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가상화폐 규제’ 보도, TV조선과 채널A의 무리수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투기 과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상화폐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법무부가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같은 날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국회 4차 산업혁명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무부와 같은 생각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관계부처장의 발언과 달리 11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과 12일 김동연 부총리는 거래소 폐쇄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 기간 대다수 방송사는 정부의 우왕좌왕한 태도가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무부 장관 등의 발언이 나온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청와대가 이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가상화폐 시세가 널뛰었던 상황이었던 만큼 당연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이 와중 가상화폐 문제를 ‘국정농단’ ‘노무현 정부 트라우마’ 등과 엮거나, ‘가상화폐를 통해 한 몫 챙긴 사례’를 나열한 황당한 방송사가 있습니다. 바로 TV조선과 채널A입니다.
국정농단보다 코인 규제가 더 나쁘다?
TV조선의 <“국정농단보다 코인 규제 더 나빠”>(1/12 https://goo.gl/mLEswh)는 제목 그대로 “가상화폐 주된 투자자인 이삼십대 청년층”이 문재인 정부에 분노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규제를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비교”까지 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분노한 투자자가 이러한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 같은 비교가 상식적으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TV조선은 이를 제목을 통해 부각하며 사실상 ‘동의’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TV조선은 보도 제목에 “국정농단보다 코인 규제 더 나빠”라는 발언을 큰 따옴표로 인용해 실제 누군가 이러한 발언을 직접적으로 한 것처럼 전하고 있는데요. 정작 보도 안에는 실제 이러한 발언을 내놓은 인물은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가상화폐 규제를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비교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뒤, 마치 이러한 해설을 뒷받침하는 시민 의견인양 붙여놓은 인터뷰는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그렇게 얘기한거는 독단적으로 한거라 생각하거든요. 그 발언 한 마디로 투자자들 심리가 위축되고”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는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독단적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일 뿐,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문재인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를 비교하는 내용이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편집한 것이죠.
이어서 TV조선이 부각하여 보여준 인터넷 댓글들 역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철회’ 혹은 ‘압박 예고’ 의사를 담고 있는 것들일 뿐입니다. 댓글로조차 ‘국정농단 보다 코인규제가 나쁘다’라는 시민의견을 소개하지 못한 셈인데요. 이런걸 보면 보도 제목 속 큰 따옴표 발언은, 취재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쓴 것이 아닐까 의심될 지경입니다.
△ 문재인 정부의 코인 규제가 박근혜 국정농단보다 나쁘다는 정체불명 주장을 소개한 Tv조선(1/12)
이 수준미달 보도는 “가상화폐 규제 시도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주된 지지층이었던 20~30대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때 이른 관측도 나옵니다”라는 기자의 희망(?)으로 마무리되는데요. 가상화폐 투기 대책 과정에서 보인 미숙한 태도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TV조선 기자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펼쳐졌으면 하는 상황’을 염원하며 덧붙인 말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투기 열풍 부는데 ‘대박 사례’ 나열도
위 보도의 또 다른 특징은 ‘미숙한 정부 대응’이 아닌 ‘가상화폐 규제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인데요. 다음날 내놓은 <나라 안팎 가상화폐 ‘초대박’ 설설설>(1/13 https://goo.gl/2bBWoF) 같은 보도를 보고 있자면, TV조선은 내심 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듭니다.
보도는 “여러 위험이 있는데도 가상화폐 투자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이른바 대박이 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칭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경험담이 쏟아집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를 번 사례가 있을까요?”라며 보도를 통해 무려 ‘가상화폐 투자 대박 사례’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앵커는 이런 ‘구미 당기는 멘트’를 쏟아낸 뒤’에야 “유념하셔야 할 것은 돈을 잃은 사람도 상당수라는 겁니다”라는 충고를 덧붙이는데요.
