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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개 켜는 방송사 대선 보도, 벌써부터 ‘반문재인 성토장’?지난 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이른바 ‘장미 대선’이 현실화됐다. 황교한 권한대행은 15일, 5월 9일로 대선일을 확정 발표했다. 그러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국정농단 사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최순실·안종범·차은택 등 주요 피의자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파면된 박근혜 씨는 아직 검찰 수사도 받지 않았다. 청와대에 주요 증거들이 남겨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황교안 권한대행은 13일부터 대통령 기록물 이관 절차를 시작해 ‘증거인멸’ 논란을 일으켰다. 검찰은 16일 ‘신속한 수사’를 이유로 청와대 압수수색을 포기했다. JTBC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의약품 불출대장에 미용시술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드레싱’이 포함되어 있다고 단독 보도해, 더 밝혀야 할 박근혜 씨의 ‘헌정위반 혐의’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파면’이 주요 뉴스였던 일주일…TV조선만 ‘선제 여론전’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직후에는 박근혜 씨의 파면 사유와 자택 복귀, 폭력으로 얼룩진 친박 집회 등 당면한 사안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파면 후 지난 일주일 간 방송사들은 대선 보도보다 국정농단 관련 보도를 훨씬 더 많이 보도했다. 박근혜 씨 파면이 결정된 10일의 경우 7개 방송사 모두 특집 뉴스를 구성했으며 헌재의 최종결정문 분석, 파면 사유, 헌재 앞 친박집회 폭력 양상, 조기 대선 일정 등을 보도했다. 당연히 보도량이 많았고 MBC‧JTBC‧TV조선의 경우 40건 내외를 기록했다. 박근혜 씨가 자택으로 복귀한 12일까지도 헌재‧검찰‧청와대 소식이 주요하게 다뤄졌고 7개 방송사 모두 국정농단 관련 보도량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대선보도에 비중을 두고 있는 방송사는 TV조선이었다. TV조선은 대선보도와 국정농단 보도의 비율이 1:2로서 그 격차가 가장 적었다. 박근혜 씨의 추가적인 혐의와 청와대 증거인멸 의혹을 놓치지 않고 있는 SBS와 JTBC는 대선보도와 국정농단 보도의 비율이 각각 1:5.5, 1:6.2에 이른다.
△ 7개 방송사 대선 보도 및 국정농단 보도량 비교(3/10~3/16) ※ 대선보도 : 국정농단 보도
TV조선은 박근혜 씨가 자택으로 복귀한 12일부터 15일까지 대선 보도가 4건에서 12건으로 크게 증가한 것과 달리, 국정농단 보도는 13일 16건을 보도한 것을 제외하면 12건에서 8건으로 점차 감소했다. 15일에는 대선보도 12건, 국정농단 보도 8건으로 7개 방송사 중 유일하게 대선 보도를 더 많이 내기도 했다. 물론 선거를 앞둔 시기에 선거보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박근혜 국정농단과 관련한 주요 이슈가 여전히 유효한 상태에서 대선보도가 무조건 많아지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심지어 타 방송사보다 일찍 대선 보도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TV조선 대선 보도의 내용이 주로 ‘문재인 때리기’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미리 보는 대선 보도 경향, 방송 뉴스는 ‘반문재인 성토장’?
TV조선의 ‘문재인 때리기’는 사실 대선이라고 더 극심해진 것은 아니다. 평소, 아무런 이유가 없을 때에도 TV조선은 빈번히 ‘정치적 보도’의 단골 메뉴로 ‘문재인 때리기’를 해왔다. TV조선이 대선보도를 국정보도보다 더 많이 낸 15일과 그 다음날인 16일 뉴스를 보면 TV조선의 ‘반문재인 보도 경향’이 뚜렷하며, 이는 타사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 7개 방송사 대선 보도 상세 비교(3/15~16) ⓒ민주언론시민연합
일단 이틀 간 대선 보도량에서 TV조선은 총 18건으로 타사를 압도했다. 또한 전체 대선보도 중 1/3에 해당하는 6건이 ‘야당 논란’을 다룬 것이다. 내용은 모두 ‘민주당이 벌써부터 여당 행세를 한다’거나 ‘문재인 캠프 인사들은 막말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일방적인 비난에 해당한다. 이런 보도 중 압권인 사례는 14일에 나왔다.
