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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이 암살’…‘카더라’ 판친 ‘김정남 피살’ 보도2017년 2월 17일~2월 21일
국내언론에게 김정일 피살은 무엇이었을까. 북한 최고 통치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김정은의 장남으로 김정은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인물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었다. 당연히 매우 큰 뉴스거리였다. 그러나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내용이 추측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언론은 차분하게 확인된 소식 위주로 보도하고 정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김정남 피살 관련한 방송보도는 한마디로 ‘북한 상업주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김정남 피살’이 뉴스 절반을 뒤덮었고 내용에서는 ‘찌라시’ 수준의 ‘카더라’가 대다수였다. 민언련은 방송 7사(지상파 3사, 종편 4사)의 저녁종합뉴스의 김정남 관련 보도를 모니터했다. TV조선과 KBS의 김정남 피살 관련 뉴스가 특히 비정상적이었다.
KBS와 TV조선의 과도한 김정남 뉴스
국내 언론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씨가 피살됐다는 뉴스가 전해진 건 2월 14일이다. 그 후 국내 언론들은 김정남 피살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특히 KBS와 TV조선은 과도한 양을 김정남 피살 사건에 할애했다. 용의자 2명이 체포되면서 사건 윤곽이 드러난 17일부터 북한대사관의 개입이 발표되기 전날인 21일까지, KBS는 55건을, TV조선은 무려 77건을 보도했다.
△ 2월 17~21일 김정남 피살 사건 관련 7개 방송사 보도량
하루 평균 KBS는 11건, TV조선은 15건을 보도한 셈인데, 하루에 전체 뉴스가 대략 25꼭지(KBS), 35꼭지(TV조선)인 사실을 감안하면 두 방송사 모두 전체 뉴스의 절반 가까이를 ‘김정남 피살’에 할애한 셈이다. TV조선의 경우 21일, 김정남 관련 뉴스만 20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가장 적은 방송사는 JTBC로 5일 동안 14건을 보도했다. TV조선은 JTBC가 5일 동안 낸 보도량을 하루에 쏟아낸 것이다.
톱보도를 보면 KBS와 TV조선의 ‘김정남 뉴스 편향’은 더 두드러진다. 14일부터 22일까지 9일 간 KBS는 17일 하루를 제외한 8일간 김정남 피살을 톱으로 냈고 TV조선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김정남이 톱보도였다. 이들과 비슷한 수준을 보인 것은 MBC뿐이다. MBC는 14일과 17일 이틀을 제외한 7일간 김정남 피살을 톱으로 냈다.
이에 반해 SBS는 15일과 19일 이틀만, JTBC는 15일 하루만, MBN은 15‧16‧21일 3일만 김정남 피살을 톱에 배치했다. 채널A는 9일 중 5일을 ‘김정남 톱보도’로 시작했다. 문제는 22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대사관 직원의 개입을 발표해 ‘북한 배후설’을 시사하기도 전에 방송사들이 ‘김정은 암살 지시’를 전제했다는 것이다. 이 전제 하에 각종 선정적 보도가 쏟아졌고 결과적으로 과도하게 공포심을 자극하는 뉴스로 점철됐다.
‘북한 공작관’ 및 정찰총국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TV조선
22일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대사관 직원 현광성과 고려항공사 직원 김욱일이 이번 김정남 암살사건에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사건 초기부터 의심됐던 ‘북한 배후설’의 정황이 공식화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전부터 국내 언론은 북한이 배후라고 확신했다. 14일, 여성 두 명이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방송사들은 앞 다퉈 ‘북한 여성 공작원’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16일, 여성 용의자의 국적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인 것으로 밝혀지자 방송사들은 ‘북한의 청부 살해’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확인되지도 않은 ‘북한 배후설’을 처음부터 전제하다 벌어진 촌극이다. 이후에도 방송사들은 과도한 추측성 보도로 ‘북한 배후설’에 살을 붙여 나갔다.
