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위원회_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까칠하게 본 EBS '까칠남녀'
등록 2017.09.20 17:33
조회 602

지난 3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EBS <까칠남녀>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남녀갈등을 유쾌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전달한다는 제작 의도를 내세웠다.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던 소재를 다루며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쇼를 표방”했다. 성평등 의식과 젠더 감수성이 최근에 와서야 수면 위로 떠오른 한국 사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24회까지 방송된 현 시점에서 <까칠남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방송의 금기를 깼다는 초반기의 호응과 달리, 최근 시청자 게시판에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프로그램 소재가 여성 편향적이며, 성 갈등만 조장하는 패널들의 막말이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를 의식한 <까칠남녀> 제작진은 ‘A/S특집’(8/7)편을 마련하여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했다. ‘A/S 특집 우리 패널 이대로?(이하 A/S 특집)’편은 지난 방송들을 돌아보며 시청자들이 지적한 소재의 여성 편향성, 패널들의 갈등 조장, 부적절한 패널들의 역할 등 3가지 문제점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면 과연 ‘A/S특집’ 이후, <까칠남녀>는 그런 문제점들을 극복했을까?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가 ‘A/S 특집’ 이후 7, 8월 방송(총 7편, 8월 21일 결방)을 분석했다.

 

여성 편향적 방송?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시각
<까칠남녀>에 제기된 문제점 중 첫 번째는 ‘여성 편향적 소재’이다. 제작진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A/S 특집’방송 이후 ‘남성 역차별’을 주제로 한 회차를 편성했다. 남성 역차별을 주제로 다룬 편 ‘남자들이여, 일어나라(8/14)’가 대표적이다. 해당 회차에서 논의된 소재는 ‘여성 전용 시설’, ‘데이트 비용’, ‘소개팅에서의 남녀 역할’ 등이었다. 제작진은 이런 소재를 ‘역차별 주제’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역차별은 물론, ‘차별’ 자체와도 거리가 먼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제작진이 진지하게 역차별을 다루고자 했다면 ‘역차별 논란’을 야기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었어야 한다. <까칠남녀>는 ‘여성 편향적 소재’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다 ‘차별’에 대한 몰이해를 노출하고 말았다.

 

남성 역차별을 다룬 ‘남자들이여, 일어나라’(8/14)는 소재도 부적절했지만 연출의 문제가 더 크다. 특히 ‘여성 전용 시설’과 ‘데이트 비용’을 남성을 향한 차별로 다룬 부분에서 ‘남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만을 부각했을 뿐, 대안과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제작진은 여성 전용 시설을 남성 패널들이 체험하는 실험을 했고, 남녀의 데이트 과정을 일정한 규칙 속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데이트 과정을 보여줬다. 여기서 과하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가미됐다. 여성 전용 시설 체험의 경우, 지하철에서 한 자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자리를 여성 전용 좌석으로 설정했는데 세상 그 어디에도 이런 지하철은 없다. 실험은 조금이라도 여성 좌석 쪽으로 신체가 넘어가면 주의를 주면서 ‘위축되는 남성’을 최대한 부각했다. 실험에 참여한 황현희 씨는 ‘여성 전용입니라’라는 경고음이 울리자 “내가 무슨 성추행을 한 것도 아니고”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또한 데이트 과정에서도 ‘모든 데이트 비용은 남성이 부담하고 데이트를 계획하는 것은 남성의 몫’이라는 등 과장된 설정을 전제했다. 이 또한 비현실적 설정이다. <까칠남녀>는 비현실적인 전제로 ‘남성이 여성으로 인해 큰 피해를 받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이 대목에서 패널 정영진 씨는 “수많은 여성 전용 시설 때문에 여성들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라며 남녀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발언도 문제지만 애초에 이런 발언을 유도한 프로그램 구성 자체가 근본적인 패착이다.

 

K-003.jpg

△ 여성 전용 시설을 과장한 EBS <까칠남녀>(8/14)
 

갈등을 조장하는 ‘젠더 토크쇼’라니
<까칠남녀>에 제기된 두 번째 문제점은 “까칠남녀가 오히려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A/S 특집’ 이후에도 <까칠남녀>는 갈등의 바람직한 해결을 위한 ‘논의’ 대신 무의미한 ‘남녀 간 말다툼’을 보여주며 갈등을 ‘시연’하고 있다.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8/28)’ 편이 대표적인 사례다. 패널들은 ‘일상화된 남성의 성추행’을 논하던 중 전국노래자랑 MC 송해 씨가 남성 어린이 출연자에게 ‘성기를 만져보자’고 말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여기서 패널은 양측으로 갈렸는데, 봉만대 씨, 황현희 씨, 정영진 씨는 “세대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에게 아동 성추행범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가혹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현재 씨는 “엄연한 성추행”이라며 “세대간 인권 감수성이 다르겠지만 동의 없는 불편함은 아동에게도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황현희 씨가 “그렇다면 나는 어렸을 때 포경 수술이 잘 됐냐고 보자고 한 고모를 고소해야 하는 것이냐”라고 재반박했고, 패널은 이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갔다. 황현희 씨는 ‘내가 고모를 고소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불필요한 논쟁이다. 황현희 씨의 고모가 황 씨에게 뱉었던 발언 역시 성추행에 해당하며 그런 발언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사회가 그것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대와 관계없이 동의 없는 불편함은 그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이현재 씨 입장으로 일단락되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면서 ‘세대가 다른 고령의 경우 아동을 향한 성추행 행태가 용인될 수도 있다’는 전근대적 인식이 하나의 견고한 논리로 그려지고 말았다. EBS가 진정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고자 했다면 이런 논쟁은 확실하게 마무리했어야 한다. 

