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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방송사는 ‘유성기업’ 대신 ‘김학의 성접대’를 언급할까
등록 2018.02.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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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2일, 법무부는 과거 검찰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사건이나 인권 침해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재조사할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설치했습니다. 이에 대검찰청 개혁위원회는 권한 남용이나 봐주기 의혹이 있는 사건 25개를 추려 검찰 과거사위에 전달했고, 2월 6일 과거사위는 12건의 ‘우선 조사대상’을 발표했습니다. 


이 1차 우선 조사대상은 △김근태 고문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피디수첩 광우병 위험 보도 사건 △청와대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남산 3억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입니다. 


법무부가 우선 조사대상을 발표한 당일, SBS를 제외한 6개 방송사는 모두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주목한 사건은 각기 달랐습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유성기업 사건 언급 ‘0건’ 
6개 방송사의 ‘관심사’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에서 12개 사건 중 어떤 사건을 언급하고, 또 언급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서 반드시 모든 사건을 다 언급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12개의 사건 중 언급해야 할 사건을 추리는 과정에는 분명 각 언론사의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 어떤 방송사도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과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보도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해당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주역인 굵직한 사건’ 대비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은 경찰의 강압․부실 수사로 무고한 시민 3명이 진범으로 몰려 17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대표적 사건입니다. 검거 당시 이들은 미성년자였으며 이 중 한 명은 지적장애인이었는데요. 결정적 제보와 이들이 무고하다는 수많은 증거에도 경찰과 검찰은 검증을 소홀히 하고, 국선변호인은 이들에게 자백만을 권유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이 3명의 무고한 시민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게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법언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 사측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어용노조를 설립해 기존 노조에 대한 잔혹한 파괴 공작을 벌였음에도, 검찰이 노조파괴 혐의를 제외한 극히 일부 혐의만으로 사측을 기소해 봐주기 논란이 불거진 사건입니다. 2012년부터 2년간 노조 간부를 맡아 온 유성기업 노동자 고 한광호 씨는 투쟁 과정에서 사측과 기업노조 간부 등에게 11차례 고소를 당하며 시달리다가, 2016년 3월 사측에게 세 번째 징계를 위한 사실조사 출석을 통보받은 직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사건명(발생연도순)

KBS

MBC

JTBC

TV조선

채널A

MBN

김근태 고문사건

 

○(앵)

 

 

형제복지원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앵)

○(앵)

○(앵)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앵)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피디수첩 광우병 위험 보도 사건

○(앵)

 

○(앵)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사건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앵)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앵)

○(앵)

○(앵)

○(앵)

남산 3억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사건

 

 

 

 

(기타)장자연 사건

 

 

 

 

 

△검찰 과거사위 관련 보도 속 사건 언급 양상. (앵)은 앵커 멘트에서 언급된 사건(2/6) ⓒ민주언론시민연합


그 외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MBN만,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은 MBC만 언급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했습니다. 

 

 

‘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모든 방송사 언급+앵커 멘트 최다 등장
반면 모든 방송사가 언급한 사건도 있습니다.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경우 그 자체로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기도 하지만, 최근 영화 1987로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점 역시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은 모든 방송사가 언급한 수준을 넘어 가장 많은 방송사가 앵커 멘트에서 언급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이 12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서일까요? 해당 사건은 2013년 발생한 것으로 가장 최근 사건도 아닌데요. ‘성접대’라는 키워드가 지닌 선정성이 방송사들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 대목입니다.

 

 

JTBC는 장자연 사건 꾸준히 언급
JTBC가 검찰 과거사위 관련 보도에서 꾸준히 장자연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우선 이번 <박종철․김근태․강기훈…현대사 바로 쓸 ‘재수사’>(2/6 https://goo.gl/6ixSbx)에는 보도 말미 “다만, 고 장자연씨 관련 의혹사건은 일단 1차 선정 대상에서는 제외됐습니다”라는 기자 멘트가 들어있으며, 자료화면에도 고 장자연씨의 영정 사진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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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과거사위 1차 조사대상 사건 선정 보도에서 장자연 사건 언급한 JTBC

 

그 이전 <경찰․검찰의 ‘과거 적폐’ 청산도 본격화>(1/14 https://goo.gl/PMyyPb)에서도 “검찰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유력 인사들을 봐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배우 장자연씨 사건 등이 재조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검찰 역시 최근 꾸려진 ‘과거사 위원회’에서 진상 조사에 돌입할 대상 사건을 검토 중입니다. 곧 진상 조사단을 구성할 방침인데, 최근 유력 인사들에 대한 ‘봐주기 수사’ 논란이 다시 불거진 배우 장자연씨 사건 등이 포함될 지 주목됩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보다 앞서 1월 11일에는 <앵커브리핑>(1/11 https://goo.gl/NM6kCC)에서 손석희 앵커가 직접 장자연 씨를 언급하며 “서른을 앞둔 젊은 연기자”였으나 사람들이 “무명의 간절함을 이용해 접대를 요구하고, 폭력을 휘둘러 마음을 벼랑으로 내 몰”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사위 출범 이후 검찰개혁위원회가 고 장자연 사건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자연 사건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바는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여성단체는 지난달 23일 장자연 리스트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자연이라는 그 이름을 과거사 재조사 문제와 함께 엮어 방송에서 언급한 방송사는 JTBC가 유일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2월 6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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