이런 지적이 무색하게 기자는 리포트 시작부터 “비트코인으로 처음 대박을 낸 부자는 미국 제미니 거래소를 설립한 쌍둥이 윙클보스 형제입니다. 이들은 2012년 120달러에 산 비트코인이 지난해 100배 올라 10억 달러, 우리 돈 1조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리플 랩 회장인 크리스 라센도 보유한 코인 액수가 599억 달러, 63조원에 달해 억만 장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라이트코인 창시자인 찰리 리는 지난해 말 자신의 코인을 모두 매각했는데, 이 때 가격이 연초보다 75배 오른 상태였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은 올해 가상화폐를 공부하겠다고 선언했고, 마이크로 소프트 창시자인 빌게이츠도 가상화폐의 전망을 낙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100만원으로 시작해 340억 원을 벌었다는 한 사례가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 회자됐고 몇 천, 몇 억 원 수익을 냈다는 확인되지 않은 경험담도 수없이 생성됩니다”라며 2분3초짜리 보도에서 앵커멘트를 제외하고도 무려 1분10초가 넘도록 ‘성공 사례’를 소개합니다.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가상화폐 투자자의 “10초 만에 600(만원) 먹었어(벌었어)”라는 흥분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반면 투자 위험에 대해서는 “하지만 손실을 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워렌 버핏, 마윈 등은 가상화폐에 신중한 입장입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를 4-5년 연구한 이들이 지금 큰 돈을 벌고 있다며 준비없는 투자를 경계합니다”라며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의 “솔직히 전 비트코인의 팬은 아닙니다”라는 발언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는 시장에서 투기 광풍이 일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대박’을 낸 사례를 묶어 보여주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태도인지 의문입니다.
채널A는 ‘노무현 트라우마’ 억지도
채널A 역시 관련 이슈로 TV조선 못지않게 황당한 보도를 내놓았는데요. <노 트라우마 VS NO 트라우마>(1/13 https://goo.gl/t2svzW)에서 채널A는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의 문제점을 짚는다며 “노 트라우마”를 언급했습니다. 이는 “가상화폐 대응에 있어 청와대와 정부가 민감하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노무현 정부 때 정책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채널A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두 사건의 “피해자 숫자가 굉장히 많다는 것”과 “문제를 바라보는 정부 시선이 ‘투기’ ‘도박’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을 공통점이라며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전국을 강타했던 사행성 오락실 바다이야기” 문제가 터졌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시민사회 수석,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맡”은 바 있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바다이야기에 대한 정책 실패 트라우마가 가상화폐에 대한 강공 대응을 가져왔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트라우마’라는 주제에 끼워 맞추려고 ‘사행성 오락실’인 바다이야기 흥행과 블록체인 기술 활용 문제와 엮여 있는 ‘가상화폐 투자 과열’ 문제를 무리하게 비교하고 있는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채널A는 이 과정에서 “바다이야기에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했다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쟈(저자)들은 돈이 많아가지고 여론조사를 윽쑤(억수)로 해요. 아이 야들 무슨 돈이 이래 많노. 누가 그러더라고. 옛날에 바다이야기 때 돈 많이 쟁여놨습니다”라는 발언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기자도 언급하고 있듯 “이 내용은 확인된 것이 없음”에도 그냥 ‘말 나온 김에 이것도 같이 소개한다’는 태도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주장한 채널A(1/13)
여기서 그치지 않고 채널A는 “또 다른 트라우마도 예상해 볼 수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문재인 정부에게 트라우마를 주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쏟아냈습니다.
이쯤 되면 가상화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냥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고, 문재인 정부도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조금이라도 유사성을 보이는 정책 혹은 사건을 마구잡이로 끌어 모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 보도는 “정책 책임자의 면면에서도 트라우마 있을 수 있다 이런 얘기도 있”다며 “가상 화폐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박상기 법무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 소위 위원을 했고, 시민단체 출신”이며 “부동산 정책을 맡고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 국내언론 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고 “최저임금 후폭풍을 겪고 있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 간부 출신으로 노 대통령 인수위에서 상근자문위원을 지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들이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데다 출신이 시민단체, 정치인 모두 노무현 정부와 연이 닿은 인사들이며 시민단체나 노조 출신 인사”라는 주장인데요. 여기에 기자는 “경제논리보단 ‘'이념’ ‘소신’ ‘코드’ 등을 먼저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정책이 논란이 되는 것은 사회 각 계층의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지 이들이 노무현 정부 관계자이거나 ‘시민단체나 노조’ 출신 인사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취지부터 마지막 멘트까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악의’만 담고 있는 보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월 11~1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