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모니터_

방송심의 분석 보고서

‘정치심의’ 피하려다 ‘합의지상주의’ 덫에 빠진 4기 방통심의위
등록 2018.04.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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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30일 출범 석 달을 맞았다. 3기 방통심의위 해산 7개월 만인 지난 1월 30일 늦장 출범한 4기 방통심의위는 “심의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는 게 운영의 기본”(강상현 위원장 취임사)이라고 밝혔다. 4기 방통심의위가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조한 배경엔 방통심의위를 심의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현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권 첫 해 출범한 방통심의위는 9년 동안 무려 세 차례나 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했지만 위원들의 면면만 바뀌었을 뿐, 단 한 번도 정치심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정권과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들을 다루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심의 결과는 위원들의 구성비(여야 추천 6대 3)를 그대로 반영하기 일쑤였다. 그런 위원들에게 복속된 사무처 직원이 청부 민원으로 심의 안건을 조작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1~3기 방통심의위가 심의를 정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방송 보도와 제작 자율성 훼손 가속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4기 방통심의위는 정치심의 논란에서 벗어나고자 위원들 간 합의를 우선하는 쪽을 택한 듯 보인다. 합의제를 기본으로 하는 위원회 구조인 만큼 위원들이 방송심의규정에 기초해 저마다의 전문성과 상식에 기초한 의견을 제시하고 합의를 통해 심의 결론을 내는 건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합의는 절차의 민주성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합의를 위해 심의의 목적과 기준을 훼손하는 본말 전도의 상황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지난 석 달 동안 4기 방통심의위의 심의 내용을 보면, 추천권자인 정치권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하는 심의 결론을 내지 않기 위해 합의를 우선하다 심의의 목적, 즉 공적매체로서 방송이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심의의 기본을 망각한 게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아래 보고서는 방통심의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방송소위 회의록과 회의 결과를 토대로 한 분석이다.

 

출연자 편향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

4기 방통심의위가 정치심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합의를 우선하다 심의 제재의 기준을 지나치게 하향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출연자와 진행자의 막말·편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시사토크·보도프로그램에 대한 심의에서 이런 문제는 두드러진다.

 

“문재인, 추미애가 촛불집회를 선동”, “촛불정국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기획” 문제없음

일례로 제2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엔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2017년 3월 6일 방송) 관련 심의 안건이 상정됐다. 탄핵 정국 당시 방송된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문재인 대표…추미애 대표까지 총동원을 내려가지고…촛불집회를 선동”, “촛불 정국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고 하는…기획” 등의 발언을 했고, 이는 사실 왜곡과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폄하인 만큼 방송심의규정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5항 위반으로 심의해달라는 민원이었다.

출연자의 막말·편파에 대한 심의를 요청한 해당 안건과 관련해 방통심의위가 논의 과정에서 제시한 심의 기준은 이렇다.

토론프로그램에 있어서 공정성이라고 하는 부분을 다투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전체를 심의할 것인지, 아니면 패널 한 사람의 말을 심의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본원칙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패널 한 사람의 말을 가지고 편향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무릇 사람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는 순간 편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중략) 따지고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라고 불러낸 것이지 않습니까?”(제2차 회의, 전광삼 위원)

4기의 심의 원칙은 어쨌든 패널의 발언을 크게 문제 삼지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혹은 이것이 거짓일 경우에는 문제를 삼는 것이고요. 이 경우는 거짓이라기보다는 조금 출연자가 흥분을 하신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좀 과잉되게 말씀하신 것이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회자가 대처를 못하신 부분이 있고요.”(제3차 회의, 심영섭 위원)

