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3월_회원 인터뷰|김예리, 나경렬 회원

청년들에게 꿈과 행복을 허하라
등록 2018.03.19 19:26
조회 503
지난해에는 민언련과 오랜 인연을 맺는 분들의 인터뷰가 많았다.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행사와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출판도 있었고, KBS․MBC 정상화 등이 언론 운동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젊은 회원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 아쉬웠다. 이번에 김예리․나경렬 회원을 통해 아쉬움을 해소했다. 지난 2월 12일, 설을 앞두고 김예리․나경렬 회원을 만났다. 두 회원은 1년 반 넘게 신문모니터위원회(신문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예리 회원은 분과장을, 나경렬 회원은 운영부장을 맡고 있다. 공덕동 민언련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 민언련 회원이자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표지06.jpg

 

 
2016년 중반부터 활동한 김예리․나경렬 회원

김예리 회원은 2016년 봄에 열린 ‘언론모니터 교실’로 민언련과 인연을 맺었다. 다른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때부터 언론 보도나 언론 이슈가 궁금할 때마다 민언련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했단다. 강좌 소식을 뒤늦게 접해 전화 문의 후 2강부터 수강했는데, 강의를 마치고 당연히 분과 활동에도 참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준비된 회원이었다고나 할까.
 
나경렬 회원은 선배 권유로 알게 된 경우다. 휴학을 하고 ‘공부 좀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학교 선배가 ‘민언련 함 가봐라’고 추천 했고, 마침 모집 중이었던 ‘참언론아카데미’를 덥석 신청한 것이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MBC 사장을 지낸 김중배 선생님이 교장이었고, 이용마 기자 등 좋아하던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으니 신청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강의가 끝나면 “당연히 분과를 하는 건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흔한 말로 ‘낚인’ 것이다. 나경렬 회원에게 민언련을 소개한 선배는 정작 민언련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하니 좀 궁금해진다. 김예리․나경렬 회원은 이렇게 민언련과 인연을 맺어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대와 실제는 어땠어요?
 
“기대했던 그대로 인거 같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김예리 회원. 모니터교실을 수강할 때부터 분과 활동을 염두 했고, 생각하는 바를 가감 없이 토론하고 모니터 보고서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란다. 토론이 가끔 산으로 가기도 하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도 했다.
 
또 언론인을 준비하고 있어 스터디 모임도 하고 있는데, 이 모임에서의 글쓰기는 심사위원 입장에서 중립적이고, 판관처럼 접근하거나 요령 있게 처세하는데 몰두해야 한다는 자기검열이 늘 존재한다. 그런데 신문분과는 현안에 대해 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고 토론 결과를 ‘검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 스터디 모임은 ‘어디든 일단은 취업 되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기 쉬운데 민언련은 가치지향적이라 ‘이런 기자는 적어도 되면 안되겠다’ 이런 본보기를 계속 보게 되는 점이 좋다고 꼽았다.

나경렬 회원은 엄살을 떤다. 널널한 동아리 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빡셌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오자마자 사드 관련 모니터 보고서를 썼고, 두 번째로 1~10차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문화제 관련 보고서를 정리했는데, 보도양이 어마어마했거니와 계속되는 현안을 따라가기에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걸 진짜 해야하나?’, ‘이거 어떻게 하지?’라는 번뇌의 지속이었다고. 그런데 분과원들이 같이 정리해 주니까 되더라, 쿨하게 얘기한다. 지금까지 작성한 다섯 번의 보고서 중 힘들었던 것만큼 가장 기억에 남는 보고서라고. 나경렬 회원은 활동을 하면서 늘 저널리즘을 고민하고 있다. 어떤 보도를 해야 하나, 마땅히 해야 하는 보도, 또는 하면 안 되는 보도를 모니터 하면서 ‘죽어도’ 쓰면 안 되는 기사의 기준도 잡아간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민언련 활동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신문분과06.jpg

 

 
이렇듯 보람을 선사한 신문분과가 요즘 위기다. 분과장과 운영부장만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거 같다. 다행히 2월에 열린 언론모니터 교실 수강생 6명이 한꺼번에 분과를 찾았고, 더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나경렬 회원은 신입 분과원과 나눌 생각에 들떠있다.
 
