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동아일보, 피해자 고통은 관심 없나20일 동아일보는 5면을 전체를 ‘안희정 두 번째 검출석’으로 편집해 보도했습니다. 주요 기사는 <“내가 이렇게까지…” 친구에 토로, 부인-아들과 열흘 칩거>(3/20 https://goo.gl/kAUkSM)입니다. 기사 왼쪽에는 <은신처 나와 검으로>라는 사진 기사가 붙어있습니다. 사진은 위 아래로 나눠져 있는데 위 사진은 멀리 조립식 컨테이너가 보이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빨간 점선 동그라미로 표시해 뒀습니다. 형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사진에 동아일보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위 사진 점선 안)가 13일 수도권에 있는 은신처 근처를 걷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조립식 컨테이너 건물이 안 전 지사가 머물고 있는 숙소”라고 덧붙였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머물고 있는 곳을 멀리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많은 지면을 차지한 기사의 주제는 단 하나, 대학 동창의 집에 딸린 컨테이너에서 ‘칩거’하고 있는 안 전 지사의 근황입니다. 오죽하면 기사의 소제목이 <안희정, 은신처에서 어떻게 지냈나>입니다. 또 다른 소제목 <20㎥ 넓이 컨테이너서 홀로 생활>, <하루 한 두끼 식사때만 부인과 함께> <“두 아들 볼때마다 심장 터질듯해”>만 봐도 안 전 지사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 2018년 3월 20일 동아일보 5면
가해자에게 ‘측은지심’? 안 전 지사 대변인인양 보도
기사 내용은 더 가관입니다. 안 전 지사가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데요. “회색빛 컨테이너의 크기는 20㎥ 남짓”으로 시작해서 방 구성, 심지어 방바닥에 난방용 전기선이 깔려있는지도 다뤘습니다. “안 전 지사는 밤에 술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나마도 새벽에 혼자 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는 안 전 지사의 ‘고통’도 상세히 표현했습니다. 보도는 더 나아가 지인의 말이라며 “안 전 지사가 소박한 식단으로 한 두끼를 먹는다”, “매끼니 밥을 반 공기도 먹지 않았다”는 끼니 걱정까지 담았습니다. 안 전 지사의 가족들의 반응도 기사 곳곳에 적어 넣었습니다.
이런 상세한 안 전 지사에 대한 정보제공은 어떤 효과를 줄까요? 이 보도는 성폭력을 신고한 김지은 씨 ‘때문에’ 안 전 지사가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보도입니다. 사실 어떤 사안이든지 누구의 입장에서 기술하느냐에 따라서 ‘할 말’은 있고, 측은지심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안 전 지사가 아닙니다. 피해자는 김지은 씨입니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보도는 가해자의 입장을 부각해 그에 대한 동정론을 유발하고요.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가해자의 고통에 더 주목하게 해줍니다.
취재 대상이 원하지 않았다는데…흥미거리로 소비
동아일보는 이미 8일 전인 3월 12일에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안희정, 성폭행 고소 사실 관계 묻자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3/12 https://goo.gl/PVWDmg)에서 검찰조사를 받은 이후 돌아가는 안 전 지사 차를 쫓아가 취재했는데요.
△ 2018년 3월 12일 동아일보 8면
동아일보는 <본보, 안 검찰조사 이후 추적보도>를 소제목으로 뽑고, 휴게소를 들렀다가 돌아가는 안 전지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기사는 “안 전 지사는 기자와 대화를 하다 갑자기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멍하니 허공을 주시했다”거나 “흐느꼈다”, “불안한 듯 서성이며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는 등 안 전 지사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추적보도>라는 표현을 소제목에 넣고, 사진도 안 전 지사의 차량의 뒷모습을 찍었습니다. 만약 안 전 지사가 검찰 수사를 피해 잠적중이라면 동아일보가 내세우는 ‘추적보도’가 돋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검찰에 나가 수사를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동아일보가 기사에도 밝힌 것처럼 “안 전 지사는 검찰 청사를 빠져나간 자신의 차량을 일부 언론사 차량이 따라붙자 차를 세우고 나와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안 전 지사의 괴로움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런 보도는 독자에게 ‘측은지심’을 유인한다는 문제가 있는데다가, 이런 관음증적 시각은 성폭력 보도마저 상업적으로 접근한다는 접에서 반인권적입니다.
채널A, 이틀 내내 ‘은신처’보도 영상으로 내보내
이러한 동아일보의 문제 기사가 ‘단독’과 ‘특종’으로 포장되고, 이를 다른 언론사들도 비판 없이 받아쓰고 있는 형국도 문제입니다. 동아일보 자회사인 채널A는 3월 12일 <신문이야기 돌직구쇼+>(오전 9시 40분), <정치데스크>(오후 4시 20분), <뉴스 TOP10>(오후 5시 40분)에서 해당 기사를 다루면서 진행자와 출연자가 신문에 나온 안 전 지사의 입장과 처지를 반복해 설명했습니다. 12일 방송되는 채널A의 모든 시사토크쇼에서 이 아이템을 다룬 것입니다.
부적절한 발언도 나왔습니다. <돌직구쇼>에 출연한 박용진 씨는 “나쁘게 보면 가족에 대한 애뜻함으로 어떤 동정론 이런 것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느낌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우선하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봅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해당 보도가 ‘동정론’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보도임을 알고 있음에도, 문제를 지적하고 기사를 비판하기 보다는, 오히려 안 전 지사의 처지에 ‘공감’하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 2018년 3월 13일 채널A <뉴스A라이브> 화면 갈무리
13일에는 한 술 더 떠서 채널A 영상 카메라가 직접 찍은 안 전 지사의 ‘은신처’와 지인의 인터뷰를 <신문이야기 돌직구 쇼+>와 <정치데스크>에서 다뤘습니다. 이날은 뉴스에서도 다뤘습니다. 채널A <뉴스A 라이브/안희정, 컨테이너서 묵으며 조사 대비>(3/13 https://goo.gl/pUjAFU)는 “안 전 지사는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는 앵커멘트를 시작으로 “심정적으로 침울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는 기자멘트와 함께 “너무 힘든 마음의 상태니까 저도 말을 안 붙인다”는 친구의 인터뷰를 내보냈습니다. 화면을 보면, 정식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숨긴 채 목소리를 따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무리한 인터뷰 시도 끝에 나온 발언이 가해자에 대한 심정적 동조를 끌어내는 내용이라니, 채널A의 뉴스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2018년 3월 13일 채널A <정치데스크> 화면 갈무리
동아일보, 재교육이 필요하다
19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109명의 회원은 “‘미투’ 운동 보도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고 언론을 향해 ‘피해자 인권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 등을 요구했습니다. 성명은 “보도/취재 과정에서 젠더 민감성을 높일 수 있도록 언론인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언론이 무조건 피해자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고, 어떤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도 인권이 있기에 그에 대해 성급한 여론재판으로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고통에 이렇게 집중하는 것은 고의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3월 12일 ~2018년 3월 2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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