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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수사 결과에도 여전히 ‘폭력 시위’ 거론하는 조선일보
등록 2017.10.20 16:06
조회 370

검찰이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국가 공권력 남용”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검찰은 구은서 전 서울경찰청장 외 4명을 불구속기소 하면서, 살수차를 조종한 한 경장과 최 경장이 운용지침을 어기고 30초간 직사살수를 했고, 발사 압력도 적정 수준으로 통제되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사망진단 역시 ‘직사살수에 의한 외인사’로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 유가족이 2015년 11월 18일 경찰을 고발한 지 700일 만에 수사 결과가 나와 ‘정권이 교체되자 뒤늦게 수사에 속도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으며, 그 결과도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이 기소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유가족과 백남기농민투쟁본부도 강 전 청장이 무혐의 처분이 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뒤늦은 수사로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공권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인정하고 고위간부까지 기소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도 조중동은 경찰 폭력이 아닌 시위대의 폭력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폭력 시위’ 이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조선일보

가장 심각한 보도는 조선일보에서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공권력 남용”… 검찰서 뒤집은 ‘백남기 물대포 사망’>(10/18 이준우․최아리 기자 https://bit.ly/2gNGB4K)은 전체적으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가 폭력 집회였다’는 억지주장을 나열했습니다. 보도는 먼저 검찰 발표를 전한 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 결과는 ‘살수차 운용 지침 위반 여부’ 등 사건 직후 경찰이 밝혔던 사건의 진상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후 보도는 “경찰은 버스 700여 대로 차벽을 만들어 저지했다. 시위대는 또 쇠파이프와 철제 사다리를 휘두르며 경찰 버스를 부수고 각목과 쇠파이프를 경찰관들에게 휘둘렀다. 흥분한 일부 참가자는 경찰 버스 매연 저감 장치가 주유구인 줄 알고 불붙인 신문지를 집어넣으려 했다. 밧줄로 경찰 버스를 묶은 뒤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차벽 무너뜨리기를 시도했다”는 등 시위로 인한 피해 현장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집중했습니다. 이어 “폭력 시위의 피해는 컸다. 경찰 수십 명이 다쳤고, 경찰 버스 50여 대가 파손됐다. 시위를 주도했거나 백씨처럼 과격 행동을 한 참가자 51명이 입건됐다. 한 위원장은 3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라고 정리했습니다. 기사에 있는 사진 설명으로도 ‘폭력 시위’를 강조했는데요. <차 벽 부수고 경찰버스에 불붙이려 했던 시위대>라는 제목의 사진캡션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한 집회 참가자가 사다리로 경찰 버스를 파손하려는 모습. 시위대 일부는 경찰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인 신문지를 넣으려고 했지만, 매연 저감 장치를 주유구로 착각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보도의 구성은 검찰브리핑 321자, 폭력집회 강조 652자, 이전 경찰주장 372자, 검찰발표 결과 324자, 경찰과 검찰 입장 434자입니다. 이 사안을 종합해서 전하면서 폭력 부각에 가장 많은 양을 할애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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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수사 결과 보도에 ‘폭력 시위’ 강조하는 조선일보 (10/18)

 

이미 뒤집힌 경찰의 억지 주장을 충실히 보도

이번 검찰 수사 결과의 가장 큰 의의는 그간 경찰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책임을 면하려고 했던 주장들이 거짓임을 밝혀 ‘공권력의 남용’임을 밝힌 부분인데요. 조선일보는 굳이 거짓이라 밝혀진 이전 경찰 발표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물대포 살수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고, ‘경고 살수 이후 곡사살수, 마지막에 직사 살수’ 절차를 모두 지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발언 등 이전 경찰 측 조사결과와 입장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주장 뒤에 조선일보는 “모두 살수차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영상 등을 근거로 한 것이다. 경찰은 당시 CCTV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을 뿐, 진실을 감추는 명백한 왜곡보도입니다. 당시 경찰이 CCTV를 근거로 거짓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조선일보가 이런 식으로만 말하고 끝내는 것은 기만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찰 발표 이후 2016년 9월 국정감사에서 경찰의 CCTV영상이 공개됐는데요. 영상에선 경고나 곡사 살수 없이 처음부터 머리 부분에 4차례에 걸쳐 직사 살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디어오늘 <백남기 농민 ‘직사살수’로 쓰러뜨린 CCTV 영상 나왔다>(2016/9/29 https://bit.ly/2dbAsN6)에서도 박 의원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는데요. 조선일보는 이런 설명 없이 ‘경찰의 주장은 CCTV가 근거이나, 당시엔 공개하지 않았다’라고만 밝힌 것입니다.


