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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성폭력 운동의 획을 그을, 용기 있는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
등록 2018.01.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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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자신이 겪었던 성추행 경험을 폭로하는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서 검사는 이 글에서 자신이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으며, 이후 사과를 받기는커녕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서 검사는 이런 일련의 상황 뒤에 안근태 전 국장과 당시 검찰국장이던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서 검사는 글의 말미에 성폭력 피해자의 연대를 상징하는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달고, “10년 전 한 흑인 여성의 작은 외침이었던 미투 운동이 세상에 큰 경종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내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작은 발걸음이라도 됐으면 하는 소망, 간절함으로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쓴다”고 덧붙였습니다. 권력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조차 조직 내부에서는 한없이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서 검사의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는 격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치유, 연대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서 검사가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생생한 육성 인터뷰를 통해 용기 있게 이 내용을 폭로한 것은 더욱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사안을 폭로했음에도, 언론은 이런 증언을 가십성 이슈로 소모했고 구조적 문제로 확장시키고 문화와 제도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론은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방관자이거나 2차 가해자 역할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언론 환경에서, 서 검사의 용기와 JTBC가 그간 쌓아 온 신뢰의 결과물인 JTBC <인터뷰/서지현 검사 “검찰 내 성폭행도 있었지만 비밀리에 덮여”>(1/29 https://goo.gl/7TCU3a)는 반성폭력 운동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JTBC는 이번 인터뷰를 시작으로 성폭력에 성역이 없다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아젠다 키핑’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으며, 향후 많은 언론이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집중 조명하리라 봅니다. 

 

 

JTBC․손 앵커 영향력 감안하면 아쉬움 남아
이처럼 의미 있는 인터뷰였음에도 JTBC 보도에 아쉬운 점은 있었습니다. 서 감사가 성추행 피해 상황을 설명한 이후, 이에 대한 추가 정황을 묻는 과정에서 손 앵커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라고 물었습니다.

 

서지현 검사 : 옆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손석희 앵커 : 안 모 검사가요?
서 검사 : 네, 맞습니다.
손 앵커 : 그 당시 직책은요?
서 검사 : 법무부 근무하고 있었고요. 정확한 직책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손 앵커 : 법무부에 파견 갔습니까?
서 검사 : 당시 법무부…법무부에 근무하는 간부였습니다.
손 앵커 :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
서 검사 : 사실은 바로 옆자리에 당시 법무부 장관님이 앉아계셨고요.
손 앵커 : 법무부 장관이요?
서 검사 : 네. 법무부 장관님이 앉아계셨고 바로 그 옆자리에 안 모 검사가 앉아 있었고, 제가 바로 그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주위에 검사들도 많았고 또 바로 옆에 법무부 장관까지 있는 상황이라서 저는 몸을 피하면서 그 손을 피하려고 노력을 하였지 제가 그 자리에서 대놓고 항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법정, 그리고 언론을 통한 여론 재판에서 ‘얼마나 저항했는가’, ‘얼마나 즉각적으로 충분히 비분강개하는 의사를 표현했는가’를 추궁당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스스로의 처신을 자책하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피해자가 당시 가해자의 행위에 적절히 대응했는지’ 여부는 성폭력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것이며, 서 검사가 인터뷰에서 거듭 “범죄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 그 피해를 입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앵커는 해당 인터뷰 전반에 걸쳐 대체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습니다. 서 검사에게 “2010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라며 당시 상황을 묻기 직전, 손 앵커는 “지금 사실은 처음부터 말씀을 잘 잇고 계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다음 질문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다음 질문이 사실 저도 드리기 싫은 질문이기 때문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피해 상황을 들은 이후에는 “지금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도 당시나 혹은 그 이후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심리적 고통이 컸었던가 하는 것을 저도 금방 알 수 있겠네요”라고 발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서 ‘물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겠죠?”라는 단정적 표현은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부주의한 것이었습니다. 손 앵커의 질문은 자칫 시청자에게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순간 가해자에게 당연히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다’라는 부적절한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JTBC와 손석희 앵커의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도를 감안하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 조직 내에 어떤 잘못된 문화”라는 발언도 부족한 마무리
또한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 말미 서 검사에게 감사를 표하며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어려운 자리에 나와 주셨는데, 이렇게 해서 검찰 조직 내에 어떤 잘못된 문화가 있다면 그것을 바꾸는 데 일조하셨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의 본질은 ‘검사 사회의 잘못된 문화’가 아닙니다. 서 검사가 당한 것은 명백한 범죄인 ‘직장 내 성추행’입니다. 게다가 가해자 집단이 피해 당사자에게 인사 보복 등 은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이 상당한 근거와 함께 제기되었습니다. 이 또한 사실로 밝혀진다면 명백한 범죄 행위입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이들이 서 검사의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함께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공직자가 있음에도 그 상황을 묵인‧은폐했다는 것입니다. 서 검사의 폭로는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는 여검사에게 잘나가는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검찰 조직에서 “앞으로 검찰에 있기 어렵겠구나”라는 각오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검찰 조직 내에 (존재하는) 어떤 잘못된 문화’라는 표현은 이런 참담한 상황을 인터뷰한 뒤에 내놓을 정리멘트로는 부족했습니다.

