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네 방송사의 시간차 ‘농협 고기 자판기 홍보’, 대체 왜?
등록 2017.12.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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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7절 광고효과의 제한, 제46조의2(방송광고와의 구별)는 “방송은 법령에서 허용하는 경우 외에는 방송프로그램이 방송광고와 명확히 구별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에 앞서 제46조(광고효과)에서는 방송이 특정 상품, 서비스, 기업, 영업장소 등에 대해 자막과 음성, 소품 등을 통해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심의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명분을 들어 지상파와 종편은 여전히 한 목소리로 광고와 보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발견되었습니다. 이른바 ‘농협 고기 자판기’ 관련 보도인데요.

 

지난달 22일, 농협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무인자판기로 냉장 판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취지의 ‘IoT 스마트 판매시스템 출시 기념식’을 열고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농협의 이 보도자료 배포 이후 ‘고기 자판기’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보도가 저녁종합뉴스를 통해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MBC, 판매 상품 이미지 리스트 만들어 노출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전한 것은 MBC입니다.

 

<고기도 자판기로…편하고 값싸게>(11/22 https://goo.gl/xbkHms)에서 기자는 “농협이 처음 선보인 일명 ‘축산물 자판기’입니다. 한우 등심부터 한돈 앞다리 살, 생고기와 양념 고기까지. 3백 그램 단위로 소포장 된 국내산 축산물 10가지 제품을 판매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가격입니다”라는, 판촉사원이나 할 법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의 “무인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사먹을 때 20% 정도의 가격을 인하해 (살 수 있습니다)”라는 인터뷰를 보여주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았습니다.

 

화면 구성은 더 노골적입니다. 보도는 자판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연 장면’은 물론이고, 판매하는 상품의 이미지까지 별도로 정리해 보여주었는데요. 농협중앙회의 보도자료를 영상으로 구현해낸 ‘광고’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보도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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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한 MBC 보도 화면 갈무리

 


채널A, 기자가 직접 자판기 이용 시연하며 홍보
이틀 뒤 채널A가 내놓은 <‘20% 싸게’ 한우 자판기 놓는다>(11/24 https://goo.gl/SD7jzk)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앵커 멘트부터 “한우를 파는 자동판매기가 등장했습니다. 갈수록 수입산 쇠고기에 밀리는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서 우리 축산업계에서 내놓은 것인데요. 20%는 싸게 살 수 있습니다”입니다.

 

기자도 ‘한우가 수입산 쇠고기에 밀리는 현실’을 주부들의 입을 빌어 먼저 보여준 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우업계도 아이디어를 내놨”다는 빌미를 들어, 이 ‘고기 자판기’에 대한 홍보를 시작하는데요. 기자가 직접 자판기 앞에서 “한우 자판기입니다.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이력 확인란을 누르면 소가 자란 지역과 등급을 확인할 수 있고요. 결제를 하면 이렇게 진공포장된 상태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라며 자판기 이용법을 안내할 뿐 아니라, 판매 상품을 손에 들고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이 뒤에는 “특히 저렴한 가격이 장점입니다. 상위 등급인 등심 100g을 마트 가격보다 20% 저렴한 수준으로 살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보도는 정진영 농협 안심축산사업부 차장의 “소매 비용을 줄여서 저렴한 가격으로 (국내) 축산물을 공급함으로서 소비를 확대하고자”라는 발언을 소개한 뒤, “농협은 사물 인터넷을 적용한 한우 자판기 2대를 올해까지 시범 운영한 뒤, 2020년까지 1인 가구 밀집 시설을 중심으로 2천 여대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라는 기자 멘트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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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한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KBS, 부정청탁금지법 관련 문제와 엮어 ‘홍보’
KBS <위기의 한우 농가…돌파구 찾기 안간힘>(12/4 https://goo.gl/pvjfBr)은 표면적으로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우 농가의 위기 극복 행보를 소개한다는 취지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고기 자판기’와 관련 상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했다는 측면에서 MBC, 채널A 보도와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 기자가 “건물 안에 설치된 자동판매기. 버튼을 누르자, 한우 등심이 나옵니다. 일명 자판기 한우입니다. 생고기 뿐 아니라 불고기, 양념 갈비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핵심은 가격입니다. 점포 운영비와 인건비를 절감해 한우 가격을 40% 가까이 낮췄습니다 300그램 단위 소포장 상품으로 1인 가구까지 공략합니다”라는 멘트를 하는 사이, KBS는 영상을 통해 한 여성이 고기 자판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집요하게 보여주는데요. 이 과정에서 상품 클로즈업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농협 관계자의 공식 멘트 대신, 소속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의 “아무래도 포장이 작다 보니까 좀 편리하게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발언이 소개되었다는 점과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한우 농가의 고민을 강조했다는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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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한 KBS 보도 화면 갈무리

 


MBN, 다른 자판기들 사이에 슬쩍 끼워넣어 홍보
MBN <상담부터 고기도 판매…자판기의 진화>(11/28 https://goo.gl/4ED8s1)는 ‘자판기의 진화 양상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보도인데요. 상담 자판기와 샐러드 자판기와 함께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진화된 자판기’의 한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이 보도의 경우 ‘고기 자판기’ 관련 노출 시간은 18초 남짓으로 앞서 소개한 방송사들의 보도보다는 짧습니다.

 

그러나 “마트 갈 시간도 없이 바쁜 현대인에게는 언제든 살 수 있는 '육류 자판기'가 딱입니다. 시중보다 20% 싼 가격에 한우 등심부터 양념 고기까지 메뉴도 다양합니다”라는 기자 설명,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소고기 가격에 대한 국제 가격 경쟁력이 좋아져서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는 발언과 함께 자료화면으로 한 남성이 고기 자판기를 이용하는 모습, 자판기에서 구매한 상품을 슬쩍 들어보이는 모습 등을 노출하고 있어 명백히 광고 효과를 주는 편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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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협의 ‘고기 자판기’를 홍보한 MBN 보도 화면 갈무리

 


명백한 방송심의규정 위반
우리 방송심의규정은 제46조(광고효과), 제46조의2(방송광고와의 구별), 제46조의3(안내·고지 자막), 제47조(간접광고) 등의 다양한 조항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의 광고효과에 각종 ‘제약’을 걸고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송사가 ‘광고를 광고가 아닌 척 내보내 시청자를 호도하고 시청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 때문입니다.

 

때문에 보도 등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상품 등을 소개할 때” 조차도 심의규정은 “특정업체 또는 특정상품 등을 과도하게 부각시켜 경쟁업체나 경쟁상품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농협의 ‘고기 자판기 출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이런 의심스럽고도 게으른 방법이 아니더라도, 한우농가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알릴 방법은 있었을 겁니다. 기자가 만드는 것이 보도가 아닌 광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시점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1월 22~12월 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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