특히 ‘단정적인 추측’이 난무했던 방송사는 TV조선이다. TV조선은 아예 ‘북한 공작관’ 및 정찰총국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 TV조선 <김정남 독살 배후인물>(2/18 https://bit.ly/2kGtLZM)에서 이상목 앵커는 “용의자들 말고 배후에 있는 인물이 사업가죠. 한훈일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특정했다. 한훈일을 배후로 꼽은 이유는 “김정은 집권과 장성택 처형 후에 김정은 쪽으로 돌아섰고, 김정남 지원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 전부다. ‘리영’이란 인물도 배후로 거론했는데 이유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검거한 북한 여권을 가진 리정철이라는 인물과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뿐이었다. 앵커는 “김정남이 가끔 묵어가던 말레이시아 집이 몇 년 전 화재가 났다면서요? 혹시 당시에도 김정남을 암살하려던 게 아니었을까요?”라며 2014년 2월 있었던 화재도 ‘북한의 암살 시도’로 지목했다. 이유는 “당시 북한대사관 사람들은 화재를 보고도 수수방관했다”는 것뿐이다. 정확한 배경이나 근거가 없이 추측들만 나열한 ‘카더라’ 보도이다.
△ 근거도 없이 ‘암살 배후 인물’까지 특정한 TV조선(2/18)
TV조선 <정찰총국 개입 증거 확보>(2/19 https://bit.ly/2lB1UcO)는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가 “사건 배후에 북한 정찰총국이 있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보도한 것을 근거로 북한 정찰총국이 개입했다고 확신했다. 기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 용의자는 ‘행동공작원’, 해외로 도주한 북한 남성들과 리정철은 ‘주공작원’, 그리고 정체불명의 ‘공작관’이 현장 총책으로 상황을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거는 “공작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주공작원에게 모든 임무를 맡기고 벌써 13일 9시가 되면 (상급) 공작관은 현지를 이탈합니다”는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의 인터뷰였다. 그러나 TV조선이 스스로 보도했듯 이날 현지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배후를 밝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4명의 용의자는 모두 북한 국적자”라고만 말했다. TV조선은 이를 보도하면서도 “북한 공작부서의 조직적 개입 가능성이 크다”고 단정했다.
TV조선에서는 이런 보도가 매일 나왔다. 20일에는 ‘북한 배후설’을 사실로 전제한 보도가 4건이나 됐다. TV조선 <北 용의자 4명, 3개국 거쳐 평양에> (2/20 https://bit.ly/2lCBXtV), <약재상으로 활동, 암살 관여는 부인> (2/20 https://bit.ly/2m04yK7) 등 4건의 보도는 모두 북한 공작원의 살해가 확실하다고 못 박았다.
북한의 암살 배경도 모두 ‘카더라’, 그 와중에 KBS‧TV조선은 ‘자가당착’
이렇게 북한이 암살 배후라는 점, 북한 공작원이 김정남을 암살했다는 보도에는 항상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한 이유’도 따라 붙었다. 이런 보도들 역시 모두 추정과 관측으로만 구성됐다. 북한 관련 보도의 주요 취재원인 익명의 ‘대북소식통’이 또 등장했다.
MBC <‘재력가’ 김정남‥비자금 행방은?>(2/17 https://bit.ly/2kFi5BN)는 “김정남이 숙부 장성택으로부터 북한의 비자금을 받아 관리해왔고 그 액수가 상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면서 김정남의 비자금 때문에 김정은이 암살을 지시했다는 가설을 보도했다. MBC는 ‘대북소식통’의 “유엔 안보리 제재로 돈줄이 말라버린 김정은이 김정남에게 비자금 반납을 지시했지만 이를 따르지 않자 암살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전했고 “김정남의 가족을 돌보고 있는 중국 측이 북한에 협조하지 않으면 자금 회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피살 원인은 지금도 확인된 바가 없다.
KBS는 체포된 리정철을 주범으로 규정하려다 하루 만에 말을 바꿔야 했다. KBS <리정철 정체 주목…“암살 범행 주도한 듯”>(2/18 https://bit.ly/2kGIwvY)은 “체포되지 않은 나머지 남성용의자 3명은 범행 당시 이정철과 약간 떨어진 곳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정철이 이번 범행을 주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범행 후 나머지 용의자가 다른 국가로 도주한 것과 달리 리정철은 집에서 체포됐다. 범행을 주도했다는 증언이나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인 19일, KBS는 말을 바꿨다. <리정철 6개월 전 입국…“연락책 역할 한 듯”>(2/19 https://bit.ly/2l93Cl3)에서 “시내까진 차로 10분, 공항까진 40분 거리로 교통이 편리한 이곳에서 현지 연락책을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하루 만에 리정철의 역할을 ‘범행 주도’에서 ‘현지 연락책’으로 축소한 것이다.