토크쇼 형식을 차용한 토론프로그램인 만큼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의견을 얘기하는 걸 제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시사·토론 프로그램 등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언론계와 방송계 내에서도 여전히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어떤 주장을 펼친다 하더라도 다른 정파의 사람이나 다른 의견들을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등의 발언까지 방송에서 용인할 순 없는 일이다. 방송심의규정 제13조 제5항에서 대담·토론 프로그램이나 유사한 형식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진행자나 출연자가 타인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 안건에 대한 심의에서 위원들은 출연자들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출연자 선정의 균형성 등에 대한 질의를 위해 의견진술을 결정했고, 제6차 회의에서 제작진 의견을 청취한 뒤 제8차 회의에서 전원 합의로 ‘문제없음’ 결론을 내렸다.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2017/03/06) 문제없음 결정
방송 내용 :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와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대담하는 도중 패널이 ““헌재 결정을 따라야 하나, 누가 봐도 공정하고 절차적인 부분에서 하자가 없이 판결을 내렸을 때 가능하다”고 발언. 또한 패널이 “문재인 대표 추미애 대표까지 총동원령을 내리고 촛불집회를 선동한다” “촛불정국을 통해서 정권을 탈취하겠다고 하는 기획” 등의 발언을 함. 
심의 주요 발언 : “토론프로그램에 있어서 공정성이라고 하는 부분을 다루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전체를 심의할 것인지, 아니면 패널 한 사람의 말을 심의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본 원칙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문제가 있다면 방송사가 제재대상이지만 패널 한 사람의 말을 가지고 편향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무릇 사람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는 순간 편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전광삼 위원)
“4기의 심의 원칙은 어쨌든 패널의 발언을 크게 문제 삼지 않겠지만, 그것이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혹은 이것이 거짓일 경우에는 문제를 삼는 것이고요. 이 경우는 거짓이라기보다는 조금 출연자가 흥분을 하신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좀 과잉되게 말씀하신 것이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회자가 대처를 못하신 부분이 있고요.” (심영섭 위원)

 

“토론자들의 배설물에 대해서 저희가 일일이 처벌을 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심의위원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출연자의 편파·왜곡·막말 등에 대한 4기 방통심의위의 관대함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제3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엔 MBN <시사스페셜>(2017년 6월 11일 방송)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해당 방송의 출연자들이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다른 사람 한 명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강경화 후보자는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이야기들이 장안에 상당히 번져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 열 명이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은 자발적 결의가 아니고 외교부 공무원 후배가 ‘좀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그러면 그거를 반대하기 쉽지 않거든요” 등의 발언을 한 데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14조(객관성) 위반 여부를 심의해달라는 민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원들은 해당 방송에 대해 전원 합의로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다. 해당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건 아니었다.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은 “나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좋은데 그것이 거짓말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것처럼, 여기 보면 ‘공무원 후배가 전화 옵니다. 이런 것 하려는데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러면 그것 반대하기 쉽지 않거든요’라고 하는 것은 마치 딱 결정을 해놓고 ‘이것 다 사실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기 때문에…(생략)”(윤정주 위원), “출연자가 방송에 나와 항간의 소문을 가지고 주장을 펴는 건 신뢰도를 떨어트릴 우려가 있으며, 여론을 호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박상수 위원) 등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출연자 발언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토론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거의 배설물을 쏟아내듯이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요. 벌써 종편 출범한지 꽤 됐잖아요. 그래서 아마 저는 국민들도 아무 말 대잔치 하면 ‘저게 아무 말이구나’ 인지하실 것 같아요…(중략) 토론자들의 배설물에 대해서 저희가 일일이 처벌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심영섭 위원)라는 이유로 출연자의 허위·막말에 대해 관대함을 유지했다.

 

MBN <시사스페셜>(2017/06/11) 문제없음 결정
방송 내용 : 출연자들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다른 사람 한 명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강경화 후보자는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이야기들이 장안에 상당히 번져있습니다’, ‘외교부 장관 10명이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은 자발적으로 결의한 게 아니고 외교부 공무원 후배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러면 그거를 반대하기 쉽지 않거든요’ 등의 발언.
심의 주요 발언 : “토론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거의 배설물을 쏟아내 아무 말 대잔치하는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요. 벌써 종편 출범한지 꽤 됐잖아요. 그래서 아마 저는 국민들도 아무 말 대잔치하면 ‘저게 아무 말이구나’ 인지하실 것 같아요. 이제는 어느 정도. 그래서 저는 이런 경우 우리가 저번 회의에서도 아마 비슷한 의견이 나왔었는데요, 다른 분이 하셨는데 토론자들의 배설물에 대해서 저희가 일일이 처벌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심영섭 위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해 종편 재승인 당시 타 종편에서 제재를 받은 출연자와 진행자에 대한 출연 배제(TV조선·채널A)와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1항 내지 제3항 및 제5항, 제14조(객관성), 제27조(품위유지) 제1호, 제2호 및 제5호, 제51조(방송언어) 위반에 따른 법정제재를 네 건 이하로 유지하라는 ‘조건’을 부과했다. 종편의 막말·왜곡·편파방송을 시정하지 못할 경우 방송의 공공성·공정성·공적책임 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개인 의견이라는 이유로 출연자의 편향을 폭넓게 용인하고, 배설물 수준의 발언은 시청자들이 알아서 판단해 걸러낼 것이라는 4기 방통심의위의 인식대로라면, 방통위에서 부과한 재승인 조건은 대체 뭐란 말인가. 4기 방통심의위가 지금과 같은 인식과 기준으로 심의를 계속한다면 이는 종편의 고질적인 문제인 막말·왜곡·편파방송을 면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밖에 없다.

