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 방송 보도 모니터 보고서(2016.5.25)
CCTV 남용부터 ‘조현병’ 왜곡보도까지,
인권침해의 산실된 ‘강남역 살인 사건’ 보도
지난 17일, 서초구 노래방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 모 씨가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사건이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19일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화두로 떠올랐다. 피의자 김 씨가 경찰조사에서 “평소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며 ‘여성’을 지칭하면서 사회 전반에 깔린 ‘여성 혐오’ 정서가 일으킨 범죄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성 혐오 범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22일, 해당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정신 분열증 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23일 경찰은 “경찰관이 치안활동 중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하도록 하겠다”며 ‘강제입원’ 조치를 선언했다.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높은 결정에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약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부족’이라는 문제제기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경찰의 태도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언론 보도였다. 18일 <범인 A씨는 전직 신학생…‘헉’>(서울신문)과 같이 사건의 선정성에만 주력한 언론 보도가 범람했다. 방송 보도에서는 피의자 범행 당시의 CCTV를 여과 없이 반복적으로 노출하면서 국민의 공포와 분노를 유도했다. 일부 방송사들은 ‘여성 혐오 논쟁’, ‘정신분열’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 등 약자에 대한 폭력’과 ‘사회적 안전망’ 미비라는 사태의 본질을 등한시하기도 했다.
‘남자친구 오열’까지 굳이 보여줘야 했나…무분별한 CCTV 남용
방송보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7개 주요 방송사가 모두 사건 당시의 CCTV를 노출했다는 사실이다. 범죄의 정황을 전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면을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핵심 정보와 관련이 없는 흥미위주의 선정적 범죄화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와 관련된 화면의 사용은 극히 신중해야 한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절 소재 및 표현 기법 제38조 1항은 “관련 범죄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 BBC의 ‘프로듀서 가이드라인’에서도 ‘프라이버시’ 항목에서 CCTV 관련한 규정을 별로 두면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정확성 등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방송을 결정하기 전에 영상의 출처, 그리고 사생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피해자를 기다리는 가해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가해자와 그 후 화장실을 들어간 피해자, 범행 후 빠져나가 다른 건물을 배회하는 가해자 등 모든 장면을 보도에 노출했다. 특히 피해자가 구급 대원들에게 실려 나가는 장면과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오열하는 모습까지 전파를 탔는데 이는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련이 없을뿐 아니라, 피해자 및 피해 관련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태이다. 사건 당시 CCTV를 보도에 사용한 비율을 보면, MBC, SBS, TV조선은 관련 보도의 절반 이상에 CCTV 화면을 사용했다. MBC의 경우 7건 중 5건에 CCTV를 삽입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방송사는 TV조선이다. 무려 8건에서 CCTV를 사용한 TV조선은 사건 당일, <강남 한복판 ‘20대 여성 흉기 피살’>(5/17, 17번째, 황민지 기자)에서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는 가해자 모습부터 피살 후 피해자를 발견하고 오열하는 남자친구와 실려 나가는 피해자의 모습까지 모든 상황을 노출했다. 7개 방송사를 통틀어 이렇게 모든 화면을 내보낸 것은 이 보도가 유일하다.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으나 사망 직전 처참한 피해자의 상태와 남자친구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여기에 “여자가 피를 흘리면서 들것에 실려서 나가더라고요”라는 목격자 진술과 “여자친구를 찾으러 온 A씨의 남자친구가 충격에 몸을 못 가눕니다”라는 기자 설명 등 자극적인 묘사까지 더했다. TV조선은 심지어 “여성 혐오 범죄 우려”를 전했던 <‘여성 혐오 범죄’에 충격…추모‧분노>(5/18, 10번째, 황민지 기자)에서도 “사건 당시 쓰러진 여자친구를 보고 몸을 못 가눴던 남자친구의 모습”이라며 사건 직후 남자친구의 모습을 또 화면에 담았다. 납득이 어려운 행태로서 사건의 자극성과 피해자의 슬픔을 악용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TV조선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22일, ‘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마 범죄’라는 경찰의 발표를 전하면서 굳이 30여초 간 범행 CCTV를 노출한 KBS나, 24일 현장 검증을 보도하면서 굳이 CCTV를 또 이용한 JTBC 등 타사들 역시 CCTV 오남용의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 혐오 논쟁’? 본질 흐리는 MBN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을 다루는 방송 보도의 내용상 문제점은 가해자만을 지나치게 조명했다는 점이다. 가해자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작 제대로 보도해야 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미비라는 사태의 본질은 흐려졌다.
경찰이 19일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마 범죄’에 무게를 두고, 22일에는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일각에서 ‘여성 혐오 범죄’의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일었다. 확실한 사실은 피의자가 진술에서 ‘여성들’을 직접 지목했다는 것과 실제로 범행을 기다리면서 남성은 지나친 채 불특정 여성만 노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언론이 ‘여성 혐오’를 다루고자 한다면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와 그에 대한 제도적 보호를 짚어야 한다.
