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사상검증’으로 변질된 ‘청문회 보도’, MBC는 ‘친일사관’ 설파
등록 2017.06.15 17:14
조회 1747

14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종전의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13일 임명), 김동연 사회부총리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9일 임명)과 달리 세 후보자 모두 현역 의원들이었는데요. 그 때문인지 청문회가 무뎌졌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전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도종환 후보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나 김부겸 후보자의 각종 세금 탈루 의혹, 논문 표절 의혹 등 각종 도덕성 검증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도종환 후보자에게 난데없는 ‘사상검증’을 벌여 논란이 됐습니다. 도 후보자의 방북 경위, 비전향 장기수 회갑연 참석 등을 캐물은 것인데요. 다른 방송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도하지 않은 가운데. MBC와 TV조선만 기다렸다는 듯 집중 조명했습니다. 

 

청문회에서 나오지도 않은 ‘건국절’…‘친일사관’ 드러낸 MBC
MBC는 청문회장에서 나오지도 않은 ‘건국절 논란’을 보도로 만들어, 도종환 후보자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도 후보자가 건국절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겁니다. ‘건국절 논란’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됐는데요. 건국절을 위시한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우리 헌법과 근대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 버리는 논리입니다. 때문에 ‘친일사관’이라 비판 받고 있는데요. MBC는 도 후보자가 ‘왜 친일사관을 갖고 있지 않냐’고 따져물은 셈입니다.  


MBC <이번엔 건국 시기…‘역사인식’ 또 논란>(6/14 https://bit.ly/2sr3UYu)에서 배현진 앵커는 “도종환 문화체육장관 후보자의 역사 인식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도 후보자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불거졌”다고 운을 띄웠는데요. 이는 MBC가 만들어 낸 논란으로서 청문회장에서는 질의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이어서 백연상 기자는 먼저 “도 후보자가 1919년 건국설을 지지”한다면서 2015년 한겨레TV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 임시정부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 세운 나라를 48년 8월 15일 날 다시 재건하는 것”이라 말하는 도 후보자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도 후보자의 ‘1919년 건국설’을 반박하기 위해 “역대 대통령들은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각종 연설 때 사용”했다는 점을 들었는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라고 말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광복 62주년 경축사에서 “3년 뒤 이날(1948년 8월 15일), 나라를 건설했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MBC는 이에 “그런데 도 후보자와 문재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까지 싸잡아 비판했고 “국가의 3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인데 1919년은 영토와 주권을 상실해 국가로서 인정받을 수 없는 시기라는 게 국내외 학자들의 정설”이라 못박았습니다.

 

K-001.jpg

△ 청문회에서 나오지도 않은 ‘건국절 논란’ 보도하면서 김대중‧노무현 발언까지 왜곡한 MBC(6/14)

 

K-002.jpg

△ 청문회에서 나오지도 않은 ‘건국절 논란’ 보도하면서 김대중‧노무현 발언까지 왜곡한 MBC(6/14)

 

여기에 색깔론까지 더했습니다. “1919년 건국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그 근거로 “좌파들은 나중에 대한민국 건국에 방해를 하고 북한편을 들어요. 그 북한의 핵심인물들을 다 우리가 건국인사로 하겠다는 것”라는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인터뷰를 덧붙인 겁니다. 보도 말미에는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역할을 깎아내리고 건국 핵심 가치인 공산주의 반대를 지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과 “유엔으로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민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받은 시점은 1948년”이라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공영방송 MBC가 노골적으로 ‘친일사관’를 설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건국절 논란’이 있지도 않았다
일단 도 후보자와 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설’을 지지한다고 주장한 MBC의 전제부터가 틀렸다습니다. ‘1919년 건국설’이라는 용어 자체가 역사적 사실에 반할 뿐 아니라, 우리 헌법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겁니다. 현행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제헌헌법 역시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했습니다. 1919년을 대한민국의 출발로 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역사와 헌법이 인정한 ‘진실’입니다. MBC는 이를 ‘가설’로 치부한 채 보도를 한 겁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에서 시작됐다’는 도 후보자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김대중‧노무현 두 전임 대통령 발언을 동원한 것도 심각한 왜곡입니다. 1948년 8월 15일에 맞춰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행사를 치렀다가 엄청난 반발을 샀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파문으로 거센 반발을 야기했습니다. 즉,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건국절 논란’이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두 대통령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별개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건국 50년’, ‘이날 나라를 건설했다’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MBC는 이를 마치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도 MBC가 주장하는 ‘뉴라이트식 건국절’을 인정한 것처럼 ‘오용’한 겁니다. 이런 MBC의 주장대로라면 ‘뉴라이트’ 진영이 찬양해 마지 않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건국절’을 부인한 사람이 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헌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계승 의지를 명문화한 장본인이고 스스로 ‘건국’이라는 용어를 쓴 적도 없으며 1948년 제헌국회 개헌 개회사에서도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의 임시정부의 계승에서 이 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연호는 기미년(1919년)에서 기산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에도 ‘건국절 논란’이 없었기 때문에 ‘1919년 임시정부 적통’이 당연한 상식이었던 겁니다.  