 

모호한 심의 기준 경감사유도 가지가지

심의는 방송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위원들은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한 방송 내용을 보고 제재가 필요한지 여부를 살핀 후 어떤 수위로 제재할지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간 방통심의위는 문제 방송을 내보낸 방송사와 제작진이 얼마나 반성하는 듯 보이는지를 살펴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는 일이 잦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사와 제작진은 자사 프로그램이 심의 안건으로 상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부랴부랴 문제 방송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거나 사과방송을 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취한 다음 방통심의위에 반성 가득한 진술서를 보내고, 심의 당일 출석해 한껏 몸을 낮추는 전략을 택하곤 한다. 위원들의 지적이 끝나기 무섭게 사과의 말을 연발해 제재를 피하거나 수위를 경감한 다음, 돌아가서 다시 문제 방송을 했다.

후속 조치나 사과 등을 제재 경감 사유로 인정하는 방통심의위의 관행은 종편이 두 번의 재승인 심사를 거치는 내내 막말·왜곡·편파 문제를 지적받으면서도 시정의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게 만든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4기 방통심의위에서도 이를 시정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TV조선 자살 장면 CCTV 그대로 보여줘도 법정제재 아닌 ‘권고에 그쳐

제6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선 최근 1심 법원으로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영학의 부인 투신자살 의혹에 대해 방송하며 추락 사망하는 모습이 담긴 CCTV를 반복 노출한 TV조선 <종합뉴스 9>와 <탐사보도 세븐>(2017년 10월 25일 방송)이 방송심의규정 제38조의2(자살묘사) 제1항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심의하고 행정지도인 ‘권고’를 조치했다.

 

TV조선 <종합뉴스 9>(2017/10/25), <탐사보도 세븐>(2017/10/25) 권고(행정지도) 결정
방송 내용 : TV조선 <종합뉴스 9> ‘자살 동기 의문…타살 의혹까지’에서 기자가 “어금니아빠 이영학의 아내 최 모 씨가 5층 건물 옥상에 서있습니다. 놀란 행인들이 웅성이는 사이 최 씨가 추락합니다.(중략) 자살이라는 이영학의 주장과 달리 전문가들은 타살 의혹을 제기합니다.(중략) 머리부터 떨어진 건 누군가 강제로 떨어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라고 언급하며, 최 씨가 지면에 추락하는 모습을 흐림 처리한 CCTV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방송. 같은 날 <탐사보도 세븐> ‘이영학 아내 사망미스터리’ 편에서 해당 사안을 다루면서 동일한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방송. 
심의 주요 발언 :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봤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중략) 하지만 지금 후속조치들을 했다고 하시고, 저희가 그 조치를 일단 믿는다고 한다면, 혹시 그 조치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저희가 다음번에 알게 된다면 그때는 저희는 오늘 나오신 관계자들을 징계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고요. 왜냐하면 저희를 기만한 것이니까요” (심영섭 위원)
“TV조선을 언뜻 봤을 때 CCTV 사용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문제를 발견했거든요. 한 예로 얼마 전 제천에 있는 목욕탕에서 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목욕탕에서 옷을 입지 못하고 나온 남성들의 모습이 나오는 CCTV 영상을 그냥 사용했습니다…(중략) 지금 이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 사실은 여기 오시면서 급하게 교육을 하셨다고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윤정주 위원)
“또 다른 측면도 봐야 된다면, 대다수 탐사보도나 이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외주예요. 그리고 그 책임을 나중에 누구한테 전가하느냐 하면 외주를 한 제작진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고요…(중략) 사측은 벌점 몇 점 받았다는 것만 아플 뿐이지 실제로 그 이후에는 제작진에게 더 많은 가혹한 처벌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심영섭 위원)
“고민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는 본인들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을 거예요. 그런 데스크들의 고충이나 이런 것들도 나름 저는 느껴져요. 이런 것에 대해서 경각심을 주는 정도만, CCTV 같은 거 쓸 것은 써야지요. CCTV 다 안 쓸 수는 없잖아요.…(중략) 어쨌든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경각심 정도만 주면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회부 기자들 같은 경우에 이러면 취재를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요.”(전광삼 위원)