TV조선은 14일 9건으로 가장 많은 대선 보도량을 보였는데 그 중 하나인 TV조선 <앵커칼럼/참을 수 없는 가벼움>(3/14 https://bit.ly/2nr7soG)은 기가 막힌 수준의 보도였다. 문재인 캠프 인사들을 비유해 “입이 머리의 항문”이라고 비아냥거렸기 때문이다. 윤정호 앵커는 먼저 스스로도 “비속어”라고 인정하면서도 “비노는 난닝구, 친노는 빽바지”라고 부른다며, ‘친노’와 ‘비노’를 갈라치기 했다. 이어 ‘문재인 캠프 인사’하면 “거친 말이 싸가지”가 떠오른다는 ‘술자리 잡담’에 가까운 ‘평론’을 이어갔다. 이 보도의 결론은 ‘빽바지 친노의 싸가지 말버릇을 보면 입이 머리의 항문이라는 격언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 ‘친노’를 비속어 ‘빽바지’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캠프 인사’를 ‘머리의 항문’이라 비난한 TV조선(3/14)
근거로 제시한 사례들도 황당하다. “노 대통령 서거가 계산된 것”이라는 손혜원 의원 발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 맞아 돌아간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야 했다”는 한완상 상임고문 발언,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돌려차기”라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발언이 ‘입이 항문’인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완상 고문은 박근혜 씨가 탄핵되자 “지난날 자기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헌법적 통치행위로 직속부하에게 총을 맞아 돌아가셨다. 그 아버지가 그랬으면 그걸 반면교사 삼아 대통령직을 잘했어야 이런 불행한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타이른 수준인데 TV조선이 ‘총 맞은 아버지’ 부분만 부각해 ‘막말’로 바꾼 것이다. 정 전 장관 발언 역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 목함지뢰 도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의 의도’를 설명한 것으로서 충분히 합리적인 수준이다. 이를 차치하더라도 ‘빽바지=친노=막말’이라는 조야한 논리로 문재인 캠프를 공격한 의도 자체가 수준 이하이다.
15일과 16일에도 수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 이어졌다. 15일 TV조선은 ‘문재인 논란’만 4건 보도했는데 이 중 2건은 ‘김종인 VS 문재인’ 설전이고 <“패권이 혁신이냐” 야권 집중 포화>(3/15 https://bit.ly/2m3dBdC)의 경우 아예 정치권의 ‘문재인 패권 비판 발언’만 7개를 모아 열거하고는 보도를 끝내버렸다. 16일에는 아예 ‘민주당 때리기’를 톱보도로 배치해버렸다. 이날 KBS‧JTBC‧채널A가 검찰 소식을, SBS‧채널A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먼저 톱으로 전했는데, TV조선만 느닷없이 ‘민주당 때리기’를 톱보도로 내놓은 것이다. 16일 TV조선 톱보도 <“개혁 1호는 검찰” 벌써 군기 잡기> (3/16 https://bit.ly/2n4EmxE)는 민주당이 “검찰이 새 정부 개혁대상 1호라고 몰아붙였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검찰 군기잡기”,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지지율 경쟁에서 크게 앞서 나가자 집권 후 검찰을 손볼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리포트에서 보여준 것은 국회 현안질의에서 “우병우 사건 이번에 제대로 결론 못 내면 검찰이 새 정부 들어서 개혁 대상의 1호로 될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한 이춘석 민주당 의원과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 포기에 “검찰이 청와대에 의한 증거 인멸을 방치하고 눈감아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비판한 민주당 고용진 대변인 발언이다. TV조선도 지난해 11월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황제 수사’를 맹비판했다는 점,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는 의혹 와중에 검찰의 압수수색 포기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수에 가까운 비난들이다.
뚜렷한 ‘친여 편향’도 여전, TV조선의 대선 보도 심히 우려돼
TV조선의 최근 대선 보도 경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여당 경선 판세 보도도 타사와비교하면 매우 많다는 것이다. 15, 16일 이틀 간 총 18건의 대선 보도 중 무려 7건이 여당 판세에 쏠렸다. 물론 15일 황교안 대행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다른 방송사들도 여당 판세 보도가 많았던 건 매한가지다. 방송사는 모두 황 총리 불출마의 영향과 지지율 분산을 분석했다. 그러나 TV조선은 그 중에서도 보도량이 너무 많다. TV조선만의 철저히 여권을 옹호하는, 독특한 시각도 눈에 띈다.
