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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제목 낚시’, 은수미․김경수에 이어 ‘군사합의서’까지19일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이행이 합의된 ‘판문점 군사 분야 합의서’를 확대해석하고 왜곡하며 남북 평화 분위기에 ‘어깃장’을 놓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간 대북 군사 안보에 과민반응을 보였던 보수언론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요. 이번엔 중앙일보입니다.
허락 필요 없다고 합의 했는데…허락 필요하냐고 따진 기사 제목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관련 내용을 전하는 중앙일보의 모도 제목은 <단독/미국 “캠프 보니파스에 응급헬기 띄워도 북한 허락받나”>(9/27 이근평 박한용 기자 https://bitly.kr/B76g)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미군이 긴급히 헬기를 운용할 때도 북한의 승인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 응급헬기 띄워도 북한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것인 양 제목을 뽑은 중앙일보 기사 제목(9/27)
사실은 무엇일까요? 사실 관계는 중앙일보만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먼저 “정부 소식통은 26일 미국 정부 당국자가 비공식적으로 ‘캠프 보니파스에 환자가 생겨 더스트오프(긴급의료후송 헬기)를 띄울 때마다 북한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라고 물었다고 말했다”고 기술했고요. “이같은 반문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곧 “군사분야 합의서엔 ‘산불 진화, 지ㆍ해상 조난 구조, 환자 후송 등 경우에는 상대측에 사전 통보하고 비행할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합의서 1조 3항에 명시된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응급헬기 띄울 때는 북한 허락을 받지 않고 통보만 하면 됩니다.
중앙일보도 이를 알기에 기사에서는 버젓이 관련 내용을 다 적어놓고, 제목을 ‘응급헬기 띄워도 북한 허락받나’라고 뽑은 것입니다. 물론 중앙일보는 미국 정부 당국자 한 사람이 저렇게 물어본 것은 사실이고, 그 내용을 따옴표를 쳐서 제목으로 담았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당국자가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모른 채 “응급헬기 띄워도 북한 허락 받아야 하냐”고 질문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고, 이러한 잘못된 질문이 보도의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제목 뽑기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독자들은 상세한 기사내용을 읽지 않고 제목만으로 기사를 인식합니다. 따라서 정독하지 않은 시민 중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응급헬기를 띄울 때도 북한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익명이 전한 익명의 불만’이 ‘미국’ 입장인가?
중앙일보는 게다가 이 기사에서 군사 합의서 예외조항을 설명한 뒤, “미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 자체에 대해서 불쾌해 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지금까지 캠프 보니파스와 같은 MDL 인접 지역으로의 비행 허가는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남북이 19일 평양 정상회담 때 발표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놓고 미국도 전적으로 동의하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국방부가 한·미 군사당국간 충분히 협의했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 내에서 중앙일보가 제시한 논란과 다른 기류는 사실상 이 정부당국자의 전언 하나 뿐이었습니다.
객관적 상황은 3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 정부는 전적으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고 10월 중 2차 북미회담까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고, 다른 기류가 감지되며, 불쾌해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할 때는 뭔가 분명한 증거나 정황을 제시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위의 기사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중앙일보가 제시한 근거는 익명의 정부 당국자가 전한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의 ‘불만’뿐입니다. 존재가 의심되는 익명 취재원 한 명의 전언을 ‘미국’의 입장으로 갈음한 것입니다.
