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자백>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등록 2016.10.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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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백> 민언련 회원시사회 후기] 

두번 다시 <자백>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글 이훈 신문모니터위원회 회원

 

 

지난 8월 31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영화 ‘자백’ 시사회에 다녀왔다. ‘자백’은 지난 봄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세상의 빛을 본 후, 최근 스토리펀딩을 통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프로듀서이자 앵커인 최승호 감독 (MBC 해직언론인)의 감독 입봉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의 전말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으나, 거기서 그치지 않고 중앙정보부 시절을 포함한 지난 40여년 세월 동안 국가정보원 주도하에 벌어졌던 간첩 조작 사건 전반을 조명한다. 아니, 조명하고자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영화가 그다지 관객 친화적이지는 않다. 툭하면 흔들리는 화면에 눈은 쉴 틈 없이 어지럽고, 녹취 음성의 잡음을 걸러내려면 귀 역시 보는 내내 쫑긋 세워야 한다. 북한에 있는 고 한준식씨 자녀와의 통화 장면 등 일부 감성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편집은 오히려 사건 본질에의 집중을 어렵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종의 탐사보도나 다름없는 이 영화를 일반 극영화와 동일한 잣대로 감상하고,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일반적인 재미, 감동, 교훈이 아니라 막강한 힘을 가진 일국의 정보기관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행해 온 인권유린 작태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보기 안스러울 정도로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구르는 최승호 감독과 촬영 기자를 보며 저 정도의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이 이상의 ‘영화적 고퀄’을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에게 “직접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판한다. 나 역시 아직까지 살면서 국가의 절대 권력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어 본 적은 없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하는 현실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또한 나는 권력의 오로지 선하고 정의롭기만 한 활용은 불가능하다는 깊은 회의감도 가지고 있다. 영국의 액튼 경이 남긴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을 권력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절대 권력이 절대자가 아닌 인간의 손에 쥐어졌을 때 초래될 수 밖에 없는 현상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해석 대로라면 영화 <넘버3>의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 말대로 “죄에는 죄가 없는” 것이고, “죄를 짓는 놈이 나쁜 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발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 역시 국정원이라는 기관, 혹은 국정원이 가진 권력 자체가 아니라 바로 국정원에 소속되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놈들”인 셈이다. 존재와 활동이 베일에 꼭꼭 가려진 이 “놈들”을 찾아내 직접 죄를 묻기 위해서 이 사회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그 과정과 결과를 대중과 공유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한다. 최승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베테랑 프로듀서의 감각과 용기로 해낸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말미, 화면을 가득 채운 채 이어지는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 목록은 내게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에서 받았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다. 그로 인한 여운을 비롯하여 영화 내용에 대한 이런저런 개인적 궁금함이 컸으나, 영화가 끝난 시각이 늦은 밤이라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쉽다(앞으로는 이런 행사가 ‘가급적’ 주말 낮 시간대에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을 비롯해 참석율 자체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내와 기다림의 차이는 ‘인내는 고통을 수반하고, 기다림은 설레임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짧지 않은 시간 한없이 인내해야 했던 유우성 씨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분들의 여생에 앞으로는 인내가 아닌 기다림만이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다. 짧게는 이 영화가 하루빨리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 되기를, 길게는 두번 다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영화 <자백>은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10월 13일 개봉합니다. <자백>을 많은 시민들이 보는 것.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첫걸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