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보도상_
‘참사를 극복하는 방법’ 찾아 세계를 누빈 경향신문
등록 2018.09.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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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8년 8월 ‘이달의 좋은 보도’를 선정했습니다. 8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신문 부문에는 경향신문 기획보도 <참사 그 후>, 방송 부문에 KBS 탐사보도 <탐사K/2012년 대선 인터넷 여론조작>, 온라인 부문에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누가 폭염으로 숨지는가>가 선정되었습니다.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은 9월 28일(금) 오후 2시 민언련 교육관(마포구 마포대로 14가길 10 동아빌딩 3층)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취재 기자들과 함께 하는 간담회도 시상식 직후 진행됩니다. 관심 있는 분은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아래는 2018년 8월 이달의 좋은 신문 보도 선정 사유입니다.

 

2018년 8월 ‘이달의 좋은‧나쁜 신문 보도’ 심사 개요

좋은 신문보도

<참사 그 후> 기획보도

매체 : 경향신문 보도 일자 : 7/23~8/8

취재 : 김서영 김형규 정원식 백승찬 허진무 기자

나쁜 신문보도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 <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등 다동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매체 : 한국경제, 보도 일자 : 8/24, 8/26

취재 : 조재길‧이호기 기자

선정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엄재희(민언련 활동가/신문),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온라인),

임동준(민언련 활동가/방송),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가나다 순)

심사 대상

8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지면에

게재된 보도(8월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의 경우 심사위원 의견에 따라 한국경제 보도 포함)

 

8월 ‘좋은 신문 보도’, ‘참사를 극복하는 방법’ 찾아 세계를 누빈 경향신문

 

선정 배경 경향신문 기획보도 <참사 그 후>는 “테러, 자연재해, 독재와 정치적 탄압, 산업재해” 등 참사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제시했다. 경향신문은 그 답을 찾아 세계 곳곳의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죽음이 갈등을 낳고 배움이 되는 과정”을 짚었고 당사자들의 목소리, 사회적 인식의 변화, 제도적 개선 과정, 참사를 방치했을 경우 나타나는 부작용을 전했다. 경향신문이 내린 결론은 ‘참사의 진정한 추모는 변화’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소모적 논란을 낳고 있는 ‘참사’ 관련 쟁점들을 매우 분석적으로, 또 성찰적으로 전한 뜻 깊은 보도이다. 직접 각국의 현장을 뒨 기자들의 노고도 빛났다. 이에 민언련은 8월 ‘이달의 좋은 신문 보도’로 경향신문 기획보도 <참사 그 후>를 선정했다.

 

경향신문은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6회 분량의 ‘참사 그 후’ 시리즈를 연재했다. 경향신문은 “테러, 자연재해, 독재와 정치적 탄압, 산업재해…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서 사회는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보도를 풀어갔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대형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죽음이 갈등을 낳고 배움이 되는 과정”을 취재한 것이다. 이 기획보도는 총 5건의 참사를 살폈다. △노르웨이에서 극우 테러리스트가 정치 캠프를 찾은 어린 학생 77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브레이비크 테러’ 참사 △인도네시아와 쓰리랑카를 덮친 쓰나미로 12만 명이 희생된 ‘공포의 파도’ 참사 △가스 누출로 1만6000명이 사망한 ‘인도 보팔 참사’ △독일 사회의 홀로코스트 추모 방식 △3000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한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군부독재 역사 청산 과정이 그 대상이다. 이를 통해 결론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참사와 그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 반성할 점이 없는지도 짚어냈다.

 

77명의 희생자를 낸 ‘브레이비크 정치 테러’ 사건…“증오에 사랑으로 답하자”

첫 번째 보도인 경향신문 <노르웨이 브레이비크 테러/단죄보다 관용··· “그럼에도 좀 더 분노해야 했다”>(7/23 김서영 기자 https://bitly.kr/P8j6)는 ‘브레이비크 테러’ 이후 노르웨이 국민의 ‘참사 대응 과정’을 보여줬다. 11년 7월, 백인 남성 브레이비크(32)는 노르웨이 정부 청사에 자동차 폭탄 테러를 벌여 8명을 희생시켰다. 그 후 브레이비크는 ‘우퇴위아’ 섬으로 이동해 노동당 청년 동맹 여름캠프에 참가한 10대 청소년 69명을 사살했다. 이 테러는 모든 노르웨이는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참극이었다. 체포된 브레이비크는 “내 행동은 정치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가 이슬람화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민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노동당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참사와 테러범의 주장을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참사 당시 노르웨이 총리였던 스톨텐베르그는 추도식에서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테러에 대한)우리의 응답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 그리고 더 많은 인도주의입니다”라고 연설했다. 그리고 “우리는 증오에 사랑으로 답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민들도 이에 화답했다. 기자는 “참사 직후 노르웨이를 지배한 것은 보복이 아니라 애도였다”고 말한다. 노르웨이 전역이 애도의 뜻을 담은 붉은 장미로 뒤덮였다고 한다. 브레이비크가 참여했던 특정 당에 책임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런 태도가 미국이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보복을 나선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 경향신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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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브레이비크에게 노르웨이 국민들은 단죄보다 관용을 베풀었다(7/23)

