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정종섭, 최경환 장관의 선거개입 발언에 대한 신문‧방송 모니터보고서(2015.8.28)
행정 수장의 총선 전략 발언 감시 못하는 망가진 공영방송
지난 8월 25일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 만찬 자리에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다. 당시 만찬에는 60~70명의 새누리당 의원들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해 있었다.
만찬 전에는 ‘하반기 경제동향 보고’를 하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인 3% 중반 정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서 여러 가지 당의 총선 일정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27일에도 새누리당과의 예산 당정협의에서도 “(여)당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민생경제 현안들은 정부 예산안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밝혀 ‘관권 선거’ 논란이 불거졌다.
공직자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해도 공식적으로 그 정당을 지원하거나 봉사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하는 바이고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상식 수준의 윤리이다.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 장관은 노골적으로 “필승!”을 외쳤고 최 부총리는 새누리당 정책에 예산 배정을 약속하면서 새누리당 총선에 대놓고 힘을 실어주었다.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 의무)와 85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를 명백히 위반했다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개입 사건과 최근 불거진 대선, 총선을 겨냥한 내국민 사이버 사찰 정황 등 국정원이 새누리당의 선거를 불법적으로 지원한데 이어 이제는 주무 부처 장관들까지 나서는 모양새다. 이에 야당은 두 장관을 공직 선거법 위반으로 중앙선관위에 고발했고 정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반응은 별 일 아니라는 식이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건배 구호는 부적절한 행동이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발표했다. 발언이 잘못되긴 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정 장관이 “새누리당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은 쓰지 않았다”며 궁색한 변명으로 정 장관을 감쌌다. 행정자치부도 “개업식에서 ‘대박 나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은 “덕담”이었다며 정부․여당 주요 인사가 참석한 여당의 공식 행사를 평범한 개업식으로 얼버무렸다. 최 부총리는 야당의 비판에 오히려 “유감을 표명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발언의 당사자들과 새누리당, 행정자치부의 태도는 국민을 얕잡아보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비상식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발언을 전하고 비판해야 마땅한 언론이 도리어 새누리당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사안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언련은 선거개입 발언에 대한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살펴보았다.
조선일보와 공영방송 보도량, 기사비중 형편없어
신문의 이번 사안에 대한 보도량은 전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보도의 질은 많이 달랐다. 이 사안을 가장 잘 다룬 신문은 27일 1면 머리기사로 전한 한겨레였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5면 단신 1건만 보도해 이 사안에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이날 동아, 한겨레가 사설을 싣고 중앙일보는 칼럼으로 다루었으나 경향신문은 이 내용을 1건만 보도했다. 28일에는 경향신문이 가장 적극적으로 다뤄 사설 포함 4건을 보도했다.
방송의 경우 26일, MBC를 제외한 모든 방송사들이 이 사안을 다뤘다. 하지만 보도한 5개사들도 보도 배치 순서에서는 차이를 보여 중요성을 다르게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JTBC가 7번째로, SBS과 TV조선이 9번째로 배치했지만, KBS는 15번째, 채널A는 19번째로 뉴스 후반부에 배치했다.
27일에는 MBC도 이 사안을 다뤘지만 18번째로 배치했다. 특히 야당이 두 장관을 선관위에 고발한 사실은 JTBC와 TV조선만 보도했다. MBC는 선관위 고발이 있던 날 보도를 처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했다고만 언급했다.
잘못은 했지만 책임질 정도는 아니라는 조중동
조선일보 <사설/선거 때 장관들의 처신>(8/28)은 두 장관의 발언에 대해 “논란을 빚을 만한 말”, “명백하게 부적절한 발언”이라면서도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라는 선에서 비판을 그쳤다. 오히려 “앞으로 정부 정책 하나하나에 대해 야당이 총선용 아니냐고 어깃장을 부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며 향후 있을 야당의 정부 정책 비판을 어깃장으로 갈음해버렸다.
중앙일보도 <사설/여당 행사에서 총선 앞둔 장관들의 부적절한 처신>(8/28)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할 필요가 있다”며 비판 수위를 조절했다. 법적 책임과 사퇴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입장과는 거리를 둔 것이다.
동아일보는 사안의 본질인 선거개입 발언은 덮어둔 채, 야당 의원들의 문제를 같이 언급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보도를 했다. <사설/북 위협 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정치권 ‘도로 구태’인가>(8/27)에서 두 장관의 발언을 다루다가 ‘정치권’ 전체를 겨냥한 것이다. 사설은 두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함을 지적하다 느닷없이 “새정치연합도 남의 잘못을 비판하려면 자신의 허물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간사가 되니 장관도 굽실거리고…권력이 무엇인지 알겠다”라고 했던 안민석 의원의 발언을 공격하며 “안보 위협이 가신 지 며칠이나 됐다고 정치권은 벌써 구태로 돌아와 세도를 부린단 말인가”라며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문제 발언을 단일 사안으로 보도하지 않고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모는 ‘물타기’ 방송
문제 발언을 단일사안으로 보도하지 않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야당의 발언 실수와 묶어서 한 보도로 처리하는 물 타기 형식은 방송에서도 나타났다.
MBC는 <정치권 잇따른 ‘말 실수’ 논란>(8/27, 18번째, 정동욱 기자)에서 정 장관의 선거 개입 발언과 SNS에 25일 있었던 남북 합의에 대해 “두 분 다 존경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존경한다는 취지의 글을 쓴 새정치연합 허영일 부대변인의 소식을 함께 묶어서 보도했다. 보도는 제목에서부터 ‘정치권’의 ‘말 실수’라는 표현을 썼다. 장관들의 명백한 선거개입 발언과 야당 인사의 말 실수를 동등한 사안이라도 되는 양 처리한 것도 문제일 뿐 아니라, 정부‧여당 공식 행사에서 여당의 총선 승리를 응원한 장관의 발언을 단순한 ‘말 실수’로 규정한 것은 노골적 여당 편들기와 다름 아니다.
△ MBC 관련 보도 화면 갈무리
KBS도 마찬가지이다. KBS <‘총선 필승’ 건배사‧‘존경’ 글 논란>(8/26, 15번째, 정성호 기자)는 남북 합의와 관련, SNS에 “두 분 다 존경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존경한다는 취지의 글을 써 문제가 된 새정치연합 허영일 부대변인의 소식을 정 장관 발언과 함께 보도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선거이다. 선거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 그것도 선거관리 주무부처 장관과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장관이 여당 공식 행사에서 총선 승리를 기원한 것은 공무원의 직분을 내팽개친 명백한 선거개입이며 불법 행위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태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물 타기한 MBC와 KBS 보도는, 이제 공영방송이 정권에 대한 감시기능을 잃고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끝>
2015년 8월 2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