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연이은 충격사건으로 국민은 '패닉'…사회적 트라우마 위험수위 (2014.8.6)
등록 2014.08.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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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1.kr/articles/?1802094



연이은 충격사건으로 국민은 '패닉'…사회적 트라우마 위험수위 


장우성 기자



분노·불안·공멸의식에 공공기관 불신 팽배…공동체 붕괴 가속화 우려

전문가 “국민 정신건강 피폐 넘어서 국가적 혼돈 우려”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도 문제지만 그 폭력에 무관심한 사회는 더 큰 문제다. 학교, 가정, 군대 내 만연한 폭력에 대한 근본적 해결과 치유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 사회는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한 아버지가 윤일병 사고와 관련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세월호 참사, 임모 병장 GOP 총기난사사건,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 김해여고생 살인사건, 윤일병 구타사망 사건 등 끔찍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자조가 쏟아지고 있다.    


연이은 충격사건으로 사회 전체가 상처를 받은 상태에서 시민들은 온라인은 물론 둘 이상만 모이면 분노와 비통, 공멸에 대한 위기감이 뒤범벅된 속내를 쏟아내고 있다. 역겨워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생각하는 것도 괴로운 사건들이 떠오를 때마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같은날 아들이 전방부대에 근무중인 한 어머니는 자신이 활동 중인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윤일병 사건을 보고 애타는 심정을 담아 ‘윤일병과 내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언론이나 예능이나 찬양을 하지만 전방 부대의 환경은 아마 30여년 전 군생활 하신 분들도 아들 면회 다녀오면 변한 게 없다는 걸 느끼셨을 거다. 그리고 저녁 8시면 걸려오는 아들의 전화 목소리 항상 힘이 없고 끊을 때 마지막 여운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새벽3시에 차를 타고 면회를 간다. 아침 조회를 마치고 바로 아들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에 서두른다. 아들은 하루 종일 시계만 본다.”    


군대와 학교를 가리지 않고 연이어 터지는 사건은 부모와 가족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아들이 이등병으로 군복무중인 서울의 현직 교사 K씨는 심정이 더욱 각별하다. 윤일병 사고나 여고생 살인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자식을 보낸 또래 친구들과 학교 동료를 만나면 서로 걱정하는 이야기로 시간이 흐른다.


K씨는 “요즘은 아들에게 전화가 오지 않으면 불안하고 아무 일 없다고 해도 계속 걱정이 된다. 제대하려면 1년이 넘게 남았는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며 “정부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아도 수박 겉핥기 같아 전혀 안심이 안된다. 병영문화 바꾸겠다고 한 게 벌써 몇 년째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을 봐도 갈수록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이 되는 것 같다”며 “상상도 못하던 끔찍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니 불안하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딸을 키우는 어머니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도 한 포털사이트 카페에 올린 ‘우울한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글에서 “훗날 2014년을 생각하면 세월호 사고로 시작해 슬픈 기억 밖에 없는 날이 될 듯하다. 무고한 생명들이 많이 죽는 게 정말 가슴 아프다”며 “아들 가진 부모는 군대 가서 매맞을까봐 무섭고 딸 가진 부모는 성범죄자가 득실득실하니 밖에 내보내기 무섭다. 이래저래 무서운 대한민국”이라고 토로했다.    


엽기적인 행태를 보인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도 충격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남편의 시체를 집안에 두고 아이를 방치하는 등 가족의 해체 현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한 시민은 한 인터넷 게시판에 "관련 보도를 보고 무서워 잠을 못이루고 있다"며 "시신 옆에서 발견된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사고 발생 4개월이 가까워오도록 정확한 진상규명은 커녕 유족에 대한 조롱까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는 절망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두딸을 둔 가장인 또다른 K씨는 "우리 세대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희생됐다. 어른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며 "모두가 부모의 마음으로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진상을 밝혀내야 할 텐데 요즘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언론도 질타의 대상이다. 각종 참사와 사고가 터지면 그때서야 선정적으로 보도하기만 바빴지 진실규명이나 사전예방을 위한 감시기능은 등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여론을 만들기 보다는 공포와 혼란을 부추기는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평소 군 인권 문제를 희화화하거나 군을 홍보하는 식으로 조명해온 일부 방송프로그램도 도마에 오른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선정적 냄비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며 "참사를 구조적으로 파헤쳐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여론을 이끌기보다 구체적 범죄행위 중심으로 흥미위주로 보도하거나 사회적 병리현상,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일탈, 정치공학으로 치부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우리 사회가 가정, 학교, 직장, 군대 등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위험에 부딪히면서 국민들의 심리적 상처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처가 제때 치유되지 않으면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의 붕괴가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차명호 평택대 피어선심리상담원 교수는 “연이은 대형사고로 우리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쌓일 경우 국민 정신건강이 피폐해지는 것을 넘어 국가적 혼돈이 올 수도 있다”며 “사회적 치유를 위해선 전 사회에 걸친 통렬한 성찰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식, 공동체를 지향하는 의식 형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