 

‘노르웨이도 두려워 한 참사, 우린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더 놀라운 것은 브레이비크가 사형이 아닌 ‘노르웨이 형법상 최고형인 21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라는 사실이다. 2015년에 오솔로 대학 정치학 학부 과정에 입학하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교도소 내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도 했다. 끔찍한 테러를 벌인 ‘범죄자’에게 노르웨이는 보복과 응징으로 답하지 않았다. 기자는 “노르웨이 형벌제도가 ‘보복’이 아니라 사회로의 복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레이비크 참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은 정치적 대립이나 보복이 아닌, 더 많은 민주주의와 애도, 관용과 소통으로 참사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러한 노르웨이의 현실을 긍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았다. 참사 이후 “2013년 총선에서 진보당이 포함된 보수연정이 집권한 이후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정책이 후퇴하고 있”고 “추모와 관용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노르웨이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상실했다”는 비판도 있다는 것이다. 관용 정신으로 정계에서 서로를 탓하지 않는 ‘암묵적 약속’ 역시 “불편한 주제에 대한 논쟁을 피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노르웨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높은 사회에서조차 그러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망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1만 6천명의 희생자를 낸 최악의 산업재해 ‘인도 보팔 참사’

또 하나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보도는 네 번째 보도인 경향신문 <인도 보팔 가스 누출/‘20세기 최악 산재’에 최소의 보상…장애 대물림>(8/1 허진무 기자 https://bitly.kr/f7sh)이다. 앞선 ‘노르웨이 브레이비크 참사’가 관용과 민주주의로 참사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이 보도는 정부가 참사를 외면하고 방치했을 경우 나타나는 참담한 결과를 제시한다.

‘인도 보팔 참사’는 1984년 발생해 무려 1만 6천 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다국적 화학기업 ‘유니언카바이드’ 등 책임자에 대한 재판은 26년이 지난 2010년에서야 이뤄졌다. 인도 대법원이 “1989년 2월 유니언카바이드가 인도 정부에 4억70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하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협상을 승인”하는 등 “생존자들의 눈물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34년이 지났지만 보팔에서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결국 ‘생존자 단체 모임 ICJB’ 등 민간에서 저항한 끝에 책임자에 대한 형사재판을 이끌어 냈으나 맹독성 가스 누출 및 폭발 사고의 책임자인 ‘유니언카바이드’ 앤더슨 회장은 징역 2년 선고에 그쳤고 그마저도 인도 법원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채 미국의 한 해변 요양원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인도 정부도 피해자를 외면했다. “정부는 피해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합의했다”, “유니언카바이드는 수천 명을 죽이고도 대부분 1인당 2만5000루피(약 4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인도 정부는 인도인을 위한 것이고 보팔 정부는 보팔인을 위한 것인데 외국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 경향신문이 전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이다. 이 같은 국가의 ‘참사 방치’ 속에서 시민들은 “오염 물질 그대로 땅에 묻혔는데 상수도 보급 늦어져 지하수 마셔”야 하고, “공장 주변서 3대째 장애아가 태어나”는 현실 속에 놓여있다.

 

정부가 손 놓은 ‘보팔 참사’, 변화는 시민의 연대가 이끌었다

이처럼 국가가 참사 피해자를 외면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는 참담하다. 인도의 경우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한 것은 역시 시민들의 연대였다. ‘보팔 추모위원회(Remember Bhopal Trust)’는 “정부 지원이 전혀 없이, 민간 기부와 모금만으로” ‘보팔 추모 박물관’을 만들었다. ‘보팔 참사’로 인해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입은 아이들을 보살피는 ‘친가라 재활센터’ 역시 “생존자 단체 ‘보팔 참사로 희생된 문구류 여공 조합’ 대표인 라시다 비(60)와 참파 데비 슈크라(66)가 2004년 미국에서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하고 받은 상금 12만5000달러로 2006년 건립”한 무료 재활센터이다. “삼바브나 트러스트 클리닉을 운영하는 사티나스 원장”도 “참사 이전에 보팔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현재 전액 무료로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눈감고 책임자에 면죄부를 주는 동안 민간에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이끌어 낸 국가적 합의’, 독일의 사례

