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또 ‘사기 제목’ 쓴 중앙…‘지뢰제거 현장, 북한만 고요하다’?‘9월 평양회담’ 군사 분야 합의서에는 6.25 전쟁 당시 격전이 펼쳐졌던 철원 화살머리 고지 일대에서 유해를 발굴하기로 했습니다. 이 지역은 지뢰나 불발탄이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아 2일 우리 군은 강원도 철원 DMZ 내의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군사 분야 합의 이행을 위한 첫 번째 조치라는 점에서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지뢰제거 현장을 공개했고, 다수의 언론도 취재에 나선 것인데요.
그중 중앙일보의 보도, <르포/DMZ 지뢰제거 현장 가보니…북은 고요, 우리는 분주>(10/3 이근평 기자 https://bitly.kr/Er5L)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뢰제거 현장을 직접 찾아 쓴 르포 형태의 이 기사는 제목에서부터 ‘남측은 지뢰제거에 열심인데 북측은 그렇지 않다’는 인상을 줍니다. 북한은 군사합의 결과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만 분주하다는 인상을 명확하게 주는 제목이죠.
∆ 네이버에 송고된 중앙일보 기사 제목. DMZ 지뢰제거 현장을 찾아가보니 ‘북은 고요’ ‘우리는 분주’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북측을)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고 전했다(10/3)
보도 내용에서는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고 썼지만, 제목은 ‘북측은 고요’
그런데 정작 기사 내용은 달랐습니다. 기자는 지뢰제거 현장의 모습을 상세히 전달해주더니 “북한도 이곳처럼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을까”라 자문했습니다. 이어 “남측 GP 높은 곳에서 2km 이내 북한 GP 3개를 찾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군 관계자의 “북한도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북한의 경우 남측을 향하는 작업 시작점이 화살머리고지 후사 면에 있어 이곳에서 맨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북측 작업구역은 산의 뒷면에 있기 때문이죠. 애초 북측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화살머리 고지 전경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사진공동취재단)
이렇게 기자는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제대로 썼는데도, 중앙일보는 이 기사의 제목을 남측은 ‘분주’하게 지뢰 제거를 하는데, 북측은 ‘고요’하게 뒷짐만 지고 있다고 뽑았습니다. 이쯤 되면 중앙일보의 ‘기사제목 사기’ 기술이 날로 발전한다고 칭찬이라도 해야 하나 싶습니다.
중앙일보 스스로도 너무 심각한 왜곡이라 인정한 것인지, 아니면 항의가 빗발쳤는지 알 수는 없으나 4일 오전에 확인하니 보도 제목은 <적막하던 DMZ 가보니…지뢰제거 작업 분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지웠나보다 싶었던 기사 제목은 소제목으로 여전히 <르포/DMZ 지뢰제거 현장 가보니…북은 고요, 우리는 분주>라는 원래 제목을 표기해 놓은 겁니다. 분량이 상당한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3~4일 지면에는 해당 보도를 싣지 않기도 했습니다.
△ 중앙일보는 "북은 고요, 우리는 분주"를 소제목에 사용했다(10/3)
다른 언론들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언론들은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보도했을까요?
남북은 올해 11월 말까지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한 뒤, 내년 4월부터 유해 발굴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남과 북이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한 사업인 만큼, 실제로 북측이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상 이를 제대로 확인하긴 어렵습니다. 국방부도 북측이 1일 지뢰제거에 나섰다고 우리 측에 통보했고, 향후 상호 검증하는 절차를 가지겠다고만 밝혔을 뿐입니다. 따라서 현장에 참여한 다른 언론 역시 대체로 “확인할 길이 없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서울신문 <북도 지뢰제거 움직임…내년 상호검증 가능성>(10/3 이경주 기자 https://bitly.kr/xYSm)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3일 “북측도 화살머리고지뿐 아니라 JSA에서도 지뢰 작업으로 추정되는 활동을 준비하는 동향이 식별되고 있다”며 “향후 지뢰 제거에 대해 상호 검증하는 과정을 두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북측 지역에 진입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육안으로 북한이 실제 지뢰를 제거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저 앞에 국군 유해 200구, 땅속 3m까지 지뢰제거 작전>(10/4 전현석 기자 https://bitly.kr/qxhQ) 역시 “이날 화살머리 고지에서 지뢰 제거에 나선 북한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북측 작업지역이 멀리 떨어진 데다 고개 뒤편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을 뿐입니다.
