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문창극 총리후보자 검증보도 심의에 대한 방송심의시민감시단 보고서 (2014.8.29)
국가 검열기구의 민낯을 드러낸 문창극 보도 심의
지난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방송소위를 열어 KBS <뉴스9>의 문창극 총리 후보자 검증보도를 심의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KBS가 전체 강연 내용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왜곡했다며 중징계를 주장했다. 3인 모두 ‘관계자에 대한 징계’(벌점4점) 의견을 냈다. 야당 추천 위원 2인은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보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다수결 처리(3대2)를 막지는 못했다. KBS에 대한 징계수위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방심위의 문창극 보도 심의결과는 이 기구가 사실상 ‘사후 검열 기구’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고위 공직 후보자의 역사인식을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역할이자 책무이다. KBS는 그 책무를 다했을 뿐이다. 행정기구가 이런 보도에 관여해 징계를 가하는 것은 방심위 설립목적에 맞지 않는 일이며,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특히, 현행 방심위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6대3)를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직인수위 출신 인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언론시민단체들은 방심위가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방송에 대해 공정성 심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방심위의 문창극 보도 심의는 근본적으로 ‘위헌적’이다.
방심위원이 다수로 밀어붙이면 ‘좋은 검증보도’가 ‘왜곡보도’가 되는 현실
심의 내용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객관성 조항의 적용 문제다. 방심위는 KBS 보도를 비롯해 10건이 넘는 문창극 보도에 대해 법정제재 및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KBS는 전체회의 절차가 남아 있음) 공통으로 적용된 조항 중 하나는 14조 객관성이다.
KBS가 6월 11일 단독보도로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 후보자의 강연내용을 내보낸 후 여러 매체들이 그의 ‘식민사관’에 관련한 발언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방심위는 이 보도들이 “문 후보자의 과거 강연 영상 중 일부만을 발췌, 편집하여 결과적으로 전체 강연의 취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왜곡하여 전달했다”고 판단했다. 즉, 국민적 논란이 됐던 문 후보자의 발언들을 발췌해 보도한 것은 왜곡보도라는 얘기다.
이것은 매우 자의적인 판단이다. 제14조 객관성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거나, 확실한 오보로 판명된 경우에 한해 적용되어야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문창극 보도의 경우 당연히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물며 방송소위 위원들조차 가장 중한 징계를 주자는 3인과 전혀 문제없다는 2인이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이렇게 명백한 오보로 확정할 수 없을 때는 객관성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에 맞다. 그러나 방심위는 다수결로 밀어붙여 객관성 위반을 적용했다. 현행 방송심의는 다수결로 결정하면 ‘사실보도’도 ‘왜곡보도’가 되는 것이다.
“문창극 후보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비판을 위주로 방송한 것”을 제재 사유로 삼은 것도 잘못된 것이다. 비록 ‘강연취지를 왜곡했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부정적 시각과 비판 위주’로 방송한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는 없다. 심의규정에도 없는 ‘과잉심의’다.
KBS 측의 의견진술을 듣고도 “KBS가 반론권 보장 안했다”며 우기는 여당 추천 위원
이중 잣대도 문제다. 방심위는 대다수 매체들이 KBS 보도와 거의 유사한 보도를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KBS에만 중징계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여당 측 위원들은 문창극 후보에게 ‘반론권’을 얼마나 보장했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다른 매체들은 문창극 후보 측의 반론과 해명을 충분히 전달하였으나 KBS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론을 ‘많이’ 담아주면 문제없고, 반론을 ‘적게’ 실어주면 문제라는 것인데, 이것 역시 자의적인 잣대다.
