 차량 정체가 이어졌다…아현 교차로에서 종각까지 3km를 차로 가는 데 1시간 이상 소유됐다”며 집회로 발생한 혼란을 강조했습니다. 노동자 측의 목소리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의 발언을 짤막하게 전달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조선일보는 위 기사뿐만 아니라 신문 곳곳의 공간을 이용해 집회를 비난했습니다. 1면 팔면봉(https://bitly.kr/jbp3)에서 “민노총 시위로 또 빼앗긴 서울 도심의 주말. 머지않아 ‘평온한 주말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나올 것”이라고 조롱했고, 2면 박스요약기사인 chousn today9(https://bitly.kr/Ptqa)에서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가 열려 교통이 마비됐다”고 전했습니다.

 

노동자가 싸움에 나선 이유는 감추고, ‘노조 혐오’만 부추긴 조선일보

이날 조선일보는 사설로도 민주노총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도심과 건물을 제 집 안방처럼 점령하는 민노총>(11/12 https://bitly.kr/uiO5)은 “그 전날인 9일엔 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소속 수천 명 공무원들이 집단 연가를 내고 도심 길바닥을 점령했다”고 전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왜 거리에 나섰는지 살펴보기보다는 ‘길바닥을 점령했다’고 조롱하는 말투를 사용한 것이죠.

도대체 그들은 왜 길바닥을 ‘점령’했을까요? 민주노총 공무원노조는 9일 광화문에서 조합원 6천명과 함께 집회를 열고 “공무원해직자 원직복직과 노동3권, 정치기본권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노조에 수많은 요구 사항이 있지만 해직자원직 복직 쟁취는 공무원노조의 정당성을 역사적‧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노동존중 사회를 열어가는 첫걸음”이라며 “136명 해직동지들을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현직들이 해야 할 최고의 의리이자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참여와 혁신 <공무원 6,000여 명 “해직자를 원진 복직시켜라>(https://bitly.kr/xx9P)에서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의 노동3권과 정치기본권 보장은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민주적인 것’으로 이를 위해 싸워온 해직 공무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정부가 당시 징계를 취소하고 해직 기간의 임금과 연금 등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공무원노조는 헌법이 보장한 노조 할 권리를 위한 싸움을 15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저 ‘길바닥을 점령했다’며 폄훼하고 있던 것입니다.

또, 조선일보는 “지금 민노총은 일반 국민, 정치인, 공무원 등 상대가 누구건 집단 행패로 제압하려 한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인천 부평구 사무실에서 8일부터 나흘째 점거 농성 중이다”고 전합니다. 민주노총의 행동을 ‘행패’ ‘제압’ 등 강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로 묘사하기에 급급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민주노총은 여당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사무실을 점거했을까요?

GM이 한국 공장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GM공장이 위치한 인천 부평구 지역 노동자의 걱정과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달 19일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이 ‘나 홀로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 분리를 의결한 것을 두고,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한국지엠 법인 분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구조조정과 이후 한국공장 철수를 위해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준비”라며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한국지엠의 법인분리를 의결한 주주총회는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물론 노조에 어떠한 설명도 없이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노조 측은 이를 한국 공장 철수의 사전 작업이라고 분석하고, 정부와 지역사회가 나서서 철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노조는 부평구가 지역구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호소해왔습니다. 이인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법인 분리를 막으려는 노조 노력을 뒤에서 방해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이번 달 8일 보도자료를 통해 “법인 분리 사태가 발생한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홍영표 의원을 성토”하며 ‘홍 원내대표 사무실 점거’에 돌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https://bitly.kr/HDjN) 홍 원내대표는 1985년 부평공장 파업과 노조 결성을 주도한 노동운동가 출신인데, 한국지엠 노조의 절박함에 응답하지 않으니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정부도 여당도 움직여주지 않자 직접행동에 옮긴 노조의 행동을 ‘행패’라고 규정짓기 전에 인천 부평구 지역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지엠 공장 철수’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해고 걱정 없이 일하고 싶은 노동자

이어 조선일보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성남 잡월드 건물에 무단 침입해 문짝을 발로 걷어차고 고함을 지르며 정규직 직원을 위협했다고 한다. 화장실도 맘대로 못 갈 정도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겁에 질린 직원 30여 명은 경찰 보호를 받아 간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업무방해 수준을 넘어 불법 감금, 집단 폭행이다”고 전합니다.

조선일보가 비판한 ‘한국잡월드’는 어린이 청소년 직업 체험 전시관을 운영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입니다. 이곳은 정규직 56명과 비정규직 33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분 정규직화’를 천명하면서, 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고 걱정 없는 일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잡월드는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노동단체들은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조차도 간접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영희 공공운수노조 잡월드 분회장은 지난달 10일 삭발기자회견을 하며 “우리에게 정규직을 시켜 주겠다고, 제대로 된 일자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예전처럼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언제 해고될 지 몰라 가슴 졸이며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바보 같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님, 답을 주십시오.”라고 울먹였습니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잡월드 노동자는 ‘자회사’로는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직접채용’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동자의 요구에도 잡월드가 자회사 전환을 강행하자 노조는 지난 7일부터 경기도 성남 잡월드 이사장실 앞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일보는 또 “지난달엔 민노총 소속 기간제 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우선 전환하라며 김천시청과 시장실을 점거하고, 김천시장이 사는 아파트 앞에 한 달간 진을 치고 확성기를 틀어대고, 심지어 아파트 현관까지 침입해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라 폭력적 협박이고 행패다”고 전합니다.

조선일보가 비판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북지부 노조원 중 일부는 지난달 30일 김천시장실을 잠시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김천시통합관제센터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노조원은 “정부의 무기계약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김천시통합관제센터 기간제 근로자들이 포함됨에도 김천시가 무기계약직 전환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서로의 입장을 듣고 이야기하기 위해 김천시장 면담을 계속 요구했지만, 김천시는 답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싸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를 전달해주지 않고 “행패” “위협”이라고 폄훼만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분쟁…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현실

사회 곳곳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지만, 언론은 위 조선일보 사설처럼 이를 편파적으로 보도하거나 아예 못 본 체 하고 있습니다. 보도하더라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만 전할 뿐, 노동자의 사정과 목소리를 자세히 전달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된 것입니다. 그들이 왜 노조를 결성해서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있는지, 언론이 제대로 전해주지 않고, 무조건 말하지 말라고 압박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갑질에 다름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편향된 정보를 노출되는 독자들은 노조의 이기주의를 욕하며 ‘귀족노조’라 손가락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이 이들의 사정, 그간의 억울함을 전하고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그때 협상을 요구해도 됩니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집약된 ‘노동자대회’에 이처럼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다가, 21일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이 되면 다시 노동자의 과격성을 강조하고 비판하겠지요.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언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1월 1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에 한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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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