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KBS 교양.오락프로그램의 잇따른 여권인사 출연에 대한 모니터 보고서(2010.2.26)
등록 2013.09.2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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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여야 균형 없고, 일방적 ‘띄워주기’
 
 
최근 KBS가 자사의 교양․오락프로그램에 정부․여당 인사들을 자주 출연시켜 빈축을 사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알리고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들에게 방송 출연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며, 특히 비정치적인 프로그램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경우 국민들의 호감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방송사들이 정치인들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때에는 여야 간 균형, 프로그램 출연의 개연성 등을 고려하며, 출연 정치인에 대한 일방적인 띄워주기나 홍보로 흐를 경우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최근 KBS의 여권 인사 출연은 최소한의 여야 균형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노골적인 띄워주기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 단체는 지난 해 11월부터 올해 2월 20일까지 방송된 KBS 프로그램 중 정치인들이 출연한 방송분을 모니터 해 문제점을 살펴봤다. 
 
 
최소한의 여야 균형 없고, 일방적 ‘띄워주기’
 
 
 
 
[표]에서 보듯 모니터 기간 동안 KBS의 교양․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9명인데, 여권 인사가 6명, 야권 인사가 2명이다. 출연 회수를 비교하면 11회 가운데  여권 인사가 9회, 야권 인사가 2회가 된다.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1) 사실상 ‘정두언 홍보’ 방송
 
여권 인사들 가운데에서는 정두언 의원의 방송 출연이 4회로 가장 많았다.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그가 ‘가수’로서 4집 음반을 냈다는 것이 일종의 ‘출연 명분’이 되었다.
정 의원이 출연한 방송에서는 그의 ‘도전정신’과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됐고, 음반 판매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등의 미담이 소개됐다.
 
○ <사랑의 리퀘스트>(2009.11.21)
뇌종양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대학진학마저 포기한 부녀의 사연을 전하면서, 정 의원이 수술을 앞둔 아버지의 병실을 찾아가 이들 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는 뇌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은 아버지에게 모자와 목도리를 선물하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열린음악회>(2009.12.13)
정 의원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4집 타이틀곡인 ‘희망’을 불렀다. 그의 노래 직후 진행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면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 같다”는 멘트를 덧붙였다. 
 
○ <여유만만>(2010.1.13)
주부대상 아침프로그램인 <여유만만>(2TV)은 정두언 의원의 쇼케이스 현장, 지인들과의 대화, 정 의원의 집 방문 등을 통해 인간적 면모를 부각했다.
프로그램은 우선 정 의원이 유명인사들과 가진 ‘신년회’를 보여줬는데 가수 설운도, 작곡가 겸 가수 추가열, 사진작가 김중만, 개그맨 황기순 등이 나와 정 의원의 노래실력, 성격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어 4집 쇼케이스 현장을 보여주며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초대가수들의 면면도 비췄다. 이 과정에서 가수 이민우 씨가 “(정 의원의)도전하는 모습이 멋지다”라고 발언한 모습을 담았고, 정 의원이 음반 판매 수익금 전액을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 사용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또 정 의원이 가수 ‘수와진’의 거리콘서트를 방문해 격려하고 함께 노래하는 장면도 보여줬다. 정 의원이 ‘심장재단 등을 많이 도와줬다’는 수와진의 인터뷰와 함께 “(정 의원이) 절친한 선배님들을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쳤다”는 나레이션이 나왔다.
정 의원의 집을 방문해서는 정 의원이 가족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 가족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등 단란한 모습을 보여줬다. 스튜디오에는 정 의원과 ‘10년 절친’이라는 코미디언 이용식 씨가 출연해 친분을 설명하고 정 의원이 과거 KBS드라마 <토지> 오디션에 도전했었다는 사실 등도 전했다.
 
○ <콘서트 7080>(2010.1.31)
<콘서트 7080>(KBS 1TV)은 7,80년대 인기 가수들이 나와 옛 히트곡을 다시 들려주는 음악 전문 프로그램이다. 그런 점에서 정 의원의 출연은 프로그램 취지와 맞지 않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은 자신의 노래가 아닌 올드 팝송(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ak Tree)을 불렀다.
노래 뒤에는 진행자 배철수 씨와 가수 데뷔 동기, 4집까지 발매한 이유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정 의원이 앨범판매 수익금으로 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있다고 말했고, 진행자는 “의원 정두언은 모르겠지만 가수 정두언은 히트곡을 꼭 내야겠다”, “이 분은 왜 이렇게 안 되는 일을 계속하나 안쓰러웠는데 5,6,7집 끝끝내 도전하라”고 덕담했다.
 
 
(2) 출연 기준도 애매한 ‘여당스페셜’
 
KBS는 설 다음 날인 2월 15일 특집프로그램으로 <설특집 2010년 명사스페셜>을 방송했다. 이른바 사회 ‘명사’들을 출연시켜 이들의 노래를 듣고, 출연자들의 투표로 ‘명사가 뽑은 명사’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 구성부터 문제였다.

