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백남기 살수차 요원 선처 탄원 서명, ‘신나버린’ TV조선고 백남기 씨에게 물대포를 쏜 경찰 살수차 요원들이 재판에 넘겨지자, 동료 경찰들이 이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 서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물대포를 쏜 한 모 경장과 최 모 경장은 살수차 운용지침을 어기고 고 백 농민의 머리에 30초간 직사 살수를 해 백남기 농민을 사망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로 기소된 상태인데요. 탄원 운동을 시작한 한·최 경장이 속한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은 “피탄원인들은 맡은 업무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했던 경찰관”이라면서 “한순간의 상황으로 본인과 가족들은 이미 많은 고통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0일 오전 10시 기준 서명자는 8850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실 살수차를 직접 운전한 경찰에게만 이 사안의 책임을 모두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실전경험이 없는 이들을 충분한 교육과 살수차 운용지침 숙지 없이 현장에 주먹구구식으로 투입한 것은 경찰 수뇌부였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살수차를 직접 운용 이들의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 모 경장은 국회 청문회장에서 살수차 운영 경험이 많았던 것처럼 위증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간 경찰이 내부적으로 과잉진압에 대한 반성이나 경찰 수뇌부에 책임을 묻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탄원 서명 행보에 시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는 명령을 받았을 뿐인데 이렇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라는 주장을 펼치기 이전에, ‘꼬리 자르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뇌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청장의 청구인낙서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TV조선, 7개방송사 중 유일하게 이 소식 전달
31일 이와 관련한 보도를 내놓은 방송사는 TV조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 소식을 전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경찰 내부의 움직임을 전달하는 TV조선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TV조선의 <“선처 호소” 서명 9천 건>(10/31 https://goo.gl/zX6Gao)은 일방적으로 ‘경찰의 억울함’만을 부각하는 보도입니다. 보도는 익명의 경찰 관계자의 “버스에 방화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차벽을 흔들고 하는 이런 건 사실 훈련받은 경찰관도 상당히 두렵긴 하거든요?” “명령에 의해서 살수를 했던 것이고 이런 결과를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잖아요?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되느냐”라는 등의 발언을 소개하고 있고요. 관련 자료화면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버스를 흔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이유경 기자는 경찰 내부망에 올라온 “현장 경찰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누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냐”, “‘폭력 대 평화’라며 불법시위도 보장하라는 개혁위 권고를 수뇌부가 수용했다. 참담한 심정이다”, “누가 경찰을 무기력한 조직으로 무장해제시켰는가”라는 의견을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 백남기 살수차 요원 선처를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집회 참가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반복한 TV조선(10/31)
이는 결국 집회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를 강조하고, 사건 당시 경찰 대응이 정당했다는 입장의 반복인 것이지요. 그러나 경찰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백남기 사건에 대해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일 자격이 없습니다.
우선 사건 당일 경찰은 ‘인도’를 이용해 행진하겠다는 집회 주최 측의 신고를 ‘교통 불편’이라는 황당한 사유로 금지하고 차벽을 설치해 집회참가자들의 이동을 틀어막았습니다. 차벽을 흔드는 등의 집회참가자들의 반발을 초래한 것은 결국 경찰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경찰이 차벽을 세우지 않고 허가를 내어준 이후 집회에서는 아무런 사고 없이 질서가 유지된 바 있습니다.
또 TV조선은 ‘방화’나 ‘차벽 흔들기’를 운운한 경찰 측 입장을 소개하고 있지만, 당일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로 대응했으며, 이 과정에서 쓰러진 농민과 구급차를 향해 살수차 운용지침조차 지키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발사했습니다. 경험이 미진한 이들을 별다른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한 수뇌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해도, 사람을 향해 살인적 수압의 물대포를 쏘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현장 경찰이 ‘피해자’, ‘희생양’ 혹은 ‘올바른 직무 수행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경찰은 ‘백남기 사건’ 당시 경찰 대응이 정당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내부문건에도 없던 ‘빨간 우의 남성의 타살 가능성’을 띄우며 강제 부검 집행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찰이 공식 사과를 내놓은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사건 발생 1년 7개월만이었습니다. 백보 양보해 경찰 내부에서는 현장 경찰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언론이 관련 보도를 통해 마치 경찰은 책임이 없고 폭력 집회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TV조선은 보도 제목 뿐 아니라 앵커 멘트에서도 “물대포를 쏜 경찰관들을 선처해달라고 호소하는 탄원서가 경찰 내부에서 9천건 넘게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라며 9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나섰다는 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8월 백남기대책위가 백남기 사건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촉구하는 청원서명 14만 건을 국회에 전달했을 당시 TV조선은 이 소식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0월 31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7>․<종합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