조선일보 보도가 얼마나 교묘한 왜곡을 벌이는지는 검찰 발표를 설명하는 뒷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납니다. 보도는 “검찰도 이번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살수차 CCTV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공개된 CCTV 영상에선 경찰이 곧바로 백씨에게 살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찰 안팎에서는 “똑같은 자료를 보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은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경찰과 검찰이 똑같은 CCTV를 보고도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이고, 이는 경찰의 애초 발표가 일면 진실성이 있는데 검찰이 억지 수사결과를 내놨다는 인상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보도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입장을 말한 자는 실명이 아닌 ‘경찰 안팎’입니다. 경찰 관계자도 아니고 ‘경찰 안팎’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경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문의 일부인 “경찰 수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사과와 애도를 표한다”을 전한 뒤, 바로 뒤에다가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이 청장 등 지휘부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해왔었고, 그 결과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알아 달라’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해왔기 때문에 겉으로는 검찰 수사결과를 수용하고 애도를 표하지만, 사실은 불편하다는 식의 뉘앙스를 담은 표현입니다. 그나마 이 발언을 한 사람도 여전히 누군지 모를 ‘경찰 관계자’입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의 책임을 ‘폭력 시위’에 돌린 조선일보

 

경향신문

뒤늦은 백남기 농민 사망 조사 발표, 아직도 남은 게 있다

동아일보

백남기 국가책임 선인정 후수사발표… 부끄러운 경찰의 날

조선일보

‘농민 사망’ 부른 폭력 시위 현장도 되돌아보아야

중앙일보

고 백남기씨 외인사 결론… 정권 따라 흔들리는 검·경이 안타깝다

한겨레

없음

한국일보

‘백남기 사건’ 경찰 기소, 공권력 남용 막을 교훈 삼기를

△ 백남기 농민 수사 결과에 대한 신문 사설 제목 비교 (10/18)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날 한겨레를 제외한 모든 신문에서 사설을 통해 의견을 밝혔는데요. 조중동에선 모두 ‘폭력 시위’ ‘불법 시위’가 등장했습니다. 그 가운데 사망의 책임을 ‘폭력 시위’로 돌린 곳은 조선일보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농민 사망’부른 폭력 시위 현장도 되돌아보아야>(10/18 https://bit.ly/2xP6Nld)에서 “백씨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당시 민중 총궐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시위의 불법성, 폭력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며 2015년 집회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시위 명분은 ‘노동 개악 저지’ ‘제주 영리 병원 중단’ ‘세월호 진상 규명’ 등 갖가지가 섞여 있었다. 시위대는 철제 사다리와 쇠파이프 등으로 경찰 버스를 부쉈고, 철제 사다리를 들고 경찰을 향해 돌진했다. 죽봉도 휘둘렀다. 보도블록을 깨 경찰에 던졌고, 철제 새총으로 공업용 볼트를 탄환 삼아 조준 사격했다. 경찰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여 방화하려 했고 경찰 버스를 밧줄로 연결해 흔들어 차벽 위에 있던 경찰관을 추락시키려 했다. 당시 경찰관 113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 버스 50대가 파손됐다”며 당시 집회가 아노미 상태였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공권력을 조롱한 이런 무법천지의 폭력 시위 상황은 한 의경 출신 청년이 찍은 동영상으로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동영상엔 대학 로고가 붙은 점퍼를 입은 한 청년이 ‘(불을 붙일) 신나(시너)가 없어요’하고 말하자 한 40대 남성이 ‘사오면 되지’라고 소리치는 장면도 있다. 실제 이날 밤 경찰 버스에 불을 붙이려던 시도가 있었다”면서 동영상 제작자의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위 동영상은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모습은 있어도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까지 시위대가 한 폭력 행태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폭력 시위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는 발언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단순히 당시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표현했을 뿐 아니라, 백남기 농민의 사망 책임을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전가했는데요. 조선일보는 “살상 무기를 들고 덤비는 상대방을 막으려다 실수로 다치거나 죽게 했을 때 정당방위로 처벌이 면제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당시 시위는 경찰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만큼 폭력적이었다. ‘죽여!’라는 구호가 난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경찰의 진압은 불법을 막는 공권력 행사 과정이었다. 현장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상황에서 시위 농민이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찰관의 고의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경찰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폭력 시위가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면서 경찰 공권력의 책임을 지웠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반박한 셈이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모두 주장하는 폭력시위

