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지난 3월 27일, 제21대 총선의 후보 등록이 마감됐다. 코로나의 영향과 우려 속에서 본격적인 선거 정국으로 진입한 것이다. 큰 이익이 충돌하는 선거가 깨끗했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천 과정에서의 수많은 잡음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온갖 꼼수들까지 난무하면서 21대 총선 판은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열어놓은 것처럼 혼탁한 양상을 보인다. 지난 3월 26일 총선미디어감시연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총선이 다가오면서 선거보도의 총량과 비중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주까지는 전체적으로 “수도권 지역구 보도가 많고, 위성 정당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에 ‘익명 취재원’을 사용한 보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익명보도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위 ‘카더라’식 보도의 전형으로 언론사들이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데 주로 동원하는 수법이다. 언론은 이를 관행적으로 반복하지만, 익명에 기댈 경우에는 기사를 입맛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독이 되기 십상이다.
文대통령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된 조선일보
선거와 관련해서 지난 한 주에 눈여겨볼 만한 뉴스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의 발표다. 지난해 ‘조국정국’ 이후 40% 초반까지 내려앉았던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코로나 사태를 지나는 동안 서서히 오름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다. 하지만 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둔 시점에 정당 지지율 등 다른 요인들에는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50%를 훌쩍 넘긴 사실은 여당엔 호재로 야당엔 악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조선일보의 ‘대통령 깎아내리기’ 보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조선일보는 <코로나로 세계가 文 찾아” 靑 자화자찬 사실일까?>(3/26 원우식 기자)라는 기사를 ‘팩트체크’ 형식으로 실었다. 우리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세계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던 무렵이다. 위 기사에서 원우식 기자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지원요청을 받았다고 청와대가 밝힌 것”을 두고 “실제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미국요청을 받았다”며 “친문 진영에서는 유독 한국에만 요청이 밀려들고 있으며, 그것이 문 대통령의 성과라는 식으로 홍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만 특별한 게 아닌데 청와대와 ‘친문’ 진영에서 호들갑을 떤다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재앙 이후의 재앙>(3/25 이동훈 논설위원)에서 “문재인 정권은 모든 일에 핑곗거리가 생겼다”라고 운을 뗀 뒤 “방역 실패는 코로나 팬데믹에 덮였고, 경제 실정은 코로나발 세계 경제 위기에 묻혔다”며 “삼 년째 앓아누운 환자에게 손도 못 대던 실력 없는 주치의는 사흘 전 걸린 감기에 모든 책임을 떠넘겨 놓고 온갖 요란을 떤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에 비해서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구체적인 지표와 수많은 외신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어떻게든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싶은 정파적 태도 때문에 공감이 안 가고, 별 의미도 없는 기사를 쓰고 있다. 정말 이런 내용이 보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2010년 지방선거와 데자뷔 되는 천안함 과잉 보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있던 날은 천안함 침몰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시작 후 처음으로 ‘서해수호의날’ 행사에 참석했다. 당일 오전 조선닷컴은 <문 대통령 막아선 천안함 유족 “누구 소행인지 말해달라”>(3/27 김아진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사진과 함께 조선닷컴 홈페이지 상단에 실었다. 내용은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분향을 할 때 천안함 용사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이 불쑥 다가와 “(천안함 침몰이)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하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최초 입력 시간은 오전 11시 37분이었지만 14시 19분에 사진만 교체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상단 자리를 차지했다. 평소 인터넷 언론의 판갈이 속도로 볼 때 이런 경우는 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기사를 시작으로 조선일보는 ‘文’을 제목으로 하는 천안함 관련 기사들을 대량으로 쏟아냈다. <서해 수호의날 첫 참석한 문대통령...대북 메시지 없이 ’애국심‘ 강조> <서해 수호의날...文 대통령 참석했지만 민주당은 ‘침묵’> <북 도발엔 한마디 안 한 문 대통령> 등 무려 아홉 건의 관련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들 기사 대부분은 문 대통령이 ‘애국심’을 강조하면서도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이라는 점을 직접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 대해서도 별다른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서해수호의날’ 10주기를 맞아 관련 기사를 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기사가 그토록 큰 비중으로 다룰 만한 것 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당일 동아일보도 <문 대통령 막아선 유족 “천안함 폭침 누구소행인가요?”>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고, 중앙일보 역시 <文 막아선 천안함 유족 윤청자 “김정은 부른다는 게 분해서”>의 제목으로 1건씩의 기사를 올렸다. 이에 비한다면 조선일보의 보도량은 과도하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했고, 두 달 뒤인 5월 24일에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6.2 지방선거를 불과 9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전국의 선거방송 토론회에서는 여당(한나라당) 후보들이 야당(민주당) 후보들을 향해서 “천안함 침몰이 누구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윽박지르듯이 질문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조선일보의 과다한 ’천안함’ 보도가 당시와 데자뷔 되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 애국심과 국민 애국심이 달라야 한다?
조선일보의 안달은 끝이 없다. 강천석 논설고문은 기명 칼럼 <4월15일, ‘대통령 애국심’과 ‘국민 애국심’ 차이를 보여주라>(3/28 강천석 논설고문)에서 “유권자들은 국민의 애국심이 대통령의 애국심과 어떻게 다른 지를 표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강 고문은 현 정부의 대법원은 “문재인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문재인 헌법재판소”, 공수처는 “문재인 공수처”로 규정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마저 대통령의 꼭두각시 딱지를 붙여서 극우 세력과 미래통합당이 주장하는 좌파 독재 프레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독재를 막기 위해 야당에 표를 몰아주자는 노골적인 정치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정파성이 아무리 견고하다고 해도 언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이미 선을 훌쩍 넘었다. 총선이 아직은 보름이나 남았는데, 그 사이 얼마나 더 선을 넘을까 불안하다. 조선일보가 선거 보도보다 선거에 더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의 선거보도는 ‘빈약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수가 적었고, 메인 뉴스에서는 모두 후반에 배치했다. 신문들도 대체로 선거관련 뉴스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유독 조선일보만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치려는 보도’가 많았다는 것이 한 주간 주요 언론들의 양상이 아니었나 싶다.
‘쇼와사’를 쓴 일본의 역사학자 한도 가즈토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어서 패망한 첫 째 이유를 언론들의 광적인 왜곡보도 때문’이라고 했다. 아사히, 마이니치 같은 대형 신문들이 군부와 밀착해서 여론조작에 나섰고, 그런 정보를 국민들이 믿게 된 것이 일본이 패망의 첫발을 내딛게 된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상황과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연하게 다르다. 더욱이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지금은 특정 언론이 여론을 주도하기도 어렵고, 어떤 언론의 주장도 국민들이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 특정한 집단과 밀착할 경우, 언론은 여론 조작의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국가를 큰 불행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게 당시 일본의 교훈이다. 조선일보가 깊이 곱씹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2020년 3월 31일
총선미디어감시연대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