이들은 분과 활동뿐만 아니라 인턴과 민언련 행사 기획 등으로 민언련에 ‘한 걸음 더 들어’왔다. 김예리 회원은 2016년 6개월 간 인턴으로 사무처에 상근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종편 모니터 업무를 돕다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주 종목인 신문 모니터로 업무를 변경했다. 어땠냐고 물으니 “활동가들이 존경스러웠어요”라고 답한다. 늘 새로운 이슈가 터지고,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을 무기로 왜곡보도를 밀어붙이는 신문들을 매일같이 반박하는 업무를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모니터라는 결과물이 단순간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음에도 지속적으로 치열하게 대응하는 것 또한 대단하다고 추켜세운다. 이렇게 얘기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경렬2016-01.jpg

2016년 민언련 회원캠프 준비단에 참여한 나경렬 회원

 
나경렬 회원은 작년과 재작년 회원캠프 준비단을 하면서 민언련과 한층 친숙해 졌다고 한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행사 기획이 낯설지 않은 것도 한몫했지만 다양한 회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소중했고, 특히 재작년에 만났던 회원 자녀들이 나경렬 회원에게 보고 싶었다고 하니 더 뿌듯했다고 자랑인 듯 아닌 듯 늘어놓는다. 사실 작년에는 기획단에 참여한 신문분과원이 따로 있어 나경렬 회원은 기획이나 거들까 하는 생각으로 발을 들였다가 더 깊숙이 빠진 셈이다. 
 
민언련 얘기를 주고받고 한 숨 고르니 주제가 청년문제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자녀로, 선후배로 친구로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두 청년이 고민을 풀어낸다.
 
유예된 행복과 불공정 사회

제로섬은 고사하고 마이너스 게임이 일상화 된 한국사회를 두고 나경렬 회원이 포문을 연다.

“우리는 행복을 모르고 살았어요.”
 
중학교 때는 특목고를 가야한다는 압박에, 고등학교 때는 삭발을 하시시피 하고 ‘인 서울 대학’을, 대학에서는 취업을 향해 달려야 한다는 강요 속에 행복을 유예 당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의 나는 행복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하고도 취업이 힘들다는 현실이 이들을 절망에 빠뜨린다.
 
김예리 회원은 최근 SNS에서 주목을 받았던 글을 소개했다. 사회는 고등학교 때 까지는 ‘개성을 죽여라’고 하고, 대학에 와서는 ‘네 개성을 펼쳐라’, 취업 때는 ‘너만의 경험’을 어필하라고 한다. 실상은 개성을 펼칠 기회도 경험을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모순된 현실에 직면한다. 틀에 정해진 대외활동, 인턴, 어학점수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불공정마저 횡횡한다. 최근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의 채용 비리가 터지면서 허탈감과 박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고위 임원과 지인 자녀의 취업 청탁이 통했고, SKY 출신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사회가 능력으로 평가하겠다고, 노력해라 해놓고서는 능력 자체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학벌, 성별에 의한 차별은 기본이고, 부모의 스펙까지 따지는 현실에서 ‘노오력 해라’가 통할 리 만무하다.
 