그러나 MBN은 일부 여론의 ‘여성 혐오’ 논쟁에 4건의 보도를 할애면서 ‘묻자미 범죄’로 규정지은 경찰 발표에 대한 분석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은 외면했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경찰 발표가 있었던 22일, MBN은 톱보도와 2번째 보도에서 ‘여성 혐오 논쟁’을 다뤘다. <피켓 들고 격한 대치>(5/22, 톱보도, 선한빛 기자)는 “여성 혐오를 둘러싸고 남녀 간에 편이 갈라져 피켓 대치를 벌이기도” 했다며 “남자는 잠재적인 범죄자가 아닙니다” “잠재적인 가해자가 아닌 사람 없습니다” 등 갈린 여론을 전했다. 다음 보도 <남녀 성 대결 변질>(5/22, 2번째, 이재호 기자)는 “강남역 현장뿐 아니라 온오프 라인 곳곳에서 '여성 혐오'를 둘러싸고 난데없이 남녀간 성 대결”이 펼쳐졌다면서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서 똑같이 당해보라”와 같은 극단적인 인터넷 게시물까지 덧붙였다. 피의자의 현장 검증이 있었던 24일에도 MBN은 <“혐오 논쟁 끝내야”>(5/24, 14번째, 김준형 기자)을 통해 “김치와 여성을 합친 김치녀, 한국남자와 벌레를 결합한 한남충, 뚱뚱한 여성들의 숨 쉬는 소리를 뜻하는 파오후 등 충격적인 단어들이 잇따릅니다”라며 ‘여성 혐오 논쟁’에 집착했다.
MBN의 이런 태도는 타사와 대조적이다. JTBC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 ‘묻지마 범죄’>(5/22, 2번째, 강버들 기자)에서 경찰이 “정신분열증 환자인 피의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지만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범죄 위험에 불안감을 느끼는 여성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이 사건 이후 '여성 혐오'를 지적하는 분석이 나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라며 경찰 입장을 반박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이는 소모적 논쟁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범죄’라는 명백한 사실에 집중한 보도들이다. SBS도 <강남역 현장검증…뒤늦게 “죄송하다”>(5/24, 17번째, 박하정 기자)에서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고, 모레 사건을 검찰로 넘길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분출된 추모 열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숙제”라며 경찰 발표에 의문을 표했다.
조현병 환자를 강력 범죄와 연결시킨 KBS…‘혐오 조장’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사건의 배경 대신 가해자 신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두 번째 사례는 피의자의 ‘조현병’에 초점을 맞춰 마치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강력 범죄의 위험이 있는 듯 보도하는 행태이다. 여기서는 공영방송 KBS가 압도적이다.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는 경찰 발표를 받아쓰는 태도를 뛰어 넘어 조현병과 강력 범죄의 위험성을 직접 연결시킨 보도만 3건이다. 이런 보도는 KBS와 MBN에서만 나타났다.
KBS는 19일, 경찰이 피의자의 ‘정신분열증에 따른 망상’을 언급하자 20일, 22일, 23일에 걸쳐 조현병의 범죄 위험성을 조명했다. 이중 가장 심각한 보도는 <앵커&리포트/조현병 특징 ‘망상‧환각’…심해지면 ‘범죄’>(5/23, 10번째, 김기화 기자)이다. 제목에서 이미 조현병과 범죄를 연결시킨 이 보도는 모든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이라는 경찰의 결정까지 옹호했다. 김민정 앵커는 “경찰이 이렇게 행정입원 조치까지 꺼내든 것은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렸던 조현병으로 인한 강력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며 ‘강제 입원 방침’을 선언한 경찰의 판단을 정당화했다. 이어서 “최근 4년여 동안 검찰이 집계한 이른바 '묻지마 강력 범죄'는 231건입니다. 이 가운데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는 30% 정도로, 약물남용 다음으로 많습니다. 조현병으로 인한 강력 범죄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범률이 높다는 점입니다. 60% 가까이 됩니다. 조현병이 왜 이렇게 강력범죄와 관련이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노골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을 ‘묻지마 강력 범죄자’로 등식화하는 왜곡이다.
김기화 기자의 리포트에서도 이런 왜곡은 계속된다. “없는 게 보인다며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고, 옷을 강아지로 착각해 안고 다니기도” “이런 망상과 환각이 더 심해지면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인식” 등 조현병 환자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화면에 담은 김기화 기자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혐오라기보다는 모든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결국, 범죄로 이어졌다”는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 관련 경찰의 조사 결과를 덧붙였다. ‘여성을 노린 강력 범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리’ 등 복합적인 사건의 성격을 배제하고 사태의 본질을 ‘조현병 환자’로만 갈음한 것이다. 보도는 곧바로 “조현병이 범죄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한 치료”라며 조현병 치료가 마치 강력 범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마무리된다.
이는 심각한 왜곡이자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혐오조장에 가깝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3일 성명서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는 편견과 낙인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될 수 있다”며 일반인보다 강력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이를 왜곡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이어서 “심리분석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피의자의 충분한 정신 감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의 증상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앞으로 프로파일러 이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충분한 정신 감정이 더 필요하다”며 사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하면 조현병 환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개인과 그 가족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되며, 사회적·국가적 테두리에서 보다 전문적인 돌봄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사건이 사회적, 국가적인 사안이라는 사실도 상기키셨다. KBS 보도에서 이런 지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학회가 비판하고 있는 왜곡된 언론의 모습만을 반복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23일 성명서에서는 “국민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남자 친구가 오열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등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형태로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유도하는 듯한 모습에 유감”이라는 등, 유독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가해자의 정신 감정 등 충분한 조사 과정 없이 여성 혐오나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성급히 지목한 기사들이 올라오면서 온 사회가 더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게 됐다”며 선정적인 ‘여성 혐오’와 ‘조현병’으로 기사가 점철되고 있는 상황도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이 의학 전문가 집단이 지적한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는 대부분 방송사들의 태도와 일치한다. 굳이 남자친구까지 화면으로 노출시킨 TV조선과 ‘여성 혐오 논쟁’에 집착한 MBN, 조현병을 강력 범죄자와 연결시킨 KBS는 모두 사건의 자극성을 악용했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물론 사건과 관련 없는 조현병 환자들까지 인권을 침해당했다. 국민들 역시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끝>
(사)민주언론시민연합(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