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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입모양 분석’ 보도, 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등록 2018.05.03 10:22
조회 335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은 도보다리에서 단독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 KBS, 채널A는 이른바 ‘입모양 분석 보도’를 통해 두 정상이 나눈 대화 내용을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분석 자체가 ‘비공개 단독 회담’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음소거를 했을 뿐 야외 카메라 앞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을 ‘보안 유지가 필요한 비밀 회담’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회담 내용을 추정해보려는 노력 자체를 ‘해서는 안 될 행태’라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신뢰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입모양 분석을 통한 회담 내용 추정’에 언론이 굳이 힘을 쏟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그 보다는 이미 공개된 정보부터 제대로 분석하고 향후 방향성 진단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아닐까요? 또한 입모양 분석의 한계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대단한 특종이라도 한 것인 양 부각하거나, 흥미 위주의 가십성 정보를 전하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입술분석 보도의 ‘오류 가능성과 한계’ 설명해야
언론사는 구화법을 통한 분석 보도에서 독자와 시청자에게 구화법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한 곳은 조선일보뿐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문 “남북간 좋은 쪽으로 자주 대화 나누자”, 김 “북미회담 했을 때 좋게 나와야 할텐데”>(5/2 박상현 기자 https://han.gl/1tfh)에서 “본지가 입 모양으로 말소리를 유추하는 구화법 전문가 3명에게 의뢰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이라며 분석 내용을 전했는데요. 기사 말미 “전문가들은 ‘구화법은 근거리·정면에서 보지 않으면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며 ‘두 정상의 대화가 원거리에서 찍혔기 때문에 정확한 문장이라기보다는 추측이 가미된 해석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KBS는 구화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했지만 오류 가능성을 외면했습니다. KBS <김정은 “비핵화 하자 없게 하고 싶다”>(4/30 박경호 기자 https://han.gl/1tfi)와 <김정은 위원장 영상 분석 어떻게?>(4/30 서지영 기자 https://han.gl/1tfj)는 두 정상 입모양 분석 결과를 전하고 있는데요.

 

그중 <김정은 위원장 영상 분석 어떻게?>에서 앵커는 ‘대화내용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기자는

“영상 판독 기법은 구화 판독 기법을 썼습니다. 구화법이라는 것은 입모양을 보고 입모양 근육의 떨림이나 이런 것을 보면서 단어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인데요. 취재진이 만난 구화법 전문가는 이 분야에 오래 근무를 하신 분인데 청각장애자십니다. 그런데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취재진이 여러 번 의미와 단어를 반복을 했고, 그 단어를 그대로 청각장애인이 반복을 하면서 따라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신뢰성이 굉장히 높다고 판단을 하고, 영상판독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라며 ‘신뢰도가 높다’는 점만을 부각했습니다.


채널A는 <김정은 입에서 “트럼프께서…”>(5/1 유승진 기자 https://han.gl/1tfp), <“아버지가…결혼하라고 해서…”>(5/1 안건우 기자 https://han.gl/1tfq)에서 “복수의 전문가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대화했던 김정은의 입술 움직임 분석을 의뢰”한 결과를 전했는데요. 이 보도에서도 ‘분석한 내용이 실제 내용과 다를 수 있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가십’은 지양해야
공들여 분석한 내용이 ‘보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신중한 고민도 필요해보입니다.

 

채널A <“아버지가…결혼하라고 해서…”>(5/1 안건우 기자 https://han.gl/1tfq)는 “이른바 ‘파란 다리 위 대화’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결혼까지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김 위원장이 “‘아버지가 저를 보시더니 저 여자와 결혼하라고 해서 했다’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전했는데요. “개인사를 얘기할 만큼 흉금 없이 이야기를 나눈”것이라는 분석을 위해 과연 이런 구체적 발언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맥락 없이 소개된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해서 했다’는 이 내용은 자칫 리설주 여사에 대한 무례가 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입모양 분석까지 해서 내놓은 보도가 이런 수준이라면, 언론사 수준을 의심받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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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모양 분석 보도에서 김정은 위원장 개인사 부각한 채널A(5/1)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4월 30일~5월 1일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채널A <뉴스A>, MBN <뉴스8>,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지면에 게재된 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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