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놀이터 인접 모텔촌 문제 전하며 어린이 인터뷰한 TV조선
등록 2017.11.29 12:38
조회 557

TV조선의 <낯 뜨거운 모텔촌에 어린이 놀이터>(11/26 https://goo.gl/rFsKmD)는 어린이 놀이터 주변 숙박업소나 유흥시설 설립 관련 규제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보도입니다. 어린이들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린이를 위한 환경을 걱정한 이 보도는 정작 어린이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부적절한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 방송심의규정은 방송의 어린이 청소년 보호라는 가치를 매우 주요하게 여겨서, 다른 어떤 사안보다 주요하게 섬세하게 관련조항을 정리해놓았습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6절 어린이·청소년 보호의 제43조(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는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좋은 품성을 지니고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여야”하고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균형있는 성장을 해치는 환경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유익한 환경의 조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요.

 

6절의 제44조(수용수준), 제45조(출연), 제45조의2(청소년유해매체물의 방송)은 물론이고, 제26조(생명의 존중), 제35조(성표현) 제39조(재연․연출), 제54조(유료정보서비스)에서도 어린이 관련한 주의사항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린이와 관련된 유의사항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어린이가 방송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있고, 방송에 잘못 그려질 경우 매우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TV조선은 어린이에게 끼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그야말로 ‘방송용 그림’을 만드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해환경 어린이 악영향 걱정하며 ‘어린이 인터뷰’?
문제의 장면은 어린이놀이터의 풍경을 이야기한 뒤 시작됩니다. 기자가 “해가 지자, 공원 바로 뒤편에서 네온사인이 반짝거립니다” “아이들이 공원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바로 이런 모텔촌입니다. 낯 뜨거운 문구의 유흥주점도 보입니다”라는 설명을 내놓는 사이, 화면에는 ‘아가씨 30명 대기’ 등의 문구가 적힌 유흥주점 등의 간판을 비춘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나옵니다.

 

이어 노래주점 간판과 유흥가 풍경을 배경으로 깔고 그 옆에 작은 별도의 화면으로 “시끄럽고 신경 쓰여요. 문 열리는 소리도 신경 쓰이고”라는 어린이 인터뷰기 등장합니다. 황당하게도 이 어린이의 실명과 학교, 학년까지 모두 공개한 채 말입니다. 

 

K-004.jpg

△초등학생에게 놀이터 인근 유흥업소에 대해 물어본 TV조선. 모자이크는 민언련(11/26)


어린이 인터뷰 전에 그 질문과 대답이 어린이에게 끼칠 영향부터 생각해야
이 인터뷰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생각해봅시다. 기자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를 향해 ‘유흥가가 놀이터 근처에 있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만약 어린이가 질문의 의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되물었다면 기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어린이가 너무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면 기자는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성인이자 언론인인 기자라면 어린이에게 놀이터 근처 유흥가가 있어서 ‘얼마나 어떻게 나쁜지 느낌을 말해보라’고 묻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어야 합니다.


또한 이 어린이 인터뷰는 해가 진 저녁 또는 밤 시간에 촬영되었는데요. 이 시간에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에게 접근해서 이런 질문을 하고, 이름과 학년,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얼굴을 그대로 공개한 TV조선 기자가 과연 인터뷰 전 보호자 동의를 구했을까요? 이 방송을 본 부모는 짐짓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불쾌감을 호소하지 않을까요? 혹여 보호자가 동의했다 하더라도 어린이 신상정보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이름과 학교, 학년까지 모두 공개한 것은 너무 부주의한 것 아닌가요? 


해당 보도는 이후 대학가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어린이공원을 취재하면서는 어린이가 아닌 인근 주민의 “너무 여기 모텔 이런 게 많아서 보기가 너무 안 좋아요. 걱정이 많이 돼요”라는 발언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 정도 인터뷰만으로도 기자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전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안을 전하며 굳이 피해 당사자인 어린이의 목소리를 담을 필요 자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백번 강조해도 부족함 없는 ‘방송의 어린이 청소년 보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되는 제작 가이드라인인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도 어린이 인터뷰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있습니다. 제2장 방송제작 실무지침 중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 관련해 <보호자의 동의> 조항이 바로 그것인데요.

 

관련 내용은 “어린이와 인터뷰하기 전에 부모나 법적인 보호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어릴수록 자신의 의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어렵고 다루는 주제가 민감할수록 자신의 의사와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부모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일 어린이가 수업 중에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면 학교 측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입니다.

 

또한 <영향>이라는 조항에는 “제작자는 어린이나 청소년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자신의 가족에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내용이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항상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항시 방송에 노출되어 있고 무비판적으로 방송의 내용을 수용하기 쉽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KBS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니 TV조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방송의 어린이 청소년 보호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보도에서 어린이의 인권을 소홀하게 다룬 TV조선의 행태가 참으로 아쉽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1월 26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monitor_20170928_620.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