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박정희의 과오마저 숭상하는 복거일과 조선일보
등록 2017.11.14 20:57
조회 567

11월 14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날입니다. 대부분의 신문은 서울 마포에 있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설치 문제를 두고 시민들이 충돌한 상황만을 보도했는데요. 이날 6개 신문 가운데 특별히 ‘박정희 특집’을 한 곳이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였습니다. 

 

혼자서 ‘박정희 특집’ 보도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4일 1면으로 <‘영웅’ ‘독재자’ 어떻게 불리든 대한민국을 바꾼 지도자였다>(11/14 이선민 선임기자 https://bit.ly/2AHFUC2)를 보도했는데요.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 그는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박정희가 이끈 산업화는 수천년 이어져 온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라며 산업화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는 2면 전체를 통틀어 ‘박정희’에 대해서 보도했는데요. <“잘 살아보자” 염원 불지핀 리더… ‘영구 혁명’ 집착이 유신 상처로>(11/14 유석재 기자 https://bit.ly/2yYaryt)라는 보도를 통해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강정인 서강대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사설도 나왔는데요. <사설/박정희 시대의 공과 과>(11/14 https://bit.ly/2AHGtfe)에선 “박정희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융성한 이 시대를 연 지도자”라면서 “그러나 지금 사회 분위기는 그의 공을 기리기는커녕 적대적 증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라고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어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이런 과정을 객관적으로 담지 않고 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에다 쿠데타의 주역이고 굴욕외교, 유신독재, 인권유린의 장본인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라며 “정권마다 과거를 부정하고 파헤치고 매도해 이제 현대사 위인 중에 남아날 사람이 없는 지경이 됐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런 자해 행위를 때마다 반복해야 하는가”라고 성토했습니다.


조선일보는 13일부터 관련 칼럼이 나왔는데요. 소설가 복거일 씨가 <시론/역사적 맥락 속의 박정희>(11/13 복거일 소설가 https://bit.ly/2ia35NO)라는 제목으로 쓴 이 칼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를 판단하는 듯했지만 ‘잘못’마저 잘 했다고 칭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일보 지면 박정희.jpg

△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조선일보 (11/14)

 

5․16 군사 정변을 혁명으로 승화

복거일 씨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열강이 쇠퇴하자 많은 식민지가 독립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곧 군부 정변으로 압제적 사회가 되었다”라면서 “가난과 혼란이 사회 존속을 위협하게 되면 실질적 대안은 군부가 권력을 잡고 무력으로 질서를 강요하는 길뿐이었다”면서 칼럼을 시작했는데요. 복거일 씨는 이어 “그러나 군부의 통치는 자유로운 사회로 발전하는 길을 가로막았고, 흔히 부패했다”면서 “1961년 한국에서 일어난 군부 정변은 그래서 세계의 기대를 받지 못했다”라면서 군사 정변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어 복 씨는 “그러나 이 정변을 이끈 박정희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한국 사회를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 덕분에 ‘5․16’은 군부 정변에서 진정한 혁명으로 승화되었다”라고 서술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40곳 가까운 신생국에서 일어난 군부 정변 가운데 이처럼 혁명으로 승화한 경우는 ‘5․16’뿐이다”라고도 판단했습니다. 박정희의 군사 정변을 ‘혁명’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5․16은 쿠데타 혹은 군사 정변이라고 불리는데요. 지배계층 안에서 무력을 사용해 단순히 정권을 빼앗을 경우 혁명이 아닌 군사 정변, 혹은 쿠데타라고 지칭합니다. 이는 해당 행위가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증거인데요. 그러나 역대 군사정부는 이 행위를 ‘혁명’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문민정부 이후 과거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통해 이를 ‘군사 정변’ 혹은 ‘쿠데타’로 재평가했는데요. 복거일 씨는 이를 다시 군사정부 시절의 평가로 돌린 셈입니다. 

 

조선일보 복거일.jpg

△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 숭상하는 복거일 씨와 조선일보 (11/13)

 

‘전쟁을 겪은 한국군이 합리적’이었다는 복거일 씨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

복 씨가 이를 혁명으로 판단한 이유도 황당합니다. 복 씨는 “당시 한국군은 치열한 6․25전쟁에서 단련된 군대였다. 전쟁에선 비합리적인 것들이 빠르게 도태되므로 국군은 급속히 합리적 집단으로 진화했다. 아울러 미군의 합리적 관행을 받아들임으로써 아직 중세적 면모가 남아 있던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가장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으로 자라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군부정치를 미화하려다보니 별 궤변이 다 등장한 셈인데요. “신생국 군대 가운데 전쟁을 통해 단련되고 현대화한 군은 한국군뿐이었다”면서 “이런 인적 자원을 활용해서 박정희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켰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복 씨에겐 그간 한국 사회가 군사 문화에 너무 젖어있어 발생한 모든 문제점과 여전히 지적되고 있는 군대 내 비민주화 인권침해 등의 문제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종속이론’에 따르지 않아서 혁명? 

