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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 조선의 ‘같은 오보’ ‘다른 대응’
등록 2017.07.21 15:54
조회 2996

18일 경향신문과 조선일보가 황당한 오보를 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8개 차관급 인사 단행 사실을 전하면서 기찬수 신임 병무청장이 “권양숙 여사와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보도한 것입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기찬수 청장은 김해 대진초등학교 출신이고, 권양숙 여사는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명백한 오보죠.


이 중 경향신문은 <병무청장, 권양숙 여사 동창 기찬수, 농촌진흥청장에 ‘흙수저 9급’ 라승용>(7/18 김한솔 기자 https://goo.gl/qDZP7F)이라며, 관련 사실을 아예 보도 제목에 명시했습니다. 기사 본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영초등학교 후배이자 권양숙 여사와 동창이기도 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같은 잘못된 정보는 같은 날 조선일보에도 등장하는데요. 조선일보는 <병무청장 등 8명이 친문 캠프 출신>(7/18 8면 머리기사 김아진 기자 https://goo.gl/2TJQT7)에서 이번 차관급 인사에 대해 “장관급 인사 상당수가 ‘친문 인사’ ‘보은 인사’로 채워졌던 것에 이어 이번에도 대선 캠프에서 일했거나 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주장을 펼친 뒤, 기 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점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권 여사의 동창을 병무청장으로 임명했으니 ‘친문 보은 인사’라는 주장인 것이지요. 


또 조선일보는 바로 다음 문단에 “야당은 ‘전형적인 코드 인사의 연속’이라고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2일 발표된 류영진 식약처장 등 차관급 7명 인사 중 5명에 대해서도 ‘보은 인사’라고 한 바 있다”는 내용도 추가했습니다. 경향신문처럼 제목에 오보 내용을 넣지 않았을 뿐, 기사 내용은 사실 한술 더 뜬 셈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사실상 이번 인사를 ‘친문 보은 인사’ 정도로 폄훼한 것이죠. 

 

 

정정보도 낸 경향도 무성의, 정정보도 없이 살짝 고친 조선일보는 더 심각
경향신문은 다음날, 오보가 배치되었던 4면 하단에 <바로잡습니다>(7/19 https://goo.gl/P1giay)라는 정정문을 내놓고, 온라인 보도의 제목을 <병무청장에 기찬수 , 농촌진흥청장에 ‘흙수저 9급’ 라승용>으로 수정했습니다. 본문의 잘못된 내용도 지웠습니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정정문 게재와 기사 수정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정정문의 내용이 고작 “바로잡습니다. 경향신문 7월18일자 4면 ‘병무청장, 권양숙 여사 동창 기찬수’ 기사에서 기찬수 신임 청장은 김해 대진초등학교, 권양숙 여사는 대창초등학교를 졸업해 동창 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돼 바로잡습니다”에 불과했을 뿐 아니라 지면 구석에 매우 작게 게재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독자들은 공백 포함 1000자가 넘는 기사로 오보를 내고, 정정문은 그 10분의 1 수준인 100여 자의 ‘정정문’을 실은 것이 어처구니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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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18 4면 오보(왼쪽)와 7/19 4면 정정보도 크기 및 위치 비교 

 


일단 경향신문의 이번 정정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권양숙 여사 측에서 요청해서 정정보도 문구와 게재형태를 합의하여 내놓은 것이 아니라, 경향신문이 스스로 정정보도를 낸 것이죠. 만약 합의 과정을 거쳤다면, 이것보다는 좀더 성의있는 문구와 사과의 내용이 담겼을지도 모릅니다. 경향신문이 스스로 비교적 빨리 정정보도를 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정정보도는 너무 무성의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합의된 정정보도문을 내는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 오보 또는 왜곡보도로 인한 피해 그 자체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현행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제15조(정정보도청구권의 행사)는 “언론사 등이 하는 정정보도는 공정한 여론형성이 이루어지도록 그 사실공표 또는 보도가 이루어진 같은 채널, 지면(紙面) 또는 장소에서 같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같은 효과’라는 표현이 추상적이라는 점에 있는데요. 때문에 이런 정정보도는 대게 ‘같은 지면’에는 배치되고 있으나, 위치는 ‘구석’, 크기는 그야말로 ‘최대한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흔적 남기지 않는’ 온라인 보도 수정이 더 문제
더 심각한 문제는 온라인상에 송고된 오보에 대한 ‘사후 처리’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현재 상당수의 언론사들은 오보가 발생할 경우 이미 송고된 온라인 기사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정해버리고,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보도는 별개의 기사를 통해 송고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역시 이번 문제의 보도와 정정보도를 별건으로 처리하고, 두 기사를 관련 보도 등으로 묶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해당 기사가 오보였다는 흔적은 독자들의 기사 댓글에만 남아있게 됩니다. 특히 경향신문의 이번 사례처럼 화제가 된 오보의 경우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지지만, 그 외 수 많은 오보들은 대부분 ‘없었던 일’처럼 조용히 수정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조선은 정정보도도 없이 온라인 보도만 수정 
이런 ‘소리 소문 없는 기사 수정’의 문제점은, 조선일보의 행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요. 조선일보는 이번 오보에 대해 정정보도조차 내지 않은 채, 은근슬쩍 온라인 보도만을 수정한 상태입니다. 기사 내용은 더 노골적이었으나, 오보 이후의 행태는 더 비겁했던 셈입니다. 이런 ‘도둑 수정’ 사례를 막고, 또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포털과 언론사의 기사 수정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애초에 오보를 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일단 오보를 했다면 언론사가 그 이후 관계자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 보다 정중히, 분명하게 사과하는 문화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18~19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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