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양성평등과 성표현 관련 방송민원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결과 분석보고서(2016.8.29)
심의규정 위반해도 ‘사회통념상 괜찮다?’ 존재 이유 부정하는 방심위
방송은 국민의 인권감수성 향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방송은 인권의식 확산을 위해 모든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방송보도는 인권을 침해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방송 보도는 아직도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인권을 침해하고 개인과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영상과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시청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면이 큰 방송보도에서 소수자에 대한 인권 존중 의식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의식조차 하지 못한 듯 부주의한 보도가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방송의 저녁종합뉴스와 종편 시사토크쇼 등을 모니터하면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하 방송심의규정)을 어겼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방송심의 민원을 제기해왔다. 그런데 최근 성폭력, 성매매 등 양성평등 관련 조항을 위반한 사례관련 조항이 많았다. 최근 방송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나 비유, 성표현, 삽화 및 재연을 거르지 않고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1. 민언련 민원 신청 결과
민언련은 방심위에 2015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양성평등과 성표현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34건의 방송민원을 제기했다. 민언련이 심의를 요청한 방송민원 34건에 대한 방심위의 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살펴보았다.
민언련이 제기한 방송민원의 심의 결과는 초라한 수준이다. 민언련은 총 34건 중 법정제재(중징계)에 해당하는 경고는 1건에 불과하다. 주의는 단 한 건도 없었고, 행정지도인 권고가 13건, 의견제시가 1건 있었다. 이외 전체 민원의 절반 이상이 문제없음(4건)과 기각(15건)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민언련이 제기한 34건의 양성평등 및 인권침해 관련 방송심의 요청에 대해 방심위가 법정제재 처리한 것은 달랑 이 사례 한 건 뿐이다. 이 방송에 대해서 경고 처분한 잣대로 다른 방송을 적용했다면,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은 13건과 ‘의견제시’를 받은 1건의 방송도 민언련이 판단하기엔 모두 법정제재를 받았어야 할 수준이었다. ‘문제없음’을 받은 4건도 최소한 행정지도를 받았어야 될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15건(44.1%)에 달하는 방송민원이 기각되었다는 것이다. ‘기각’은 방심위 심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했다는 의미이다. 민언련은 과연 이런 심의결과가 적절한 것인지, 어떤 내용이 벌점 하나 받지 못하는 ‘권고’를 받았고, ‘문제없음’ 처리가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민언련이 제기한 양성평등과 인권 관련 조항 위반 사례 34건 중 법정제재는 단 1건
■ ‘경고’받은 MBN ‘뉴스파이터’
민언련이 제기한 민원 중 유일하게 경고를 받은 MBN ‘뉴스파이터’ <13세 소녀를 간음한 73세 할아버지…왜?>(2015.11.3)는 매우 선정적이고 부적합한 삽화가 그대로 방송에 노출된 사례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2월, 73세 노인이 13세 소녀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두 차례나 성폭행한 사건을 다뤘다. 보도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깨를 노출한 채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뒤에서 끌어안는 삽화가 전파를 탔다. 성폭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심지어 이 삽화는 4~5차례 반복적으로 노출됐고 클로즈업과 같은 효과로 동영상처럼 보이도록 편집하기까지 했다.
이는 방송심의규정 제35조(성표현) ②항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 된다”를 위반한 사항이다. 방심위는 이 방송에 대해서 “성범죄 사건 가해자의 범행 장면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묘사한 삽화, 범행 영상 및 피의자와의 인터뷰 등 범죄수법이 모방되거나 유사 범죄의 동기가 유발될 소지가 있는 내용, 진행자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 등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줄 소지가 있는 내용 등을 방송했다”며 ‘경고’로 의결했다. 그러나 방심위가 기각을 결정한 다른 사례들도 위 MBN 보도와 비슷한 수준의 방송들이어서, 방심위의 심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3. 방송심의규정 어겼는데 벌점 없이 ‘행정지도’로 끝?
■ 민원 중 절반이 ‘행정지도’, 전부 벌점 하나 못 받을 가벼운 사안이었나?
민언련이 방심위에 제기한 민원 34건 중 14건이 행정지도를 받았다. 그중 13건이 ‘권고’, 1건이 ‘의견제시’였다. 행정지도는 방송사 입장에서 재승인 과정에서 벌점을 받지 않는 조치이다. 이 중 여성비하(표현, 비유, 성차별)에 관한 것이 1건, 성표현(선정적 묘사, 성 상품화)에 관한 것은 13건이다. ‘의견제시’로 처리된 1건은 여성비하에 해당하는 방송이었다. 방심위가 통보한 행정지도 수준의 방송을 <표2>로 정리해 보았다.
