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이 함께하는 퇴근길
등록 2017.02.1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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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은 30분 빨라졌습니다. 버스는 한 번 더 갈아탑니다. 일간지를 뒤적이려 조금 일찍 일어나고, 놓친 저녁 뉴스를 챙겨보려 조금 늦게 잠듭니다. 지난 반 년 사이 제게 일어난 작은 변화들입니다. 

 

민언련에 오기 전, 저는 한 방송사에서 작가로 일했습니다. 작은 목소리까지 크게 전해 보겠다며 택한 일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일은 힘들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촬영장에서, 편집방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일한 좋은 사람들 덕분입니다. 제가 만난 ‘방송국 놈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014년 4월이었습니다. 모두가 간절히 기적을 바라던 때, 옆 팀이 뒤늦게 세월호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 일정도 잡고 진도 취재팀도 꾸렸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돌연 방송 제작이 취소되었습니다. 늘 그랬듯 또 없던 일이 됐습니다. 제가 만나보지 못한 ‘방송국 놈들’ 때문입니다.

 

가치관과 무관한 전문 분야 인터뷰라도 내용보단 인터뷰이 성향이 문제였습니다. 밤새 만든 영상은 다음날이면 가차 없이 수정되었습니다. 어제까지 저와 함께 일하던 PD는 느닷없이 관리부서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방송국 놈들’의 그림자는 그렇게 곳곳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언론의 자유’는 거창한 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들으며 배웠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언론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자유였습니다. 표현할 권리와 알 권리를 뺏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깨닫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민언련 회원으로, 누군가는 제작 현장에서, 누군가는 방송사 마당에서 촛불로 나의 자유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민언련을 찾았습니다. ‘민주 사회를 만들겠다’, ‘건강한 언론을 세워보겠다’는 대단한 포부는 없었습니다. ‘내 가족이 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가 좀 더 잘 먹었으면 좋겠다, 내 동료가 좀 더 제 목소리 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소망이 택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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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맡은 일은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는 작업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문제 발언들을 확인합니다. 나쁜 말 중 가장 나쁜 말을 골라 보고서를 씁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국가가 허락한 공권력”이라 정당화하고, 촛불 민심은 “종북 세력의 선동”이라 매도하는 시대착오적 발언들입니다. 소신으로 위장한 편견입니다. 저는 이들과 이들 뒤에 선 거대한 벽과 맞섭니다. 서툴게 느리게 제 소신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더 나쁜 말이 쏟아집니다. 벽은 꿈쩍 않고 있습니다.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곱씹는 말이 있습니다. 민언련 회원이기도 한 제 친구가 해 준 이야기입니다.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있다”

 

퇴근 시간은 길어졌고, 퇴근길도 멀어졌습니다. 그 시간과 그 거리는 보람이 채워줍니다. 오늘도 ‘나의 하루가 내 가족, 내 친구들의 행복을 지키는데 쓰였길’ 기대하며 사무실을 나섭니다. 내일도 열심히 달려, 더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하겠습니다.

 

김유나 종편모니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