그렇다면 경향신문이 보여준 ‘참사 극복’의 가장 합리적인 사례는 무엇일까. 아마도 다섯 번째 보도 <독일 홀로코스트/집 앞에, 일터 옆에…박물관 아닌 일상서 추모와 반성>(8/6 정원식 기자 https://bitly.kr/QMft)가 제시한 독일의 ‘홀로코스트 과거사 반성’일 것이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인종 학살의 가해 국가이다. 2차 대전을 전후하여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했다. 현재 독일이 사회‧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가해자로서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도 주요하게 꼽힌다. 경향신문은 독일의 사례를 “시민의 힘으로 이끌어 낸 국가적 합의”로 요약했다.

독일 수도 배를린 중심부에 축구장 2개 크기로 건립된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비' 는 독일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 보인 상징적인 추모 시설이다. 이처럼 독일은 과거 반성에 적극적이다. 추모재단 매니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은 독일이 독일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 “그렇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세대를 거듭해 지속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독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 추모비를 건립했고, 게슈타포와 나치 친위대 본부가 있던 곳에는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상설 전시공간이 들어서는 등 생활 가까이서 역사를 성찰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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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자는 희생자를 어떻게 추모해야 할까? 독일인의 홀로코스트 추모를 살펴 본 경향신문 기사(8/6)

 

독일도 처음부터 ‘추모와 반성에’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경향신문은 “독일이 처음부터 과거사 추모와 반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독일 사회가 이견 없는 국가적 합의에 도달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라 설명했다. “종전 뒤 정부는 나치 사면법 통과”하는 등 독일 역시 “청산보다 망각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은 시민들이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절 판사 생활을 했던 로타르 크레시그”는 “1958년 ‘평화를 위한 화해 서비스 행동(Action Reconciliation Service for Peace·ARSP)’이라는 단체를 결성”했고 이 단체가 “독일이 전쟁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68혁명 세대”를 기점으로 ‘전범 문제’가 강하게 제기됐고 나치와 독일 전체를 분리해서 인식하던 분위기에 변화가 일었다. 1995년 열린 ‘독일군 전시회’에도 도합 120만 명이 몰리는 등 시민사회에서 ‘반성의 물결’이 본격화됐다. 이 전시회가 “독일 정규군이 유대인, 전쟁포로,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절멸 전쟁을 기획하고 집행했다는 증거를 제시해 독일 사회에 커다란 충격파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끝에 독일은 거리 바닥에 희생자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돌을 박고, “가로등 표지판에 반성의 그림”을 새기고, 과거사 반성을 “동성애자 등 소수자 포함하며 확장”하는 등 ‘일상 속의 추모’를 실천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경향신문은 “독일의 추모와 반성은 분명 ‘선택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슈톨퍼슈타인(걸림돌) 사무국에서 일하는 죄렌 슈나이더는 “과거사 반성에서 독일을 칭송하는 이들이 많지만 독일은 20세기 초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으며 당연히 피해자를 추모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를 우리의 현실과 비교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피해자 추모관을 도쿄 신주쿠 한복판에 두는 일본을, 베트남 민간인 학살 기념관을 서울에 두는 한국을 상상할 수 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독일은 과거사 반성의 모범이라고 부르는 데 아무런 부족함도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참사에 어떻게 대응했는가

경향신문 <참사 그 후>는 <죽음의 이유는 달라도 ‘더 나은 미래’향한 노력은 같았다>(8/8 정원식‧검서영‧김형규‧허진무 기자 https://bitly.kr/8TDg)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보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참사와 대응 과정에서 배운 점을 우리 사회로 가져온다. 세월호, 5‧18민주화운동, 각종 산업재해까지, 우리는 ‘우리의 참사’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추모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경향신문은 1부에서 소개한 ‘노르웨이 브레이비크 테러’의 경우, 노르웨이 시민들이 정부를 비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노르웨이 총리실은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책임 회피를 시도하지 않았다. 당연히 보고 시간을 조작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극우 세력이 유족들을 벌레에 비유하는 파렴치한 일도 없었다”는 점을 짚었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 사회는 생각할수록 부끄럽다”는 솔직한 감회도 털어 놓았다. 4부의 ‘인도 보팔 참사’에서도 경향신문은 비슷한 감정을 토로해야 했다. “산업재해는 개발도상국만의 일이 아니다. 인권의 의미를 조금 더 알고 있는 21세기 한국에도 여전히 일터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는 118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경향신문은 “억울한 죽음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회는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산업재해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책임자를 무겁게 처벌하고, 가족에게 신속히 배상하고, 재발 방지책을 성실하게 준비하자”라고 주문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느낀 부끄러움과 참담함은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추모는 변화’, 세계 누빈 경향신문의 결론

