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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동결’ 위해 ‘최저임금위 통계’까지 난도질한 조선일보2019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협상이 올해도 난항에 빠졌습니다. 노동계가 시급 1만790원(43.3%)인상 안을 제시했고, 경영계는 작년에 이어 동결을 주장했습니다. 양측의 간극이 큰 가운데 11일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부결되자 사용자 위원들은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도 지난달 입법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안’에 반발해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립이 첨예하지만 류장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7월 14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토록 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14일 새벽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장치, 조선일보는?
‘최저임금’은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했고, 작년에는 16.4%라는 역대 최대 인상폭을 기록하며 7,530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소상공인 및 영세자영업자들의 반발과 경제지표의 후퇴를 모두 ‘최저임금 탓’으로 돌리는 기득권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커지면서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OECD의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임금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하위 10%의 4.5배에 이릅니다.(2016년 기준)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를 462만 5,000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가구 수로 따져보면, 국민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은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경제 불황이 원인이 된다며 기업 및 사용자 측 입장만 대변해왔습니다. 최근에도 사실관계를 비틀고 왜곡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13일 나온 조선일보 ‘사설’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노동자도 최저임금이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한다’고?
조선일보는 곽창렬 사회정책부 기자의 칼럼 <기자의 시각/최저임금 43% 올리라고?>(7/13 https://bitly.kr/zwa8 )에서 노동계의 내년도 최저임금 43% 인상안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 객관성을 위해 통계를 인용했는데요.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입맛대로 취사선택하면서 오히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일보 칼럼 <기자의 시각/최저임금 43% 올리라고?>(7/13)
기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상당수 근로자도 이미 최저임금이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근로자 5096명에 물었더니 근로자의 15% 정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작년보다 3배가 많은 수치”라는 통계를 제시했습니다. 이어 “인상을 하더라도 ‘9%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자 수는 전체의 63%에 달했다”며 “근로자들조차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으니 혹여 사장이 나를 해고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통계를 입맛대로 난도질한 조선일보, 이게 언론인가
기자가 언급한 통계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작성하여 발표하는 ‘최저임금 적용 효과에 관한 실태 조사 분석 보고서’(https://bitly.kr/xQfH ) 93페이지에 나옵니다. 최저임금위는 <2019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인상액의 적정 수준>이라는 제목으로 노동자에게 ‘내후년(2019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인상률(최저임금액-시급기준)은 얼마가 적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이에 답변한 5,051명의 의견을 정리했습니다.(58p~64p, 121p 참조)
그런데, 해당 자료를 살펴보면 ‘15%이상(8,660원 이상)인상’을 주장한 노동자가 전체의 18.51%로 가장 많습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동결 이외)을 주장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85.07%에 이릅니다. 이렇게 다른 수치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한 노동자들의 뜻을 대변하고 있으나 기자는 ‘동결’이 적절하다고 답변한 ‘14.93%’만 발췌하여 “상당수 근로자가 이미 최저임금이 충분히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겁니다. 자기주장에 유리하도록 통계의 일부분만 인용한 겁니다. 한마디로 통계를 아전인수로 해석한 것이죠.
△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0일에 발간한 ‘최저임금 적용 효과에 관한 실태 조사 분석 보고서’(p.93)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저임금위 보고서는 노동자가 어떤 이유로 최저임금 ‘동결’이 적정하다고 답변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혹여 사장이 나를 해고하지 않을까 우려”해서 그런 답변을 했다는 주장은 조선일보의 ‘상상’일 뿐입니다. 상상을 사실인 것처럼 칼럼에 써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조선일보의 상상처럼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 때문에 최저임금 동결을 원한다면 이는 도리어 열악한 노동권의 현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런 상황에서 43% 인상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무리 협상 전략이라 해도 장난 같고 무책임하다”며 오히려 노동계를 비난했습니다.
최저임금 문제 나올 때만 영세자영업자 걱정…진정으로 그들을 위하고 있는가?
조선일보는 이렇게 통계를 난도질한 후 “한계 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충격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노동계도 이젠 좀 더 책임 있고 진지해져야 한다”고 칼럼을 마무리했습니다. ‘소상공인 앞세워’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전형적인 전략입니다.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이 걱정된다면, 최저임금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높은 임대료․가맹수수료․카드수수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KBS의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망한다?…진실 따져보니>(5/14 https://bitly.kr/8eu9 )는 영세자영업자들이 고통 받는 이유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맹점 수수료는 매출의 25%~60%를 차지하며, 신용카드 수수료는 2.3%~2.5%에 이릅니다. 이는 대형마트가 0.7%를 내는 것에 비하면 3배를 더 부담하는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장사가 좀 잘 된다 싶으면 치솟는 임대료에 쫓겨나는 영세업자들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런 문제들은 외면한 채 오로지 최저임금 인상만 비판하고 있습니다. 진정 소상공인들을 걱정하는 것이 맞는지, 조선일보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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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엄재희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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