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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FMS 등급이 3.5? MBN의 이상한 오보
등록 2017.09.0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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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수십억 달러 상당 미국산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개념적 승인(conceptual approval)했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관련 내용이 외신 보도로 확산되자 청와대는 5일 “어제 한·미 정상통화 시 무기 도입에 대한 협의는 없었다”고 공식 부인했는데요. 청와대의 해명과는 별개로, 주요 방송사들은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무기판매등급 격상? FMS 등급 사실관계부터 ‘오류’
그중 MBN이 내놓은 보도가 영 이상합니다. 문제의 보도는 <첨단무기 조기 도입>(9/5 https://goo.gl/fkefrZ)인데요. 이날 두 번째 꼭지로 소개된 해당 보도에서 황재헌 기자는 미국 측의 ‘개념적 승인’이라는 표현에 대해 “(미국이)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무기를 살 땐 현재 3.5에서 4등급 사이로 분류된 한국의 ‘무기 판매 국가 등급’을 높여줘 의회 동의 등 절차를 줄여주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는 해설을 내놓았습니다. 


개념적 승인이라는 말이 ‘무기 판매 절차 간소화’와 연관된 것일 수 있다는 해석 자체는 이미 외신 보도 등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던 것으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기 판매 국가 등급’ 부분인데요. 통상 미국 무기를 한국이 구입하는 과정은 한국이 구매 의향서를 미국에 보낸 뒤 미국 정부가 의회에 판매 승인을 요청하고, 승인이 나면 우리 측에 다시 통보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설정한 대외군사판매(FMS·Foreign Military Sales) 구매국 분류 등급(1~4)이 높은 나라는, 무기 및 기술자료 수출승인 면제 및 통제범위나 승인 기간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즉, MBN이 말하는 ‘무기 판매 국가 등급’은 FMS 등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FMS 구매국 지위는 2008년 10월 이미 기존 3그룹에서 2그룹으로 올라갔습니다. 2013년 2월 공개된 감사원의 <FMS 방식의 해외무기 구매 실태> 감사결과 보고서에는 ‘후속조치가 이어지지 않아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FMS 등급 자체는 이미 2008년 상향조정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MBN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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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미국의 무기 판매 등급상 3.5~4등급에 속해있다 강조한 MBN 보도 화면 갈무리(9/5) 

 

더 황당하게도 MBN은 이런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을 자막처리까지 하면서 보여준 뒤, 이어서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의 “등급을 일본이나 호주 정도의 수준으로 높여주면 대부분의 무기를 의회 승인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라는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일본, 호주 등의 국가의 FMS 구매국 지위는 2등급으로, 한국과 같은데 말입니다. 


민언련이 자주국방네트워크에 이 보도에 대해 문의한 결과, 신인균 대표 측은 MBN에 ‘한국의 FMS 등급이 3.5에서 4등급으로 분류되어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그저 일본과 호주 정도의 등급 수준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을 제공했을 뿐이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어쨌든 이 보도만 봤을 때는 신인균 씨의 발언은 ‘한국은 일본이나 호주보다 FMS 등급이 낮은 상황’임을 입증해주는 영락없는 전문가 멘트로 보입니다. 
 


‘3.5 등급 주장’ 시발점은 연합뉴스?
그렇다면 MBN 황재현 기자는 어쩌다 이런 오보를 한 것일까요? 왜 한국의 등급이 3.5~4라는 주장을 펼친 것일까요? 민언련이 보기에는 황 기자가 같은 날 16시 24분에 ‘먼저’ 송고된 연합뉴스 김귀근 기자의 <‘미국산 장비 한국 구매 개념적 승인’ 백악관 설명 배경 촉각>(9/5 https://goo.gl/ZLBAWT)의 설명을 그대로 참고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연합뉴스도 “미국은 자국산 무기 판매와 관련해 한국을 3.5∼4 등급 국가로 분류해놓고 있다. 1등급은 이스라엘, 2등급은 영국과 일본, 3등급은 캐나다와 호주 등이다. 3등급 이상으로 분류되면 미국산 무기를 수출할 때 의회 동의와 국무부 수출 승인 등 절차가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거든요. 이 보도보다 먼저 한국의 FMS 등급을 “3.5∼4 등급”이라 설명하는 기사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연합뉴스의 이 보도에 ‘낚인’ 언론사는 MBN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인 6일 아시아경제도 <양낙규의 Defence Club/미 수출거부한 첨단무기·기술은>(9/6 https://goo.gl/gDx7AV)을 통해 “미국은 자국산 무기 판매와 관련해 한국을 3.5∼4등급 국가로 분류해놓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군사 관련 보도, 보도량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사실 이 같은 내용은 민언련에 한 시민이 제보해주신 것입니다. 제보자는 수많은 언론사가 앞 다퉈 북한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언론사 담당 기자들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보도를 내고 있다는 점에 답답함을 토로하였습니다. 정보를 제공해야 할 뉴스가 ‘분위기 전달’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 이날 MBN은 총 9건의 북핵 및 군사 관련 보도를 내놓았는데요. 안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보도의 양보다는 질로 승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9월 5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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