■ 법정제재를 받아야 할 방송이 행정지도로 하향 평가된 것은 아닌가
방심위가 ‘권고’, ‘의견제시’로 의결한 14건의 방송민원 중 여성비하가 2건, 성표현이 12건에 달한다. 성표현에 해당하는 12건의 방송은 2건을 제외하곤 성범죄, 성추행을 다룬 방송이었다. 연예인의 성범죄 논란이 일자 종편에서는 시사토크, 뉴스 프로그램의 구분 없이 연일 보도했다. 누가 더 자극적이고 자세하게 보도하는지를 경쟁하고 있는 이 방송들에게 방심위의 ‘행정지도’ 처분은 ‘봐주기’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 엄연한 불법행위인 성매매에 대해 문제의식 없이 언급하고, 홍보하듯 떠들어도 솜방망이
채널A <쾌도난마>(6/14)에서 이용환 앵커는 “사건이 발생한 이 업소 같은 경우는 ‘텐카페’라고 불리는데 VVIP만 출입할 수 있는 아주 고가라 그러더라고요”라며 운을 뗐다. 그러자 패널인 백현주 대중문화전문기자는 “어두컴컴한 지하창고 내려가서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면 황제들이 머물 것 같이 성처럼 되어있다. 안에 인테리어도 화려하고. 아무튼 텐프로가 사그라들고 텐카페가 라이징하면서 북창동식 풀사(?)로 해서 굉장히 돈을 많이 쓰는 소위 유흥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선호하는 곳으로…”이라며 업소 내부구조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는 성매매의 불법성을 지적하기보다도 사건이 벌어진 유흥업소의 성격과 운영방식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것이며,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흥미 유발성 소재에 치우친 것이다.
이들 방송은 성범죄에 대해 불필요한 묘사를 한 것은 물론이고, 성매매라는 불법행위를 방조 또는 홍보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35조(성표현) 2항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 된다”를 위반한 것이다. 채널A <종합뉴스>(6/17), MBN <뉴스파이터>(6/14), MBN <BIG5>(6/14), TV조선 <뉴스를 쏘다>(6/14),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6/15), TV조선 <이슈본색>(6/15)의 경우도 성범죄의 지나친 묘사와 자료화면을 방송해 민언련이 제기한 방송민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방심위의 심의 결과는 솜방망이 처분에 가까웠다. 방심위는 “성폭행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줄 소지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 관련 심의규정을 위반”이라고 평가했지만, 그 결과는 고작 ‘권고’였다.
4. ‘문제없음’, 정말 문제없었나?
■ 방심위 인권 수준이 의심되는 ‘문제없음’
민언련이 제기한 민원 중 방통위가 ‘문제없음’으로 처리한 4건은 공교롭게도 모두 인권침해, 혹은 인권모독의 사례이다. 그 목록 및 내용은 아래 <표3>과 같다.
■ 하의 추스리는 성폭행 가해자까지 묘사한 삽화에도 ‘문제없음’?
방심위가 ‘문제없음’으로 판단한 최악의 사례는 황당하게도 MBN의 저녁종합뉴스인 <뉴스8>에서 나왔다. MBN <뉴스8> ‘고교생 22명이 여중생 성폭행’(6/28)은 고교생 22명이 중학생 2명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은 5년 만에 전말이 드러나고 가해자들이 구속되면서 조명을 받았다. MBN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경악할 만한 삽화를 사용했다. MBN의 삽화는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들 주변에 나뒹구는 술병, 야산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피해자들, 그리고 둘러싸고 지켜보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했다. 심지어 이를 카메라 앵글이 한쪽에서 시작해 다른 쪽까지 훑어가면서 현장감을 극대화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한 남학생이 자신의 하의를 추스르는 뒷모습까지 묘사됐다. 그림으로 성폭행을 재연한 것으로서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MBN의 만행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MBN의 고질적인 ‘삽화 돌려쓰기’는 이 삽화도 비껴가지 않았다. 다음날인 29일 MBN <뉴스파이터>에서 똑같은 삽화가 사용된 것이다. <뉴스파이터>는 삽화 구성부터 카메라 앵글, 하의를 추스르는 남학생에 대한 클로즈업까지, <뉴스8>과 동일한 삽화를 그대로 보도에 내보냈다.