TV조선은 ‘김정남 망명정부설’을 조명하다가 역시 자가당착에 빠졌다. TV조선 <더하기 뉴스/말레이 언론 “김한솔, 곧바로 병원행 예상”…김정남, 중국 공안 귀찮아해>(2/20 https://bit.ly/2lCHqAL)에서 김한솔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했다면서 “그러니까 김한솔이 자신의 작은 아버지, 김정은에게 어떻게 보면 선전포고를 하는 거군요”라고 전했다. ‘김한솔의 입국은 김정은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주관적인 추정이다. 이런 보도는 오히려 김한솔의 신변에 위험을 줄 수 있다.
TV조선은 21일, <“아들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세우려”>(2/21 https://bit.ly/2lhYTOf)라는 리포트에서는 망명 정부의 수반을 맡아달라는 탈북단체의 제안에 “김정남은 자신보다 아들 한솔 씨를 전면에 내세웠으면 하는 생각을 한걸로 보”인다는 정보 당국 관계자의 주장도 전했다. 하지만 17일 TV조선은 <‘망명 정부’ 추진 인사들과 접촉설>(2/17 https://bit.ly/2l0or23)에서 “김정남과 교류해온 일본 도쿄신문 고미 요지 편집위원은 TV조선과 통화에서 ‘지난 2011년 복수의 단체가 만든 김정남 집권 플랜을 김정남에게 전달했다’며 ‘당시 김정남이 다시는 이런 자료를 보내지 말라고 화를 냈다’”고 보도한 바 있다. TV조선 스스로 김정남이 ‘망명 정부 추진’에 화를 냈다고 보도해놓고 나흘 만에 김정남이 망명 정부 수반으로 김한솔을 내세웠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암살 배경을 두고 흥미 위주의 보도를 내려다 자초한 ‘자가당착’의 사례이다.
또 ‘북풍’, 불안감 조성하는 KBS
KBS는 이렇게 증거나 현지 경찰의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북한 배후설’을 확정한 보도들을 내면서 우리 안보도 불안하다는 보도를 이어 붙였다.
KBS는 17일, 북한 용의자들의 행적, 김정남의 동선, 북한의 사건 은폐 의도 및 김정남 암살 시도 사례, 중국 및 미국의 대응을 보도한 후 <관측소·발전기 포착…심상찮은 북한 섬들>(2/17 https://bit.ly/2kQMqOQ)이라는 보도를 냈다. “2010년 북한이 포격 도발했던 연평도, 그 코앞인 북한 무인도에 군사시설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을 단독으로 전한 보도이다. 북한 갈도에 지난해 초에는 없던 “관측소로 추정되는 시설물”이 생겼고 장재도에는 “풍력과 태양열 발전 설비시설들이 버젓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KBS는 이런 변화와 “지난해 11월 북한 김정은이 직접 찾아 전투준비 강화와 시설보강 등을 주문”한 사실을 묶어 “지나칠 수 없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감지”됐다고 열을 올렸다. KBS 카메라가 포착한 시설물들이 군사 시설인지는 확인되지도 않았고 KBS 스스로도 “군사시설과 시설 지원용 자가발전 설비로 추정”된다는 자막을 썼다. 북한이 자기 영토에 시설물을 설치했는데 기자는 마치 북한이 부당한 일이라도 벌인 양 “버젓이 들어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연평도 주민 등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어지는 KBS <“北 교란 무력화”…GPS 유도폭탄 실전 배치>(2/17 https://bit.ly/2lec4y3)는 “우리 군이 새로운 유도폭탄을 실전배치”해서 “유사시 북한이 GPS를 교란한다 해도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보도에 이어 우리 군의 ‘북한 타격’을 덧붙인 것이다.
21일에는 <독살·저격·납치…‘北 테러’경호 비상>(2/21 https://bit.ly/2mhF7jz)에서 탈북인사들이 테러 위험에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암살조를 국내에 잠입시켰다는 첩보가 입수되면서 주요 탈북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경계령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암살조 잠입’이라는 첩보의 출처조차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난 2011년 8월 중국 단둥에서는 김창환 선교사가 숨진 사건, “바로 다음날 옌볜에서는 강호빈 목사가 독침에 찔렸”던 사건,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년 전 독살 위기를 넘겼”던 사건 등, 과거 사례로 심증만을 내비쳤을 뿐이다. 자극적인 소재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전형적인 북풍몰이’ 보도이다.
