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ㅣ 자백(2016,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 최승호)
추악하고 불편한 진실에 다가서는 저널리스트 최승호의 투혼
박성제 회원(MBC 해직기자)
2012년 6월, 최승호 PD와 나는 MBC에서 느닷없이 해고됐다. 해고사유는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몇 년 전 노조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두 사람은 청춘을 바쳐 일했던 회사에서 쫓겨났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별 동요 없이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만을 기다렸다. 여야의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씨가 모두 대통령이 되면 MBC를 정상화하고 해직언론인들도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2013년 봄,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MBC 문제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고 약속을 지킬 생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무렵 최승호 선배와 나는 함께 등산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북한산 중턱에서 땀을 닦으며 내가 물었다.
“최 선배, 우리 이제 MBC로 돌아가기 힘들겠죠?”
“쉽지 않겠지. 해고무효소송을 해도 몇 년은 걸릴 거야.”
“그럼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거요?”
“난 뉴스타파 열심히 해 보려고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요즘 취재 시작한 것도 있고.”
“무슨 취재인데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있지? 그게 아무래도 국정원이 조작한 거 같아. 한 번 제대로 파헤쳐 봐야겠어.”
“정말이요? 최 선배에게 걸렸으니 국정원 이제 큰일 났네.”
국정원 큰일 났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PD수첩을 통해 황우석 박사의 대국민 사기극을 밝혀내고, 검사와 스폰서의 뿌리 깊은 유착을 고발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 최승호였기에 나는 간첩사건이 조작됐다는 그의 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최승호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최 선배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이제 어쩔거냐?”
“글쎄요, 저도 뉴스타파 가서 선배 도와드리고 싶긴 한데 요즘 뭐 시작한 일이 하나 있거든요. 그거 잘 안되면 합류할게요.”
“그게 뭔데?”
“스피커 만들어 보려고요.”
“웬 스피커? 네가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
“네.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허허 참.”
MBC 복직을 기다리면서 무슨 일을 하고 지낼지에 관한 우리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나는 스피커회사 대표가 됐다. 그리고 최승호 선배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3년 동안 끈질기게 추적해 온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전모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낸 것이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다는 소식에 나는 만사 제쳐놓고 전주로 달려갔다.
그동안 드문드문 접했던 언론보도를 통해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실이 드러났고 간첩으로 기소됐던 유우성 씨가 무죄선고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 선배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산에 오를 때마다 가끔 ‘취재 잘 돼 가냐’고 내가 물어도 최 선배는 얘기를 잘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수많은 재판기록이 스크린을 통해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될 지도 참 궁금했다. 영화와 TV는 다르다. 최선배가 대한민국 최고의 시사 프로그램 PD이긴 하지만 영화는 <PD수첩>이 아니지 않은가. 만약 영화로서의 완성도에 조금이라도 미흡한 점이 보이거나 지루한 느낌이 든다면 가차 없이 지적해 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세다. <자백>은 진짜 센 영화였다. 순식간에 90분이 흘러가 버렸다. 보는 내내 심장을 조여 오는 긴장과 놀라움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탈북 여성이 유일한 혈육인 오빠를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에 왔다. 그녀는 6개월간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감금 취조를 당한 후 오빠가 북한 공작원이라고 ‘자백’한다.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오빠 유우성 씨는 간첩 혐의로 기소당한다. 6개월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카메라는 국정원에서 풀려난 뒤에도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녀의 자백이 협박과 회유로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음을 한 꺼풀씩 밝혀내기 시작한다.
최승호는 영화의 모든 현장에서 언제나 중심에 있다. 피해자들의 동선을 따라 몇 번이나 중국행 비행기를 타고,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를 만나기 위해 법원 앞에서 밤늦도록 ‘뻗치기’를 마다치 않는다. 그는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배우이며 내레이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실에 다가서는 저널리스트다.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그러나 무섭도록 집요하게 파헤쳐 나간다. 국정원이 은폐하고 혹은 조작했던 수많은 증거들을.
그 과정에서 국정원 취조 중 의문의 자살을 한 또 다른 탈북자 한준식 씨의 사연이 돌출하고 1970년대 학원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재일동포 김승효 씨의 삶과 조우한다. 무슨 의도로 국가가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갔는지, 이들의 짓밟힌 삶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지,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간첩 조작이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우리 현대사에서 독재 권력이 정권안보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무기였음을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이제 모든 음모를 밝혀낸 감독 최승호의 카메라는 조작의 책임자들을 향한다. 마치 과녁을 향해 정조준된 화살처럼. 어렵게 어렵게 만난 당시 국정원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분노를 억누르고 냉정하게 최승호는 묻는다. 그들의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모른다’‘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만, 관객들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들이 가해자라는 것을.
<자백>을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그냥 평범한 다큐멘터리로 분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백>은 기록하고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추악하고 불편한 진실에 다가서는 저널리스트의 투혼은 관객들에게 강력한 정서적 울림을 전달한다. 그 결과 전주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관객과의 대화 열기도 가장 뜨거웠다. ‘넷팩상’과 ‘다큐멘터리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는 영예도 누렸다.
<자백>의 최고 장점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거다. 스릴러보다 스릴 넘치고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혹시나 모를 단점을 지적해 주려 했던 내가 스스로 창피해졌다. 나는 최승호 선배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최 선배, 죽입니다. 선배는 진짜 최고의 영화감독이에요.”
최 선배는 환하게 웃었다.
P.S.
<자백>의 마지막 화면이 지나간 후에도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다. 바로 충격적이면서도 무거운 여운을 남기는 엔딩 크레딧 때문이다. 그 내용은 영화를 감상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 소개하지 않고 남겨둔다. 함께 <자백>을 본 아내는 엔딩 크레딧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엔딩 크레딧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두 영화 모두 저널리스트의 끈질긴 노력이 권력의 치부와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점이 공교롭다.