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김주혁 사망 원인, 벌써부터 ‘미스터리’로 몰아야 할까?배우 김주혁 씨가 30일 오후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언론은 당시 사고 현장과 블랙박스 영상을 경쟁적으로 공개하며 ‘사망 그 순간의 모습’을 전달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연예계 인사들의 애도 모습․태도를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에서, 이제 김주혁 씨의 사망 원인을 문제 삼는 것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족의 요청으로 부검을 진행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김주혁 씨의 ‘직접사인’은 두부손상입니다. 다만 구체적 사고의 발생 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7일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만 ‘전문가’일 뿐 이 사안에 대해 사실상 아는바가 없는 이들을 내세워 온갖 부정확한 추측을 늘어놓고 벌써부터 사인을 ‘미스터리’로 몰아가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를 버린, 클릭수 혹은 시청률 장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갈수록 보도량 늘어나는 종편3사
그렇다면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에서는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우선 사고 당일인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간 가장 많은 보도를 내놓은 곳은 채널A(8건)입니다. JTBC와 MBN은 6건으로 그 뒤를 이었고요. TV조선은 5건, SBS는 4건, KBS와 MBC는 각각 2건의 관련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보도량만이 아니라 보도 추이도 주목할 만합니다. KBS와 MBC, SBS 지상파 3사와 JTBC는 10월 30일과 31일까지만 관련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주로 사고 소식과 애도행보를 전하는 식이었습니다. 11월 1일에는 이 사안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반면 TV조선과 채널A, MBN은 11월 1일에도 여전히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특히 채널A는 사고 당일에는 1건의 보도를 내놓았다가 그 다음날인 31일 3건, 11월 1일에는 4건으로 날이 갈수록 보도량을 늘려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이 종편 3사는 11월 1일자 보도에서 모두 김주혁 씨의 사망 원인을 ‘미스터리’ ‘오리무중’ 등으로 표현하고, 약물로 인한 사고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무의미한 추측을 거듭했습니다.
TV조선, 검사 결과도 다 안 나왔는데 약물 영향 나열
먼저 TV조선은 “김주혁 씨의 사고 원인을 두고,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몸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과 차량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각각의 보도를 통해 언급했는데요.
이 중 <“한 달 전부터 약 복용”…영향은?>(11/1 https://goo.gl/Jy2AxW)에서는 “김주혁 씨의 사고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표현을, 이어지는 보도의 온라인 송고용 제목에는 ‘김주혁 사고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고 3일 만에, 검사 결과가 아직 다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부터가 의문입니다.
또 이 보도는 김주혁 씨가 특정 약물을 복용했다는 것을 일정부분 ‘기정사실화’ 한 뒤, 약물이 끼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요. 앵커부터 “김씨가 졸음이 올 수 있는 약을 한달 정도 복용했다는 증언이 나왔는데, 사고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를 언급하고 있고요.
석민혁 기자 역시 “김주혁 씨가 한달쯤 전부터 피부과에서 흔히 쓰는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피부과에 가서 가려움증을 호소하면 흔히 처방받는 약입니다”라며 “병원과 약국에선 이 약이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합니다”라는 등의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약사의 “저녁에 드시는 걸로 권해드리고요. 운전할 때 위험할 수 있죠”라는 발언을 소개하는 것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부검 결과에 약물이 나온 이후에 해야 할 보도를 ‘알려졌다’ ‘증언이 있다’는 표현을 이용해 벌써부터 무책임하게 내놓고 있는 겁니다.
채널A, 피부과 찾아가 수사 내용 질문
채널A도 <“김주혁 약 복용 조사”>(11/1 https://goo.gl/zCg4Ub)에서 “교통사고 발생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고요. 여기에 이어 “최근 김주혁 씨가 치료 목적의 약물을 복용해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도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다 “김 씨는 한 달 전부터 피부과나 정신과에서 쓰이는 전문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해 온 걸로 알려졌는데, 약물 부작용이 사고 원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 김주혁 씨가 자주 찾았던 피부과까지 찾아가 의미없는 질문을 쏟아낸 채널A(왼쪽)와 MBN(11/1)
채널A 이민형 기자는 아예 김주혁 씨가 최근까지 자주 찾았던 강남의 피부과를 직접 방문해 피부과 건물 관계자에게는 김주혁 씨가 얼마나 자주 왔는지를 묻고, 피부과 관계자에게는 경찰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를 물어보기까지 했는데요. 당연하게도 피부과 관계자의 반응은 “따로 말씀드릴 거 없어요”입니다.
보도 말미 경찰 관계자는 이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부검 결과에 약물이 나와야 피부과를 대상으로 수사하는 게 맞습니다”라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사건 관련 주변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기자는 사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이상할정도로 흥분하여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는 꼴입니다.
MBN, 소속사․경찰 자제요청 전하면서도 ‘추측’ 나열
MBN도 <김주혁 사고, 약물 미스터리 확산>(11/1 https://goo.gl/fL8Njs)에서 “배우 고 김주혁 씨가 사고 직전에 약을 복용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인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소속사가 복용 사실을 부인한 가운데, 해당 병원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여러 추측만 난무하고 있습니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했는데요. 이렇게 사인과 관련한 무의미한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은 이런 아무런 의미 없는 추측 퍼나르기식 보도가 촉발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채널A 기자와 마찬가지로 MBN 권용범 기자는 김주혁 씨가 다닌 것으로 알려진 병원을 찾아가 ‘당연히 대답이 불가능한’ 약처방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는데요. 병원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저희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이라고 답변할 뿐입니다.
심지어 MBN은 “약물 부작용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소속사는 김 씨가 생전에 약을 먹지 않았다고 밝혔”고 “약물 논란이 커지자, 경찰 측은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으며 지나친 억측을 자제해달라고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기도 한데요. 고인의 소속사와 경찰 측의 공식 자제 요청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미스터리’를 운운하며 이 사안에 대한 추측을 퍼트린 것입니다.
다음주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종 부검 결과가 발표됩니다. 성급한 추측성 보도를 잠시 멈추고, 떠난 이와 남겨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길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0월 30일~11월 1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7>․<종합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