 

당시 한 위원은 ‘권고’ 의견을 밝히며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봤고 미쳤다고 생각 했습니다…(중략) 하지만 지금 후속조치들을 했다고 하시고, 저희가 그 조치를 일단 믿는다고 한다면, 혹시 그 조치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저희가 다음번에 알게 된다면 그때는 저희는 오늘 나오신 관계자들을 징계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고요. 왜냐하면 저희를 기만한 것이니까요”(심영섭 위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데스크들의 고충이나 이런 것들도 나름 저는 느껴져요…(중략) 사회부 기자들 같은 경우 이러면 취재를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요”(전광삼 위원) 등의 이유로 법정제재는 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서두에서 지적했듯 심의는 방송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다. 심의위원의 입장에서 심의규정에 근거해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면 되는 일로, 기자의 입장에서 고충을 이해하거나 제작진의 진정성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로 논점을 흐려선 안 된다.

이런 지적은 심의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윤정주 위원은 “TV조선을 언뜻 봤을 때 CCTV 사용과 관련해 굉장히 많은 문제를 발견했거든요. 한 예로 얼마 전 제천에 있는 목욕탕에서 불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목욕탕에서 옷을 입지 못하고 나온 남성들의 모습이 나오는 CCTV 영상을 그냥 사용했습니다…(중략) 지금 (TV조선이) 이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 사실은 여기(방통심의위) 오시면서 급하게 교육을 하셨다고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하며 법정제재인 ‘주의’ 의견을 냈다. TV조선이 그간 방송에서 CCTV 영상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기초해 현재의 문제에 제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외주제작사 피해 우려가 제재 수위 경감 사유라니

반면 심영섭 위원은 “또 다른 측면도 봐야 된다면, 대다수 탐사보도나 이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외주예요. 그리고 그 책임을 나중에 누구한테 전가하느냐 하면 외주를 한 제작진들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고요…(중략) 사측은 벌점 몇 점 받았다는 것만 아플 뿐이지 실제로 그 이후에는 제작진에게 더 많은 가혹한 처벌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주장하며 거듭 ‘권고’ 의견을 밀었다. 하지만 심 위원의 논리대로라면 외주제작 없이 방송 제작이 불가능한 현재의 방송 시스템 하에서 방통심의위는 어떤 중징계도 방송사에 내릴 수 없다.

 

TV조선 저녁종합뉴스, 전원책 하차했으니 솜방망이?

4기 방통심의위가 심의를 하며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인 장면들도 여럿 있었다. 일례로 제8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 방통심의위는 TV조선의 메인뉴스인 <종합뉴스 9>(2017년 7월 13일 방송)에서 진행자였던 전원책 앵커가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가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위반인지 여부를 심의했다.

TV조선 <종합뉴스 9>(2017/07/13) 문제없음 결정
방송 내용 : 전원책 앵커가 오프닝 멘트에서 정유라 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출석한 데 대해 “(앵커) 요즘 뉴스 중에 제가 궁금한 게 자꾸 생깁니다. 어제 정유라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출석했느냐 하는 겁니다. 특검은 본인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새벽 5시에 비밀작전하듯이 승합차에 증인을 태워 데려온 것부터 석연치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중략) 분명한 것은 특검이 지금 무척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가 무죄가 되면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도 무죄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박영수 특검이 직접 법정에 나올 계획이라고 합니다. 변호인은 물론 부친인 정윤회 씨까지 말렸는데도 정유라 씨가 증인으로 나선 속사정이 무엇인지 잠시 뒤에 짚어보겠습니다”라고 언급. 
같은 프로그램 ‘오늘 이 사람’ 코너 클로징 멘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생이 취소된 것에 대해 “(앵커) 역사 앞에 우리가 부끄럽다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모두 탄생 100주년 우표가 발행됐습니다. (중략) 문재인 정권에 묻고 싶습니다. 작년에 만장일치로 결정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의 발행을 취소하는 것이 정말 국민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특정 정권이 역사를 평가해선 안 된다며 국정교과서를 폐지하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헌법 위반으로 몰아붙이지 않았습니까.(중략)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직 대통령의 우표 발행을 취소하는 것은 너무 옹졸한 처사입니다. 저세상에서 요즘 몹시 마음이 괴로울 박정희 전 대통령님께 제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언급. 
심의 주요 발언 : “이것은 진행자가 뉴스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TV조 선판 ‘썰전’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권고’ 의견을 내겠습니다. 이 분은 이미 퇴출됐기 때문에 법정제재까지 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심영섭 위원)
“앵커의 개인적인 입장을 이렇게 피력한 것은 문제가 있어서 의견진술이 필요하지만 진행자가 교체됐기 때문에 저도 ‘권고’에 동의합니다.”(박상수 위원)

