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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갈등, 조선일보는 또 ‘외부세력’ 운운
등록 2018.11.08 09:41
조회 871

지난 5일 오전 9시 수협은 옛 노량진수산시장 전역에 전기와 수돗물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옛 시장 상인들은 생선과 해산물을 살리려 발전기를 돌리고 촛불을 켠 채 장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상인은 새 노량진수산시장(새 시장) 입구를 막으며 항의 집회를 열었고, 이 과정에서 60대 상인 1명이 넘어져 다치기도 했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은 옛 시장의 노후 및 위생 문제를 이유로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수협은 2015년 10월 옛 시장 옆에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새 건물을 지었고 상인에게 이주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상인 654명 중 270여 명은 매장 공간이 줄어들고 임대료가 2배 이상 인상되었다며 입주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수협은 상인들과 합의하지 못한 채 2016년 3월 신 시장을 개장했습니다. 수협은 옛 시장을 허물고 해당 부지에 호텔과 카지노가 포함된 수십층 높이의 해양수산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상인들은 지금도 옛 시장에서 영업을 이어가며 3년 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수협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수협이 옛 시장 상인을 상대로 낸 건물인도 및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옛 시장 상인)가 무단 점유를 하고 있다며 원고(수협)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수협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4월부터 법원집행관과 용역을 동원해 4차례 강제철거(명도집행)에 나섰습니다. 상인과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이 강경하게 맞서며 강제 집행은 무산됐고 수협은 ‘최후통첩’으로 단전‧단수를 강행한 겁니다. 상인들은 “임차인에 대한 단수‧단전은 불법”, “지난주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면담을 하면서 2주 뒤 다시 면담을 하기로 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량진 상인들은 절규…언론은 침묵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상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나 신문들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전‧단수가 집행된 5일부터 7일까지 보도량은 조선일보가 3건으로 가장 많았고,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이 각각 2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서울‧중앙‧한겨레는 단 한 건의 지면기사도 싣지 않았습니다.

 

신문사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례

보도량

2건

2건

0건

3건

0건

0건

∆ 수협의 옛 노량진수산시장 단전단수 조치 관련 신문 지면기사량 비교(11/5~11/7)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 수산시장에도 ‘민중당 등 외부세력’

그나마 보도를 낸 조선‧중앙‧경향 역시 그 내용이 충실하지는 않습니다. 단수‧단전이 이뤄진 현장 상황 전달에만 집중했을 뿐, 어째서 상인들이 싸우고 있는지 근본적 이유를 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선일보 <결국…‘불 꺼져버린’ 옛 노량진 수산시장>(11/6 이정구 기자 https://bitly.kr/e9JR)는 옛 시장의 상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조선일보는 단전‧단수 소식을 간단히 전한 후 옛 상인들의 상황을 “2016년 계약이 끝나 법적으로는 무단 점유 상태”라 정리했으며 “법원은 2017년부터 지난달까지 총 4차례 구시장 건물 상점에 대해 명도 집행(법원 명령에 따라 거주자를 내보내는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상인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노점상연합회, 민중당 등 외부 세력이 차를 동원해 건물을 감싸는 식으로 집행을 막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 현장이나 사드 반대 집회, 촛불 집회 등 시민들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조선일보가 악용하는 ‘외부세력 프레임’이 여기서도 나온 겁니다. 시민들의 연대를 늘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는 조선일보의 버릇입니다. 조선일보는 시민들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당사자와 외부세력’을 갈라치기하며 ‘배후 외부세력의 음모’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중당’, ‘과거 통진당 세력’은 조선일보가 색깔론까지 덧씌우기 위해 매번 동원하는 요소로서 이 같은 보도 행태는 시민들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조선일보가 전한 옛 시장 상인들의 투쟁 이유는 “새 건물이 임대료가 비싸고 영업 조건이 나쁘다는 이유”라는 딱 한 마디뿐입니다. 옛 시장 상인의 현장 목소리 역시 “단전·단수 피해에 대해 수협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윤헌주 노량진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위원장의 말 한 마디만 실었습니다. ‘단전‧단수 상황’에 ‘외부세력 프레임’만 더한 보도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전달한 경향신문도 ‘투쟁 이유’는 외면