‘폭력 시위’를 강조하는 사설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동아일보 <백남기 국가책임 선인정 후수사발표… 부끄러운 경찰의 날>(10/18 https://bit.ly/2x7wGNe)는 “민중총궐기는 이를 주동한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을 정도로 폭력 시위였다. 검찰도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경찰의 차벽 설치, 살수차 운영 자체는 불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당시 시위대를 저지하지 못해 차벽이 무너졌다면 서울 도심은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고 따랐을 뿐인 현장 지휘관과 요원이 부당한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앞으로 폭력시위를 막는 최일선에 서려 할 것인가”라며 당시 집회가 혼란스러운 폭력 집회라고 표현했습니다. 경찰의 책임을 지우려는 모습도 같았습니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201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디트리히 바그너 씨가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한 사건에서 시 경찰청장 등 5명이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경미한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을 유사 사례로 제시했다”면서 “그러나 단순히 시위에만 참여한 바그너 씨 사례는 백 씨와 유사하다고 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동영상을 통해 백 씨가 쓰러진 장면을 봤다. 경찰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밧줄을 잡고 차벽을 무너뜨리려 한 백 씨가 자초한 위험과, 물보라로 살수차 폐쇄회로TV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수차 운용지침을 지키지 못한 경찰의 책임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재판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정리해서 사망의 책임을 백 씨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중앙일보도 <사설/고 백남기씨 외인사 결론… 정권 따라 흔들리는 검․경이 안타깝다>(10/18 https://bit.ly/2x7JovH)에서 2015년 집회를 직접 가리키진 않았지만 “경찰이 불법시위에 의연하게 맞설지도 걱정스럽다”라며 강경 진압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중동의 이런 폭력시위 주장은 온당할까요? 당시 집회 안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단순히 ‘폭력’만 부각한다면 맥락을 무시한 왜곡입니다. 당시 경찰은 집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차벽을 세워 시위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가 있는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경찰의 차벽을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차벽은 지속됐고, 지속된 대치 속에서 격해진 상황이 폭력적 사건들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설령 폭력이 있더라도 경찰의 살수차 조치는 부당한 행위였습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당시 살수차 운용 지침을 위반했고, 수압제어 장치도 고장 난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힘을 독점하고 있는 공권력은 그 힘을 사용할 때 인권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집회에서 경찰은 그렇지 못했고, 그 결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까지 겪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에만 눈이 팔려있어 경찰의 책임을 지우려 한 조선일보의 시각은 매우 편협했습니다.

 

경장들의 사과와 청구인낙서 제출에 ‘조직이 보호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 동아․중앙

검찰 수사가 발표되기 이전, 백남기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당시 살수차를 실제로 조종했던 최 모 경장과 한 모 경장이 재판부에 ‘청구인낙서’를 제출했습니다. 청구인낙서를 제출한다는 건 피고인 최․한 경장이 원고인 유족들의 청구 사항(손해배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인데요. 


경향신문 <백남기 농민 사망 살수차 조작 경찰관 2명 '청구인낙서' 제출···“유족에 용서 구한다”>(9/26 정희완 기자 https://bit.ly/2zAfMse)에 따르면 최모 경장과 한모 경장은 “국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이상 더 이상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원고들의 청구에 대하여 이를 모두 수용하고자 한다” “사고 이후 유족들을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으나 경찰의 최고 말단 직원으로서 조직의 뜻과 별개로 나서는 데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 “저희가 속한 조직이 야속했다”와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직 경찰이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표명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말단 실무자들이 먼저 사과한 셈입니다. 이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이에 ‘조직이 보호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사설/백남기 국가책임 선인정 후수사발표… 부끄러운 경찰의 날>에서 “신 전 단장과 최․한 경장은 백 씨 유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년 반 넘게 다투다가 검찰 기소를 앞두고 유족 측의 요구를 100%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들이 국가 대신 자기 돈으로 배상하겠다고 까지 한 것은 바뀐 정권의 경찰 수뇌부가 더 이상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 수뇌부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전부터 국가 자격으로도 배상책임을 인정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국가 상대 배상소송에서 형사재판도 지켜보지 않고 국가가 민사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사흘 앞인 21일은 경찰의 날이다. 정권 눈치만 보는 경찰은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도 지키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중앙일보도 <사설/고 백남기씨 외인사 결론… 정권 따라 흔들리는 검․경이 안타깝다>에서 “최 경장 등은 백씨 유족이 제기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담당 재판부에 ‘청구인낙서(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인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인낙서에 ‘저희 조직이 야속했다’고까지 썼다고 한다”며 “경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해 사망하는 그 날까지 제대로 사과하지 않던 경찰들 가운데 겨우 말단에서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한 첫 태도였습니다. 심지어 경찰 수뇌부는 청구인낙서 제출마저도 수용하지 못하고 최대한 미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되려 이를 ‘경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찰 수뇌부’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부검 없이 명백한 진실 못 가려’ 주장하는 중앙일보