정부여당 측 위원들의 주장은 사실에도 어긋난다. 어제 의견진술에서 KBS 기자들이 밝혔듯이 KBS는 문 후보자의 반론을 별도 꼭지로 다루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문 후보의 답변은 ‘청문회에서 답 하겠다’는 것이었고, KBS는 이런 뜻을 보도로 전했다. 문 후보 측은 KBS 보도가 나간 후 파장이 일자 뒤늦게 적극적인 해명을 시도했고, 타 매체들은 그 해명을 기계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KBS 역시 문 후보자측의 해명을 후속보도에 담아 전달했다. KBS나 타 매체나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종편 및 보도채널들은 여러 뉴스프로그램에서 해당 발언들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거나 대담 형식을 빌려 ‘더 오래’ 방송했음에도 유독 KBS만 중징계를 하는 것은 명백한 ‘표적심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채동욱 혼외자 보도는 문제없고 문창극 보도는 관계자 징계라니
방심위의 이중 잣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에 대한 심의결과와 비교하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TV조선은 지난해 9월 30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의 가정부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재판과정에서 이 가정부가 TV조선으로부터 인터뷰 대가로 43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보도가 나간 후 방심위에 “일방의 입장만을 전달해 공정하지 못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방심위는 △이 보도는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이라는 공익적 취지 아래 방송된 점, △단독 취재 내용으로 방송분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 △ 기존 유사심의 사례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각각 ‘의견제시’(가장 낮은 수위의 행정제재)와 ‘문제없음’을 의결한 바 있다. 사생활에 관한 폭로성 보도까지 ‘공직자 도덕검증’이라며 보도의 ‘공익성’을 인정한 방심위가 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이처럼 엄격한 ‘반론권’을 요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다. TV조선에 적용한 잣대를 KBS에도 똑같이 들이댔다면 당연히 ‘문제없음’이 나와야 마땅하다.
사무처 민원처리의 불공정성도 심각
방심위 사무처의 사무 처리도 문제다. 먼저, 안건상정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심위는 KBS 심의가 진행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 매체의 유사보도를 따로 모아 회의에 올렸다. KBS 보도 3건에 대해서는 6월부터 현재까지 두 달이 넘게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반면 유사보도들은 8월 6일 소위에서 한꺼번에 처리됐다. 사무처가 30차 방송소위에 올린 문창극 관련 안건만 모두 20건이었다.(개별 보도건수로 계산하면 숫자는 더욱 들어난다.) 다른 안건을 포함해 이날 회의 자료만 317매에 달한다. 심층적인 심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당일 소위에서 심의위원들은 시간에 쫓기듯 일사천리로 안건을 처리했다.
안건내용도 차이가 났다. 종편 및 보도채널의 경우 문 후보 측의 반론을 다룬 꼭지를 안건에 넣어 함께 심의했다. 일례로 YTN의 경우 6월 12일 <뉴스출발 3부> 11번 꼭지, 6월 12일 <뉴스9> 2번과 4번 꼭지, 6월 12일 <뉴스Q 2부> 1번과 9번 꼭지, 6월 12일 <이브닝 뉴스 1부> 1번과 3번 꼭지, 6월 13일 <뉴스만만 1부> 3번과 8번 그리고 19번 꼭지를 하나의 안건으로 묶어 상정했다. TV조선, 뉴스Y 등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안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유독 KBS의 경우만 <“일제지배 하나님 뜻” 발언 파문>,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6월11일), <日 언론 ‘문창극 발언’ 주요 뉴스…우익 ‘옹호’>(13일) 등 문 후보자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룬 보도만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KBS를 다른 방송사와 같은 방식으로 다뤘다면 문 후보자의 해명을 다룬 보도까지 묶어서 하나의 안건으로 상정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KBS 최초 보도인 6월 11일 보도뿐 아니라 그 이후 KBS가 문 후보의 공식해명과 입장을 담아 보도한 6월 12일 <“오해 생겨 유감”…여 당혹.야 철회 촉구>, 6월 13일 <여, 적극 옹호...야, 즉각 사퇴 촉구> 등의 보도도 함께 묶어 상정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보도들은 안건에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심의를 한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방심위=사후 검열 기구’임을 입증한 문창극 보도 심의
결론적으로 방심위의 문창극 보도 심의는 정부여당 측 위원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KBS는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을 근거로 △자의적인 판단(KBS는 강의내용을 왜곡했다)을 적용하여 △KBS에만 유독 엄격한 징계(관계자 징계)를 다수결로 밀어붙인 ‘불공정편파표적’ 심의이다. 현행 방심위의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이런 몰상식한 심의결과가 나오는 것은 이 기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부여당추천 위원들이 방송의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심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에 충성하기 위해 ‘검열’을 하기 때문이다. 방심위의 문창극 보도 심의는 ‘방심위=정부여당의 사후 검열기구’라는 사실, 따라서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행 방심위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끝>
2014년 8월 29일
방송심의시민감시단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언론인권센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