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의 영화이야기] 행복을 주는 사람(2016.7.)
등록 2016.07.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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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영화이야기ㅣ 바베트의 만찬, 요코하마 메리, 플래닛 비보이, 바그다드 카페
행복을 주는 사람

 

 

김현식 이사

 

 

바베트, 메리, 라스트포원, 자스민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준 이들이다. 자신의 재능으로, 한결같은 삶의 방식으로, 희망을 향한 열정과 땀방울로, 상대를 위한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을 나눈다. 자신의 상처를 딛고 타인에게 행복을 전한 주인공을 소개한다.

 

바베트의 만찬(1987 덴마크 / 감독: 가브리엘 악 / 출연: 스테파니 오드런·버짓 페더스피엘·보딜 카이어)

덴마크 바닷가 외딴 마을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파리 코뮌 과정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바베트, 그녀는 신앙심 깊은 마르티네와 필리파 자매를 위해 14년 동안 묵묵하게 일한다. 어느 날 바베트는 만 프랑 복권에 당첨된다.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돈, 마을을 떠나기 전 바베트는 소원을 말한다. 자매의 아버지이며 마을 목사님의 100번째 생일 만찬을 직접 준비하고 싶다는 제안. “정식 프랑스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금욕을 신조로 살아온 자매한테 바베트의 만찬은 위험한 유혹이었다. 풍요로움을 쾌락으로 여긴 자매는 “만찬에서 절대로 음식 얘기를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매의 서늘한 침묵은 곧 따뜻한 미소로 바뀌었다. 만찬에 참석한 12명 모두 감동했다. 바베트는 고백했다. 자신은 프랑스 파리 유명 레스토랑 ‘엉글레 카페’의 수석요리사였으며, 엉글레에서는 12명 만찬을 위해 만 프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만 프랑을 다 써버린 바베트는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걱정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당신들만의 만찬은 아니었어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반전의 순간(파리 최고 레스토랑 수석요리사였다는 고백)마저도 담담한 <바베트의 만찬>.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때, 타인을 향한 행복의 여파는 얼마나 넓게 퍼지는지 담담하게 보여준다.

 

 

요코하마 메리(2006 일본 / 감독 : 나카무라 다카유키 / 출연 : 고다이 미치코·히데오 모리)

영화감독, 소설가, 댄서. 많은 예술가가 ‘그녀’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고, 우아하고 예의 있게 행동했다. 모두의 추억과 기억에서 남달랐던 ‘그녀’가 1995년, 영화를 개봉하기 10년 전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녀’를 요코하마 메리라고 불렀다. 메리는 2차 대전 이후 50여 년 동안 요코하마에서 매춘했다. 사라질 당시 나이 74세 메리는 얼굴을 온통 하얗게 분칠하고 귀족 부인 같은 드레스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했다. 레이스 장갑과 고풍스러운 모자도 메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메리와 각별한 우정을 쌓았던 게이 샹송 가수 나카토 간지로는 메리를 찾아 나선다. 간지로는 메리에게서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했다. 고독한 존재, 그래서 더 메리한테 애정을 느꼈다. 메리는 요코하마를 떠나 고향에 머물렀다. 대도시로 건너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어,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메리는 이제 하얀 분칠을 지운 평범한 할머니였다. 주름진 얼굴에 모진 풍파가 그득했지만, 기품은 여전했다. “화장하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야.” 요코하마에서 메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초라했던 자신을 감추고 싶어 얼굴을 온통 하얗게 화장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구부러진 메리의 손을 꼭 잡고 간지로는 말한다. “100살까지 사세요.” 이 말 뒤에는 ‘메리 당신 덕분에 행복한 인생이었어요.’가 숨었다. 영화 마지막 간지로는 메리를 위해 <My way>를 부른다. 언제나 ‘나만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산 메리에게 바치는 헌정 곡이 뭉클하다. 극장 개봉 누적 관객 537명이 아쉽다.

 

 

플래닛 비보이(2008 미국 / 감독 : 벤슨 리 / 출연 : 라스트포원·이치게키·너클헤드주·페이스T)

 

 

2005년 독일 ‘배틀오브더이어 Battle of the year’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배틀오브더이어’는 해마다 독일 브론쉬바이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보이 월드컵대회다. 세계 18개국 예선을 통과한 19개 팀 비보이들이 우승을 위해 모였다. 카메라는 4강에 오른 프랑스 [페이스-T], 일본 [이치게키], 미국 [너클헤드주], 한국예선 1위 [라스트포원]과 전년도 챔피언 한국 [겜블러즈]의 도전기를 쉼 없이 좇는다. 결승전에서 [라스트포원]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한다. 노는 애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하루 열 시간 넘게 춤만 추는 이들. 아버지 무덤 앞에서 신나게 춤추고 오겠다는 다짐을 하는 독한 녀석들. [라스트포원] 크루들은 부모의 지원도 없는 데다 지방에서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거리가 부족한 탓에 멤버들 모두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뛴다. 춤을 추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말하는 ‘꿈을 향한 열정’, 비보이들은 땀과 눈물을 쏟으며 온몸으로 다가선다. 이들의 열정은 꿈의 무대 ‘배틀오브더이어’에서 힘차게 솟아오른다. 대회 11년 후 현재, [라스트포원]은 여전히 왕성하게 지구별을 누비고 있다. 청춘의 헹가래는 멈추지 않았다.

 

바그다드 카페(1988 미국·서독 / 감독: 퍼시 애들론 / 출연: 마리안 제게브레히트·CCH 파운더·잭 팔란스)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 66번 도로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는 초라함과 무기력으로 가득하다. 커피 내리는 기계는 오래전 고장 났다. 제대로 청소한 지 오래된 가게는 먼지만 흩날린다. 카페 주인 브렌다는 무능력한 남편과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아들, 딸 때문에 삶이 고단하고 짜증스럽다. 어느 날, 독일인 관광객 자스민이 카페에 왔다. 여행 도중 남편과 싸우고 홧김에 차에서 내려 카페로 온 그녀, 자스민은 카페에서 운영하는 모텔에서 당분간 머문다. 처음에 브렌다는 왠지 자스민이 못마땅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차츰 그녀와 가까워진다. 마술을 공부한 자스민은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바그다드 카페는 노래와 웃음, 마술과 기쁨이 넘치는 사막의 오아시스로 변했다. 자스민과 브렌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했다. 행복도 잠시. 체류 기한을 넘겨 불법으로 일하던 자스민은 카페를 떠나야 했다. 바그다드 카페는 다시 무기력에 빠졌다. 브렌다는 자스민을 기다렸다. 영화 후반 모두의 바람대로 자스민이 돌아왔다. 이곳은 그녀가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였다. 이제 마법 같은 사막의 기적을 이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자스민과 화가 콕스(잭 팔란스)의 관계다. 콕스의 그림 모델이 된 자스민은 한 겹 두 겹 결국 옷을 다 벗은 채 포즈를 잡는다. 영화 후반부 콕스가 자스민에게 청혼하자 자스민이 웃으며 말한다. “브렌다와 얘기해볼게요.” 자베타 스틸이 부른 OST <Calling you>는 멜로디가 슬프다. 열 번쯤 들으면 얼마나 다정하게 나를 위로하는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