 

당시 전원책 앵커는 정유라 씨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출석을 두고 “새벽 5시에 비밀작전 하듯 승합차에 증인을 태워 데려온 것부터 석연치 않은”, “특검이 지금 무척 긴장” 운운했습니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취소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직 대통령의 우표 발행을 취소하는 것은 너무 옹졸한 처사”, “박정희 전 대통령님께 제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발언도 했다.

위원들은 해당 방송에 대해 전원 합의로 행정지도성 조치인 ‘권고’를 의결했는데 그 결과가 가관이다. “이미 퇴출됐기 때문에 법정제재까지 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심영섭 위원)하고 “앵커 개인 입장을 피력한 것은 문제가 있어 의견진술이 필요하지만 진행자가 교체됐기에 ‘권고’에 동의”(박상수 위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4기 위원들은 같은 이유로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2017년 3월 16일 방송)에 대해 면죄부를 준 일이 있다. 민원에 따르면 전 씨는 이 방송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비판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거나 출연자 발언을 정리하며 “문재인 패권, 이 부분에 반대하는 세력이 다 모이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돈이 있어야 기본소득제를 하든 말든 하지” 등의 발언을 했다. 진행자의 형평성·균형성·공정성 등에 대한 규정인 방송심의규정 제13조(대담·토론프로그램 등) 제1항 위반에 대해 심의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진행에 문제가 있던 것에는 동의하지만 TV조선이 이분을 퇴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심영섭 위원)며 전원 합의로 ‘문제없음’을 의결했다.

 

TV조선 <전원책의 이것이 정치다>(2017/03/16) 문제없음 결정
방송 내용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약에 대해 얘기하는 과정에서 진행자가 출연자의 발언 내용을 정리하며 ‘그러니까 개헌이 문제가 아니고 쉽게 말하면 반문, 문재인 패권, 이 부분에 반대하는 세력이 다 모이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 ‘우리 쪽 입장에 있어서는 돈이 있어야 기본소득제를 하든 말든 하지, 지금 당장 국토보유세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그것도 또 이상한 것 아니냐 하는 얘기’ 등의 언급. 
심의 주요 발언 : “정치인인 나경원 의원 같은 경우는 대선 후보로 나왔던 분 중의 한 분이고 당시가 대선기간이잖아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되고 저는 진행에 문제가 있었던 것에는 동의하지만 TV조선이 이분(전원책 앵커)을 퇴출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심영섭 위원)

 

4기 방통심의위는 정치심의 지양을 앞세우며 출연자 발언의 편향마저도 의견으로 인정하고 제재를 하지 않는 대신, 진행자의 공정성·균형성을 엄격하게 심의하겠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진행자의 문제 발언을 인정하면서도 방송사에서 그를 ‘퇴출’했다는 이유로 어떤 제재도 하지 않는 모순을 보였다.

4기 방통심의위의 이런 심의 결과는 TV조선에게 문제 방송을 했더라도 진행자를 심의 직전 퇴출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메시지를 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방송은 나갔고, 그로 인한 시청자의 피해는 발생했다. 심의는 분명 방송 그 자체에 집중해서 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방송보도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느니, 정정을 했다느니, 진행자를 교체했다느니, 반성의 모습을 보인다느니 이런 이유로 지금처럼 계속 솜방망이 심의를 내놓는다면 방송사들은 계속 문제 방송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방송사들이 오보 막말 편파방송을 하지 않게 하려면, 방송 그 자체만을 보고 엄중 징계를 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TV조선에 대한 제재 면죄·경감의 이유가 된 전원책 씨의 메인뉴스 앵커직 하차 시점은 물의 발언이 등장한 2017년 3월이나 7월이 아닌 11월이었다. 발언이 문제가 됐을 당시 TV조선은 사과나 정정, 해명도 하지 않았다. 또한 방통심의위원들의 말처럼 TV조선에서 문책성 하차를 결정했다면 이후 TV조선의 프로그램에서 전원책 씨를 기용하는 데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였겠지만, 전 씨는 지금도 TV조선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인 <강적들>에 출연 중이다.

