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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일자리 진출한 여성 때문에 결혼‧출산 감소했다는 TV조선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초대 내각 여성 장관의 비율을 30%로 시작하여 임기 내 50%까지 채우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선을 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은경 환경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명하면서 여성 장관 비율 30% 달성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 중 강경화 장관과 김현미 장관은 해당 부처의 최초 여성 장관입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을 타파해보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TV조선은 ‘여성의 삶’이라는 제목의 <앵커칼럼>을 보도했습니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토대로 만든 보도입니다. TV조선은 이 보도에서 여성의 장점을 칭찬하는 듯 하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고,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듯한 주장을 내놨습니다.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이 늘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견딜 생각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통계청의 자료를 어떻게 해석한 걸까요?
편협한 성관념 노출한 TV조선, 16년 만에 여성들의 머리가 좋아졌다?
문제의 보도는 TV조선 <앵커브리핑>(6/28 https://bit.ly/2tnzS8G)입니다. 강력 범죄 여성 피해 비율, 여성 비정규직 비율 등 폭넓은 여성 관련 통계를 제시한 통계청의 ‘2017 여성의 삶’에서 TV조선이 먼저 주목한 것은 처음으로 70%를 넘은 여성 외무고시 합격자 비율입니다. 윤정호 앵커는 “우리나라 외교관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면접입니다. 90분 간 집단 토의를 하고 40분 외국어 토론 면접을 치르는데 이 과정에서 점수 차가 벌어집니다”라면서 외무고시 면접 절차를 먼저 설명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면접에서 여성이 지니는 강점을 강조했습니다. “5~6명이 한 조가 돼 벌이는 토의에선 외교관으로서의 협상능력을 주로 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기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며 공격적인데, 여자들은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며 합의점을 찾아낸다”는 겁니다.
윤 앵커는 이어서 “돌발적으로 질문하는 직무능력 면접에서도 여자의 위기 대응이 한 수 위입니다. 침착하고 재치있게 답합니다. 외국어 토론도 일반적으로 언어능력을 더 타고났다는 여성이 유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여성의 강점으로 인해 “지난해 여성 합격자가 71%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자기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반면 여자들은 차분하게 합의점을 찾아낸다’거나 ‘임기응변에서 여성이 한 수 위’, ‘언어능력을 여성이 더 타고났다’는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주관적 판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는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 비율이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TV조선의 논리대로라면 여성들의 대화 능력과 임기응변, 언어 능력이 16년 만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인데요. TV조선은 이렇게 편견과 무논리로 ‘여성 외무고시 합격자 비율 71%’라는 통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심지어 TV조선은 이런 능력에서 여성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잘 보여주기 위해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여 주인공이 취업 면접을 보는 장면을 예시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TV조선의 바람과 다르게 영화의 해당 장면에서 여 주인공은 면접관으로부터 ‘춤을 춰보라’는 성희롱을 당하고 취업에도 실패합니다. 아무리 보도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자료화면이라도 해도 최소한의 관련성은 있어야 합니다.
△ ‘여성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하기 위해 엉뚱한 영화 장면 인용한 TV조선(6/28)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이 결혼·출산 감소의 원인이라고?
전근대적 성 인식에 빠진 TV조선의 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윤정호 앵커는 “행시 여성 합격률은 41%, 사시 37%, 9급 공무원 58%”, “공무원의 45%, 약사 64%, 의사 25%, 4명 중 1명 이 여성”이라면서 통계청 자료 중 ‘여성 고급 일자리 비율 상승’ 관련 내용을 골라 나열했습니다. 이어서 “그런데 줄어든 수치가 하나 있”다면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미혼여성은 31%밖에 안 됩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서 윤 앵커는 놀랍게도 ‘결혼을 원하는 미혼여성이 적은 이유’로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고급 일자리에 진출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결혼을 원하는 미혼여성이 감소했다’는 매우 일차원적이고 편협한 주장입니다. 게다가 TV조선이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 증가’로 나열한 통계들 중 ‘행시 여성 합격률 41%, 사시 37%, 공무원 45%, 의사 25%’ 등의 내용은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TV조선은 단순히 과거보다 증가했다는 사실에만 집착한 겁니다.