민언련은 <뉴스8>과 <뉴스파이터>의 삽화에 대해 모두 민원을 제기했지만 방심위는 똑같은 이유를 들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범죄 장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없었던 점, 해당 삽화 및 자료화면의 내용이 사회통념상 문제가 될 정도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 사건·사고 보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해당 방송의 공익적 취지”이다. 무려 22명의 가해자가 가담한 성폭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는데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는 것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사회통념’인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또한 이런 삽화가 “범죄를 예방하고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방송의 공익적 취지”에 부합한다는 해명은 방심위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이런 성폭행 묘사 삽화가 없더라도 충분히 사건의 경각심을 고취할 수 있으며 오히려 MBN의 삽화는 구체적인 성폭행 묘사로 시청자의 ‘관음’을 자극하고 있다. 피해자가 이 삽화를 보고 감당해야 할 정신적 충격을 감안하면 방심위의 인권 의식이 어느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알 법하다.
■ 인권모독, 사실관계 왜곡이 공익적 취지라서 문제없다는 방심위
TV조선 ‘뉴스쇼 판’ <10대까지 파고든 동성애>(2016.4.29)는 최희준 앵커의 “오늘 뉴스쇼 판은 지금까지는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졌던 동성애가 우리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늘어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시작합니다”라는 오프닝멘트로 시작된다. 최희준 앵커의 이 발언은 성 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모독이다. 뿐만 아니라 이 보도에서 최희준 앵커는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감염자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만 늘어나고 있다”면서 “특히 10대와 20대의 감염자 수가 높아지고” 있다고 발언했고, 발언 중 삽입된 자막은 ‘10대 청소년까지 파고든 동성애’이다.
이는 방송에서 ‘10대 청소년의 동성애’가 ‘10대 20대의 에이즈 감염자 수 증가’의 원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한 것이다. 이날 방송은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정보를 내보낸 것도 모자라 이어지는 보도 또한 낮은 인권의식을 드러냈다. 보도 영상은 남성 동성애자 전용클럽, 모자이크 처리가 된 여장남자, 손잡고 있는 동성, 동성애 소재의 웹툰 등을 비췄고, 줄곧 박상현 기자의 불편한 리포팅이 이어졌다. 박상현 기자는 이태원 상인을 인터뷰하면서 “(동성끼리) 사귀기도 해요?”라는 저급한 인권의식이 드러나는 질문을 하는가 하면 도보에서 “이곳 낙원동에는 낮에는 직장인들로 붐비지만 이렇게 해가 지기 시작하면 동성애자들의 만남의 장소로 변합니다”라는 불필요한 리포팅을 끼워 넣기도 했다. 이 보도의 주제는 ‘에이즈’였으나 초반 2분 6초 동안 ‘에이즈’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동성애에 대한 박상현 기자 혹은 제작진들의 비관적 시선과 낮은 인권의식만 확인될 뿐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동성애’는 ‘청소년은 안 되는 것’의 전제가 깔린 이 보도에 대해 ‘문제없음’을 통보했다. 사유로는 “해당 사안에 대해 찬반양론을 모두 다룸으로써 균형성을 맞추려 노력”, “전반의 내용과 맥락 등을 감안할 때 사실관계를 현저히 왜곡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황당하게도 MBN 사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공익적 취지’가 면죄부의 이유로 등장했다. “해당 보도의 공익적 취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는 위에서 언급했듯 성 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를 범하고 있다. 이를 공익적 취지라고 감싸는 방심위의 공공성과 인권의식이 의심된다.
5. 방심위 심의 테이블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방송 민원들, 과연 적절한 조치였나?
방심위가 기각 결정을 내린 방송 내용과 심의규정은 주로 여성비하(표현, 비유, 성차별)과 성표현(선정적 묘사, 성 상품화) 관련 규정으로 나눠진다. 그 목록 및 내용은 아래 <표4>과 같다. 기각된 민원의 방송 사례들을 분류해보면 여성비하에 해당하는 방송내용이 7건, 선정적 성표현이 7건, 기타 1건이다. 문제는 이 사례들이 경고를 받은 위 MBN 사례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심의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사실이다.
■ 여성비하 표현의 습관적 사용에도 ‘면죄부’
방심위가 기각한 15건의 방송민원 중 여성비하에 관한 것은 7건이다. 이 사례들은 시사토크쇼의 패널 등 출연진들이 상습적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한 경우이다.
이 민원들에 대한 방심위의 기각 사유 역시 한심하기 그지없다.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 쇼+>(1/20)에서 진행자인 이계진 전 의원은 “옛말에 간다 간다 하더니 애 셋 낳고 간다는데, (문재인) 애 셋 낳고 떠날 거다”, “박영선 의원도 애 셋 낳고 갈 것” 등 황당한 발언을 쏟아냈다. 야당 의원들을 비하하면서 그 비유로는 ‘여성의 임신’을 갖다 붙인 저급한 행태이다. 이는 방송심의 규정 30조(양성평등) 1항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2항 “방송은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아니 된다”, 3항 “방송은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정하여서는 아니 된다”에 모두 위배된다.
