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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대정전도 노무현 정부 탓’이라는 조선, 2011년엔 달랐다
등록 2017.08.01 19:48
조회 1691

조선일보가 ‘바로 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가, 전력수요가 늘어남에도 핵발전소를 적게 지어서 이명박 정부 들어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꺼내들었습니다. 탈핵 기조를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언젠가 화를 부를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 정말 설득력 있는 주장일까요?

 

 

노무현 정부가 핵발전소 적게 지어 이명박 정부 ‘블랙아웃’ 위기? 
기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발전소 덜 지어… MB정부때 대정전 위기>(8/1 김승범․송원형 기자 https://goo.gl/PYTQLp)에서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9월 15일 ‘대정전’ 위기가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정부 때 전력 수요 증가율을 과소 예측, 발전소 건설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력수요는 늘어나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 계획을 확정한 원전은 2기(신한울 1·2호기)에 그쳤”고 이는 “김대중·이명박 정부 때 각각 6기와 4기씩 짓기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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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부가 핵발전소를 적게 지어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주장한 조선(8/1)

 

 

이어 조선일보는 “2022년 이후에도 신재생에너지 단가 하락 등으로 요금 인상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망에 대해 ‘전력수요 예측에 영향을 끼치는 GDP 전망을 탈원전 정책을 위해 일부러 낮춘 것 아니냐’는 지적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GDP 성장률을 2030년까지 연평균 2.5%로 잡았다. 그런데 이는 2년 전 3.4%보다 0.9%포인트 낮춘 것이고, 최근 정부가 올해 GDP 성장률을 2.6%에서 3%로 올린 것과도 배치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어 기사는 “전기요금은 2022년까지는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탈원전을 진행하면 그 이후에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LNG와 신재생에너지가 얼마나 ‘효율이 낮은지’를 강조하며 마무리됩니다. 실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원전의 설비 이용률은 85%인 데 비해, 태양광은 15%에 불과하다”입니다. 

 

 

산자부 ‘전력수요, 탈핵 기조 전 전망으로 산출했다’
우선 산업통상자원부가 탈핵 기조에 맞춘 전력수요예측을 내놓기 위해 GDP 전망을 ‘낮춰’ 예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1일 산자부가 내놓은 반박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산자부의 주장은 8차 계획 전력수요 예측에 사용된 경제성장 전망은 KDI의 장기성장률 전망(2017.3월)을 이용한 것이고, KDI 전망은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기조 수립 이전에 발표된 것인데 대체 어떻게 탈핵 기조에 GDP 전망을 끼워 맞출 수 있냐는 것으로 요약되는데요. 여기에 더해 산자부는 “2017~22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0%로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 전망(2017년 3.0%, 2018년 3.0%)과 유사한 수준”이며 “2012년 이후 전력소비량은 연평균 1.6%, 최대전력은 연평균 2.9% 증가하면서 앞선 5년간(2007~11년)에 비해 둔화되는 추세”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탈핵 반대 원자력학회 회장도 ‘노무현 정부덕분에 전력 예비율 좋아졌다’
정전사태가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 핵발전소 건설’ 때문에 불거진 것이라는 주장은 어떨까요? 우선 올 3월 한국원자력학회는 탈핵 기조를 비판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황주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우리나라에 2011년 정전 사태가 있었는데 이는 김대중 정부 때 원자력 발전 시설 확충에 대한 결정을 미뤘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들어 전력 예비율이 좋아지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 신규 원전 4기 건설을 허가한 덕분”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 탓’이 최근에는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을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 탓’으로 소리 없이 바뀌어 버린 것이지요.