 

 

“용기 있는 제보” 기다리기 전에 그간의 언론보도부터 되돌아보길 
SBS 역시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30일 SBS는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전직 여검사의 추가 증언을 단독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후속 보도는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된 촉발된 해당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 SBS 김현우 앵커는 관련 마지막 보도 <지인 “폭로 이후 오히려 심적 안정 찾아”>(1/30 https://goo.gl/QGfeoD)에서 “아무래도 검찰 내부의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제보가 더 있었으면 좋겠네요”라는 멘트를 덧붙였습니다. 


먼저 언론에게 묻고 싶습니다. 검찰 내부의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았던 이유가 오직 ‘피해자들의 적극적 제보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검찰은 과거에도 동료 여검사를 성추행한 검사들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등의 황당한 행태를 반복해왔습니다. 2014년에는 차장검사가 ‘여성 기자’를 추행하였으나 가벼운 징계처분이 내려져 해당 기자가 차장검사를 고소한 사례까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이쯤되면 ‘용기 있는 제보’를 요구하기 이전에 언론 스스로가 그동안 검찰 내 성폭력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애써 외면한 것 아닌지 성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또한  이러한 발언은 사안을 공론화하고 진실을 밝힐 책임을 모조리 피해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이 이렇게 먼저 나서서 가해자와 목격자가 할 수 있는, 또 해야 할 역할을 지워버리지 않아도, 이미 피해자들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덧붙여 SBS의 ‘검찰 내부의 문제’라는 표현은 앞서 JTBC의 ‘검찰 조직 내에 어떤 잘못된 문화’라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사안의 중대성과 사회적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습니다. 
 


TV조선도 ‘취지’는 좋으나…
TV조선 <포커스/고개 드는 한국판 미투 캠페인>(1/30 임유진 기자 https://goo.gl/C7RVKj)은 ‘한국판 미투 캠페인의 확산 가능성’에 주목하며, ‘우리도 이런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라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이 역시 좋은 취지를 담고 있는 시의적절한 보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TV조선은 지난해 <“성추행 하고도 버젓이 출근”>(2017/10/16 https://goo.gl/mCxXuD) 단독 보도를 통해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근무했던 박채아씨의 직장 내 성추행 피해 사실 폭로 목소리를 전한 바 있는데요. 이번 보도에서 “몇몇 여성들은 실명으로 피해사실을 공개하는 용기를 내기도 했습니다”라며 당시 어렵게 용기를 냈던,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박채아씨의 사례를 재차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동시에 “2016년, 시인과 소설가 수십명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이어”졌던 ‘문단_내_성폭력 해쉬태그 운동’의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분을 필요이상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 보도는 박범신 작가의 “내 스타일이 어떤 분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됐다면 그분은 만나면 내가 손 붙잡고 사과하고 싶어요”라는 ‘사과’ 발언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박 작가의 발언이라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이를 음성변조 처리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이에 대해 “사과를 이끌어냈고”라는 평가를 붙이고 있기도 한데요. 성추행 혐의에 대해 ‘스타일’ ‘손을 잡고 사과’를 운운하는 발언을 단순히 ‘사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또 3년간 자신이 가르치던 미성년자 제자 9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성추행 한 혐의로 1심 징역 8년을 선고받은 배용제 시인에 대해서도 TV조선은 “한 시인은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고발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라는 설명만 내놓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연대와 용기에 초점을 맞춘 보도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삽화․재연은 피해야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으로 언론이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거나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성폭력 관련 보도에 적용되어야 할 기본 원칙입니다. 