그런데 방심위는 “기존의 시사대담 프로그램의 발언 수위와 비교할 때 과도하다고 보기 어려움”이라는 궁색한 이유로 해당 방송에 대한 민원을 기각했다. 기존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이계진 전 의원의 발언과 같은 수위의 발언이 계속 나왔다면 모두 제재를 가해야 마땅하다. 방심위는 스스로 그동안 여성 차별 및 비하 발언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계진 전 의원의 “결국 여성이 여성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동료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여성이 여성을 막는다”(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 쇼+>(1/22), 윤영걸 씨의 “박영선 의원이 오빠들이 많잖아요”(채널A <쾌도난마>(1/25)), 박은주 앵커의 “박지원 의원한테 구애하는 거 보면 (안철수 의원이)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는데 돈 많은 부장님이나 과장님이랑 결혼을 해야 하는 여자의 처지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TV조선 <이슈 해결사 박대장>(1/28)), 신은숙 씨의 “최경환 의원이 유승민 의원을 바라보는 눈길이 내가 현재 본처거든. 과거에 어떤 사랑을 받았던 첩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처야”(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2/5)) 등 심각한 수준의 여성 비하 발언들이 모두 면죄부를 받았다.
이런 발언들에 대한 방심위의 기각 사유는 “출연자 개인의 견해”, “통상적인 수준”, “1회성 발언” 등이다. 방심위 입장에 따르면 출연자 개인의 견해 또는 1회성 발언이라면 심의규정을 위반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 방심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도 ‘인터뷰’니까 상관없다?
기각된 사례 15건 중 또 다른 7건은 성표현(선정적 묘사, 성 상품화)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이었다. 방심위는 스스로 마련한 심의규정에서 ‘제35조(성표현)’을 따로 규제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이런 규정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는 성폭행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인터뷰에도 눈을 감아 준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학부형 3명이 교사를 성폭행한 전남 섬마을 성폭행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모든 언론이 선정적인 보도에 몰두하면서 사실상 ‘공범’과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 이 중에서 방송을 통해 사실상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사안 두건에 대해서 방심위가 논의 테이블에조차 올리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채널A <단독/“성폭행 의도” 계획 범행 시인>(6/7)은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지난달 21일 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술자리에 동석했던 A씨”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고 내세운 단독보도이다. 박상규 앵커는 보도를 시작하면서 A씨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경찰은 계획적 성 폭행임을 확인”했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전하는 듯했으나 정작 리포트 내용은 A씨의 가해자 두둔 발언뿐이다. A씨의 발언은 “다 착실한 사람들이잖아요. 기사 난 건 60~70% 과장해서 나오고 있어요. 이상한 쪽으로 나가고” “바래다주면서 선생님 잘 잠그고 주무시라고 그랬는데도. 그냥 열어주니까, 순간적으로 같이 술 먹다 우발적으로” 등의 내용이다. 더 황당한 것은 보도를 시작할 때는 앵커가 “생생한 증언”이라고 소개한 이 발언들을 리포트의 기자는 “신빙성이 없는 내용”이라 묘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덧붙인다고 해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도로 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채널A는 A씨의 발언을 전하면서 화면에 재연 장면까지 삽입했다. 가해자 3명이 만취해 고개를 숙인 피해자에게 술을 먹이는 모습과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들이다.
채널A <“꼬리 쳤다” 황당한 감싸기>(6/7)에도 김철웅 기자는 절대로 옮겨 담아서는 안 될 2차 가해 발언들을 모두 전했다. 김 기자가 전한 주민들의 “남자들이니까 아시잖아요. 혼자 사는 남자들이… (나이가) 80이라도 그런 유혹 앞에서는 견딜 수도 없어”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 어린 애도 아니고 그 시간까지 같이 있을 때는”라는 발언은 언론보도가 아니라 사적인 관계에서 옮기더라도 매우 부적절한 내용들이다. 굳이 이런 인터뷰를 따로 1건을 떼어 보도하는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심위는 채널A의 보도 2건을 모두 ‘기각’했다. 방심위는 <단독/“성폭행 의도” 계획 범행 시인>에서 계획 범행임이 확인됐다는 보도 내용과 관련 없이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한 인터뷰는 범죄 보도 특성상 인터뷰 내용 등을 그대로 전달한 방송사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재연 장면에는 ‘사회통념상’ 문제가 없다고도 했다. 인터뷰 내용이 더 심각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꼬리 쳤다” 황당한 감싸기>에서도 ‘범죄 관련 보도의 특성 상 인터뷰 내용 등을 그대로 전달’했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범죄 관련 보도에서는 ‘2차 가해’나 다름없는 인터뷰를 마구 실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방심위의 낮은 인권 감수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성폭행 보도 관련 지침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2014년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이 공동으로 제작한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에 담긴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 3항(선정적, 자극적 지양하기)에는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
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인권보도준칙’의 세부기준으로 발표한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의 총강 5항은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천요강 5항도 “언론은 성범죄의 범행동기를 개별적 성향 -가해자의 포르노, 술, 약물 등 탐닉, 자제할 수 없는 성욕 등-에 집중함으로써 성폭력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채널A는 심의규정은 물론 성범죄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을 모조리 어기면서 선정적 보도를 내놨다. 이런 보도마저 ‘사회통념상’ 문제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방심위의 입장을 납득하기 어렵다. 채널A와 같은 방송사뿐 아니라, 방심위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런 보도 준칙들을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이다.
