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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최순실 공항패션’ 보도, ‘유병언 가십보도’의 데자뷰
등록 2016.10.3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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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0일 방송사 저녁뉴스는 3일간 급박하게 흘러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전개의 이면을 잘 짚어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전폭적 참모진 인사쇄신에 시간을 둘 것으로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밤, 돌연 수석비서관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했고 같은 날,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차은택 씨도 귀국해 수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청와대와 최순실 씨 측의 대응이 동시다발로 나오면서 ‘사전조율’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30일 오전 7시 30분 경, 최순실 씨가 급거 귀국했는데 검찰은 귀국 사실을 알고도 긴급 체포를 하지 않아 증거 인멸의 시간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받고 나와 있는 이성한, 고영태 씨는 물론, 같은 날 청와대를 떠나게 된 의혹의 핵심 인물 안종범 전 정책수석과 ‘말맞추기’를 할 시간도 벌어줬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숨 가빴던 주말의 상황, 방송사들은 어떻게 짚었을까요?

 

1. 긴박했던 ‘최순실 입국 기자회견’, KBS와 MBC는 ‘정규방송’
무엇보다 이번 주말 가장 긴박했던 순간은 30일 오전 7시 30분 쯤 이뤄진 최순실 씨의 ‘비밀 귀국’입니다. 귀국 후 2시간 쯤 지나서 최 씨의 법률대리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기자회견도 열었습니다. 변호인은 연설문 수정을 제외한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하루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긴급속보를 구성해 이경재 변호사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했습니다. JTBC, TV조선, 채널A, MBN은 1시간 이상 기자회견 내용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KBS와 MBC는 정규방송을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KBS1TV는 <일요토론>을, KBS2TV는 <1박2일> 재방송을, MBC는 <복면가왕> 재방송을 중단 없이 방송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최순실 입국 기자회견’, 과연 속보를 편성할 가치가 없었을까요?

 

2. 급거 귀국에 쏟아지는 의혹, 모두 무시한 KBS‧MBC
30일 최순실 씨의 귀국은 사태를 급반전시켰습니다. 27일 최 씨의 인터뷰 기사가 공개된 이후 잠적했던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해 모든 의혹을 부인하는가 하면 청와대에서는 돌연 인적쇄신에 나서는 등 ‘사전조율’ 의혹이 나왔습니다. 최순실 씨는 인터뷰 공개 후 불과 이틀 만에 귀국을 단행한 것인데 검찰이 귀국을 알면서도 최 씨를 체포하지 않아 파문이 큽니다. 증거인멸의 시간은 물론 고영태, 이성한, 안종범 등 주요 인물들과 ‘말맞추기’를 할 가능성, 즉 ‘수사 대응 준비 시간’을 줬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지적이 KBS와 MBC 보도에는 전혀 없습니다. 두 공영방송은 30일, 최 씨의 귀국 관련 보도가 각각 3건, 4건에 불과했는데 이는 SBS 8건, JTBC 12건, TV조선 7건 등 타사에 비해 극히 적은 것입니다. 사건의 핵심 고리인 최 씨의 귀국을 KBS와 MBC가 소홀히 다뤘다는 방증입니다. 또한 두 공영방송은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나 청와대와 최 씨 측의 ‘사전교감’ 가능성을 타진하는 대신 최순실 씨의 입장만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귀국 두 시간 뒤에 법률대리인 이경재 변호사의 기자회견까지 있었지만 KBS가 전한 회견 내용은 3건을 통틀어 “태블릿 PC를 관리인에게 줘서 버리게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것뿐입니다.

 

3. MBC는 최순실 씨 귀국에 동정을 보였나
MBC <딸 두고 홀로 귀국…“하루 말미 달라”>(10/30 https://bit.ly/2eLakL8)는 제목부터 ‘딸을 두고 온 어머니의 휴식 요청’이라는 동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도는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라는 이 변호사 발언을 녹취인용한 뒤 육덕수 기자가 “최 씨가 신변에 대한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는 얘기”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쯤되면 ‘피해자 코스프레’ 아닐까요?

 

△ 의문의 귀국에 문제제기 대신 ‘동정’ 부추긴 MBC(10/30)

 

 

4. TV조선은 검찰 옹호 채널A는 정체불명의 ‘이경재 단독 인터뷰’
KBS와 MBC만 최순실 씨 귀국에 제기되는 의문에 침묵한 것은 아닙니다. TV조선과 채널A도 마찬가지입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검찰에 대한 비판을 야당의 주장으로 처리한 보도만 1건 있었고 오히려 검찰을 두둔했습니다. 특히 TV조선은 “혐의조차 확정이 안 된 상태라서 당장 최씨를 부른다고 해도 참고인 정도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검찰이 무엇을 들여다보는지 힌트만 주는 셈”이라며 시간을 벌어준 검찰을 거들고 나섰습니다. 채널A는 ‘이경재 단독 인터뷰’ 보도 <귀국 첫 육성 “딸만은 살려달라”>(https://bit.ly/2dUcf0V)에서 앵커는 “최순실 씨는 이 변호사를 통해 ‘제발 딸 유라가 욕먹는 것만은 막아달라’고 했다고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리포트에서는 기자가 “최순실 씨가 단두대 앞에 서 있는 형국”, “최 씨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다” 등 최 씨에 대한 동정적 발언도 전했습니다. ‘이경재 단독 인터뷰 보도’인데 정작 그의 목소리는 1초도 나오지 않고 시종일관 기자의 설명만 나오는 이상한 보도입니다. 