‘정세현 전 장관이 북한을 정당화했다’? 어김없이 등장한 ‘색깔론 보도’
‘김정남 피살 사건’을 빌미로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보도 뿐 아니라 국내 인사에 대한 ‘색깔론’도 어김없이 나왔다. ‘타깃’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었다. 20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오마이TV <장윤선의 팟짱>에서 한 인터뷰가 논란이 됐다. 정세현 전 장관은 “김정은의 이복형을 죽이는 것에 대해 비난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김구 암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및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 등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건 권력 장악한 사람들의 속성”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우리 역사에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21일, KBS‧MBC가 1건, TV조선은 무려 4건을 할애해 이러한 ‘정 전 장관 색깔론 논란’을 집중 조명했다. TV조선 <“김정은 비난할 처지 아냐”>(2/21 https://bit.ly/2m7xlt3)는 정 전 장관이 “김정남 암살 사건을 김대중 납치 사건, 김구 선생 암살 사건에 비유”하고 “정적을 제거하려는 건 권력의 속성이고,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한 뒤 “김정남 피살 사건을 어찌 들으면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이라 규정했다.
TV조선 <“경악, 분노…문 입장 밝혀야”>(2/21 https://bit.ly/2l615pi)는 “다소 해괴한 논리”라 비난했고 TV조선 <“그런 뜻 아닐 것” 감싸는 문>(2/21 https://bit.ly/2kK1AJw)는 정 전 장관을 영입한 문재인 전 대표가 정 전 장관을 감쌌다며 함께 걸고 넘어졌다. TV조선 <윤정호의 앵커칼럼>(2/21 https://bit.ly/2kXncxu)에서윤정호 앵커는 ‘살해당한 사람은 김정남이 아니라 자연사한 김철’이라 주장하는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를 “백마가 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격”이라 비판하더니 “북한 못지않게 황당한 발언이 우리 곁에서도 나왔”다고 주제를 틀었다. 정세현 전 장관을 겨냥한 것이다. 윤 앵커는 “북한을 제외한 세계에서 김정은 정권의 야만적 패륜적 독살사건을 대놓고 합리화한 거의 유일한 공인”, “말로 짓는 죄”라며 맹비난했다. KBS와 MBC도 1건의 보도로 “북한의 비위나 맞추려는 왜곡된 인식에 과연 문재인 전 대표도 동의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과 같은 정 전 장관에 대한 정치권의 ‘색깔론 공세’를 그대로 받아썼다.
이는 정 전 장관의 발언 취지를 제멋대로 해석해 엉뚱한 비난을 가한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우리나라에도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권력자의 권세가 유지됐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고 이런 역사가 김정남 피살만큼이나 잔혹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그 어디에도 북한을 정당화한 대목은 없다. 이번 사건으로부터 어두운 우리 역사를 반성하자는 취지가 어떻게 ‘북한을 정당화한 유일한 사례’, ‘말로 짓는 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 역사를 반성하면서도 북한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비판해서는 안 되고, 북한만 적나라하게 비난해야 정상이라는 TV조선의 비뚤어진 안보관이 잘 드러난 보도이다.
‘김정남 피살’을 가십으로 소비하는 언론들
김정남 방송사들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가십’으로 다루기도 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을 빌미로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 위협과 국내 색깔론까지 풀어 놓으며 ‘공안몰이’를 한 것과는 상반된 태도이다. 방송사들이 ‘김정남 피살’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지 않고, 특정한 정치적 의도와 장삿속으로 다루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만한 대목이다.
TV조선 <김치찌개 즐겨…“평범한 삶이 소원”>(2/17 https://bit.ly/2m1UUmt), <단독/김정일 생일에 ‘6세부터 충성 편지’>(2/17 https://bit.ly/2lqBtGE)는 김정남의 음식 취향과 유년 시절 등 신변잡기에 집중했다. TV조선 <독극물 공격에 의식 잃어>(2/18 https://bit.ly/2kGFbNa)는 김정남 사망 직전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연한 색상의 청바지에 짙은 색 티셔츠, 루이비통 벨트, 카키색 가죽 구두 차림”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브랜드 이름까지 언급한 것이다.