경향신문 <참사 그 후> 기획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3개월의 취재과정을 거쳐 나왔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참사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참사의 의미를 짚었다. 그만큼 독자들은 세계 역사에 기록된 대형 참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받는다. 참사의 현장은 참혹했고 남아있는 사람은 슬픔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경향신문은 “한국 사회도 무수한 참사와 맞닥뜨렸다. 그때마다 배움은커녕 터져 나오는 분열과 갈등의 소리를 수습하기 바빴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서 “죄 없이 죽은 이들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선, 달라져야 한다.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게 사회도 바꿔야 한다”, “진정한 추모는 변화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상식적인 이 결론을 실현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향신문은 어째서 ‘진정한 추모’가 어려운지 세계를 누비며 보여줬고, 또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남겨진 몫은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8월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 오보 내고 ‘가짜뉴스 아니다’라고 한 한국경제

 

선정 배경 8월 24일 한국경제는 최저임금 부담 때문에 해고된 50대 여성이 숨졌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기사는 몇 시간 뒤 삭제되었고 ‘오보’임이 판명되었다. 하지만 한국경제는 29일 2건의 후속기사를 내 “한경(한국경제)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첫 번째 보도는 최소한의 팩트체크도 없이 보도하더니, 후속기사에서는 가짜뉴스가 아니라는 변명을 한 것이다. 또, 후속기사에서 2차 피해를 막가 위해 뉴스를 작성했다면서, 유가족인 어머니의 과거까지 상세히 다루거나 2차 피해가 우려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했다.

민언련 좋은‧나쁜보도 선정위위원회는 “일견 사과하는 듯 하면서도 오히려 본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 “팩트 왜곡을 팩트 창조 수준까지 끌어올린 공로, 자본의 주구가 돼서 최저임금 물어뜯으라는 지시를 물불 안 가리고 행한 용감함의 실현, 가짜지만 가짜가 아니라는 후속 보도가 보여준 뻔뻔함의 새로운 경지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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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의 ‘최저임금 부담에 50대 여성 숨져’ 기사. 현재 삭제된 상태다 (8/24)

 

지난달 24일 한국경제는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8/24 조재길 기자, 기사 삭제됨)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기자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은 50대 여성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보다. 기자가 숨진 여성의 나이를 비롯해 일부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있었으며,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했다고 볼 만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는 논란이 커지자 당일 삭제됐다. 하지만 파장은 정치권까지 확산되었고 정부의 최저임금정책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보수지 및 경제지의 ‘기승전 최저임금 탓’이 도를 넘어 ‘가짜뉴스’를 생산해내더니, 정치에도 이용당한 것이다.

비판이 연일 가해지자 한국경제는 8월 29일 2건의 후속보도를 내놨다. <구직시장 전전했던 ‘월평등 다동이 엄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8/29 이호기 기자 https://bit.ly/2QKPaxs), <한경은 가짜뉴스를 만들지 않았습니다>(8/29 조재길 기자 https://bit.ly/2xqQzRY)가 그것이다. 기사는 “더 이상 이 논란이 커지기 전에 해당 기사를 취재했던 경위와 삭제 배경 등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다며, 보강취재한 기사를 한 건 올렸다. 문제는 이 기사는 이전에 삭제된 기사를 보강했다지만, 사실관계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최초보도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은 ‘최근 식당에서 실직당한 자녀2명을 둔 50대 여성’이었지만, 보강기사에서는 ‘작년 말 식당에서 실직 당한 자녀 3명을 둔 기초수급대상자인 35세 여성’로 바뀌었다. 애초 기사의 사실관계가 틀렸음을 본인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다. 또한, 기사 내용에서도 최저임금과 관련된 직접적 서술이 없다. 이전 기사에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크다’며 그만 나오라고 통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되어 있었다.

애초 ‘최저임금 때문에 자살했다’라는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이 많이 나왔지만, 한경은 엉뚱한 말을 늘어놓으며 “가짜뉴스는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3. 가짜뉴스 아니다> 소제목에서 “해당 기사가 삭제되고 난 뒤 일부 온라인 매체에서는 ‘변사 사건 자체가 없었다’는 둔산서 주장만 기초로 ‘오보’라고 단정하고, 한경이 마치 없던 사실을 가공해 기사를 작성했다가 황급히 삭제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은 ‘최저임금 탓’한 부분을 핵심적으로 지적했다. 다만, 한국경제는 “처음 온라인 기사를 게재했을 당시 완결성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선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연령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 점도 중대 착오였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이래놓고 ‘가짜뉴스’는 아니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끝>

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