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논평_
민생 위기 외면한 채 ‘코로나 정치’에 골몰하는 언론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이탈리아에서만 누적 확진자 수가 3만 명(17일 오후 6시 기준)을 넘고 하루 3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을 비롯해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돼 나가고 있다. 지난 13일 세계보건기구 WHO는 “유럽이 새로운 진원지가 됐다”라고 공식 선언했다.
중앙사고 수습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3월 13일 0시 기준으로 1일 신규확진자 수가 100명 이하로 감소하면서 격리해제자 수보다 적어졌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진정세에 접어들고 있지 않나’하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해볼 수 있지만 유럽에서의 새로운 확산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공포의 터널 속에 여전히 우리를 가두어 놓고 있다.
한 주간 코로나19 주요 이슈와 언론보도 동향
‘코로나정국’은 국민들 생활, 나아가 국가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런데 4.15 총선을 앞둔 각 정당의 공천 작업까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코로나를 선거에 활용하는 이른바 ‘코로나 정치’ 프레임이 정치권과 보수 매체(유튜브 포함)를 중심으로 확산될까 우려된다.
먼저 지난 한 주간의 주요 이슈를 짚어보자. 월요일인 9일은 마스크 5부제가 첫 시행 됐다. 절대량이 부족한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가 사실상의 배급제를 시행한 것이다. 10일에는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했다. 지표상 대구 경북지역이 다소 안정기로 접어드는가 싶은 상황에서 다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블랙먼데이’가 재현됐고, 국제유가가 곤두박질쳤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를 계기로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추경편성 등의 뉴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요일인 13일에는 김경수 경남지사를 비롯해서 여당 자치단체장들 중심으로 제기돼오던 재난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전주시가 처음으로 지급을 결정했다. 선거정치와 관련해서는 매일 조금씩 전해지는 각 당의 공천 과정 외에 민주당의 통합 비례정당 참여 여부를 둘러싼 이슈가 중심을 차지하는 정도였다.
방송부터 살펴보자. 선거와 관련해서 특별한 이슈가 없었던 만큼 지상파 3사의 보도는 코로나를 중심으로 하루하루의 상황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 보도를 보면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후반부에 배치했고, SBS <8뉴스>만 전반부에 배치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첫 시행에 따른 시행착오와 혼선, 시민 불만 등의 소식을 중심으로 한 꼭지씩만 전했다. 특별히 ‘코로나 정치’라고 부를 만한 프레임 짜기는 없었다.
‘코로나 정치’ 프레임에 골몰하는 중앙•조선
신문들도 대체로 5부제 시행에 따른 시행착오와 시민 불편을 짚었다. 국민들은 누구나 마스크를 넉넉하게 사두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마스크의 절대량은 늘 부족하다. 불만은 당연하다. 그래도 싼값에 기본량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5부제 시행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다. 보수지들은 ‘마스크가 뭐 그리 중요한데’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마스크를 놓고도 ‘친문’ 딱지를 붙인다. 먼저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마스크를 쓰지 않는 미국>(3/14 박현영 워싱턴 특파원) 제목의 칼럼부터 보자. 박현영 기자(워싱턴특파원)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일반 대중은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한 이유”를 소개하면서 “감염 집중지역인 시애틀, 뉴욕 인근 주민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밀집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도시에서도 마스크 쓴 사람을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코로나 발 경제 위기가 닥치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부처 장관들이 마스크 찾아 뛰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러나 이 기사는 같은 매체의 <中에 마스크 퍼준 뒤 혹독한 대가…韓 ‧日‧伊‧이란의 후회>(3/5 임선영 기자)와 비교된다. 