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_

(D-35) 경제신문 일일브리핑

정책 경쟁 막는 경제지의 ‘포퓰리즘 망령’
등록 2017.04.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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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퓰리즘 낙인’이라는 망령이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다. 선거 때면 이 망령은 더욱 더 자주 출몰한다. 특히 경제지들이 이 망령을 집요하게 불러내고 있다. 경제지들은 유난히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한다. 대선 후보들은 정책과 공약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전에 포퓰리즘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한 싸움부터 힘겹게 벌여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경제지를 읽는 독자들은 이 포퓰리즘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경제지들, 정책 경쟁 주문해놓고 정책에 대한 이성적 분석 없어
경제지들은 대선 후보들에게 정책 경쟁을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경제지들이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분석과 검증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며 긍정적인 역할도 크다. 그럼에도 경제지들의 분석과 검증은 적잖은 부작용과 폐해를 낳고 있다. 특히 ‘포퓰리즘’이라는 마법의 칼을 마구 휘두른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28일 매일경제는 <사설/대선 후보 가려질 슈퍼위크 이젠 본격적인 정책 경쟁을 하라>(3/28 https://goo.gl/q219dj)에서 정책 경쟁을 주문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지난주에 확정되거나 윤곽을 드러낸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런 때일수록 차분한 정책 대결을 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사설은 조기 실시되는 대통령선거에 후보가 난립하고 네거티브 공방까지 가세하면서 대선주자들의 국정운영 역량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각당 후보들의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며 우리 앞에 산적한 안보·경제 과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매일경제의 대기업 감싸기 도를 넘어
그러나 그 이틀 뒤인 30일 같은 신문이 1면에서부터 크게 실은 대선 주자 공약 검증은 자신의 정책 경쟁 주문에 상응하는 분석과 검증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매일경제 <대선주자, 대기업 손보기 최우선…노동개혁은 ‘뒷전’>(3/30 기획취재팀 https://goo.gl/admrTB)는 매일경제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함께 실시한 대선주자 정책검증 설문 결과를 토대로 작성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수석과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씨가 이사장이다. 기사 내용은 대선주자들이 “최우선 개혁 분야로 대기업 집단을 꼽았다”면서 “대기업의 특권과 반칙을 줄여 공정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주장이지만, 자칫 기업 경영과 투자활동을 위축시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면서 이를 ‘대기업 때리기’,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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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개혁’ 정책을 ‘대기업 때리기’ ‘포퓰리즘’으로 규명한 매일경제 보도(3/30)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이재명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은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대기업집단 중 어느 부문을 가장 먼저 개혁할 것이냐는 물음에 나란히 대기업을 꼽았다. 대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강화하겠냐는 질문에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한 9명이 ‘그렇다’고 밝혔다. 기사는 이런 대선주자들의 답변을 ‘대기업 손보기’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 기사는 제목에서부터 대기업 개혁은 ‘손보기’이고, 노동 관련 현안은 ‘개혁’으로 돼 있어 두 사안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매일경제 <‘10명중 9명’ 대기업 배싱 예고…기업경영 위축 우려’>(3/30 https://goo.gl/mNCTA9)라는 기사는 더욱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제목과 첫 문장에서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대기업 타도’를 내걸고 있다고 해서 ‘타도’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제목만 본다면 대선 주자들이 마치 대기업을 적으로 보고 섬멸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한 듯하다. 제목에서 쓴 것처럼 ‘대기업 배싱(bashing)’이 격해지고 있다면서 ‘심한 비난’과 공격을 뜻하는 ‘배싱(bashing)’이라는 용어도 쓰였다.


기사는 이에 대해 “대기업을 때리면 표가 나온다는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선 후보들이 밝히고 있는 대기업 개혁의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 “재벌 총수 일가는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세금 탈루, 사익 편취 등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고 기업의 건전성을 파괴하는 불법행위의 몸통이었다” “총수 일가의 탈법 경영을 청산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재벌의 불법, 불공정 관행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개혁해 경제정의를 이루고 혁신기업들의 성장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진보’라고 분류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 외에도 ‘보수’이며 친 기업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자유한국당의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이인제 전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 범보수 후보들까지 앞다퉈 대기업 개혁을 얘기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단지 “뿌리 깊은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공약” “표만을 좇는 행태”일 뿐이며 “대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는 지금도 과도할 정도로 많은” 상황에서 대기업 때리기로 인해 “앞으로 대기업의 경영권 방어나 투자활동에 있어 험로가 예상”될 뿐이다. 


이 신문의 시각으로는 “좌파들이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강성노조가 걸핏하면 파업하는데 어느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겠냐”며 “기업에 대한 모든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만이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직한 시장경제 수호자로 비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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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대선주자의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싸잡아 규정한 한국경제 데스크 칼럼(3/27)


 

한국경제도 포퓰리즘으로 몰고가는 편집방침 확고해

 

포퓰리즘 낙인은 거의 모든 경제지들에서 마치 하나의 편집방침처럼 확고하게 뿌리 내려 있다.  