이날 프로그램에 초대된 총 11명의 ‘명사’ 중 정치인이 4명이나 됐다. 4명 가운데 민주당 박지원 의원을 제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주호영 장관, 정진석 의원은 모두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이었다.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까지 포함하면 여권 인사만 4명을 차지한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야당 의원이 하나도 없을 경우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또 여야 인사들 5명이 어떤 기준으로 ‘명사 11명’에 들어간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아가 프로그램 내용은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인지 취지를 의심스럽게 했다.
진행자들은 프로그램 취지를 ‘명사와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연 ‘명사’들이 빼어난 노래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대화 내용마저 출연자에 대한 찬사 일색이어서 이런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왜 정초 아침부터(오전 9시 40분 방송) 봐야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명사 띄워주기’는 영상과 자막, 진행자들의 소개 멘트로까지 이어져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진행자 김병찬 씨와 황수경 씨는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출연 ‘명사’들을 한 사람씩 소개했는데 ‘띄워주는’ 멘트로 일관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해 “결식아동 돕기에 굉장히 바쁘시지요?”, “앞서가는 경기도의 행동하는 도지사”, “택시운전까지 하며 서민들의 애환을 함께 나누는 행동하는 도지사”라고 소개했다. 주호영 장관에 대해서는 “소통과 화합의 대명사”, 정진석 의원은 “젊음과 패기, 소신과 신념이 있는 따뜻한 리더”, 박지원 의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7전8기의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출연자 띄워주기’는 노래를 부르기 전의 영상과 자막, 노래 뒤 인터뷰에서도 이어졌다. 김문수 지사 노래에 앞서 나온 영상 자막에서는 “매주 일요일 택시기사까지, 봉사는 그의 평생 덕목”, “행동하는 도지사 김문수”라고 소개했다. 노래가 끝난 뒤에도 ‘택시운전을 하는 이유’를 묻는 등 김 지사의 서민적 활동을 부각했다.
주호영 특임장관은 영상 자막으로 “그의 주위는 늘 평화롭다”, “끊겨진 인연도 필연으로 묶는 특유의 힘이 있는 사람”, “소통과 화합의 대명사”라고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노래 제목 ‘비내리는 고모령’에 대한 사연을 묻자 주 장관이 ‘고모령의 무대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이기 때문에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답하자, 진행자는 “이 순간에도 지역구 사랑”이라고 띄웠다.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에 대해서는 영상 자막으로 “그의 얼굴은 늘 따뜻하다”, “몸에 베인 소박함, 의리로 뭉쳐진 국민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영상 자막에서 “통일을 향한 끊임 없는 집념, 패기와 열정 왕성한 의정 활동. 젊고 푸른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3) 여당 의원의 ‘이웃돕기’ 부각
 
지난 해 12월 5일 <사랑의 리퀘스트>(KBS 1TV)에는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이 출연했다. 그는 핸드볼 국가대표였던 임오경 선수와 함께 스튜디오에 출연해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함께 한 ‘이웃돕기’ 활동을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윤 의원이 연탄 리어카를 끌고, 연탄을 나르는 모습 등을 보여줬으며, 한나라당 소속 안상수 인천시장도 같이 연탄을 나르며 봉사하는 장면을 비춰주기도 했다. 또 윤 의원이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하고, 자장면 나르는 장면 등을 보여준 뒤, ‘봉사활동은 중독성․전염성이 있다’, ‘보다 따뜻한 사회로 나가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발언도 실었다.
이어 스튜디오에 나온 윤 의원은 부양가족이 있어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독거노인 사례를 언급하며 ‘사회적 관심,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윤 의원이 주로 봉사활동을 한 인천 남구 숭의동은 윤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KBS, 여당 인사 홍보에 발벗고 나섰나
 
살펴본 바와 같이 KBS 교양․오락프로그램의 여권 인사 출연은 정치적 균형을 잃고 일방적인 홍보로 흘렀다. ‘정권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KBS가 여당 인사들의 홍보를 위해 발벗고 나선 것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KBS의 이 같은 행태는 다른 방송사와 비교해도 ‘튀는’ 것이다. 같은 기간 MBC는 주부대상 아침 토크프로그램 <기분 좋은 날>(2009.11.4)에서 정두언 의원을 출연시켜 정 의원의 가수도전, 인맥, 가정적 모습 등을 전하는 정도였다. SBS는 <선데이 뉴스플러스>(2009.11.7) ‘이슈 인물’ 코너에서 정두언 의원을 인터뷰하며 간단하게 4집 앨범 발표 사실을 소개했지만 주요 내용은 세종시, 외고문제 등 정치이슈였다. ‘출세만세’ 4부 ‘리더에게 길을 묻다’(2010.1.24)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출연시켜 내용과 관계없이 적어도 여야의 기계적 균형을 지켰다.
 
한편 KBS가 여권 인사들을 대거 출연시키는 과정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포함된 것은 또 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는 KBS가 교양․오락프로그램 뿐 아니라 보도에서도 ‘김문수 띄우기’ 경향을 보이고 있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지난 1월 26일 KBS는 저녁메인뉴스 <고용창출…금리혜택>(송명훈 기자)을 통해 김문수 지사를 집중적으로 띄웠다. 보도는 52억원 규모의 통신시설 사업권을 따냈지만 자금이 없고 고민에 빠졌던 중소기업이 “시중 금리보다 40%정도 싼 4%대 이자율에 1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경기도의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업체가 지원받는 돈은 경기도가 마련한 ‘일자리 특별자금’”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문수 지사가 ‘특별자금 융자지원 협약식’에 참석해 사인하는 장면을 보여준 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자유롭게 고용을 더 창출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도록 금융지원을 하게 됐다”는 김 지사의 인터뷰를 실었다. “경기도는 이 특별경영자금 대출을 통해 4천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당시 MBC, SBS에는 관련 보도가 없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가 이런 ‘교묘한 방식’으로 여당과 여당 후보들을 거듭 지원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KBS의 여당 인사 띄우기에 ‘구색 맞추기’가 되어버린 야당 인사들도 지금 시점에서 자신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KBS가 여당 인사 편향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을 따지고 비판하기는커녕 문제 프로그램에 얼굴을 함께 얼굴을 내민 것은 KBS의 잘못된 행태에 ‘변명의 여지’를 주는 일이다. 나아가 KBS가 야당 정치인들에게 ‘TV 출연’이라는 당근을 주면서 자신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야당 정치인들이 여기에 순응해 제 역할을 방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끝>
 
 
2010년 2월 2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