이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생한 초기에 우리 정부가 200만장의 의료 마스크를 중국에 지원한 사실을 놓고 그 결과로 “국내 마스크 부족현상이 극에 달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마스크 공급이 부족할 때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좀 나아지니까 미국의 예를 들어 한국의 마스크 열기가 ‘과한 에너지 소모’라고 또 비판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뜬다. 13일 자 <친문 네티즌들 마스크 안 사기’ 운동... 정부 여당도 “면 마스크 쓰자” 가세>(3/13 최아리 기자)에서 최아리 기자는 “마스크 부족으로 국민 불만이 커지자 (친문 네티즌들이) 정부 감싸기에 나섰다”고 지적한다. 그 근거로 ‘마스크 안 사기 운동 관련 글을 처음 올린 사람이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 집회 사회를 맡기도 했던 김남훈 씨로 알려졌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즉 조국수호 집회의 사회를 본 김남훈 씨는 친문이고, 따라서 마스크 안 사기(양보하기) 운동은 친 정부적이라는 결론이다. 나아가 ‘마스크 안 사기를 넘어서 안 쓰기를 주장하는 서울대의 한 교수’를 “강성 친문”으로 규정하고 ‘이 교수는 홀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다가 다른 교수들의 항의를 받고서야 마스크를 썼다’고 비판한다. 지나친 억지다. 건강하고 별 외출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줄을 서면서까지 마스크를 많이 사두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크 안 사기’ 운동을 이해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텐데, 그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이 조국수호 집회의 사회를 본 적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문’ 딱지를 붙이는 건 ‘역시 조선일보답다’는 말 외 달리 할 말이 없다. ‘코로나 정치’의 막장을 보는 듯하다.
‘재난기본소득’ 의제화에 나선 MBC•한겨레... 다른 언론들은 소극적 보도
지난 한 주간의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 아쉬운 건 코로나에서 비롯된 경제, 민생 위기와 관련한 대응 보도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총선이 코앞이니 당장의 민생대책은 곧 각 당의 선거공약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예민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두 달 가까이 진행되는 혹심한 경기 침체에서 당장 해야 할 시급한 조치는 있어야 한다. 역시 가장 시급한 것은 소득이 뚝 끊겨 최소한의 생계조차 버거워진 영세 자영업자, 극빈층, 불안정 노동자 등 경제 취약 계층이다. 이들은 소득이 끊길 경우 아주 짧은 기간에도 삶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마스크 공급에는 그토록 집착하던 언론들이 정작 이들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보도는 별로 하지 않았다.
특히 이미 의제로 던져진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보도가 특히 방송에서 거의 중단된 게 아쉽다. 그나마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 13일 ‘전주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재난기본소득 지원을 위한 추경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을 맨 첫 꼭지로 올렸고, 이어 ‘김경수, 이재명, 박원순도 가세’, ‘전 국민 현금 주면 안 되나’ 등 연속 두 꼭지를 더 달면서 의제를 부각시켰다. 당일 KBS <9뉴스>는 첫 꼭지로는 ‘미국발 검은 금요일’, 이어서 ‘세계 증시 패닉’을 차례로 올렸을 뿐 ‘전주시의 재난기본소득 지급 결정’과 관련해서는 침묵했다. 공영방송 KBS의 눈높이가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있지 않나 싶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눈을 좀 더 가까이, 더 낮게 두고 살펴야 할 일이 있는 데도 말이다. SBS <8뉴스> 역시 단 한 건의 관련 보도도 없었다.
신문으로는 한겨레와 경향, 서울신문 등이 기획 기사와 사설, 자체 유튜브 채널까지 동원해 재난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한 반면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일간지는 찬반 공방으로 처리하거나 외면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이미 재난기본소득을 “총선용 현금 살포”라고 규정한 마당에 보수일간지들이 이를 의제화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것이 현금 지급이든 다른 방식이든 ‘재난소득’ 논쟁은 피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과제라는 점에서 언론들의 적극적인 보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정책관료들의 나쁜 속성 중 하나는 언제나 늦게 대응함으로써, 호미를 들고 나서야 할 때를 놓치고 뒤늦게 삽을 들고 나선다는 거다. 언론 보도가 활발해지면 그나마 정부나 정치권의 대응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음 주에는 한발 더 나간 언론 보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