이어 복거일 씨는 한국 사회의 경제성장을 언급했습니다. 복 씨는 “한국은 인류 역사에서 당시까지는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라면서 “그 성취 비결은 정통 경제학 이론을 따른 대외 지향적 경제정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복 씨는 “이것은 보기보다는 대담한 결정”이었다며 “당시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지닌 경제 발전 전략은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시의 ‘종속 이론’이었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 교역은 후진국에 불리하니 후진국은 수입 대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프레비시의 처방은 그럴듯했으므로 거의 모든 후진국이 그 이론을 따랐다. 오로지 박정희만이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을 골랐다”라고 정리했습니다. 복 씨는 이어 “종속 이론을 따른 나라가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통 경제학 이론을 따른 한국이 경이적 경제 발전을 이루자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정책을 따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것이 경제성장의 표준 처방이 되었다”라면서 “이것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를 이롭게 한 일로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하다”라고 자평했습니다.


결국 복 씨가 ‘혁명’이라 자평한 근거는 당시 경제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건데요. 여러 외부 요인으로 인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 경제정책입니다. 한국 역시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내수시장이 허약하고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복 씨의 이런 판단은 실제 경제정책을 수행하느라 희생된 노동자들의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입니다. 

 

한일협정을 ‘중요한 성취’라며 소녀상 치우라고 일갈

이어 복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일협정 체결에 관해서도 판단했습니다. 복 씨는 “한국이 그렇게 해외로 뻗어나가는 길목에 일본이 있었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은 일본을 거쳐야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 아울러 박정희는 고위 장교로 6․25전쟁을 치른 터라 일본이 한국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라며 “박정희는 그런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했다”라고 평가했는데요. 게다가 복 씨는 이 일이 “두 나라 사이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국가 지도자 모두가 그 일을 꺼렸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했지만 그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한일협정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면서 끼친 피해에 대해 제대로 된 법적 배상을 하지도 않았고, 사과도 없이 그저 ‘독립축하금’이란 명목의 금액만을 받아와 많은 반발을 받았습니다. 복 씨는 이런 졸속 협약을 한 것을 두고 ‘중요한 성취’라고 자평했습니다.


복 씨는 더 나아가 이젠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치워야 한다는 주장까지 시도했는데요. 한일협정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정이었고 얼마나 중요한 성취였는지는 요즘 주한 일본 공관들 앞에 세운 ‘소녀상’을 정부가 치우지 못하는 현실이 말해준다”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복 씨는 이를 “그의 여러 업적 가운데 으뜸은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 한 일이라 할 수 있다”라고까지 평가했는데요. 한일협정으로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 일본의 대표적인 전쟁범죄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인데요.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가 이들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와 반성, 그리고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상징입니다. 그런데도 복 씨는 오히려 ‘소녀상을 치우는 것’이 마치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처럼 주장한 셈입니다. 

 

기껏 비판한 건 ‘독재를 통해 민주공화당 약화시켰다’

물론 복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만을 거론한 것은 아닙니다. 복 씨는 “박정희가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바탕은 그가 누린 권력”이라며 “그렇게 큰 권력은 놓기가 쉽지 않다. 큰 권력을 쥔 지도자가 헌법 규정에 따라 물러나는 것은 민주주의 전통을 크게 강화하는 일이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보다 애국적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지만 그는 그 길을 고르지 못했다”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 과정에서 그는 충실한 혁명 동지들을 억압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민주공화당을 약화시켰다”라며 독재와 철권통치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복 씨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는 폴란드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것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는 첫걸음이다. 박정희는 한국 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모두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깊이 스며 있는 그의 영향을 제대로 아는 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복 씨의 말대로 박정희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할 순 있습니다. ‘박정희주의’란 이름으로 개발독재와 군사 문화 등이 대표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복 씨는 그보다는 쿠데타를 혁명으로 바꾸고, 군대 문화를 보급하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정책을 구가하고, 일본에 식민 피해를 주장하지 않은 모습을 요구했습니다. 복거일 씨는 “그의 업적과 허물을 성찰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마무리했지만, 조선일보와 복 씨가 바라는 성찰의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의문스럽습니다.

 

‘특집’은 아니었지만 다른 시각 보여준 동아일보

조선일보처럼 ‘특집’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아일보에서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생각하는 칼럼이 나왔는데요. <횡설수설/박정희 탄생 100주년>(11/14 최영훈 논설위원 https://bit.ly/2yZcsKO)에선 “그가 쿠데타를 해서 정권을 잡고 유신독재를 했던 것은 헌정 질서를 유린한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전란의 폐허 속에서 국민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정치 혼란을 바로잡을 리더십은 극히 취약한 상태였다.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뒤 수출 주도와 중화학공업 육성, 외자 도입 전략으로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13일 동아일보의 대구․경북 지면에선 다른 취지의 칼럼도 나왔습니다. <동서남북/‘미래형 추모’ 필요한 박정희>(11/13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https://bit.ly/2zAF0tB)에선 “경북도와 구미시는 수년 전부터 탄생 100돌 기념행사를 추진해 왔으나 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공로로 강조하는 ‘산업화’에 대해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본부장은 “산업화는 박 대통령에게 독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가 추진한 산업화 정책은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지식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처럼 산업화는 계속 진행되며 나아가는 것이지 특정시대 특정인에 의해 완성되는 게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과거를 단순하게 조명하는 수준을 넘어 그의 삶이 지금과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하나라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좁은 고향을 넘어 나라 전체의 공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1월 13일 ~ 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monitor_20171114_589.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