물론 이번 사례처럼 피해자가 직접 용기를 내 본인의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린 경우에는 상황의 맥락과 구조를 제거하고 ‘가십거리’로만 다루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폭로한 사실을 받아 소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성폭력 피해 상황을 언론이 ‘선정적 삽화’ 혹은 ‘재연’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이번 사안에서 이 원칙을 어긴 방송사는 MBC와 TV조선입니다. 먼저 MBC는 <노래방 회식서 “도우미 비용 아꼈다”>(1/30 https://goo.gl/1qdxyG)에서 한 남성이 여성에게 삿대질을 하다가 손을 뻗어 무릎을 만지는 장면, 또 다른 남성이 술자리에서 여성의 어깨를 만지는 장면을 굳이 재연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MBC가 보도에서 이런 재연 장면을 뺀다고 해서, 해당 상황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할 시청자는 없을 것입니다.     

 

 

TV조선 <8년 전 무슨 일이…장관 옆에서 ‘성추행’>(1/30 https://goo.gl/T2THnw)은 같은 내용을 전하며 여성의 옆에 남성이 접근하다가 팔을 뻗어 접촉하는 모습을 복수의 삽화를 사용했습니다.

 

특히 이 삽화를 보여주며 기자가 “술에 취한 안 전 국장은 앉자마자 서 검사쪽으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서 검사는 무릎담요를 사이에 두고 안 전 국장과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지만, 안 전 국장의 손은 서 검사의 허리로 향했습니다”라는 ‘현장감을 살린’ 설명을 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건조하게 사실관계를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피해 사실이 발생한 그 순간으로 시점을 돌려가며 생생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소지가 있는 불필요한 보도 기법입니다.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했던 그간의 성폭력 보도
그동안 우리 언론은 성폭력에 있어서만큼은 ‘아쉬운 보도’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기자들 스스로 성폭력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의 취지와 구체적 내용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실제 그동안 민언련이 지적한 보고서 속에서는 우리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다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경찰이 중등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을 다룬 MBN 저녁종합뉴스인 뉴스8에서 보도했던 <중학생 성폭력>(2016/5/28, 정치훈 기자 https://goo.gl/bjFSEm)은 앵커, 기자, 현직 경찰의 인터뷰를 통해서 3번이나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인 “합의에 의한”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사의 인터넷판 제목은 <‘성폭행’ VS ‘사귀는 사이’ 현직 순경 ‘대기발령’>이었습니다. 이처럼 ‘사귀는 사이’라는 주장이 제목과 기자멘트로도 전달되었습니다. 1분 25초 짜리 짧은 보도에서 일방적 피의자 주장에 불과한 ‘합의에 의한 만남’, ‘사귀는 사이’를 다섯 번이나 전해진 것입니다. 