 

사실 관계 파악 못하는 무능인가, 합의지상주의의 부작용인가

4기 방통심의위가 이런 문제 심의들을 반복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의 문제일까. 아니면 정치심의 논란에 대한 과도한 방어기제가 만든 합의지상주의의 문제일까.

2018년 1분기(1월 1일~3월 31일) 동안 방통심의위는 종편과 관련해 53건의 심의를 진행했는데 ‘문제없음’ 20건, ‘의견제시’ 15건, ‘권고’ 17건, ‘주의’ 1건이었다. 2017년 1분기엔 49건의 종편 심의를 진행했는데 ‘문제없음’ 9건, ‘의견제시’ 15건, ‘권고’ 21건, ‘주의’ 4건이었다. 총 심의건수에선 큰 차이가 없음에도 제재 수위에선 왜 이런 차이를 보이는 걸까.

 

심의결과 2017년 1분기 2018년 1분기
3기 방통심의위 4기 방통심의위
문제없음 문제없음 9 20
행정지도 의견제시 15 15
(경징계) 권고 21 17
법정제재 주의 4 1
(중징계) 경고    
총 종편 심의건수 49 53

△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 방통심의위의 종편 심의 결과 비교

 

만연했던 종편 봐주기 현상, 더 심화된 모양새

지난 석 달 동안 4기 방통심의위의 종편 심의 결과를 보면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구성했던 3기 방통심의위보다 ‘종편 봐주기’의 수위가 더 높아졌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회의록을 토대로 위원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살피며 확인한 부분은 3기 방통심의위 당시 여권 추천 위원들이 종편의 정권 편향 방송 두둔을 위해 제시한 이유들보다 더 다양한 ‘봐주기 이유’가 4기 방통심의위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3기 방통심의위 여권 추천 위원들은 종편의 문제 방송에 대해 낮은 수준의 제재를 반복하며 그 근거로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곤 했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치평론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방송에서 지켜야 할 공적 책임을 방기하는 이유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https://bit.ly/2r45vkJ) 사실과 다른 정보를 유통하거나 특정 정치인(정파)에 대한 피해를 유발할 경우 시청자인 국민에게 정치 혐오를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 확인 없는 추측성 발언을 쏟아내는 건 자유로운 정치평론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기 방통심의위는 출연자의 거짓된 편향 발언에 대해 3기 방통심의위와 마찬가지로 개인 의견이라는 이유로 관대함을 보이는 데 더해 배설물 수준의 발언은 시청자들이 알아서 걸러낼 테니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대로라면 방통심의위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3기 방통심의위 당시 여권 측 위원들은 문제 방송을 내보낸 제작진이 위원들 앞에서 재발방지 노력을 피력하며 사과하면 이를 감안해 제재 수위를 경감하는 모습을 반복했다. 물론 방송사 측에서 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하고 방송 품질 개선 노력을 하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3기 방통심의위 당시 그와 같은 논리로 문제 방송을 면죄하고 최소한의 제재를 거듭한 결과가 어떠한가.

이제 임기 석 달을 넘긴 4기 방통심의위원들 입장에선 종편의 문제 방송에 대해 이제 막 경고하기 시작한 만큼 처음부터 높은 수위의 제재를 하는 건 과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편은 개국 이후 7년 동안 잘못을 시정하기 보단 문제 방송을 내보낸 후 형식적인 사과를 하거나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 때 재빨리 영상을 내리는 등 교묘하게 책임을 피하는 요령만 늘어난 상황이다.

그런데도 4기 방통심의위가 지금처럼 외주 제작사의 피해를 앞서 고려하거나 취재진의 고충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기 위한 창의성 있는 이유들을 지금처럼 계속 등장시킨다면 종편 문제 방송 제작진들은 책임 회피의 기술만 날로 더 향상할 것이다. 4기 방통심의위원들만의 자의적인 심의 기준으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을 더 양산하기 전 언론·시청자·시민단체, 학계 등과 심의의 원칙을 토론하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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