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_ <컨택트>

어려운 영화 <컨택트>, 견디기 어려운 ‘인간의 운명’을 말하다
등록 2017.05.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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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무기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그 자체가 아니다. 루이스의 진짜 무기는 “찾아온 미래가 선물이 아니라 고통일 때 그것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영화 <컨택트>는 언어학자 루이스가 외계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언어 헵타포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그들의 사고체계까지도 학습하게 된다. 문제는 헵타포드를 기반으로 한 외계인들의 사고체계가 선행성에 기반을 둔 인간들의 세계관과 다르다는 점이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루이스는 외계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인다. 자신의 미래가 남편이 떠나고 아이가 병에 걸리는 불행임에도, 미래를 직시하고 지구를 구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만약 루이스가 그것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익숙한 선행적 시공간을 고집했다면, 영화 속 지구는 전쟁으로 물들고 타인들의 고통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SF를 벗어난 서사
 

SF 영화 속 대부분의 영웅 서사가 영웅의 긍정성을 통해 외부 환경과 싸워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컨택트>가 보여주는 영웅 서사는 긍정성을 통해 부정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딜레마와 싸우는 과정이다. 딜레마적 선택 그 자체가 주적이 된 상황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부정한 미래까지도 수용하는 긍정성을 보여준다. 이렇듯 ‘부정의 긍정화’라는 고도화된 플롯 라인을 통해 감독 드니 빌뇌브는 지구전쟁을 막는 단편적인 영웅 서사의 틀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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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SF 영화의 문법을 뒤집는 이러한 플롯은, 영화를 뜯어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더욱 빛난다. 회문의 구조(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는 것과 의미가 같음)를 품은 오프닝 씬과 엔딩 시퀀스. 주인공의 이름. 카메라와 공간 구도와 음향편집까지. 마치 유명한 건축 설계사의 구조물처럼 그의 영화는 구석구석 의미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허술한 내러티브는 옥의 티, 관객 시선도 갈려
 

하지만 영화 플롯이 너무 다층화되어, 기존 SF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영화 메인 내러티브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바로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나온다. “왜 외계인이 지구에 왔냐”라는 물음인데 이 물음에 영화는 끝까지 명확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또한 영화 내러티브 상 가장 고도화된 할 루이스가 중국의 장군을 설득하는 부분 역시 치밀한 인과 관계없이 뭉개져 버렸다.


이렇듯 기본적인 영화 내러티브 상 가장 긴박하고 치밀하게 해결되어야 할 두 부분이 유치한 방식으로 흘러가자, 이 영화를 보는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영화를 해석하기 좋아하는 평론가의 환호와 영화를 즐기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실망. 만약 감독이 의도한 것이 대중적인 SF 영웅 서사가 아니라 주인공 루이스의 개인 서사 또는 인류의 소통 문제였다면 SF라는 장르는 단순히 소재로 이용된 장치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대중적인 SF 문법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실망은 필연적인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을 인정한다 해도 표면적인 내러티브의 치밀하지 못한 구성은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어려운 만큼 가치 있는 드니 빌뇌브의 영화
 

이미 <그을린 사랑>과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를 통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올해 아카데미에서 또 상을 받았다. 대중을 실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건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가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의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통과 시간 그리고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매끈하고 세련되게 말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장르 문법을 비꼬는 시도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관철시키는 영화가 있었던가? 하지만 그의 능력은 단순한 영화적 재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드니 빌뇌브의 진짜 무기는 한없이 작은 우리 인간 존재의 비극적 운명을 숨기지 않고 긍정적으로 드러내는 용기다. 영화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감독의 이러한 시선은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언제나 묵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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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현대적으로 옮겨 놓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낯설다. 언제나 행복한 사진과 일상을 강요받는 현대의 소통공간에서 인간 존재의 필연적 비극성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는 영화를 통해 비극은 필연적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을린 사랑>에서 <콘택트>까지 드니 빌뇌브는 일관되게 인간운명의 부정성까지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강조했다. 설사 그것이 근친상간, 가족붕괴와 같은 비극 속일지라도 인간은 이를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겸허하게 우리 운명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우리 인간의 진짜 무기다. 내년에 개봉할 새로운 블레이드러너의 감독을 맡은 드니 빌뇌브가 또 어떤 묵직한 메시지를 전할지 기대된다. 


이재홍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