게다가 중앙일보에선 백남기 농민과 관련해 ‘부검’ 논란까지 다뤘습니다. 중앙일보는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을 당시에 강신명 경찰청장이 “사람이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답변했다면서 “법률적 책임과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그랬기에 백씨가 숨지자 경찰과 검찰은 시신 부검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족 측의 완강한 거부로 부검 없이 장례가 치러졌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당시 부검 논란은 서울대병원 측에서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적었기에 시작된 논란이었습니다. 백선하 교수의 이해할 수 없는 병사 주장에 경찰이 부검을 시도했고, 유족 측에선 신뢰할 수 없는 경찰에게 시신을 맡겨 사안을 왜곡할 수 없었기에 이를 반대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은 부검을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외인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과연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최종 결론이 지금처럼 나왔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부검없이 명백한 진실이 가려졌는지도 의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공권력의 남용 막자는 한국일보와 아직 더 밝혀져야 한다는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이번 수사로 이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사설/‘백남기 사건’ 경찰 기소, 공권력 남용 막을 교훈 삼기를>(10/18 https://bit.ly/2yTFBqv) “사건 이후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주장만 부각해 온 경찰은 새 정부 출범 이후 태도를 바꿔 경찰청장이 거듭 유족에 사과를 표명했다. 신윤균 기동단장과 직접 살수한 두 경장도 백씨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부에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검찰이 제기한 주요 혐의 인정에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라며 “헌정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을 부른 촛불집회의 마중물과 다름없었던 백남기 사건은 이로써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다만 한국일보는 “하지만 이 같은 사법 기관의 공권력 남용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찰, 검찰 등 권력기관의 개혁작업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는 있다. 백남기 사건과 같은 불행한 역사가 거듭되지 않게 하려면, 권력 기관에 대한 시민 감시의 제도화를 개혁의 골간으로 삼아 마땅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검찰이 밝힌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검찰 수사의 한계점들을 지적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아직 더 밝혀낼 것들이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사설/뒤늦은 백남기 농민 사망 조사 발표, 아직도 남은 게 있다>(10/18 https://bit.ly/2l0jpEF)는 이제야 검찰이 확인한 것에 대해 “사건 발생 1년 11개월, 백남기 농민 사망 1년 1개월만이다”라며 “만시지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경향신문은 검찰 수사의 한계점들을 지적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그러나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건이 국가 공권력 남용 사안이라면서도 당시 치안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검찰은 강 전 청장을 소환도 하지 않고 한 차례 서면조사만 진행했다. 현장 지휘관과 살수 요원 등을 지휘․감독해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라며 “하지만 강 전 청장은 민중총궐기 집회 때 최고 단계인 갑호비상령을 내리는 등 경찰의 강경 진압을 결정하고 실행한 장본인이다. 검찰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물대포의 수압은 건물 50층 높이인 150m까지 물을 쏘아올릴 수 있을 정도다. 물대포의 이런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찰이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계속 쏘아댔는데 검찰은 이를 실수라고 판단했다. 소극적인 수사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경찰의 공범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는데요. “지난해 9월 25일 백남기 농민 사망 때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병사 판정을 근거로 고인의 시신 부검까지 시도하는 억지를 부린 것도 검찰의 수사 지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족의 고발에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눈 한번 끔벅하지 않았다.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고, 서울대병원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 아닌 병사로 조작한 의혹에 관해서도 밝혀야 한다. 서울대 병원 수뇌부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은 물론이고 청와대와도 수시로 접촉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라며 아직도 검찰 수사가 미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는 이날 2건의 보도 외에 따로 사설을 통해 의견을 표시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한겨레는 백남기 농민 1주기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 <사설/백남기 농민 1주기…국가폭력 없는 세상 만들어야>(9/25 https://bit.ly/2hsHoaI)을 보도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0월 1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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