TV조선 <오래 전부터 대선 불출마 결심한 듯>(3/15 https://bit.ly/2lZRhSr)은 황교안 대행 불출마에 “범여권 대선주자들 가운데 1위를 달리던 후보가 손을 놓은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고 “초유의 대통령 탄핵 상황에서 대행 업무를 저버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 평가했다. 심지어 “황 대행은 애초에 출마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라는 총리실 관계자의 전언까지 덧붙였다. 황 대행이 원래 출마 의지가 없었다는 이 황당한 주장은 TV조선이 보도 제목으로도 차용했다. TV조선이 감싸주려 해도, 황 대행이 박근혜 씨 탄핵 소추안 통과 이후 3개월 동안 쏟아지는 대선 출마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며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대선일 확정을 미루며 출마를 고민했다는 건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이와 달리 JTBC <19대 대선 D-55…5월 9일 공휴일 확정>(3/15 https://bit.ly/2mR5sIm)은 황 대행 불출마의 ‘진짜 이유’로 “최순실 사태 공동책임론이 불거지면서 한자릿수로 떨어지고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짚었다.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박근혜 정부 실패의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유”라면서 “황 대행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채널A도 1건의 보도에서 ‘국정농단 공동책임론’을 불출마 이유로 꼽았고 나머지 방송사들은 ‘국정공백 우려’라는 황 대행 입장과 ‘지지율 하락’만 언급했습니다.
TV조선 <황 불출마 최대 수혜자는 안철수?>(3/15 https://bit.ly/2ncAATC)는 다짜고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불출마하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볼 대선주자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고 하더니 안철수 전 대표의 “대통령 권한 축소와 국회 기능 강화, 분권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 공약' 발표”를 전했다. 안 전 대표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한 외교 통상 정책 구상”까지 보도해줬다. 같은 날 타사도 모두 ‘황교안 불출마의 수혜자’를 예상했는데 홍준표 지사, 유승민 의원 등이 언급됐을 뿐, 안철수 전 대표를 지목한 건 TV조선뿐이다.
검증 없이 논란‧비방전만 보도하는 행태 또 반복될까
물론 보도량에서 TV조선이 타사를 압도했으나 야권 후보 관련 논란만 조명하면서 일방적인 비난을 퍼붓는 보도 행태는 다른 방송사에서도 나왔다. 채널A와 MBN도 ‘문재인 캠프 인사 검증 논란’을 각 2건, 3건씩 다뤘다. MBC도 <대세론 힘 실리나?…‘여당 행세’ 비판>(3/15 https://bit.ly/2nEhHp9)에서 ‘민주당이 벌써 여당 행세를 한다’는 비판을 다뤘다. MBC가 민주당 여당 행세한다며 지적한 사례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청와대 기록물 지정을 임의대로 하지 말라”는 요구 △우상호 원내대표의 “태극기집회 주동자에 대한 처벌” 요구 △한반포평화포럼의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모든 외교안보 관료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요구 등이다. ‘여당 행세’라고 하기에는 여론을 대변하거나 충분히 합리적인 요구들이다. 청와대 기록물 지정의 경우 국정농단 증거들이 봉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고 ‘태극기집회’는 취재진을 폭행하고 경찰 버스를 탈취, 난동을 부리다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런 상황을 중지하라는 요구가 어떻게 ‘여당 행세’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 합리적인 비판을 ‘여당 행세’로 규정한 MBC(3/15)
많은 방송사들이 이렇게 ‘야권 비난’에만 열을 올릴 때, 검증 보도는 거의 나오지가 않았다. 그나마 JTBC‧채널A‧MBN이 보도를 냈다. JTBC는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캠프의 ‘인사 검증’을 ‘팩트체크’하여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 진익철 전 서초구청장에 제기되는 비판에 근거가 있음을 보여줬다. 채널A와 MBN은 ‘후보 난립 현상’을 각 1건으로 비판했고, 채널A는 비판적으로 다뤘습니다. 안희정 지사의 ‘국민안식년제’ 공약의 실현 가능성도 1건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7개 방송사에서 이틀 간 단 4건밖에 검증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는 현실은 사실상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검증과 유권자 의제가 대선 보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