 

5. TV조선의 ‘최순실 입국 공항패션’ 보도, 세월호 참사 ‘유병언 가십보도’의 데자뷰
TV조선과 채널A의 기행은 계속 이어집니다. TV조선 <‘올 블랙’ 패션 의미는?>(10/30 https://bit.ly/2flJxHm)은 최순실 씨의 귀국 옷차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습니다. 기자는 “패딩의 깃과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으며 검정색 바지로 '올블랙'에 가까운 패션” “신발만은 ‘블랙앤 화이트’로 최신 유행인 '슬립온'을 착용” 등 민망한 수준의 리포트를 했습니다. 보도 중간에 ‘TV조선 가이드’라는 자막과 함께 ‘슬립온’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의 “올블랙 패션은 꽁꽁 숨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해, 보폭 넓은 발걸음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집니다”라는 분석까지 덧붙였습니다. 채널A도 “최신 유행 패션 치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의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며 억지로 구색을 맞췄습니다.(채널A <입국 때 최신 유행 패션 치장>(https://bit.ly/2erl3rs))

 

△ ‘최순실 귀국 공항패션’ 집중 보도한 TV조선(10/30)

 

국정농단의 주인공 패션이 굳이 1건을 따로 보도해야 할 만한 사안일까요? 도대체 무슨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보도일까요? 세월호 당시 ‘유병언 일가’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먹거리까지 특종이라며 내놓던 ‘TV조선의 악몽’이 떠오릅니다. 

 

5. SBS와 JTBC가 언론의 체면을 살렸다
이렇게 공영방송과 TV조선, 채널A가 엉뚱한 보도에 열을 올릴 때, SBS와 JTBC는 제 역할을 했습니다. SBS는 “귀국 시점을 두고 누군가와 교감이 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강조했고 27일 고영태 씨 자진 출두, 28일 최순실‧차은택 귀국 선언 등 일련의 사건 전개를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JTBC는 더 적극적입니다. 30일 최 씨의 귀국을 보도하면서 증거인멸 가능성에 4건, 사전 입 맞추기 가능성에 4건, 검찰 비판에 2건을 할애했습니다.

 

6. 이 와중에도 ‘불법‧폭력 집회’에 촉각 곤두세운 TV조선과 채널A
TV조선과 채널A는 29일 있었던 대규모 집회를 보도하면서 ‘불법‧폭력 집회’ 가능성에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불법‧폭력 집회’에 대한 집착은 두 방송사의 고질적인 버릇입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29일 저녁뉴스의 후반부 5건을 모두 ‘집회 생중계’로 구성했는데 시종일관 ‘불법‧폭력 시위’의 가능성을 엿봅니다. TV조선 <도심 대규모 촛불집회>(https://bit.ly/2eeGwWS)에서는 앵커가 “경찰이 일부 시위자들과 대치를 하면서 계속 밀거나 폭행하면 캡사이신을 사용하겠다고 경고” “일부 폭력시위자들 모습이 화면에 잡혔는데” 라며 반복적으로 ‘폭력 상황’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기자가 “일단 당연히 도로점거는 불법집회니까 경찰은 해산 방송하는 것이 당연하고 집회참가자들도 북쪽으로 가기 위해 행동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고 정리했습니다. 화면에는 “시위대 선두, 경찰과 몸싸움 치열”이라는 자막과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갔습니다.

 

△ ‘성난 민심’ 알면서도 있지도 않은 ‘불법‧폭력 시위대’ 강조한 TV조선‧채널A(10/29)

 

채널A <촛불 시위대, 광화문으로 행진>(https://bit.ly/2dV9rka)도 “일부 참가자가 종로 1가에서 청와대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이라는 설명과 “경찰-시위대 물리적 충돌”이라는 자막을 계속 내보내는 식입니다. 심지어 TV조선은 집회 생중계를 하다말고 ‘안종범‧김종 압수수색’을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 순간에도 화면은 집회 장면이었고 자막은 ‘경찰 수명, 시위대에 끌려가기도’였습니다. 채널A도 마찬가지여서 보도 내용과 화면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일괄 사퇴인데 자막은 “경찰-시위대 물리적 충돌” 등 ‘폭력 시위’를 부각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SBS는 30일 “시민들은 끝까지 평화적인 모습으로 분노한 민심을 표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TV조선과 채널A가 얼마나 ‘과민반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TV조선과 채널A는 ‘불법‧폭력 집회’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걸까요?

 

7. MBC는 또 엉뚱한 초점 맞추더니 하루 만에 ‘최순실 PC 맞다’
MBC는 주말 간, 놀라운 태도 변화를 보였습니다. 28일 MBC는 고영태, 이성한 씨의 소환 조사를 다룬 <‘측근’ 줄줄이 소환…고강도 조사>(10/28 https://bit.ly/2eacsve)에서 “태블릿 PC의 개통자와 실제 사용자, 소지자가 서로 일치하지 않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또 ‘태블릿 PC 소유’ 논란에 각을 세웠습니다. 이런 태도는 타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같은 날 MBC는 <‘최순실 공방’에 밀린 예산안심사>(10/28 https://bit.ly/2eaf7Fh)라는 보도를 내면서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가 내년 예산안 처리를 연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타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도입니다.

이렇게 ‘최순실 국정농단’에 ‘물타기’를 시도하던 MBC는 검찰의 청와대를 포함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수석비서관 일괄 사퇴가 이뤄진 29일,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문제의 태블릿 PC를 최 씨 이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검찰의 입장을 단독으로 보도하더니 최순실 씨의 귀국 결정 배경을 짚는 보도에서는 “잠적 기간 동안 핵심 당사자들 간에 대응 전략에 대한 조율과 입 맞추기를 끝마쳤을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입니다. 왜 이런 뚜렷한 입장 변화가 생겼을까요? 혹시 ‘보이지 않는 손’이 MBC에도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6년 10월 28일~30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쇼판>,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문의 이봉우 활동가(02-39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