경향신문 <단전단수까지 간 노량진수산시장 사태>(11/6 김찬호 기자 https://bitly.kr/dQoB)는 조선일보처럼 ‘외부세력’을 운운하지도 않았고 투쟁 중인 옛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 역시 충실히 전했습니다. 보도의 도입부부터 “물고기들 살리려고 산소통을 한 시간마다 갈아주고는 있는데”라는 상인의 토로로 시작되며 “오늘 장사를 하려고 광어, 방어 300마리 정도를 준비했는데 이미 절반 정도는 죽었다”, “400만원 이상의 피해가 난 것 같다”는 민병수 씨, “발전기를 하루 대여하는 데 10만원이 든다”, “수협은 우리에게 발전기를 빌려주고, 해수를 공급해 준 업체 사진도 다 찍어갔다”, “빌린 사람, 빌려준 사람 다 불법으로 조치한다고 협박 중”이라고 한탄한 이상숙 씨 등 옛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 열악한 환경이 현장감 있게 전달됐습니다. “구시장 상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임차인에게 단전·단수를 단행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례가 있음에도 반인권적인 행태를 벌이고 있다”라는 민주노련 입장, “지난주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면담을 하면서 2주 뒤 다시 면담을 하기로 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옛 시장 상인 입장도 덧붙였습니다. 모두 조선일보에는 없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경향신문 역시 이렇게 생생한 현장 상황과는 별개로 옛 시장 상인들이 어째서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지는 “구 시장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 좁은 통로 등을 이유로 새 건물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라는 설명으로만 갈음했습니다. 이는 조선일보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동아일보 <노량진 수산시장 전기-물 끊어…극한 대치>(11/6 https://bitly.kr/wB54)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옛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이 반발하는 이유

옛 시장 상인들의 반발 이유가 ‘더 비싸진 임대료와 좁은 영업 공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더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싼 임대료와 좁은 공간’이라고만 하면 자칫 ‘상인들의 극단적 집단이기주의’라는 오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사정은 SBS <취재파일/노량진 상인들…'새 집' 준다는데도 싫다 하는 이유는?>(2015/12/10 https://bit.ly/2STzFEl)에서 보도했습니다. SBS에 따르면 옛 시장 한 개의 점포 면적은 5㎡(1.54평)입니다. 여기에 점포와 통로 사이의 진열 공간 11㎡(3.5평)을 더하면, 한 점포가 17㎡(5평)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 건물에 주어진 점포 면적은 4.9㎡로 1.5평에 불과합니다. 점포 면적도 소폭 줄어든 데다, 수족관을 놓아두던 통로 공간이 사라졌기에 상인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입니다. 또한 고객들의 이동 통로 역시 새 시장에서 너무 좁아져 이용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옛 상인들은 “장사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반발하는 겁니다.

임대료 역시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 상인들의 입장입니다. 옛 시장은 점포당 월 29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했고, 여기에 전기료‧수도료 및 관리비를 합치면 월 70~80만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새 시장의 임대료만 월 71만원에 이릅니다. 2배 이상 가격이 오르는 겁니다.

이에 수협은 시설이 현대화된 새 시장의 임대료는 상승할 수밖에 없으며 좁아진 영업 공간 역시 규정을 엄밀하게 적용한 것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양측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간단히 ‘상황’만 전달한 신문들의 태도는 대단히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270여명이나 되는 상인들이 싸우며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상세한 쟁점을 전달해 합리적 공론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부동산 개발 논리에 빠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최순실 개입 의혹도

신문들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더 근본적인 배경들도 있습니다. 이는 언론이 상인들의 입장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는 이슈들이기도 합니다.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이하 비대위)는 노량진수산시장이 수도권 전역에 수산물을 공급하는 수도권 최대 규모의 도매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수협이 새 시장을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수산마트’ 수준으로 지었다고 비판합니다. 비대위는 수협이 이렇게 시장 규모를 축소한 의도가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익’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협이 옛 시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우겠다고 한 카지노 포함 대형 빌딩에 바로 그런 의도가 녹아 있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무리하게 상인들을 몰아내면서 ‘현대화 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는 것이죠. 비대위와 민주노점상전국연합회는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된 현대화 사업으로 상인들이 고통 받고, 많은 상인들이 시장을 떠났다”며 “수협의 폭압적인 현대화사업 중단과 서울시 미래유산인 노량진 수산시장 존치를 위해 국회가 나서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비대위는 “전통 노량진 수산시장을 없앨 게 아니라 '리모델링을 통한 관광명소화'를 추진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는 최순실의 최측근으로서 문화계 농단을 주도했던 차은택 씨가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TF팀’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했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도 TF위원으로 활동해, 여기에도 최순실의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습니다.

 

팩트 너머의 진실, 이면을 짚어주는 기사가 나와야

옛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간 4번의 강제집행과 이를 막는 상인과 시민들의 몸싸움이 있었고, 일부 상인이 수협 관계자를 칼로 위협하는 불성사나운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끝내 ‘단전단수’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수협’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갈등의 표면만 전달하는데 그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상인들이 ‘드러눕는’지 알려주지 않고, ‘드러누웠다’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상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사건의 이면을 짚어보는 기사가 필요해보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1월 5일~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보도에 한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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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