보도 영상은 더 황당했는데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데이트하듯 모텔로 들어가는 재연 삽화, 모텔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베개, 경찰복을 입은 남성이 침대에 누운 여성을 덮치려는 삽화, 두 남녀가 다정하게 허리를 껴안고 유흥가를 걷는 삽화 등을 보여줬습니다. 이 보도는 미성년자 성폭행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수준을 넘어서서 ‘사귀는 사이’였다는 피의자의 주장까지 삽화로 보여주고 모텔 내부를 불필요하게 노출해,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게 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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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N <중학생 성폭행>(2016/5/28) 보도 영상 갈무리

 

게다가 이 보도는 민언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에 민원으로 제출했으나 심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방통심의위는 “범죄 장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없었던 점, 해당 삽화 및 자료화면의 내용이 사회통념상 문제가 될 정도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움”이라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기각 사유에는 “범죄를 예방하고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해당 방송의 공익적 취지”가 인정된다는 칭찬까지 덧붙였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피해자를 모욕하고 얼마나 더 노골적으로 가해자를 감싸줘야 방통심의위가 ‘문제 있는 성폭력 보도’라고 판단해 제재를 가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나마 방통심의위가 심의에 상정한 후에도 ‘문제없음’으로 판단하는 심각한 보도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중 경악할 만한 삽화를 사용한 MBN 뉴스8의 <고교생 22명이 여중생 성폭행>(2016/6/28)이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이 보도는 고교생 22명이 중학생 2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을 다룬 것인데, MBN이 내놓은 삽화는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들 주변에 나뒹구는 술병, 야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피해자들, 그리고 둘러싸고 지켜보는 가해자들 22명이 그려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를 카메라 앵글이 한쪽에서 시작해 다른 쪽까지 훑어가면서 현장감을 극대화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한 남학생이 자신의 하의를 추스르는 뒷모습까지 묘사되었습니다. MBN은 이 삽화가 맘에 들었는지 다음날인 29일 MBN <뉴스파이터>에서도 사용했습니다. 

 

그림으로 성폭행을 재연한 것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는 행태입니다. 이런 성폭행 묘사 삽화가 없더라도 충분히 사건의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습니다. MBN의 삽화는 구체적인 성폭행 묘사로 시청자의 ‘관음’을 자극한 것입니다. 특히 피해자가 이 삽화를 보고 감당해야 할 정신적 충격을 감안하면 방송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방통심의위는 이 삽화에 대해서도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밖에도 심각한 양성평등 침해와 성폭력에 대한 부적절한 보도가 쏟아졌지만 방심위는 시종일관 솜방망이 심의로 일관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양성평등과 성표현 관련 방송민원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결과 분석보고서>(2016/8/29 https://goo.gl/2DorUv) <종편의 성희롱 사건 토크는 2차가해 수준>(2017/6/12 https://goo.gl/J7tKSj) 등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폭력에 있어 기계적 균형을 지키겠다며 가해자의 발언 중심으로 보도해왔던 뉴스, 피해자를 오히려 '꽃뱀' 취급하는 발언이 넘치는 종편 시사토크쇼,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성폭력 관련 방송의 현실이었습니다. 

 

 

관련 준칙 및 가이드라인 속 구체적 지침부터 마련해야 
지금 우리에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과 여성가족부, 한국기자협회,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이 함께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만든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등 여러 성폭력 관련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만이라도 언론인들이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보도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이번 JTBC 인터뷰를 보면서 기존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포괄적 강령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취재를 앞둔 기자가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려 해도 구체적 상황에 대입할만한 행동지침이 부족하며, 이 때문에 가이드라인은 ‘최악의 실수’를 면하게 해주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참에 국가인권위원회와 방통심의위, 여성가족부, 그리고 이 문제를 고민해온 여성단체 및 언론단체들이 함께 분산된 완성도 있고 실효성 있는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및 제작지침을 마련하는 것과, 향후 이 작업이 정기적으로 수정 보완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성폭력 사건처럼 자칫 인권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보도 사안의 경우, 이미 나온 문제 보도를 지적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제대로 교육을 진행해 애초 이러한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기존과 같이 성폭력을 보도한다면, 차라리 언론에서 성폭력을 다루지 않는 것이 2차 가해, 잘못된 편견을 확대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JTBC의 서 검사 인터뷰 보도 이후, 부디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부적절한 행태가 개선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월 29~3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