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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우리사회의 고립된 약자라는 조선일보 최보식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30일 <최보식 칼럼/문재인의 ‘6·10 항쟁’과 전두환의 ‘6·29 선언’>(6/30 최보식 선임기자 https://goo.gl/tjdb8M)을 통해 △‘6·29 선언’이 ‘6·10 항쟁’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해 아쉽고 △그 ‘6·29 선언’을 이끈 전두환 씨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른바 ‘전두환 재평가’ 요구인 셈입니다.
칼럼은 “어제는 ‘6·29 선언’ 30주년이었다. 20일 전 서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까지 참석하는 떠들썩한 ‘6·10 항쟁 30주년’ 같은 기념식은 열리지 않았다”는 한탄으로 시작되는데요. 이어 최 선임기자는 6·10 항쟁 기념사 발언으로 보아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이 ‘군부독재’를 굴복시켜 그 전리품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 조치를 얻어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며 “사실 관계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요? 최 선임기자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상대는 전두환이었다.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5공 체제의 위기를 맞았지만, 통치자에게는 이를 강제 진압할 수단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잊고 있다. 전두환은 부산 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해 군을 출동시킬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가 다음 날 유보했다. 야당과 재야 및 학생 지도부는 군이 다시 나올지 모른다고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즉 최 선임기자는 전두환 씨가 ‘군을 충동시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 성취 과정에서 ‘전두환 씨도 공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 이어지는 문단에서 최 선임기자는 “만약 전두환이 계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면 그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를 돌아봐야 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부 이양과 단임 실천은 물 건너갔을 것” “지금 문 대통령이 6월 항쟁에 헌사한 '승리의 역사'도 결코 없었을지 모른다”며 “당시 전두환의 결단과 역할을 애써 폄하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는 집에 침입해 가족을 살해한 강도가, 남은 가족들의 저항에 못 이겨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죽이지 않고 떠났다는 이유로 강도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꼴입니다. 애초 6·10 항쟁은 전두환 정권이 ‘학살·고문·폭행·은폐조작·타락·독직·용공조작 등 비민주적 행태’를 자행했기에 촉발된 것으로, 6·29 선언은 이 같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대한 당시 정권의 ‘정치적 굴복’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선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정치적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평가할 수 있으나 이 선언을 이끌어낸 주역을 ‘전두환 씨’라 명명하는 것은 인과관계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 전두환 회고록을 근거로 전두환 재평가 주장한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6/30)
그러나 무엇보다 더 황당한 점은 최 선임기자가 이러한 억지 주장을 펼치며 내놓은 ‘근거 자료’가 전두환 회고록이라는 것인데요. 회고록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던 모양인지 9단락 2400자 가량으로 이뤄진 칼럼에 전두환 회고록을 인용한 구절만 3단락, 900여자에 달합니다.
이를테면 최 선임기자는 “5공의 경제적 성공이 중산층을 두텁게 한 것이 실질적 민주화에 기여했다. 국민의 7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아보고 싶다는 염원은 그 중산층의 요구였다. 이들이 시민사회 여론을 주도해 5공 정부를 압박하는 형국이 됐다. 시위 소요가 확대되고 격렬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처럼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는 전두환 씨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데요. 광주 학살 주역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도 어이없지만, 언론인이 이를 ‘전두환 재평가’를 위한 근거 자료로 들이밀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 선임기자는 회고록 속 전두환 씨가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를 설득하는 구절이나 참모들의 고언에도 6·29 선언에 대한 공을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넘기는 ‘통 큰 결단’을 내리는 모습 등을 상세히 전하며 “이런 ‘6·29 선언’은 잊히고 ‘6·10 항쟁’만 정부 차원에서 부각되는 장면을 봤다. 과연 역사는 ‘현재 권력 쥔 자들’의 기록인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학살과 반락의 주역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회고록을 내 자신의 행태를 미화하고, ‘유력’ 일간지 선임기자가 이를 열심히 받아 써 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 선임기자가 생각하는 전두환 씨와 5공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무엇일까요?
우선 최 선임기자가 보기에 전두환 씨는 “일방적으로 공격받고, 그에 반해 한 줌 변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 “어떤 관점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약자”입니다.
또 5공은 “세계 1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국민소득은 그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고 물가는 안정”되었던 시기이며 “한국이 인터넷과 전자 산업의 강국이 된 것은 당시 광대역 통신망 설치 등에서 출발”한 것이고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도 그때 준비”되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 못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시기입니다.
이는 ‘경제발전’을 빌미로 자국민에 대한 학살과 용공조작을 일삼았던 인물에 면죄부를 부여해보자는 천박한 주장일 뿐인데요. 조선일보나 최 선임기자는 전두환 씨를 ‘애국자’라 칭송하며 그의 지휘아래 내려오던 보도지침을 ‘준수’하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리운 모양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6월 30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