△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 증가를 결혼·출산 감소로 연결한 TV조선(6/28)
△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 증가를 결혼·출산 감소로 연결한 TV조선(6/28)
TV조선은 여기다 다른 통계까지 덧붙였습니다. 통계청의 ‘4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작년 4월보다 결혼은 12%, 신생아는 14%나 줄어 최저기록을 또 바꿨”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TV조선의 결론은 결혼 및 출산률 하락에 대한 ‘여성 책임론’에 가깝습니다. 윤 앵커는 “지금 젊은 여성들은 일과 여가를 포기하며 결혼과 출산을 견딜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공하고 행복해지겠다는 여성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다보니 노인 인구만 불어납니다. 전통적인 인구 피라미드가 밑변이 넓은 형식인데 조만간 물구나무라도 설 판”이라는 우려까지 덧붙였습니다.
번지 수 잘못 찾은 TV조선
TV조선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결혼과 출산의 감소, 그리고 이에 따른 고령화의 원인은 고급 일자리에 진출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여성’이라는 겁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그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두 가지 통계를 갖다 붙여 아전인수 식으로, 그것도 아주 편협한 관점에 사로 잡혀 내린 결론에 불과합니다. 물론 TV조선은 구색이라도 맞추려는 듯 “남녀 가리지 않고, 결혼하고, 자녀 갖고, 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할 때”라면서 보도를 마무리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TV조선이 보도 내내 내놓은 논리에 의하면 결혼과 출산을 병행하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여성이 생각을 바꾸는 것 밖에 없습니다.
결혼 및 출산의 감소는 만연한 비정규직과 경제적 불평등, 여성에게 강요된 양육의 가사 등 다른 사회적 원인들 때문입니다. 이는 상식입니다. 특히 이런 부분에서 오히려 여성은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이런 이유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엉뚱하게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 증가’를 탓한 TV조선의 편견이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강력 범죄 피해와 비정규직 비율 증가…TV조선이 보도하지 않은 통계들
TV조선의 이 보도에서 노출한 문제점이 또 있습니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17 여성의 삶’에는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 외에도 주목할 만한 다른 통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단 일부 고급 일자리에서 여성의 진출이 늘어난 것과 달리 여전히 고위직 전반에서는 여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 초등학교 교원의 77%가 여성이고 중학교에서도 68.8%가 여성이지만 교장과 교감 등 고위직은 교장 9.9%, 교감 13.9%에 불과합니다.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여성 관리자 비율 역시 20.1%로, 10년 전 10.2%보다 증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위직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참담한 통계들도 있습니다. 2016년 비정규직 중 여성의 비율은 남성보다 무려 6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여성 비정규직은 전년보다 14만 8000명 늘어난 353만 8000명에 이릅니다. 남성 비정규직은 전년보다 2만 4000명 늘어난 390만 6000명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증가율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 자체가 여성이 훨씬 많습니다. 지난해 1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 월평균 임금 역시 186만 9000원으로 남성 임금 291만 8000원의 64.1%에 그쳤습니다. 생계로 이어지는 노동 현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서있습니다.
강력범죄 피해 비율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2017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의 50.9%가 사회 안전에 불안하다고 답했고 안전하다는 대답은 10.6%에 그쳤습니다.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범죄가 37.3%로 2014년보다 12.9%증가했죠. 통계청이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강력 범죄의 피해를 본 여성의 수는 2000년 6245명에서 2015년 2만7940명으로 약 4.5배 증가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남성 피해자는 2520명에서 3491명으로 약 1.4배 증가했습니다. 여성의 강력 범죄 피해 비율 증가율이 남성의 3배에 이릅니다.
이렇듯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의 대부분은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이 얼마나 불리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쉽게 말해 여성은 일터에서는 비정규직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고 길가로 나가면 범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TV조선은 오로지 ‘여성의 고급 일자리 진출이 늘었다’는 극히 일부 내용에만 집착하더니, 이를 ‘결혼‧출산 감소’로 연결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6월 28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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