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문정인 특보 때문에 한미 갈등? 뉴스에서 엿보인 ‘사대주의’최근 언론이 연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문 특보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세미나에서 남긴 발언 때문입니다. 문 특보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미군 전략자산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과 한미가 모두 한반도 군사 훈련을 축소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남북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이 최소한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사드 때문에 한미 동맹이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그 동맹을 우리가 어떻게 믿나’라며 사드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의 시간표’를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언론은 곧바로 이 발언을 대서특필하면서 ‘한미 동맹에 균열이 우려된다’고 보도했습니다. 19일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드 배치 지연에 격노했다는 전언이 보도되면서 ‘한미 갈등’이 주요 보도를 장식했는데요. 청와대도 문 특보에 ‘엄중 경고’했다며 공식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방송사들도 천편일률적인 보도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분노했다는 보도부터 문 특보 발언이 ‘한미 갈등’을 유발한다는 주장까지, 사실을 확인하기는커녕, 언론이 종전과 다른 대북 기조에 지나치게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문정인 특보 발언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문 특보의 발언은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상식 수준의 대안이며, 심지어는 트럼프 정부의 복안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실패로 규정하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집권 초기부터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지난달 16일 북한 미사일 제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앞두고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해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발언은 문 특보 발언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과 야권의 비판에 휩쓸리듯 19일, 문 특보에 ‘엄중 경고’를 한 청와대도 ‘자기 부정’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17일부터 ‘한미 갈등 우려’ 쏟아낸 방송사들, 사대주의 논란 자초
17일부터 문 특보에 공세를 취한 방송사 보도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SBS‧MBN을 제외한 5개 방송사는 일제히 문 특보가 ‘한미 갈등’을 유발한다는 식으로 비판했습니다.
KBS | MBC | SBS | JTBC | TV조선 | 채널A | MBN | |
---|---|---|---|---|---|---|---|
문정인 특보 발언 | 1 | 1 | 1 | 1 | 1 | 1 | 1 |
한미 엇박자 우려 | 1 | 1 | 1 | 1 | 1 | ||
문 특보 발언 분석 |
1 | 1 | |||||
총 보도량 | 2 | 2 | 2 | 3 | 2 | 2 | 1 |
△ 7개 방송사 문정인 특보 발언 관련 보도량 비교(6/17) Ⓒ민주언론시민연합
KBS‧MBC‧TV조선‧채널A는 약속이나 한 듯, 문 특보 발언을 1건의 보도로 전한 뒤 ‘한미 회담 난항’, ‘한미 대북공조 엇박자 우려’를 1건 덧붙였습니다. KBS <대화 의지 강조…한미 회담 우려>(6/17 https://bit.ly/2sRkxxn)는 이미 제목에서 문 특보의 ‘대화 의지’가 한미 회담의 우려를 야기했다고 명시했습니다. KBS는 “(문 특보의)기조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선 비핵화가 먼저 돼야 한다는 미국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는데요. 그 근거로는 북한에 “도발 중단에 대한 '대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북한의 선 비핵화를 강조해온” 미국과 다르다는 겁니다. “연합훈련이나 전략무기 축소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문제인데, 일방적으로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 문 특보 발언에 ‘한미 회담 우려’라는 KBS(6/17)
KBS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문 특보 역시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 중단’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연합훈련과 미 전략무기의 경우,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만큼 당연히 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고 북한의 태도 변화가 감지될 때 그 조정을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이를 단지 문 특보가 말했다는 이유로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른 방송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보도를 1건씩 추가했습니다.
그나마 SBS가 ‘한미 갈등 우려’ 보도 없이 문 특보 발언을 분석하는 보도만 추가했습니다. SBS <미와 시각차 좁히는 게 관건>(6/17 https://bit.ly/2skvoyE)은 “문정인 특보의 이 발언은 북한이 추가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6.15 구상과 맞닿아 있”다면서 “미국과 시각차를 어떻게 좁혀나갈지가 관건”이라고 짚었습니다. JTBC도 문 특보 입장을 분석한 보도를 내기는 했지만 ‘한미 엇박자 우려’ 보도 역시 덧붙였고, MBN은 문 특보 발언을 받아쓴 보도만 1건 냈습니다.
△ 19일,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 집중 조명한 방송사들(6/19)
‘트럼프 격노’ 일제히 받아쓴 방송사들, 이번엔 JTBC만 ‘정중동’
청와대가 ‘엄중 경고’를 했다고 밝힌 19일이 되자 방송사들의 비판 수위는 더 높아졌습니다. 특히 ‘트럼프 격노’를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대서특필 했는데요. 이에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우리의 자주적인 대북정책보다 미국 대통령의 심기가 더 중요하냐는 겁니다. 19일, 방송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청와대의 ‘경고’와 ‘트럼프의 분노’를 공통적으로 보도했습니다.
JTBC만 ‘트럼프 격노’를 받아쓰지 않으면서 정중동을 지켰습니다. JTBC는 문 특보 발언 의미를 분석하는 데에만 4건을 할애하며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SBS도 트럼프 격노를 보도하기는 했지만 17일에 이어 19일에도 문 특보 발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보도를 추가했습니다. 타사는 ‘트럼프 격노’ 보도를 모두 보도하면서 ‘한미 갈등 우려’나 문 특보에 맹공을 퍼부은 야권 입장 등 정치권 분위기를 1건씩 덧붙였습니다.