한국경제의 데스크칼럼 <차병석의 데스크 시각/‘고삐 풀린 포퓰리즘’>(3/27 차병석 산업부장 https://goo.gl/LmyAAT)도 포퓰리즘에 대한 비상경보를 요란하게 울려댄다.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 선거에선 포퓰리즘이 필연적이기도 하다”면서도 부실 가계부채 탕감(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10년 일한 국민에게 1년간 유급휴가(안희정 충남지사), 농어민·노인·청년에게 연 100만원 기본소득 지급(이재명 성남시장),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기업 80% 수준 임금보장(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국민연금 최저 수급액 인상(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을 싸잡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공약을 실천하려면 문재인 27조원, 이재명 61조원, 안철수 6조원, 유승민 8조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 분석을 제시한 이가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이며 한 종편에 나와 “연극인들이 노골적으로 풍자하니까 블랙리스트가 나오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물의를 빚은 인물이라는 점은 차지하자. 모든 정책과 공약에는 돈이 들어가며 문제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거기에 돈을 쓰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지, 그렇다면 그 재원마련과 예산의 배분안은 어떻게 짤 것인지 등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포퓰리즘’이란 낙인이 씌워지면 합리적 숙의 불가

 

여기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인기영합주의’를 뜻하는 포퓰리즘에는 그 말 그대로 깊은 생각 없이 무책임하게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공약을 남발하는 것으로 주로 쓰인다. 그러나 ‘국민의 지배’라는 말에서 비롯된 민주주의는 그 본질적 속성에서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깔려 있다. 무엇이 포퓰리즘이며 무엇이 포퓰리즘이 아닌지 구분하기가 그만큼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 씌워지는 부정적 어감을 생각할 때 이 용어를 쓰는 데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이 일단 씌워지면 합리적이고 냉철한 논의와 숙고가 들어서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대선 후보 캠프에서 내놓은 정책들이 설익거나 대중의 요구에 대한 표피적인 수준의 대응인 경우도 적잖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 개혁과 같은 요구가 국민의 절대다수로부터 광범위하게 분출하고 있다면 먼저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먼저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가 거치고 있는 촛불 혁명을 통한 대한민국 사회 대 개조 작업에서 왜 대기업 개혁이 최우선 과제이자 가장 중대한 과제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섣부르게 대기업 때리기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낙인부터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위의 ‘고삐 풀린 포퓰리즘’은 “제발 표 때문에 쪽박만은 깨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쪽박이 깨지면 결국 배고픈 사람은 국민이다’고 끝을 맺고 있는데, 이때의 ‘국민’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정부=가해자 vs 대기업=피해자’ 이분법  

 

한국경제 <박재완 칼럼/‘대통령 탄핵이 남긴 숙제’>(3/27 박재완 교수 https://goo.gl/JJ7z4g)은 대기업 개혁에 대한 경제지들의 포퓰리즘 낙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보여준다. “탄핵 심판이 마무리된 이제 대안들을 진지하게 모색하자”는 말로 시작하는 이 칼럼은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와 간섭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논리 전개가 납득하기 힘들다. 


“기업의 문화·스포츠재단 출연이 뇌물인지 준조세인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 배경은 정부의 영향력에 있다. 정부에 불투명한 재량이 없다면 출연의 반대급부든, 불응에 따른 불이익이든 파생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압축 산업화를 이끈 ‘발전·조장행정’의 유산 때문에 시장에 맡길 사안조차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상대비교성향이 강한 데다 자기책임원칙이 미흡한 틈새를 정부·입법만능주의가 메우고 있다. 이에 따라 폭주하는 정책 수요의 충족이 어려워지면서 그 부담을 기업에 떠넘기는 일이 잦다. 요컨대 최순실 사태의 뿌리는 ‘숨은 큰 정부’이고 그 토양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이다. 정부 입김의 축소보다 최순실 사태의 재발을 막는 더 나은 대안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준 것은 권력의 부정과 대기업의 부정이 유착된 상황이다. 그러나 칼럼은 정부를 가해자로, 대기업을 피해자로 나눈다. 정부의 영향력만 없다면, 정부의 불투명한 재량만 없다면 기업은 잘 운영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장. 수사 관행을 선진화해야 한다는 일견 당연한 얘기지만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가 그 다음에 나온다. “피의자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밤새워 20시간 이상 조사하는 것은 가혹 행위로 비난받을 수 있다”고 전제를 달고는 곧바로 “기업인들에 대한 출국 금지와 구속수사에 대해 수사권이 남용된 것은 아닌지 자성하기 바란다”는 훈계를 내놓고 있다.

 

 

대기업을 향한, 특히 그 총수를 향한 경제지의 ‘포퓰리즘’부터 성찰하길

 

이 같은 논리를 이어받은 듯한 것이 <‘글로벌 기업인을 뛰게 하라’>(3/27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https://goo.gl/qsScwW)는 칼럼이다. 


“우리나라에 반기업 정서가 만연해 기업인 사기는 떨어지고, 기업을 잘되게 하기는 커녕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만 늘어나고 있다”고 필자는 한탄한다. 경제지들과 대기업인들, 일부 학자들이 끊임없이 얘기하듯 과연 한국에 반기업 정서가 만연한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다만 설령 그렇다면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를 살펴봐야 할 터이지만 이 칼럼은 “기업인들의 글로벌 활동을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기업인들은 기회가 와도 살릴 수가 없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번이나 트럼프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고” “최태원 SK 회장은 다보스포럼에 이어 중국 보아오포럼 참석까지 좌절됐으며” “중국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 회장은 8개월가량 국내에 발이 묶여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범법 행위 혐의에 대해 수사를 하고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고 쉽사리 면죄부와 특권을 주는 것이 과연 ‘글로벌 기업’ ‘글로벌 기업인’에게 요구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것일까라고. 백보 양보해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경제지들의 대기업을 향한, 특히 그 총수를 향한 포퓰리즘에 대해선 뭐라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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