동아일보는 <땅속 3m까지 샅샅이…한발 한발 긴장속 ‘전쟁의 흔적’ 제거>(10/4 손효주 기자 https://bitly.kr/2C6W)에서 “남북 합의서엔 북측도 1일부터 지뢰 제거 작전을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남측 현장에서 북측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이 지휘관은 ‘북한도 작전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식의 묘사는 경향신문 <한국전 당시 교통호 따라 지뢰 탐지 유해 발굴 동시 진행>(10/4 정희완 기자 https://bitly.kr/B6HF)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는 별도의 지면 기사를 싣지 않았지만, 온라인 기사 <지뢰의 땅, ‘위~잉’ 광음 속 풍경은 기이하게 평화롭더라>(10/4 박병수 선임기자 https://bitly.kr/xzN0)에서 “북쪽도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습니다.
언론사 |
제목 |
북한 동향 관련 내용 |
경향 |
한국전 당시 교통호 따라 지뢰 탐지 유해 발굴 동시 진행(지면) |
하지만 북측의 지뢰제거 작업 모습은 식별할 수 없었다 |
동아 |
땅속 3m까지 샅샅이…한발 한발 긴장속 ‘전쟁의 흔적’ 제거(지면) |
하지만 남측 현장에서 북측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이 지휘관은 ‘북한도 작전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
서울 |
북도 지뢰제거 움직임…내년 상호검증 가능성(지면) |
북측 지역에 진입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육안으로 북한이 실제 지뢰를 제거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
중앙 |
DMZ 지뢰제거 현장 가보니…북은 고요, 우리는 분주(인터넷판) |
남측 GP 높은 곳에서 2km 이내 북한 GP 3개를 찾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
조선 |
저 앞에 국군 유해 200구, 땅속 3m까지 지뢰제거 작전(지면) |
이날 화살머리 고지에서 지뢰 제거에 나선 북한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북측 작업지역이 멀리 떨어진 데다 고개 뒤편이었기 때문이다 |
한겨레 |
지뢰의 땅, ‘위~잉’ 굉음 속 풍경은 기이하게 평화롭더라(인터넷판) |
따라서 북쪽도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부대 지휘관은 “북쪽에서 비무장지대로 들어오는 통문 지역은 산악 지형에 가려 있어 이곳에서 보이지 않는다. 북쪽도 작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육안으로 확인된 건 없다”고 말했다. |
∆ 화살고지 지뢰제거 착수를 전하는 지면 기사 중 북한 동향 설명 부분(10/3~4) ⓒ민주언론시민연합
4일 오전 11시경, 북측 JSA 내 지뢰 1발 폭파…
중앙일보가 이렇게 제목으로 남북관계에 훼방을 놓은 상황에서, 북한도 지뢰 제거 작업에 나섰음을 추론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국방부는 북측이 4일 오전 11시 55분 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지뢰탐색 중 발견한 지뢰 1발을 폭파했다고 밝혔습니다. 북측도 지뢰제거에 나섰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중앙일보가 제목에서 ‘북측은 고요’라고 했던 게 명백한 잘못임이 드러난 겁니다.
중앙일보는 기사 내용과 부합하는 객관적인 제목을 쓰기보다는 사실을 오도하는 제목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제목을 뽑을 때 저널리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용과 한참 동떨어져 독자를 속이는 제목을 ‘사기제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0월 3일 ~ 2018년 10월 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을 기준으로 하나 이번 보고서에서는 중앙일보‧한겨레의 인터넷판 보도 포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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