KBS | MBC | SBS | JTBC | TV조선 | 채널A | MBN | |
---|---|---|---|---|---|---|---|
청와대 문 특보에 경고 | 1 | 1 | 1 | 1 | 1 | 1 | 1 |
트럼프 분노 | 1 | 1 | 1 | 1 | 1 | 1 | |
한미 갈등 우려 | 1 | ||||||
여야 반응 | 1 | 1 | 1 | ||||
미국 반응 분석 | 1 | ||||||
문 특보 발언 분석 |
1 | 4 | |||||
총 보도량 | 3 | 3 | 3 | 6 | 3 | 3 | 2 |
△ 7개 방송사 문정인 특보 발언 관련 보도량 비교(6/19) Ⓒ민주언론시민연합
‘트럼프 격노’ 사실 확인은 했나…TV조선 “차라리 사드 빼라고 했다”
방송사들이 ‘트럼프 격노’를 보도하는 태도는 ‘호들갑’이라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MBN은 <워싱턴 ‘발칵’>(6/19 https://bit.ly/2tHASkY)이라는 짧고 임팩트 있는 제목을 통해 ‘문정인 특보가 미국 정부를 뒤집어 놓았다’는 식으로 묘사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보도는 TV조선입니다. TV조선 <“차라리 사드 빼라” 크게 화내>(6/19 https://bit.ly/2rL1ipm)는 ‘격노한 트럼프’의 “차라리 사드 빼라”라는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는데요. 이렇게 구체적인 ‘분노 양상’을 전달한 방송사는 TV조선뿐입니다.
△ 7개 방송사 ‘트럼프 격노’ 보도 제목 비교(6/19) Ⓒ민주언론시민연합
TV조선 보도는 “지난 8일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났”던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한 경위를 자세히 전했습니다. 두 장관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배치가 지연되는 한국의 국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보고”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화를” 냈으며, “언짢은 표현과 함께 차라리 사드를 빼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겁니다. TV조선은 “(한미정상)회담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덧붙였습니다.
그나마 취재원 밝힌 SBS, 문제는 ‘트럼프의 분노’가 아니다
그런데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무려 열흘 전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장관들과 대화하며 ‘격노’한 일을 우리 언론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걸까요? 직접 목격했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취재원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방송사 중 취재원을 밝힌 것은 SBS뿐입니다. SBS <“트럼프, 한국 사드 논란에 격노”>(6/19 https://bit.ly/2sKdciK)는 ‘트럼프 격노’가 전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목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을 했고, 보도에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내 사드 배치 지연 논란과 관련해 크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 우리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며 취재원을 밝혔습니다.
반면 MBC‧TV조선‧MBN은 인용 처리도, 취재원을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KBS는 ‘트럼프 격노’를 제목으로 뽑지 않았고 채널A는 인용 처리했지만 두 방송사 모두 취재원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SBS처럼 취재원을 ‘우리 정부 관계자’로 밝혀도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확인도 되지 않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사실처럼 보도하면서, 한미 정상회담까지 문제가 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허위 보도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정작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현 상황에서 핵심은 한미 양국이 대북 기조를 어떤 방식으로 합의할 것인지, 그래서 과연 한반도 평화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입니다. 문정인 특보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방향을 제시했을 뿐인데요. 방송사들은 확인도 되지 않은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문정인 특보 발언 논란과 연결시키면서 ‘문 특보로 인해 미국이 화났다’는 황당한 프레임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동시에, ‘미국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대주의적 입장을 드러낸 겁니다.
문 특보 입장부터 확인한 JTBC, 최소한 언론은 이렇게 해야
‘트럼프 분노’로 방송 저녁뉴스가 채워진 19일, 그나마 JTBC가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JTBC는 ‘트럼프 분노’를 보도하지 않는 대신, 문정인 특보의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문 특보 입장 자체를 분석해 타당성 여부의 판단을 시청자에게 맡긴 보도만 4건입니다.
JTBC <문정인 “협상은 주고받는 것”>(6/19 https://bit.ly/2sRp82j)은 “청와대는 문정인 특보에게 자제를 통보했지만, 문 특보는 본인의 소신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라면서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인 요구만으로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 협상을 위해서는 제재와 압박만이 아니라 양보할 수 있는 건 양보해야 한다”는 문 특보 입장을 전했습니다.
타사가 모두 ‘트럼프 분노’에만 집중한 미국의 반응 역시 JTBC는 다양하게 짚었습니다. JTBC <미국서도 우려‧옹호 엇갈려>(6/19 https://bit.ly/2sNmGKM)는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껄끄러웠던 양국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지만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문 특보의 발언은 북핵과 미사일 중단이 전제된 만큼 한·미 정부가 오랜 기간 밝혀왔던 점에 들어맞는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문 특보 발언을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는 겁니다.
JTBC는 마지막 관련 보도인 <‘공개 경고’로 한‧미 엇박자 다잡았지만…>(6/19 https://bit.ly/2rLn5NA)에서 다시 이 사태를 분석하면서 청와대가 ‘엄중 경고’하며 선을 그었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측 입지를 좀 더 넓힌 측면도 있다, 이런 분석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지난 정부의 어떤 대미 자세에 대한 반성, 이것도 포함”된다면서 “문 특보의 어떤 직설적인 화법의 차원의 문제는 있지만 그 내용 자체가 전혀 터무니없는 건 아니라”는 시각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17~1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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