■ 방심위의 사회통념은 어느 사회의 통념인가
‘사회통념상’ 문제가 없다는 기각 사유는 방심위의 단골 ‘변명’이다. 특히 성표현 관련 규정을 위반한 민원 사례에 ‘사회통념’을 내세운 기각 사유가 집중됐다. 방심위가 기각한 선정적 성표현 관련 민원 7건 중 5건의 기각 사유가 “사회통념상 문제가 될 정도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MBN ‘뉴스8’ <'성폭행' VS '사귀는 사이' 현직 순경 '대기발령'>(5/28, 정치훈 기자)에서는 모텔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는 경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삽화가 등장했다. 이 보도는 경찰서 관계자의 전화 인터뷰를 전하는 과정에서는 내용과 관련 없는 모텔 내부를 화면으로 비추기도 했다. 또한 기자는 “중학생을 상대로 품위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며 파면 수준의 중징계를 예고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보도를 끝냈다. 이는 기자가 직접 피의자 주장에 불과한 ‘합의에 의한 만남’을 전제한다.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을 ‘품위에 어긋난 행동’ 수준으로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성폭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삽화와 공직자의 성폭행을 ‘성애화’하는 내용이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의 보도로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이는 방송심의규정 제35조(성표현)을 위반한 것임에도 방심위는 민원을 기각시켰다. 이유는 “모텔 내부의 모습을 촬영한 자료화면을 사용한 것으로 범죄 장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없었던 점, 해당 삽화 및 자료화면의 내용이 ‘사회통념상’ 문제가 될 정도로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으로 설명했다. 모텔 내부 모습의 노출은 보도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내보냈다는 점에서 선정성을 의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방심위는 ‘범죄 장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없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범죄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이미 설명한대로 삽화에 그대로 나타났다. 경찰이 모텔에서 미성년자를 눕히고 덮치려는 장면 묘사가 ‘사회통념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방심위의 보수적 시각이 심히 우려될 따름이다.
■ 일본 언론의 왜곡을 인용해도 ‘보편적 통념’과 합치?
‘사회통념’을 내세운 방심위의 ‘직무유기’는 기각 민원 중에는 기타 사례에 해당하는 채널A <천 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도 있다. 채널A <천 개의 비밀 어메이징 스토리> 142회 ‘일본 섹스의 신 논개’(4/5) 편은 선정적인 방송 화면 외에도 역사 왜곡을 포함한 문제적 사례였다. 이 방송은 굳이 ‘의인’ 논개가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첩으로 기록된 일본의 역사 왜곡을 소재로 삼았다. 애국충절의 상징이 된 논개가 일본에서 ‘섹스의 신’으로 추앙받는 상황을 재연하여 방송한 것이다. 심지어 해당 에피소드의 소제목은 ‘일본 섹스의 신 논개의 비밀’로 뽑았고 논개가 옷을 벗으며 어깨를 노출한 채로 일본 무사를 유혹하는 장면을 사용했다. 충분히 국민의 역사 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선정적 방송이다. 이런 행태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객관성), 제25조(윤리성) 3항, 제35조(성표현) 2항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해당 제목은 논개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의 실상을 제시하기 위해 프로그램 도중 보여준 일본의 언론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맥락상 시청자들의 보편적인 통념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라며 또 ‘보편적인 통념’을 들이밀었다. 일본 언론의 왜곡 사례, 그것도 항일 의인의 대명사인 논개에 대한 왜곡을 선정적 화면과 함께 방송으로 꾸민 것이 ‘보편적 통념’이라니 방심위의 역사 인식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