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위원회_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칼럼에 대한 모니터보고서(2015.8.26)
민언련 신문․방송모니터위원회는 민언련 회원들이 모여 신문과 방송을 모니터하는 분과모임입니다. 1992년 선거보도를 감시하고자 만들어진 두 위원회는 23년간 꾸준하게 모니터 모임을 유지 발전시켜왔습니다. 두 위원회는 그동안 다수의 보고서를 생산하고, 매 선거마다 방송과 신문의 선거보도를 감시해왔으며, 좋은 방송시상, 추천․유감방송 시상, 좋은․나쁜 사설칼럼 시상 등 다양한 시상과 비평 활동을 해왔습니다.
민언련 방송․신문모니터위원회는 <민언련이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나쁜 신문․방송 보도>의 선정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모니터 회의를 통해 최소 월 1건 이상의 모니터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된 모니터 위원회에 관심 있는 분은 민언련으로 연락주세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읽는 네 가지 키워드
지난 5월 30일, 조선일보는 김대중 주필(고문)의 기자생활 5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공적을 칭송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김대중과 인터뷰 <“아부 안 해도 되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신문기자로 산 게 좋았다”>에서 그를 “역대 대통령들이 ‘치워버리고 싶어 한’ 직필”, “좌우를 막론하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고 칭송했다. 이 정도면 언론인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영예다.
과연 50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쓴 그의 글은, 이런 영예를 받을만한가?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이런 궁금증으로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 썼던 김대중 칼럼을 모니터했다. 그 결과 <김대중 칼럼>에는 그의 왜곡된 네 가지 관점이 담겨 있었다.
김대중의 첫 번째 관점, 북한과 ‘종북세력’은 상종 못할 집단이다?
김대중의 글에서 첫 번째로 드러나는 것은 뿌리 깊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이다. 그에게 북한은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될 호전세력이고,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북주의자’일 뿐이다. 김대중은 <문제는 북한의 核이다>(2013.06.11.) 도입부에서 북한이 항상 “도발로 위기를 조성하고 그 해소책으로 접촉 내지 회담을 연 뒤 원조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무슨 꼬투리를 잡거나 사단을 내 상황을 결렬시키고 대결 모드로 되돌아가는”걸 반복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 관련 회담은 우리 정부가 북측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고집하여 대화 결렬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 대화 상대의 ‘격’을 따지며 회담이 결렬되게 만든 상황은 남북대화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남북대화의 문제를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인 것처럼 언급한 것이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남북 간에 홍역을 치르던 지난해 10월 김대중은 <북한病>(2014.10.28.)에서 “북한은 지난 60여 년 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못 버리는 것에 대해 ‘북한병’이란 표현했다. 박근혜 정권이 일방적으로 북측에 드레스덴 선언 등을 통해 ‘선(先)핵포기 후(後)경제지원’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남한 내 정권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연결된다. <박 대통령의 실책 하나, 종북 좌파에겐 기회 열 개>(2013.10.22.)에서는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 즉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규탄하는 시민들과 법외노조 판결에 반발하는 전교조 등을 ‘종북 좌파’라고 몰았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다시금 고개를 바짝 치켜든 종북 좌파의 ‘딴죽’에 시달리고 있다”라거나, 북한 ‘김정은 집단’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박 정부를 시비하는 종북 좌파 공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들과 북한 지도부의 행위를 도매금으로 묶어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행태이다.
△ 2013년 10월 22일 김대중 칼럼 갈무리
김대중의 두 번째 관점, 역사를 정확히 기술하면 ‘반(反)대한민국 세력’이다?
김대중은 <‘이석기’는 배우일 뿐, 감독은 ‘역사 교과서’다>(2013.09.17.)에서 김대중은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은 자기 나라의 건국에 자부심을 갖고 건국 과정을 미화하는 것이 정도(正道)”거나 “나라 세움의 뿌듯함을 물려주는 게 민족의 자긍심”이란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한 학자들을 ‘반(反)대한민국’ 세력이라 매도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청산에 실패하고, 좌익척결을 주장하며 보도연맹 사건과 제주4.3항쟁 등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 등은 실체적 진실이다. 우리 역사를 그대로 기술하자는 당연한 이치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을 ‘친일’로 매도하고 따라서 건국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황당하다.
김대중의 세 번째 관점, 시민의 권리행사는 혼돈스런 ‘데모 천국’을 만든다?