기자가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니고 ‘익명의 정부 소식통’이 전달한 ‘익명의 미국 당국자’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백보 양보해서 이 익명의 미국 당국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미국 당국자 한 명의 ‘불편한 심기’를 ‘미국이 합의서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전하는 것이 정상일까요? 게다가 이 보도는 단독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까지…‘익명 보도’의 향연
남북 군사 합의서를 ‘미국의 동의 여부’를 빌미로 비판한 이 기사에는 익명 취재원이 계속 등장합니다. 앞서 등장한 ‘정부 당국자가 전한 미 당국자의 불만’은 그나마 국적이라도 알려준 친절한 수준에 해당합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은 “남북이 비행금지구역을 확정하고 발표했던 평양 정상회담 기간인 18~20일 주한미군의 정찰기인 RC-7은 서부전선의 MDL 가까운 상공에서 비행”한 사실에 “비행 시점이 미묘하다는 얘기”가 “군 안팎”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이어 중앙일보는 “미국은 한국이 군사 분야 합의서를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군사 분야 합의서가 북한의 비핵화 속도보다 빠른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또 다른 정부소식통’ 입장을 인용했습니다. 이번에도 익명의 정부 소식통이 전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국’의 우려입니다. ‘군사합의서에 미국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 취지에 비춰보면 믿을 만한 출처는 단 하나도 없는 겁니다. 진위 여부가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내용이 ‘익명’으로 보도되는 관행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용 |
취재원 |
“캠프 보니파스에 환자가 생겨 더스트오프를 띄울 때마다 북한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
‘정부 소식통’이 ‘미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전달 |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 자체에 불쾌” |
‘정부 소식통’이 ‘미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전달 |
(RC-7 서부전선 정찰에 대해) “비행 시점이 미묘하다” |
군 안팎 |
“미국은 한국이 군사 분야 합의서를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군사 분야 합의서가 북한의 비핵화 속도보다 빠른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또 다른 정부 소식통 |
△ 중앙일보 <단독/미국 “캠프 보니파스에 응급헬기 띄워도 북한 허락받나”>(9/27)에서 ‘남북 군사 합의서’를 비판한 내용과 그 근거로 명시한 취재원 ⓒ민주언론시민연합
물론 이 보도에도 실명이 나오기는 합니다. ‘익명의 전언’을 길게 읊어 ‘미국의 불신’을 과장한 뒤 보도 말미에 이르러 “한ㆍ미가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정보와 인식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발언, “북한이 군사공동위를 통해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유엔사 산하의 군사정전위원회 역할을 의도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차두현 북한대학교대학원 겸임교수 발언을 덧붙인 겁니다.
보통 보도에서 교수의 짧은 소견을 취재한 정황과 근거를 인과관계 규명으로 모두 설명한 후 확인 차원에서 덧붙이곤 하는데요. 중앙일보는 ‘익명의 전언’으로 결론을 내린 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교수들의 입장을 동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행 시점이 미묘’? 일상적인 비행 정찰일 뿐
한편, 민언련에는 이 보도에 등장한 ‘군 안팎’의 입장, ‘평양 정상회담 기간인 18~20일 주한미군 정찰기 RC-7의 서부전선의 MDL 상공 비행의 시점이 미묘하다’는 의문 제기가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제보가 왔습니다.
중앙일보는 RC-7 정찰기가 평양회담 기간에 서부 전선 MDL 인근 정찰한 것을 두고 비행시점이 미묘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지만, 제보자는 RC-7 정찰기는 평양회담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정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며 관련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제보자는 스웨덴의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레이트 레이더 24’에서 RC-7 기종인 N158CL의 비행기록을 살펴보면 평양회담 이전과 이후에도 항공기록이 남아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RC-7 정찰기는 평양회담 전 9월 10일‧12일‧15일‧16일 4일간 12차례 비행 했으며, 정상회담 이후에도 24‧25‧26 3일에 걸쳐 11차례 비행했습니다. 중앙일보도 보도했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일상적인 정찰 활동”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두고 대체 ‘군 안팎’의 누가, 어째서 “미묘하다”고 했는지 도통 그 의미조차 알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중앙일보가 ‘미국의 불신’을 강조하기 위해 ‘일상적 정찰’을, 익명의 발언을 빌미로 남북 군사 합의에 불만을 품은 행위인 것처럼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플레이트 레이더 24’에 기록된 RC-7 정찰기의 비행일지(9/27)
중앙일보에서 반복되는 악의적 ‘제목 낚시’
요컨대 중앙일보는 온통 ‘익명 취재원’으로 범벅된 기사를 썼고 심지어 본문과는 다른 극단적 결론을 제목에 표기해 사실관계를 왜곡했습니다. 이는 독자들을 이른바 ‘낚시질’하는 행태입니다. 이런 사례가 최근 중앙일보에서만 잇따르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엄마들 반발에도…은수미 성남시장 ‘아동수당 체크카드’ 내달 강행>(8/31 이에스더 기자 https://bitly.kr/Zvxk)에서 성남시의 아동수당 체크카드 제도에 ‘엄마들의 반발’이 있는 것처럼 제목을 뽑았으나 정작 기사 본문에는 ‘엄마들의 반발’을 전혀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단독/김경수 PC ‘완전 삭제’…드루킹 연루 핵심 증거 ‘증발’>(8/2 정진우․박태인 기자 https://bitly.kr/5A6L)에서도 제목에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증거인멸을 의도한 것처럼 ‘증거 증발’을 명시했으나 기사에서는 ‘PC 포맷은 국회 사무처 절차’라고 설명했죠. 모두 ‘낚시’를 넘어 제목을 악용한 심각한 왜곡에 해당하는데요. 중앙일보가 유독 이런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9월 2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지면에 한함. 민언련은 다양한 매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분간 신문모니터 대상에서 한국일보를 제외하고, 서울신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