 

문제의 패널들, 남성 편향과 모호한 역할
<까칠남녀> 일부 패널들의 역할이 모호하고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제작진은 이런 여론을 반영해 ‘A/S 특집’에서 시청자 게시판에서 많이 언급된 패널의 순위를 공개했다. 정영진 씨가 1위, 서민 씨가 2위였다. 정영진 씨는 일방적인 남성 편향 발언, 서민 씨는 모호한 역할 때문에 주로 회자되고 있다. ‘A/S 특집’ 이후에도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른바 ‘데이트 폭력’과 이에 따른 여성들의 ‘안전이별’ 열풍을 소개한 ‘죽어도 못 보내-안전이별(7/17)’편에서 정영진 씨의 문제점이 잘 나타났다. 대담 도중 헤어진 연인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자니”라고 대뜸 묻는 상황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때 정영진 씨는 “솔직하게 남자들의 민낯에 대해 말하겠다”면서 남성의 대변인을 자처하더니 “새로운 여자친구와의 성관계까지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전 여자친구는 그런 관계가 성립된 사이였기 때문에 연락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곧바로 성관계를 맺기 위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자니’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는 대담함이 엿보인다. 그러한 ‘남성의 민낯’을 당연시하는 인식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A/S 특집’ 이후에 방송된 여성의 화장을 다룬 ‘오늘 어디 아파?(8/7)’에서도 정영진 씨는 논란을 일으켰다. 정 씨는 여성의 화장에 “화장은 자유”, “지하철에서 화장하지마, 보기 불편하다잖아”라고 말했으나 남성이 화장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IMF 이후 취업난이 지속되며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된 것”이라며 이중잣대를 드러냈다. 이러한 정 씨의 발언은 대다수 여성들에게는 비판을 받는 반면, 많은 남성들로부터 격한 호응을 사고 있다. 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회적 성’과 ‘성차별’을 주제로 하는 ‘젠더 토크쇼’의 시청자 반응이라고 하기엔 매우 어색하다. 단지 남녀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가십 토크쇼’에는 어울릴 법 하다. 


2위인 서민 씨의 경우 그 역할이 매우 모호하다. 그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역할로 1화부터 출연했다. ‘A/S 특집’에서는 ‘서민의 젠더 청문회’를 진행하며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방송에서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다. 심지어 서 씨는 논의의 흐름을 깨거나 위험한 발언도 했다. 몰카 범죄를 다룬 ‘내 몸이 떠돌고 있다’(7/31) 편에서 그는 “남성들이 젊었을 때 여성 목욕탕을 보고 싶어했는데 그 꿈이 실현되는 군요”라고 말해 좌중을 당황케 했다. ‘죽어도 못 보내-안전이별(7/17)’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논하던 중 갑자기 가수 이은미 씨의 노래 “애인있어요”가 무서운 노래라며 맥락과 동떨어진 주장도 펼쳤다. 이외에도 “여성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라는 발언 등 서민 씨가 시청자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사례가 있다. 

 

금기를 깼던 <까칠남녀>, 이젠 전문성도 갖춰야
<까칠남녀>은 방송 초반, ‘공주도 털이 있다’(3/27)에서 그간 금기시 되던 여성의 몸을 다루는 등 파격적인 시도로 호응을 얻었다. 이외에도 피임, 노브라, 시선폭력, 자위행위, 생리 등 매우 민감한 성 관련 주제들을 비교적 잘 다뤘다. 금기를 깨고 남녀 간 소통을 담보하는 ‘젠더 토크쇼’라는 취지도 잘 살렸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 ‘여성 전용 시설’ 등 이미 논란이 된 소재를 다룰 때는 종래의 남녀 간 이견을 방송에서 그대로 재연할 뿐 이렇다 할 발전상을 보이지 못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패널의 일부 발언은 성평등과 거리가 멀었다. 이는 첨예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주관적 영역으로 논쟁이 공전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다. <까칠남녀>가 ‘젠더 토크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방송 초반처럼 금기를 깨는 과감성을 보이던가, 이미 논쟁이 벌이지고 있는 화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전문성과 내실 있는 논의를 갖춰야 한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3일~8월 28일까지 EBS <까칠남녀>

 

정리 방송모니터위원회 이정화 회원

 

monitor_20170920_47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