정권이나 권력의 불합리한 모습에 대해 집회․시위 등으로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은 헌법 제 21조에 명시(“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된 국민의 신성한 권리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하는 집회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김대중은 이런 집회를 비판하며 시민들의 기본권을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데모 천국’과 ‘데모 망국’>(2014.10.14.)에서는 ‘세월호 유족회’의 집회 때문에 서울 도심이 “밤낮으로 교통 혼잡에, 확성기 고성에, 음식 냄새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데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사는 것일까?”라며, 집회 자체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왜 그렇게 싸워야만 하는 상황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정권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주문할 뿐이다. 또한 그에 앞서 <분향소와 ‘노란 리본’>(2014.07.29)에서는 “세월호 참사에 더 매달리지 말고 경기 활성화에 나서자”,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야당에 대해서는 ‘세월호 정치’를 펼친다고 비판하며, 유족들의 ‘순수한 마음에 생길 균열’을 우려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가장 책임이 큰 정부 인사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는다. 진정 본인이 ‘권력자를 비판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면, 이 문제에 있어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어야 하지 않을까?
김대중의 네 번째 관점, 용미(用美)를 가장한 숭미(崇美)
김대중은 <‘병자호란’을 읽는데 시진핑이 왔다>(2014.07.15.)에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칼럼은 우리의 역사가 중국과 일본에 늘 시달리던 역사였다고 평가하면서, 그 시달림을 벗어난 게 미국 덕분이란 주장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 대해 “(중국․일본과는 달리) 적어도 우리 땅을 빼앗을 욕심을 부린 적은 없다”고 평한다. 이어서 우리가 중․일에 갇혀 5천 년 동안 가난했는데 미국의 도움으로 광복 후 먹고 살게 되었다는 사대주의적 인식을 보인다. 그는 19세기 말 미국이 우리를 쳐들어온 신미양요와 20세기 초 미국이 일본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일 각각 필리핀과 조선을 식민지배하기로 합의한 것은 모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중국 견제용 종말단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를 종용하는 등 한국에 대한 미․일 양국의 영향력을 강화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핵에 당하면 중국이 지켜줄 수 있나>(2015.03.17.)에서는 한국의 외교 방책으로서, 미․중 양국 중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자고 주장할 뿐이다. 김대중은 “미국의 손에 이끌려 비로소 ‘중․일’의 감옥에서 탈출”, “한국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서 실천”이라면서 맹목적으로 미국을 믿고 있음을 증언한다. 김대중 칼럼에서는 우리가 미국을 ‘이용’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오직 ‘미국은 중국, 일본과는 다르니까 무조건 미국 편에 서야 한다’를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용미’를 가장한 ‘숭미’주의자로 보일 정도이다. 그가 진정 자신이 ‘용미론자’임을 입증하려면, 이같이 맹목적으로 미국이 옳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주권 행사를 하면서 미국에게서 얻어낼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 조선일보 1980년 5월 25일자 기사 갈무리
양심적 기자들은 내쫓고 김대중은 주필로 살아있는 조선일보
고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조선일보에서 잠시 김대중 고문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대중은 수습기자였는데, 리영희 선생은 “그들(수습기자 6명)은 머리가 좋았던 만큼, 외신부에 들어와서 접하게 되는 세계정세와 인류사적인 변혁과 사건들에 대응해 이해하는 속도가 빨랐어요. (중략) 그 가운데 김대중 군은 사사건건 반공주의만 고집하는 거예요. 베트남전쟁, 중국혁명, 제3세계 인민들의 진보적 운동에서 도도한 시대정신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김대중 군만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그 낡은 비이성적인 극우반공주의자라는 의식의 틀을 깨질 못하더라고”라고 회고했다.(리영희, 임헌영,『대화』,한길사, 2005)
그러나 ‘머리가 좋았던’ 나머지 다섯 수습기자는 1974년 언론자유투쟁 때 모두 해직되고, 김대중 고문만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그가 직필이어서도, 권력자를 비판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서도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정반대로 권력자들이 좋아할 글을 써 왔고, 수많은 시민들이 염원해 온 가치인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글들을 써 왔기에 그 자리에 쉽게 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그가 쓴 <‘무정부 상태 광주’ 1주>(조선일보 1980.5.25.) 같이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으로 매도하는 기사와 <인간 전두환>(조선일보 1980.8.23.)과 같이 광주의 학살자를 낯 뜨겁게 찬양하는 기사는 이런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위 두 기사는 조선일보도 부끄러웠는지 아카이브에서 삭제했다) 이런 과거가 있음에도 조선일보는 김대중의 언론인 인생 50주년을 기념한다며 온갖 민망한 찬양 기사를 내놓았다. 고 리영희 선생은 베트남전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말이 퇴사이지 강제 해직시키고, 조선자유언론투쟁실천위원회의 양심적인 깨어있는 기자들은 길거리로 내몰았던 조선일보가, 김대중을 언론계 최상층의 지성으로 추앙하는 모습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끝>
정리 :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강선일 회원
2015년 8월 2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