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MBC ‘오보 논란’ 뒤에 감춰진 TV조선 ‘오보 논란’11일 MBC와 TV조선 저녁종합뉴스의 톱보도가 나란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두 방송사의 보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직 임시체제이지만, 신임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 첫 MBC 단독 보도였고, TV조선도 전원책 앵커의 하차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신동욱 앵커의 첫 진행 뉴스에서 내놓은 첫 단독 보도였습니다.
이렇게 두 보도는 쇄신과 변화를 약속한 시점에 각 방송사가 저녁종합뉴스를 통해 처음으로 내놓은 단독 보도였던 만큼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도 이후 청와대 혹은 정부 관계자의 반박이 나오면서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방송사의 톱보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MBC 논란’ 뒤에 감춰져 거의 주목받지 못한 TV조선 보도의 문제는 보다 심각했습니다. 두 보도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익명의 관계자만 3명…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출처나 합리적 추정도 없어
TV조선 톱보도 <문정부 대화 제의…북, 80조 요구>(12/11 https://goo.gl/cp53t4)는 “뉴스9 오늘 첫 뉴스는 최근에 한반도 상황과 관련한 매우 의미있는 단독 보도로 시작하겠습니다. 정부가 최근 민간 비선라인을 동원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서 북한의 고위급 인사를 접촉해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의했는데, 북한 측이 북한의 작년 총생산의 두 배가 넘는 80조원의 대가를 요구했다고 합니다”라는 앵커 멘트로 시작됩니다.
앵커가 직접 ‘매우 의미있는 단독 보도’라 지칭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이 보도에서 김정우 기자는 “지난 10월말, 정부 고위당국자가 북한 사정에 정통한 인사를 만나 대북 접촉을 요청했습니다. 북한에 자주 드나들며 고위층과 신뢰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 인사는 중국 선양으로 가서 북측 고위급 인사를 만났습니다. 핵·미사일 개발 중단 요구와 함께 우리 정부의 대화 재개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측 인사는 ‘대화는 할 수 있다’면서도 80조원 규모의 자금과 물자 제공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라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즉 이 보도에는 이 사안과 관련된 익명의 인사가 최소 세 명 등장한 것인데요. ‘익명의 정부 고위당국자’와 ‘익명의 북한 사정에 정통한 인사=북한에 자주 드나들며 고위층과 신뢰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 ‘익명의 북측 인사’ 중 대체 누가 TV조선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인지는 보도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기자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고 보도 안에서 취재 대상의 신분을 감추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TV조선의 기사처럼 ‘익명의 관계자’와 ‘익명의 관계자’들이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는 정황만 제시하고, 대체 어느 쪽에서 이런 주장이 흘러나온 것인지, 최소한의 출처조차 숨겨놓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 보도가 보도라기보다는 인터넷 ‘썰’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보도는 이 정체불명 인사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최소한의 추가 정황조차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도에 대해서 통일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입장을 밝힌 상황입니다. 물론 통일부의 이런 반응만을 근거로 이 보도가 무조건 ‘오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보도가 사실이냐 아니냐보다는 보도의 완결성이 매우 부족하며, 악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정부 대북 송금 사례까지 들먹이며 현 정부 대북정책 비난
TV조선은 북한이 ‘상당한 돈을 요구했다’는 자사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부는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지속적으로 대화 재개를 모색해 왔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우리 정부는 이러한 구체적 과제(이산 상봉과 군 핫라인 복원)를 위한 접촉에서 시작하여 보다 의미 있는 남북한 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보여줬습니다.
또 이 뒤에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사도 밝혔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라는 발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문에 이 보도만 보면,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외교부장관과 대통령의 위 발언이 마치 ‘북한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돈이나 보내려는 정부 행태의 일환’처럼 느껴집니다.
심지어 해당 보도는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4억~5억 달러를 보냈습니다. 북한이 과거처럼 경수로 건설이나 금강산, 개성공단 개발을 염두에 둔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라는 설명으로 마무리되기도 하는데요.
‘김대중 정권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현대그룹을 동원해 4억5000만달러를 조성,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북한에 송금했다. 그러니 주권을 포기하고 대북 퍼주기를 했던 것이다’라는 주장은 보수 야당이 주기적으로 꺼내드는 단골 공세 소재입니다.
실제 지난 대선후보 합동 토론회 당시에도 홍준표 후보는 “북한은 돈을 안 주면 대화를 하지 않는다. 북한과 협상해야 하는 데에는 돈을 바쳐야 한다” “그 돈이 다 핵이 되어서 내려온 것 아닌가”는 주장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이는 ‘남북 대화를 강조하고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우려스럽다’는 TV조선이 기존에 펼쳐 온 주장과도 결을 같이 합니다.
아무 근거 없이 ‘대북지원=핵 개발 전용’ 당연시
TV조선 보도의 진짜 문제점은 <따져보니/북한이 요구한 ‘80조’의 의미는…>(12/11 https://goo.gl/eisYXx)에서 드러납니다. 톱보도를 상세히 해설하기 위해 대담 형태로 진행된 이 보도는 ‘이렇게 북한의 요구에 맞춰 돈을 주면 그것이 핵 미사일 개발비로 사용 될 것’이라는 망상성 추측을 펼치는데 주력했습니다.
