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경제신문 일일브리핑(D-12)
재벌 ‘황제경영’ 청산, 또 자율에 맡기자는 경제지들‘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정농단과 함께 정경유착의 실상을 드러냈다.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재벌 개혁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던 것도 정경유착에 대한 비판이었다. 재벌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홍준표 후보를 포함해 대선 후보들 모두가 재벌 개혁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재벌개혁 공약은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과 함께 재벌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롯데 사태에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삼성 등의 사례는 재벌대기업 지배구조의 부실과 난맥상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게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작업이 이미 국회에서 추진돼 온 가운데 대선 후보들도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지들은 이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거의 예외 없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논지다. 비판 자체가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무리한 논리로 강변하는 보도가 많다. 국회나 정부는 간섭하지 말고 기업 자신에게 맡기라는 논리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면서 그에 반대되는 결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하자고 하면 반(反)기업?
매일경제의 시리즈물 <한국형 국민기업 키우자>가 대표적이다. <스웨덴은 기업·정부 상생…한국, 반기업정서에 규제만>(4/18 홍장원․김대기․배미정․윤진호 기자 https://goo.gl/fqkuCd)에서는 상법개정안이 법의 취지를 벗어나 ‘기업 옥죄기’ 카드로 변질됐다면서 국회에 계류된 33건 중 17건이 집중투표제등 지배구조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안들에 대체로 공통적인 주요내용은 기업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일반이사-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선임 요건 강화 △주주대표소송제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다.
이 기사는 이에 대해 “최순실 게이트로 반기업 정서가 고조되고 재벌 해체론까지 대두하면서 ‘기업을 옥죄는’ 카드로 목적이 변질되고 있다”면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와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시행되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에 대주주 선임권이 줄어들고 게다가 ‘집중투표제 의무화’까지 더해지면 투기자본에 의한 기업 이사회 장악이 쉬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1주 1의결권이 아니라 1주에 대해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강제로 부여하는 제도다. 예컨대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3명을 선임할 때 1주를 가진 주주의 의결권은 3표가 되는데 주주는 이사 후보 1명에게 3표를 몰아줄 수 있다.
이 기사는 “상법 개정안은 소액주주가 아니라 투기자본만 배를 불리고 언제든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악법”이라며 “개정안대로 입법되면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분쟁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순환출자나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라면 이 행위 자체를 규제해야지 문제 해결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집중투표제도 등 상법 개정안을 도입하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아니다”고 강조하며 “국민정서법에 기댄 기업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재계나 경제지들의 주장이 전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면서 배당금 확대 등을 요구한 사례에서 보듯이 헤지펀드의 집중 타깃이 될 수도 있다. 헤지펀드는 중요한 현안이 있는 기업의 지분을 확보한 후, 이에 반대하면서 배당금 확대 등을 요구하는 전략을 많이 쓴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들어 지배구조 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이 기사가 “삼성·현대차·SK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 기업 분할·합병 등 민감한 이슈가 많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약점이 있어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니 무조건 보호해 줘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많은 것도 지배구조 개선 반대 논리로 동원된다. 이 기사는 이에 대해 “최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했지만,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의 한 단면인 대기업 사내 유보금 급증에 대해 ‘뺏길 게 많으니 (가게 주인의 가게 운영에 문제가 있더라도) 빗장을 단단히 걸어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 논거들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떠나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된다는 단순논리대로라면 미국과 유럽 등 소액주주 참여가 활발한 선진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
발렌베리 그룹 존경받는 이유 설명 빼고 아전인수 해석
위 시리즈물은 사실을 일반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했다. ‘재단 중심의 안정된 경영권, 160년 발렌베리 성장 이끌었다’(4/18 홍장원․김대기․배미정․윤진호 기자 https://goo.gl/k7C5uf)는 기사는 스웨덴 기업집단 ‘발렌베리(Wallenberg)’의 사례를 들며 발렌베리와 같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너 경영’을 철저히 보장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 기사는 발렌베리 주니어 회장의 “창업주 가문이 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기업이 갈 방향에 대해 조언한 덕분에 거센 풍파에도 발렌베리가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기업과 정부가 상생해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 생태계를 만든 스웨덴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기사는 “발렌베리 지배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정점에 발렌베리 재단(foundation)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재단을 정점으로 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전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포드,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레고 등이 모두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물려받는 구조다. 이들 국가는 여기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결합해 특정 가문을 대표하는 재단이 기업을 물려받는 구조를 공식화했다”면서 “반면 한국은 공익법인은 동일 내국법인이 발행한 의결권 있는 주식의 5% 이하를 출연 받을 때만 세금을 면제해주는 상속·증여세법 제48조에 따라 이 같은 기업 지배구조를 짤 수 없다. 이 이상 지분을 재단에 넘기면 증여세를 물어야 해 지분을 직접 물려주는 것과 차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발렌베리가의 ‘5대(代) 경영’이 가능했던 이유, 발렌베리가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소유와 경영의 족벌과 전횡성, 전근대적인 노사문화, 분식회계 등 한국의 재벌들과는 전혀 다른 발렌베리의 경영과 기업문화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는다. 소유를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해하고, 기업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며 수익은 스웨덴의 과학 기술에 투자하고 사회에 환원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재벌 경영으로는 절대로 한국의 발렌베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는다.
이미 4년 전 박근혜 공약에 담겼던 지배구조 개선책
사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지배구조 개선 관련 정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시절 ‘경제민주화’를 내놓으면서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들이다. 법무부도 2013년 7월 이런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2013년 8월 28일, 청와대와 10대 그룹 총수 간의 오찬간담회 이후 입법 작업은 중단돼버렸다.
그러니까 상법 개정 작업은 이미 ‘친기업적인’ 새누리당에 의해서 공약으로 제시됐던 정책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일부의 반시장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 기업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그저 시장에 맡겨둬야 한다 주장한 서울경제(4/14)
그럼에도 경제지들은 한 목소리로 이를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자율에 맡겨라’라는 논리를 대고 있다. 서울경제 <사설/문-안, 기업 지배구조 개편 시장에 맡겨라>(4/14 https://goo.gl/tXoFgg)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최적의 지배구조를 선택하고 이를 시장에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이사회를 ‘노조 천국’으로 만들고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나라’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고 해 기업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면 대기업 이사회가 노조에 의해 장악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하고, 해외 투기자본에 속수무책으로 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기업 대신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이 사설은 “재계는 이미 국민들에게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겠다고 약속했고 많은 기업이 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지 의문이다. 재벌들이 수없이 약속했던 ‘황제경영 청산’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