인터뷰01.jpg

 
그럼에도 사회는 청년들이 대기업만 고집하니 취업이 힘들다고 '지적질'을 한다. 이런 현실을 만든 사회적 책임을 청년들에게 덤터기 씌운다는 반박이 바로 나온다. 나경렬 회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사회적으로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극심한 상황에서 청년들의 선택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기득권․기성세대․언론이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될 것을 왜 대기업만 고집하느냐’고 비판하는 게 합당하지 않다는 반박이다. 그러면서 한 선배의 사례를 소개했다. 굉장히 활달했던 선배가 2~3년 째 취업에 실패하자 점점 피폐해지고 자존감도 떨어졌다고. 또 지인과의 만남도 거부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였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서울․대졸․대기업만 다루는 언론
 
연이어 청년문제에 대한 언론 보도가 도마에 올랐다. “언론이 상정하는 청년은 서울 소재 대학 출신 청년이에요,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없어요”, “지역 출신이나 지역 소재 대학에 다니는 청년은 눈 밖이에요”(나경렬), “언론이 청년을 딱 하나로 정해주는 것 같아요. 대졸․서울․대기업 취업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죠”(김예리)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도외시하니 청년들이 언론을 더 멀리하고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이라 꼬집었다. 나경렬 회원은 그런 측면에서 지역에서 태어나 지역 대학을 나온 청년의 삶을 다뤘던 경향신문 기획 시리즈 <부들부들 청년>(2016년 1월~)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기획은 4부, 약 12개의 주제로 청년이 처한 현실, 원인과 대안을 심도 깊게 보도해 높은 평가를 받은 기획물이다. 이쯤에서 “꼭 하고 싶습니다”는 카피로 유명했던 강장음료, “사람이 미래”라고 했던 D그룹 방송광고가 한 때 흔한 패러디 소재였다는 기억이 떠오르는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청년이 권리 행사에 나서면 달라질 것
 
김예리․나경렬 회원은 이런 현실을 다수의 청년들이 받아들인다는 게 문제라고도 했다. 많은 수의 청년들이 학벌이라든가 세칭 일정한 ‘기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내가 잘 했으니까 사회가 이대로 굴러가야해’ 또는 ‘나는 밑에 있는 사람들을 짓밟을 만한 자격이 있어’라는 생각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스스로 본인의 못남을 한탄하면서 불합리한 기준들을 내면화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보니 재수 삼수를 넘어 'N수'를 감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표지08.jpg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초중고에서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사 정도를 겉핥기로 배울 뿐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을 문제 삼았다. 학교에서 가치관과 정치 참여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20대가 되어서 투표권이 주어지면 ‘왜 투표를 해야지?’라는 의문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 휩쓸려 청년을 대변할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사이 ‘청년의 권리’는 점점 멀어져 가는 악순환이다. 나경렬 회원은 투표권을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인 16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경렬 회원은 10대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학벌사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면서 당사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할 정치인을 뽑을 권리를 확보하면 이런 학벌, 주류, 비주류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바꿀 가능성을 좀 더 여는 길이라는 전제에서다.
 
마지막으로 민언련에 바라는 점을 묻자...
 
격정적인 인터뷰를 슬슬 정리할 시간이다. 열기도 식힐 겸 화제를 전환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빠지면 아쉬울 질문을 던졌다. 나경렬 회원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제가 멀 바라기에 너무 미안한 거 같아요”라고 해서 무슨 뜻일까 잠시 생각했다. 요지는 분과 활동도 하고 행사도 함께 기획하면서 활동가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봐왔기 때문에 여기서 더 바라는 건 미안할 일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많이해왔다고 하니 김예리 회원의 ‘존경’에 이어 두 번째 감동이 밀려온다. 김예리 회원은 6개월 간 인턴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꺼내 놓는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FTA와 같은 전문적인 주제나 매일 다루기 힘든 이슈들에 대해 관련 단체나 전문가와의 협업을 제안한다. 협업이 활성화되면 활동가들의 부담도 덜 수 있으리라 기대되고 좀 더 전문적인 비판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선거보도 모니터의 경우 각계 전문가 풀을 구성해 자문을 받곤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웠나 보다. 
 
김예리 회원의 ‘되지 말아야 할 기자’와 나경렬 회원의 ‘죽어도 쓰지 말아야 할 기사’라는 말이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이건 사실 개인이 온전히 짊어지고 갈 문제는 아니다. 언론계와 단체, 촛불 시민들 모두의 과제임을 다시 확인한다.
 
조영수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