보도에서 앵커와 기자는 북한이 요구한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 ‘이런 돈을 요구한 의미가 무엇인지’ ‘역대 정부에서 북한에 지원한 돈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 뒤에 앵커는 “물론 우리가 이런 큰돈을 줄리는 없겠습니다만, 북한이 핵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큰돈을 요구한다면 그동안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비로 쓴 돈, 이것과 또 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텐데. 그건 따져봤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의 대북 현물, 현금 지원이 북한 핵 개발에 유용된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에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무엇보다 현물 지원과 현금 지원을 이런 논리로 비난하기 시작하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이미 ‘효과 없음’이 입증된 제재·압박 위주의 강경책뿐입니다. 결국 TV조선은 위기관리에는 비용이 필요하며,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불러내려면 제재·압박 이상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전한 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비용을 언급한 TV조선(12/11)
또한 기자가 “우리 정부는 올해 안에 북한에 800만 달러를 인도적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은 각종 지원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것도 악의성이 의심됩니다. 북한의 어린이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영양실조 치료를 돕기 위해 세계식량계획 WFP와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에 공여하기로 한 금액까지 모조리 싸잡아 ‘이만큼이나 많이 지원하려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실 말하겠다’ 야심차게 방송 시작한 신동욱 앵커
11일 TV조선 신동욱 앵커는 오프닝(https://goo.gl/3bq38s)을 통해 “지금 한국 언론은 사실과 진실, 의견, 주장에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마구 뒤섞여 무엇이 진짜 뉴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언론계에서 일 해온 저 역시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저를 다시 여러분 앞에 서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TV조선 뉴스의 슬로건은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 라는 겁니다. ‘사실’과 ‘진실’ 가장 어렵지만 언론이라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절대 명제이기도 하지요, 뉴스9을 시작하는 제 각오는 여기에 담겠습니다”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신 앵커의 이런 다짐이 무색하게 이날 TV조선의 첫 보도는 곧바로 ‘오보’ ‘왜곡 보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TV조선의 두 보도는 기사의 완결성 측면에서 매우 부족하고 오보인지 아닌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내용을 가지고 망상성 질문과 답변을 이어간 보도였습니다. 이런 보도가 새 메인뉴스 앵커의 방송 진행이 시작된 날, ‘대단히 중요한 보도’로 소개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TV조선의 보도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MBC, 취재결과 전달하고 해석 여지는 열어둬
그렇다면 MBC 보도는 어땠을까요?
MBC <이례적 특사 파견 MB 비리 관련?>(12/11 https://goo.gl/uE7kAh)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 발언을 근거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최근 중동 특사 방문이 MB 정권 비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MBC는 보도 내에서 “때문에 외교가에선 원전 관련 의혹이나 MB 비리에 대한 본격 조사에 앞서 임 실장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하고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사로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전하고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이는 수준에서 보도를 마무리했습니다.
MBC 보도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익명의 인사는 “특사 방문의 진짜 이유는 과거 정권의 비리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MBC에 밝”힌 ‘익명의 정부 관계자’ 한 명입니다. 수많은 익명의 관계자를 등장시키고, 이 중 누구에게 말을 들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은 TV조선과 비교해보면, 적어도 MBC는 ‘이름은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정부 관계자’로부터 이 정보를 들었다는 정도의 정보 출처 정도는 밝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MBC 보도는 결국 TV조선 보도와 마찬가지로 익명 보도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익명보도가 당위성을 지니는 경우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제보자 위험한 상황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 한합니다. 의견을 익명으로 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관행이며, 그 외 ‘신분을 밝히기 싫어하는 인사의 흥미로운 증언’을 전하겠다며 익명의 관계자를 출처로 내세운 보도를 쏟아내는 것 역시 지양되어야 할 행태입니다.
또한 이 보도 이후, 익명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임종석 실장이 이전 정권 비리와 관련해 중동지역을 방문하였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MBC에 정정보도를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도 “오늘 일부 방송사의 확인되지 않은 과감한 보도에 유감을 표시한다. 확인 절차 제대로 해주시길 당부드린다”는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이에 대한 MBC의 입장은 MBC 보도가 아닌 미디어오늘 <“임종석 실장 중동 특사 MB 비리 때문” MBC 보도 진실은?>(12/12)로만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MBC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며, “임종석 특사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복수의 관계자가 확인해준 내용이며 이 밖에도 다른 취재원을 통해서도 크로스 체크를 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MBC는 애초 보도에서도 청와대의 입장을 물었고, 이에 대해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보도 이후 청와대는 단호하게 부인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가 자사 보도가 오보임을 인정할 수 없다면 청와대의 입장을 충실히 담은 ‘반론보도’라도 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분명한 것은 ‘충분한 취재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 이 보도가 진실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청와대의 부인이 이 보도가 오보임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2월 11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