조선일보 역시 <태평로/33명 중 한 명도 없었던 ‘노(No) 맨’>(7/22 정녹용 논설위원 https://goo.gl/HrhwJH)에서 “노무현 정부 때 원전 4기의 건설이 승인됐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보고 배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 적이 있는데요.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확정짓는 과정에서, 오직 ‘대통령의 의중’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 계획을 확정한 원전” 개수를 운운하는 것은 트집 잡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대정전 = 공급능력 허수계상 + 매뉴얼 무시 + 낙하산 인사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를 따져보려면, 이명박 정권 당시 벌어진 ‘대정전’ 사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시기인 2011년 9월 15일, 사상 초유의 전국적 대정전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정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경부와 한전·전력거래소는 2011년 최대전력 사용량을 7477만㎾로 예상하고 7897만㎾ 수준의 전력공급 능력을 유지했으나, 9월 9일로 전력 비상수급상황이 종료되자 최대전력 사용량을 6400㎾정도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다 늦더위 등으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6726만㎾의 전력 사용량이 발생했는데요. 예비전력 400만㎾를 유지해야 하는 안전수칙에 크게 못 미치는 24만㎾ 수준의 예비전력만을 보유한 덕분에 결국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이처럼 공급능력에 허수계상이 발생한 이유는 전력거래소에서 예열조치를 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의 전력 200여만㎾를 공급능력에 포함해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 전력거래소는 매뉴얼을 무시하고 지경부 등 상급기관에 보고를 늦추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업무경험과 전문성, 특히 위기관리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해야 할 한전 및 자회사 감사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 선거캠프 및 인수위원회, 한나라당직자출신의 낙하산․보은 인사가 포진해 있었던 것이 전력 비상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조선일보 ‘발전소 무더기 정비만 안했어도 비상 상황 없었다’
2011년 대정전 바로 다음 날 조선일보 역시 ‘잘못된 수요 예측’과 ‘매뉴얼 무시’를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날 조선일보는 1면 보도 <매뉴얼 무시하고 끊었다>(2011/9/16 전수용 기자 https://goo.gl/Nxx7Pf)에서는 전력거래소 지휘부의 판단 미스와 매뉴얼 무시를 부각했습니다.

 

또 <“전력비상 끝” 큰소리치더니… 한전 본사도 불 꺼졌다>(2011/9/16 박순욱 기자 https://goo.gl/2zMh5d)에서는 ‘국가 비상사태 부른 5가지 원인’으로 ‘우왕좌왕거린 지경부’ ‘지경부의 안이한 전력 수요 예측’ ‘매뉴얼 무시하고 조기 단전 감행한 전력거래소’ ‘발전소 25기를 한꺼번에 무더기 정비한 전력거래소’ ‘전력공급 담당하는 지휘부의 총체적인 직무유기’를 꼽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노무현 정부가 핵발전소를 적게 건설 승인하여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지요. 무엇보다 해당 기사 그대로 “전국의 25기(원전 3기 포함) 발전소가 정비를 이유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가 아니라 “이 발전소 중 절반만 정상 가동됐다면 이런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핵발전소의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인재였던 셈입니다. 


사건 직후에는 ‘멀쩡한’ 분석을 내놓았던 조선일보가 ‘황당한 주장’을 슬그머니 펼쳐든 것은 전력 수급 문제를 핵발전소 증설 문제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보도에서입니다.

 

실제 대정전 사태가 발발한 바로 그 달 <전문가들 “10년뒤 전력 1220만kw 부족… 현실적 대안은 원전뿐”>(2011/9/23 이영완·전수용 기자 https://goo.gl/sKdD37) 보도에서 조선일보는 대정전의 원인을 분석하며 “지식경제부 한 관계자는 ‘7년 전 노무현 정부가 발전소 신설보다는 소비 억제로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해당 기사의 결론은 “‘그린(green) 발전’을 충분한 수준으로 구현하기 전 징검다리로 원자력 발전을 불가피하게 채택해야 한다”입니다. 핵발전소 옹호를 위해서라면 자사의 기존 보도 속 주장과 배치되는 주장이라도 불사한다는 조선일보의 ‘의지’가 참으로 대단해 보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8월 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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