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를 포괄하는 보편은 어디에?
정연구 이사 ygcheong@hallym.ac.kr
2016년 10월호 소식지 여는 글을 써야 할 순서라는 통보를 받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궁리에 궁리했다. 소식지라고 하는 것이 말 그대로 회원들 사이에 일어난 다양한 소식을 서로 알려서 나누기 위한 매체이므로 회원의 한 사람인 ‘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담담하게 써도 무방할 터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마도 매체의 무게 중심이 회원들 소식이 아니라 단체의 소식에, 회원들 개인의 삶이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우리’의 삶에 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내가 아니라 우리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힘을 합쳐야 할지,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막연하지만 최근에 일어난 일 가운데 민언련 정책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 회의 때나 SNS상 소통 공간에서 조금은 심각하게 논쟁하고 고민했던 주제가 떠올랐다. 공영방송의 중간광고 허용 문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였다.
사안은 달라도 비슷한 내용의 논쟁을 한 이유는 공영방송은 우리에게 필요하므로 잘 되어야 한다는 같은 전제 때문이다. 여러 조사결과를 보면 시청 흐름을 방해하는 중간광고를 싫어하는 시청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공영방송에 충분한 재정확보는 필요하다는 전제가 공유되고 있어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역시 마찬가지다. ‘저따위 편파방송을 하고 있으니 없애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듣기 어렵다.
낡았으니 버리고, 필요가 없으니 내다 팔 수 있는 대상이라면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문제가 있는 데도 계속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깊은 고민이 시작된다. 공영방송에 돈이 없어 좋은 방송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쉽게 돈을 벌게 해 줄 중간광고를 보기 싫어한다. 이 논리 연쇄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다른 재원조달 방안이 된다.
수신료 인상이 해결책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또한 시청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어떻게 올릴까?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한 가지 해결책은 공영방송 구성원의 헌신성이다. 정말 대한민국 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질을 한 단계 이상 승급시킬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자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모두 토해내는 구성원의 헌신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잘 만들어진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선뜻 고가의 입장료를 내는 관람객이 많아진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 근거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편파방송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느 당이 집권하든 집권여당의 욕심이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지배구조를 만들어주면 된다’가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그렇게 해서 언론노조와 학계 일각에서 제안하는 방안이 특별다수제다. 이사진 구성을 할 때는 현재와 같이 여당이 다수, 야당이 소수를 추천하더라도 사장 임명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재적 2/3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결이 되겠냐는 것이 정책위 내부의 반론이었다. 야당 쪽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사장을 임명했다고 할지라도 자의나 타의로 권력의 기호에 맞는 ‘기레기 방송’을 하도록 간섭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방송사 종사원의 편성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대안이 제기되었다. 방송사 구성원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방송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자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 아니다. 편성권을 줬는데 방송 종사자의 헌신성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공영방송의 재원 조달도 지배구조 개선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모두 종사자의 헌신성에서 도출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의 공유 기반이 무너져서다. 어떤 제도를 만들던 그 제도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전제하고 있는 가치관이 공유되어야 하는데 오늘의 한국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국정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청와대가 이미 그런 모범(?)을 보이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불의한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청와대는 심지어 ‘해임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수군거림을 감수하면서까지 두둔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사람의 딸이 800억 원대의 재단을 설립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의혹은 곧 사실 여부가 밝혀지겠지만, 문제가 확실한 우병우 수석의 경우와 관련해서는 누구나 다 아는 공직자의 준법성을 대통령이 먼저 깔아뭉개는 일을 한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논쟁은 대부분 방법론의 차이에서 일어난다. 방법론의 전제가 되는 다양한 기본가치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든가,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방법 논쟁은 고사하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청와대를 비롯한 사법계 등 사회 곳곳에서 이런 기본 전제에 관한 공감대가 상당히 무너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사 구성원의 진정성을 찾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된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뇌물 수수나 직권 오남용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윤리적 행동은 진보의 몫이고 보수는 부패해도 좋다던가, 반대로 사회 규범의 준수는 보수의 몫이고 진보는 변화와 변혁만 부르짖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올바른 공동체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말 좋은 공영방송을 만들고 싶으면 나부터라도 먼저 인류사회 구성원 그 누구도 지켜야 할 기본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