가십성이 특히 두드러지는 보도는 TV조선과 MBN의 ‘김정남-서영라 내연설’ 보도이다. MBN은 <서영란 행적 묘연 암살 알고 있었나>(2/20 https://bit.ly/2lhiaiN)에서 서영라의 행적이 묘연하고 “우리 정보당국은 서영란(서영라의 가명)이 단순 경호원이 아니라, 북한노동당 소속의 '대남 공작원'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김정남 암살 계획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정보당국’ 외에는 그 어떤 출처도 없는 ‘카더라’ 보도이다.
△ ‘내연녀 서영라도 공작원’ TV조선의 가십보도(2/18)
TV조선은 서영라가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일했다는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 결과를 두고 <단독/김정남 옆 서영라 北공작원>(2/18 https://bit.ly/2lh9d99)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TV조선은 “김정남을 경호 보좌하는 동시에 동향을 감시 보고하는 역할도 겸했을 것”, “공작원으로 김정남에게 파견됐다 결국 내연 또는 결혼 관계로 발전했을 가능성” 등 MBN과 비슷한 추정을 쏟아냈다. 그러나 서영라는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번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정확한 것이 없지만 기자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하고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보도였다. 이는 그저 ‘내연녀 공작원’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팔아먹는 행태일 뿐이다.
‘김정남 피살 CCTV 유출’에 현지경찰 수사 돌입…KBS‧MBC는 ‘모르쇠’
김정남 피살 CCTV가 20일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일본의 일부 언론사가 확인되지 않은 경로로 영상을 입수해서 방송한 것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암살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개한 적이 없다면서 유출 경로를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CCTV를 최초 보도한 방송사 중 하나인 후지 TV는 자사 영상을 인용한 매체들에게 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방송사들도 후지TV의 CCTV 영상을 20일부터 가져다 썼다. SBS는 <3초도 안 걸렸다..피습 장면 공개>(2/20 https://bit.ly/2ldri7L)와 <한동안 멀쩡..어떤 독?>(2/20 https://bit.ly/2lmrPTB)에서 김정남 CCTV를 공개했으나 본방송 이후 인터넷 다시보기에서는 CCTV장면을 삭제했다. JTBC는 <북 대사 “피살자 김정남 아니다” 발뺌>(2/20 https://bit.ly/2megfsD)이라는 보도에서 CCTV영상을 사용했으나 방송 다음날은 해당 영상을 삭제했고 지금은 해당 CCTV 장면만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 대체하고 있다. TV조선도 김정남 CCTV를 총 8건의 리포트에서 사용했는데 인터넷 다시보기에서는 해당 보도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채널A와 MBN은 김정남 피살 CCTV 영상을 보도에 쓰지 않았다.
△ 현지 경찰의 수사에도 CCTV 영상 안 지우는 KBS
그런데 KBS와 MBC는 아직도 영상을 지우지 않고 있다. KBS는 20일 헤드라인부터 TV를 먼저 보여줬고 첫 리포트 <암살 CCTV 공개…범행 2,3초 만에 끝>(2/20 https://bit.ly/2lg9GFT)에서도 CCTV를 내보냈다. 김정남이 전광판을 보는 모습, 이동하는 모습 및 암살 장면, 공항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무실로 향하는 모습, 실려 가는 모습까지 그대로 전파를 탔다. 다음 보도인 <여성 2명이 덮쳐…남성들 2차 공격조?>(2/20 https://bit.ly/2ldqtMz)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찍힌 암살 장면을 2가지를 각각 두 번씩 반복해 보여줬다. 이 외에도 <중국 피해 3개국 경유…도주까지 치밀>(2/20 https://bit.ly/2ldxDA7)에서도 암살 장면을 보여주는 등, 총 5건의 보도에서 김정남 CCTV 장면이 사용됐다.
MBC도 헤드라인에서 김정남 CCTV 영상을 가장 먼저 다뤘고 첫 보도인 <공격 3초도 안 걸려‥ 사전 준비한 듯>(2/20 https://bit.ly/2m3wEkH) 등 총 3던의 보도에서 CCTV를 인용했다. 그러나 KBS와 MBC는 다른 방송사와는 다르게 현재까지도 해당 영상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현지 경찰이 수사까지 선언한 CCTV에 우리의 공영방송만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놀랍고 부끄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