 

‘뉴라이트식 논리’ 내세운 MBC의 ‘역사왜곡’
이런 MBC의 논리에는 교묘한 술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MBC는 ‘뉴라이트식 건국절’을 주장하면서도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일이다’라는 언급만 보여주고, ‘광복절을 지우고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직접적 언급은 피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3대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인데 1919년은 영토와 주권을 상실해 국가로서 인정받을 수 없는 시기”라는 MBC의 주장 자체가 대표적인 뉴라이트식 논리일 뿐 아니라,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노골적으로 1919년 임시정부를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며 그 정통성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임시정부를 국가 정통성의 근간으로 삼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이전 대한제국 역사와의 연속성을 담보하고 일제강점기에서도 일제에 항거한 ‘국가의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실증적 의미와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헌법학에서는 국민과 영토는 단지 헌법의 효력이 미치는 인적‧장소적 적용 범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의 의미로 단언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광복의 역사’ 지우고 ‘반공주의’ 내세운 MBC
결국 ‘영토와 주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1919년 임시정부는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MBC의 주장은 독립운동과 광복의 역사를 부인한다는 의미입니다. MBC와 뉴라이트의 주장대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규정하게 되면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는 우리의 국가는 없었고 일제의 조선총독부만이 공식 정부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반역’할 국가가 없기 때문에 반국가 범죄에 해당하는 ‘친일 행위’ 역시 정당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때문에 MBC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은 ‘친일사관’이라 비판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MBC의 속내는 보도 말미에 덧붙인 류석춘 교수의 인터뷰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류 교수는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이유로 ‘좌파들이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북한편을 들었다. 북한 인물들을 건국인사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죠. 이는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한 것입니다. 류 교수가 말한 ‘1948년 건국’은 1948년 당시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의미하는데요.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이자 우파로 꼽히는 ‘독립운동의 대부’ 김구 선생은 남한의 단독 선거를 막고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1948년 4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MBC와 류 교수 논리대로라면 이런 김구 선생 역시 ‘건국을 방해하고 북한 편에 선 좌파’이자 ‘건국인사로 인정할 수 없는 인물’이 됩니다. 복잡한 근대사를 ‘좌우 이념’으로만 재단하다보니 이런 황당한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K-003.jpg

△ 류석춘 교수 내세워 ‘반공 사관’ 설파한 MBC(6/14)

 

결론적으로 MBC와 류 교수 주장의 핵심은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역할을 깎아내리고 건국 핵심 가치인 공산주의 반대를 지우려는 의도가 있다”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근간은 임시정부가 아니라 ‘반공’에 있는데 도 후보자 등 ‘1919년 건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를 지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12년 간 독재를 한 이승만 전 대통령도 1919년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정통성 기반으로 규정했으며 심지어 본인이 임시정부의 수반으로서 임시정부를 공식 정부로 인정해달라고 일본에 요청한 적도 있습니다. ‘건국절’을 주장하면 류 교수 스스로 옹호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오히려 부정하는 셈이 됩니다. 무리하게 ‘친일 반공 사관’을 내세우다보니 발생하는 모순입니다. 이런 어불성설에 가까운 역사관을 공영방송 MBC가 버젓이 보도하고, 심지어 이를 국무위원의 검증 보도로 내세운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사상검증’ 받아쓴 TV조선, 도 후보자 해명은 ‘나몰라라’
TV조선은 MBC처럼 나오지도 않은 논란을 만들어 보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자유한국당의 ‘사상검증’을 충실히 받아쓰면서 ‘이념 편향성’을 부각했습니다. TV조선 <“문화계 국정농단 진상조사”…야 “편향”>(6/14 https://bit.ly/2rjghT1)은 “문화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겠다”는 도종환 후보자의 계획을 먼저 언급하더니 맥락도 없이 “야당에선 이념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는 내용으로 넘어갔습니다. “좌편향된 문화만을 육성·강조하고 이 정권 유지에 찬동하는 문화인들을 양성”(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발언도 화면에 담았습니다. 이중 “유독 인민군 출신의 빨치산 비전향 장기수 회갑연에 갔다는 데 굉장히 의아심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도 보여줬는데요. 이 질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되는 와중에 문체부의 남북교류가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 뒤에 곧바로 이어진 엉뚱한 질문이었습니다. 


TV조선은 이런 맥락도 설명하지 않았고, 심지어 도 후보자의 해명도 누락했습니다. 도 후보자는 ‘빨치산 회갑연 참석’ 질의에 “당시 김영삼 정부가 비전향 장기수를 북에 송환하는 시기였다. 북 송환을 앞둔 분이었다. 감옥을 다 살고 30년 만에 북 송환 가는 분이었다. 충북지역 시민단체에서 식사를 대접한 자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의 회갑연에 참석한 것을 무슨 대단한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따진 이장우 의원의 질문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였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북송에 합의한 겁니다. TV조선은 이런 문제 의식을 보여주거나, 도 후보자의 상식적 대답을 전하는 것 대신 엉뚱한 대답을 이어붙였습니다.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무조건 찬성하지는 않는다”, “과거 지지성명을 냈던 강정구 교수의 6·25전쟁 관련 주장엔 동의하지 않는다” 등 전혀 관련이 없는 도 후보자 대답들을 나열한 겁니다. 이는 ‘국가보안법은 폐지하면 안 된다’, ‘강정구 교수 주장에는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TV조선의 이분법적 관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2017년 6월 14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monitor_20170615_239.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